
김태화(1950년 10월 4일 ~ )는 1970년대부터 활동하였다. 미 8군에서 주로 활약했던 라스트찬스라는 그룹 사운드의 보컬을 담당했던 김태화는 단발령 등으로 인해 그룹이 해체될 때까지 놀라운 가창력으로 데블스와 함께 당시의 그룹 사운드계를 평정했던 전설적인 보컬리스트이다.
어린시절 당시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던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지적인 토대를 쌓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늘 음악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고교 시절의 다양한 경험은 훗날 가사 작업과 곡 해석에 깊이를 더해주었다.
1969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본격적인 성인의 삶과 음악가의 길을 선택했다. 안정적인 진로 대신 거친 음악의 세계를 택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릴 준비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는 대학 진학보다 실전 무대에서의 경험을 쌓는 데 주력하였다. 당시 유행하던 해외 록 밴드들의 음악을 섭렵하며 자신만의 보컬 스타일을 연구하였다.
1970년 록 밴드 '라스트 찬스(Last Chance)'의 리드 보컬로 합류하며 전설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미8군 무대에서 실력을 쌓으며 당시 음악인들 사이에서 가장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보컬로 인정받았다. 라스트 찬스의 사이키델릭 록과 하드 록을 넘나드는 연주는 당시 대중음악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김태화는 라스트 찬스 활동을 통해 '미8군의 신화'라고 불릴 정도로 압도적인 가창력을 선보였다. 화려한 무대 매너와 허스키한 고음은 국내 음악계에서 이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스타일이었다. 실력을 인정받아 미8군 무대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가수로 자리매김한 김태화는 외국인 관객들조차 매료시킨 그의 소울풀한 가창력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무대 위에서 뿜어내는 에너지는 그를 한국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정점으로 끌어올렸다. 당시 미8군 무대는 실력 없는 가수는 서기 힘든 혹독한 곳이었으나 김태화는 그곳을 평정하였다.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이 시기 쌓은 풍부한 라이브 경험은 훗날 그의 솔로 활동 시기에 강력한 기반이 되었다.
라스트챤스는 1960년대 후반 경북 칠곡군 왜관읍의 기지촌에서 결성된 밴드였다. 김태일(기타), 나원탁(세컨드 기타), 곽효성(베이스), 이순남(드럼), 김태화(보컬)등 당시 십대였던 멤버들은 박영걸에게 픽업되어 경기도 파주로 무대를 옮겼고, 출연했던 라이브클럽 이름을 따서 라스트챤스라는 팀명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박영걸은 라스트챤스는 물론 데블스를 발탁한 인물로, 신중현과 엽전들의 매니저를 맡기도 했다. 이후 이은하, 정애리, 윤승희 등 여성 가수들과 벗님들, 산울림의 활동에도 관여했다. 노만기획을 설립하고 노만가요제를 개최해 신인 가수를 발굴했던 그는 탁월한 매니지먼트 수완을 가진 인물이었다.
박영걸은 라스트챤스에게 악기 연주나 발성 훈련과 새벽 뜀뛰기 등 체력 훈련을 병행시켰다. 그 결과, 멤버들은 기지촌을 벗어나 1970년 명동의 실버타운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그해 열린 제2회 플레이보이컵 전국보컬그룹경연대회에서 2등을, 이듬해에는 1등을 수상하며 존재감을 높여 나갔다. 그때의 인기 여세를 몰아 1971년 12월 발표된 밴드의 유일한 크리스마스 캐럴집이 바로 <화이트 크리스마스 / 징글벨> (GOGO 춤을 위한 경음악)이다.

오늘날의 크리스마스이브와 1970년대 크리스마스이브는 큰 차이가 있다. 당시 자정이면 통행금지가 시작됐지만, 일 년 중 단 하루 통금에서 해방되어 광란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날이 크리스마스이브였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에 발표된 국내 록 밴드들의 크리스마스 캐럴 음반이 요즘 음반들보다 더 강하고 자극적으로 편곡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1969년 발매된 히파이브의 <Merry Christmas 사이키데릭 사운드>가 '징글벨'에 아이언 버터플라이의 곡을 테마로 환각 세계의 문을 두드렸다면, 라스트챤스가 같은 곡에 이용한 소재는 레어 어스의 곡이다. 점잖은 도입부가 지나면서 곧바로 이어지는 연주는 브라스 파트를 위주로 한 로, 당시 국내 밴드의 음반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베이스 솔로로 넘어간다.
이어지는 키보드 연주와 퍼즈 톤이 강하게 걸린 기타 사운드는 1960년대 말부터 미국에서 불던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원형질을 그대로 담았다. 또한 각 파트별 솔로 연주 릴레이는 쉼 없는 클럽 연주 시에 자신의 파트가 지난 다음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을 알려주는 복선과도 같다. 비록 스튜디오 녹음 버전이지만, 그 뿌리는 이들의 활동 무대를 그대로 옮긴 라이브 음반 같은 형태였다. A면 수록곡은 차분한 크리스마스 캐럴의 진행을 따랐지만, 순발력 있는 도입부 연주에는 원시적인 힘이 담겼다.
김태화는 인터뷰에서 “당시 배우는 단계였기에 음악적으로나 실력 면에서 선배들과 비교될 밴드는 아니었다. 하지만 하드록이라는 완전히 젊은 문화와 새로운 솔로 보컬 시스템을 통해 하모니 보컬 위주의 시대에 신선함을 주기에는 충분했다”고 회고했다.
라스트챤스는 하드록의 신선함과 더불어 막 유입되기 시작한 히피 문화의 영향을 충격적으로 시각화하여 인기를 얻었다. 이는 일반 대중보다 외국인을 비롯해 예술인 등 특별한 계층을 결집시켰다. 그들이 보여준 시각적인 충격이란 일본에서 수입한 사이키 조명을 이용한 무대, 장발 단속 포스터에 등장할 만큼 그들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긴 머리, 박영걸 사단의 상징과도 같은 현란한 무대 매너까지 자신들을 표현했던 모든 것을 의미한다. LP라는 청각 중심의 매체로는 이들의 모습을 온전하게 담아내기 어려웠다.
라스트챤스를 설명할 때 흔히 ‘전설’이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당시 가장 강한 하드록을 연주하고 노래했다”라고 전해지는 입소문 때문이다. 초기 멤버였던 최우섭이 이후 무당을 결성했고(음원은 남아 있지 않다), 김태화는 록 보컬을 구사한 솔로 가수로 나섰으며, 유현상과 한춘근은 백두산을 결성해 초창기 국내 헤비메탈을 견인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구전을 증명한다. 이 음반은 크리스마스 캐럴 연주 음반이란 약점에도 불구하고 전설로 회자되는 이들의 실체를 증명하는 귀중한 음원이다.
김태화는 1974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면서 밴드활동을 중단했다.
김태화는 1978년 당대 최고의 디바 정훈희와 운명적으로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록 가수와 팝 발라드 여왕의 만남은 연예계 전체를 뒤흔든 세기의 스캔들이자 로맨스였다. 음악이라는 공통 분모를 통해 급격히 가까워진 두 사람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연애 행보를 보였다. 김태화의 거친 매력과 정훈희의 세련된 이미지가 결합되면서 대중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 만남은 두 사람의 인생뿐만 아니라 각자의 음악 세계에도 깊은 변화를 주는 계기가 되었다.
1979년 김태화는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정훈희와 동거를 시작하며 형식적인 결혼식보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삶을 함께하기로 하였다. 두 사람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자신들의 감정에 솔직한 삶을 선택한것으로 실제로 결혼 발표 이전에 함께 생활하며 서로의 예술적 영감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면서 김태화는 솔로 앨범을 준비하는 데 있어 큰 심리적 위안이 되기도 하였다.
1979년 귀국한 김태화는 밴드 뿌리를 결성했지만 이듬해인 1980년 7월 솔로 1집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 / 기다리지 말아요>을 발표하면서 자신만의 음악활동을 시작한다. 총 9곡(건전가요 제외)이 수록된 이 앨범은 포크가수 이장희가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타이틀 곡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는 이장희의 창작곡이며 이어지는 노승준 곡 '기다리지 말아요'는 유일하게 김태화가 작사에 참여한 곡이다. 재킷에는 김이환으로 명기되었지만 실은 이장희가 작곡한 '안녕'은 파워풀한 록발라드에 강점을 지닌 김태화의 절창이 빛나는 명곡이자 그의 최고 히트곡이다. 특히 애절한 가사와 김태화 특유의 허스키한 보이스가 만나 대중의 감수성을 자극했다. '안녕'은 발매 직후 각종 차트 상위권을 휩쓸며 김태화에게 최고의 전성기를 안겨주었다. 이별의 아픔을 담담하면서도 절규하듯 부르는 그의 창법은 독보적인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이경희 곡으로 명기된 '얘기할 수 없어요'도 이장희 곡으로 당시 활동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장희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김이환, 이경희, 이경애로 종종 노래를 발표했다.
이외에 김도향이 작사 작곡한 '바보처럼 살았군요'는 이종용과 김도향이 김태화보다 한 달 앞서 발표해 비슷한 시기에 세 명의 가수가 노래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앨범을 발표한 1980년, 김태화는 MBC 문화방송과 경향신문이 공동 주최한 <서울국제가요제>에 나간다. 본선에 진출할 국내 가수를 선발하는 예선전 격인 국내대회에서 김태화는 쟁쟁한 경쟁자들인 혜은이, 진미령, 혼성밴드 들고양이들에게 밀려 본선에 진출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대회 출전곡 '바보처럼 살았군요'가 좋은 반응을 얻어 캐나다에서 열린 <태평양가요제>에 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서울국제가요제 본선 탈락의 설욕은 1982년에 하게 되는데, 1984년 12월에 발매된 2집 <김태화>에 수록될 '변덕스런 그대'로 드디어 국제가요제 본선 무대에 오른다. 대회 출전 당시 영문 제목은 'You, A Weathercock'으로, 밴드 작은거인의 김수철이 작사 작곡한 곡이다.
1집 수록곡 중 '얘기할 수 없어요', '바보처럼 살았군요',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 '안녕' 등 무려 4곡이 2집에 재수록 되어 솔로가수 김태화를 더욱 대중에게 알리는 촉매 역할을 한다.
특히 '안녕'은 이후 이선희, 조영남 등이 다시 불렀고 각종 7080 히트곡 컴필레이션 CD에 재 수록되면서 뒤늦게 히트하여 김태화의 대표곡으로 각인되었다.
정훈희와 김태화는 혼전 동거, 이별, 재결합을 거치며 순탄치 못한 만남을 이어갔다. 특히 김태화는 대마초와 마약 사건에 연루된 탓에 가수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정훈희는 1980년 초에 혼전 임신으로 자녀들을 먼저 낳고, 1985년에야 김태화와 결혼하며 정식으로 부부가 됐다. 그녀는 1979년 칠레가요제 수상곡 '꽃밭에서'로 재기했지만 이전처럼 왕성히 활동하지는 못했다. 육아와 남편의 뒷바라지로 가수 생활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결혼 후 정훈희와 김태화는 1989년 3월 한국음반에서 프로젝트 부부 듀엣을 결성해 앨범 <우리는 하나 DUET / 인생과 구름>을 발표했다. 총 12곡의 수록곡 중 타이틀곡 '우리는 하나', '불타는 밤' 등 3곡이 듀엣으로 부른 곡이다.
조용호 작사, 최종혁 작곡의 타이틀곡 '우리는 하나'는 긍정적인 가사 덕분에 연인과 부부들에게 사랑받았다.
'우리는 하나'는 다사다난한 일로 어려움을 겪었던 부부가 정상적인 가수 생활로 복귀하는 전환점이 되어준 곡이었다.
두 사람은 이 노래를 발표한 후 함께 방송에 자주 출연했다. 부부는 KBS <열린음악회>, EBS <공감> 등 각종 프로그램에서 '우리는 하나'와 '불타는 밤'을 듀엣으로 부르며 음악적 동지로서의 각별함을 보여주었다.
2014년 걸그룹 시스타 멤버 소유는 JTBC 예능프로그램 <대단한 시집>에서 정훈희와 김태화의 가상 며느리로 출연했다. 그녀는 '우리는 하나' 뮤직비디오를 제작해 두 사람에게 선물했다.
1998년 복잡한 서울 생활을 뒤로하고 부산 기장군으로 거처를 옮기며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한 이들부부는 화려한 연예계의 삶 대신 평화로운 바닷가 마을에서 음악적 성찰과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
2000년 부산 기장에 아내의 히트곡 이름을 딴 라이브 카페 <꽃밭에서>를 열고 팬들과 직접 만났다. 대형 무대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팬들과 호흡하며 생생한 라이브 음악을 들려주었다. 이곳은 전국의 팬들이 김태화의 음악을 듣기 위해 찾아오는 기장의 명소가 되었다.
매일 밤 펼쳐지는 그의 공연은 여전히 녹슬지 않은 가창력을 확인시켜 주는 장이었으며 팬들에게는 전설적인 가수를 직접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꿈 같은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2009년 12월에는 미니앨범 <마스크 (MASK)>를 발매하였다. 이 앨범은 1989년 듀엣 앨범이후 20년만에 발매하는 앨범 이었다. 음반의 타이틀과 같은 '마스크'라는 곡은 작가 이외수의 글에 후배 뮤지션 부활의 김태원이 작곡을 한 곡이다. 시대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이외수 작가의 관조적인 생의 성찰을 내용에 뮤지션 김태원의 독특한 감성이 접목된 이 곡은 무려 8분짜리 대곡이다.
또한 김태화의 오랜지기 친구인 그룹 '무당' 출신의 뮤지션 최우섭 작사, 작곡인 'the day'라는 곡은 감성적 록음악의 진수를 느낄 수 있기도 하다. 음반에는 그의 록큰록 대표곡 '김치블루스'가 수록되었으며, 대표곡 '안녕' 또한 새롭게 편곡되고 지금의 그의 목소리로 만날 수 있다. 또한 앨범의 연주는 그룹 부활이 하였고 후배 뮤지션들 중 기타리스트 김도균 등이 참여하였다.
2012년 8월 제17회 부산 바다축제의 개막 공연에 참여하였으며 2015년 10월 KBS <불후의 명곡> 전설의 가수 특집에 출연하여 후배들의 헌정 무대를 지켜보았다. 자신의 곡들을 재해석한 무대들에 감동하며 음악적 교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도 했으며 마지막에는 직접 무대에 올라 짧지만 강렬한 노래를 선보였다.
현재까지도 꾸준한 음악 활동과 사회 공헌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있으며 후배들에게는 엄격하면서도 따뜻한 멘토로서, 대중에게는 추억과 현재를 잇는 연결고리로서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도 팬들과 소통하며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고 있다.
라스트 챤스 - 라스트챤스의 폭발적인 사운드 : Gogo춤을 위한 경음악 (1971)
김태화 1집 - Kim Tea Hwa (1980.7)
김태화 2집 - 김태화 (1984.12)
정훈희 / 김태화 - 정훈희+김태화 (1989.3)
김태화 - 마스크 (MASK)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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