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수 윤연선(본명 윤금옥)은 1952년생으로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전남 광주에서 중학교, 서울서 혜화여고를 졸업하고 1971년에 동국대 가정학과에 입학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방송국에 다녔던 큰 언니가 즐겨 듣던 팝송과 한명숙, 박재란 등이 부른 1960년대 히트 가요들을 접하며 성장했다. 고교 1학년 때부터 YMCA의 '싱얼롱 Y'에 나갈 정도로 노래를 좋아했던 윤연선은 서울 명동의 대학 연합 음악 동아리에 참여했다. 1972년 KBS배 쟁탈 전국 노래자랑 월말대회에서 1등을 하고 여기에 선발된 아마추어 가수 6명과 함께 KBS의 <새별무대>에 출연하여 이수만의 자작곡을 불렀다.
이것을 계기로 현재 국제적인 제작자가 된 이수만과 함께 음반을 제작하게 되었는데, 1972년 10월에 이종환의 제작으로 오아시스에서 발매된 시리즈 앨범 <Oasis Folk Festival Vol.6> 의 수록곡이자 타이틀곡인 '내마음'이 데뷔 곡이다. 1972년 봄, 윤연선은 솔로 가수 데뷔 음반 취입을 위해 녹음 일정을 잡은 이수만을 따라 서울 마장동 스튜디오로 놀러갔다. 그곳에서는 송창식, 남성 듀오 4월과5월, 서수남 등 여러 유명 가수들이 녹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녹음실을 구경하던 윤연선은 DJ 이종환의 권유로 장난삼아 이수만의 창작곡을 불러 녹음을 했다.
윤연선은 한 인터뷰에서 “음반으로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제 데뷔 음반이 되어버렸어요”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윤연선은 타이틀곡 결정에 대해 “아무런 지명도도 없던 제 노래가 앞면 타이틀곡이 되고, 지명도가 훨씬 높았던 이수만의 노래를 뒷면에 실은 음반을 보고 참 머쓱했어요”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 당시 유명한 배우 윤양하(1940~2021)를 친오빠, 성우 윤수경을 큰언니로 두고있었던 그녀는 뚜아에무아 2기로 영입되어 녹음까지 했다가 윤연선이 제외되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1972년 혼성 듀엣 뚜와에무아의 이필원은 오리지널 여성 멤버 박인희와 결별 후 새로운 파트너를 찾았다. 그는 작곡 발표회를 열었는데 여기에 윤연선이 초대가수로 노래를 불렀다. 호흡이 잘 맞는다고 느낀 이필원은 듀엣멤버를 제의했다. 2기 뚜와에무아를 꿈꾸며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6개월 정도 화음을 맞추며 신보 녹음까지 끝냈다. 녹음한 노래를 모니터링한 이필원은 박인희의 고운 음색과 다른 윤연선의 맑으면서도 허스키한 음색이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의 반대로 음반 취입은 무산되고 활동도 불발되었다.
이에 제작비를 들인 킹레코드 사장 킹박(본명 박성배)이 “녹음이 아깝다”며 느닷없이 차선책으로 윤연선의 독집 제작을 제안했다. 당시 옆자리에 있던 신중현이 녹음된 노래를 다 들어보곤 “윤연선의 목소리가 참 예쁘다. 음반을 내도 충분하겠다”며 거들었다. 이때의 인연으로 윤연선과 신중현은 함께 빙그레 아이스크림 CM송을 부르게 된다.
1972년 11월 유니버샬레코드에서 발매한 포크 가수 윤연선의 첫 독집 <평화의 날개>는 독집으로 발매하기엔 이필원과 듀엣으로 노래한 곡 수가 부족했다. 이에 기성 작곡가 김기웅과 윤연선과 친분이 있던 싱어송라이터 오세은이 창작한 신곡을 추가로 녹음했다. 총 12곡을 수록한 이 음반은 이필원이 윤연선과 혼성듀엣 뚜아에무아의 2기를 결성해 녹음을 마쳤지만 발표되지 못한 신곡을 수록했다.
타이틀곡은 뒷면 첫 트랙을 장식한 '평화의 날개'였지만, 이 앨범의 가치는 당연히 이필원과 윤연선이 함께 부른 '님이 오는 소리', '보내는 마음 가는 마음'에 있다. 이 2곡은 이 앨범을 발매한 2년 후 공식 뚜아에무아 2기를 결성한 이필원, 한인경이 히트시킨 노래의 오리지널 곡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필원과의 듀엣곡 '그리운 사람'을 들어보면 상당히 괜찮은 수준의 화음이다. 이필원의 박인희에 대한 미련이 상당히 강했음을 알 수 있다.
이필원은 한 인터뷰에서 “혼성 듀엣 결성을 위해 그녀와 잠시 음악 작업을 함께했던 사실을 잊고 살았다. 그런데 아직도 윤연선의 '얼굴'을 기억하는 팬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솔직히 당시에는 화음이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 불발탄으로 끝냈는데, 그때 노래를 들은 팬들이 ‘박인희를 능가하는 환상적인 화음’이라며 많이 아쉬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1970년대 초반에는 유독 여대생 가수들의 데뷔가 많았다. 우수에 젖은 듯 가슴을 파고드는 하모니의 노래로 주목받은 윤연선은 양희은, 어은경, 이성애 등과 함께 <주간여성>이 보도한 여대생 가수 특집 기사에 소개되었다.
1974년에 은사였던 작곡가 신귀복 선생에게 찾아가 받은 곡이 바로 얼굴.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불리고 있다. 이 노래는 1967년 서울 동도중학교의 신학기 첫 교무회의. 회의가 길어지자 지루해진 음악교사 신귀복은 옆에 앉았던 생물교사 심봉석에게 사귀는 애인을 생각하며 노래가사를 써달라고 한다. 제목은 ‘얼굴’로 정해주었는데, 금방 쓰여진 가사에 신귀복은 즉석에서 곡을 붙였다. '얼굴'이란 명곡은 이렇게 교무회의 시간에 두 젊은 선생이 즉석에서 단 5분만에 만든 곡이다.
1970년 신귀복이 낸 가곡집 앨범에서 '얼굴'은 소프라노 홍수미가 불러 처음으로 공식 발표된 가곡이 되었다. 라디오에서 방송을 타면서 알려진 이 노래를 1974년 내성적인 성격의 윤연선은 우연히 듣게 듣게 되었고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몇 번의 망설인 끝에 허락을 얻기 위해 작곡가인 신귀복을 찾아가서 이 노래를 자신에게 달라고 요청했고, 통성명에 이어 찾아온 연유를 알게 된 신귀복은 그녀를 음악실로 데려가 손수 피아노를 치며 테스트를 했다. 트로트창법으로 노래하는 가수가 아닐까 걱정했던 그는 그녀가 포크 발성으로 부르는 윤연선의 목소리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망설임없이 주었다고 한다.
1974년 5월 DJ 박원웅이 기획한 윤연선과 박승용의 스플릿 앨범 <얼굴/ 영원한사랑>에 '얼굴' 이 처음으로 수록되었다. 첫 음반이건만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음반이기도 하다. 첫 버전은 지구레코드 전속악단의 트로트풍 연주에 맞춘 연주와 파트너로 함께 수록된 박승용도 이질감으로 영 못마땅했으며 이곡은 전혀 반응을 얻지 못했다.
1975년 2월 지구레코드공사에서 발매한 포크 가수 윤연선의 2집 음반 윤연선 매혹의 노래모음 <고아/얼굴>에 참여한 작곡가들의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오늘날 한국 포크의 거장으로 불리는 이정선, 오세은, 김의철을 비롯해 신귀복, 박광우, 민병진 등 무려 6명의 작곡가가 참여했다. 총 11곡을 수록한 이 앨범의 공통 타이틀곡은 오세은이 번안한 프랑스 샹송 '고아'와 신귀복이 작곡한 '얼굴'이다. 두 노래는 모두 1970년대를 대표하는 포크송이기도 하다.
또한 김의철이 자신의 첫 독집에 이미 발표했던 포크 명곡 '저 하늘에 구름따라'와 '섬아이', 그리고 이정선이 작곡한 '꽃피는 마을'이 발매 당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앨범의 최대 히트곡은 '얼굴'이다.
1970년대를 풍미했던 여성 포크 가수 윤연선의 '얼굴'은 그리운 얼굴들과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는 마력을 지닌 노래였다. 긴 생머리에 수수한 미모로 학생층에 인기가 많았던 윤연선은 우수에 젖은 듯 가슴을 파고드는 맑고 허스키한 음색이 독특했다.
KBS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 <노래고개 세 고개>의 심사위원을 맡았던 작곡가 신귀복은 이 방송의 악보 보고 부르기 코너에서 출연자들에게 자신이 만든 노래를 처음 부르게 했다. 프로 가수 중에서는 1960년대 포크 보컬 그룹 아리랑 브라더스 멤버였던 성악가 석우장이 이 곡을 처음 노래했다. 신귀복은 인터뷰에서 “당시 사회교육방송 전파를 타고 해외에까지 알려지면서 '얼굴'의 악보를 요구하는 편지 7천여 통이 국내외에서 답지했을 만큼 반응이 좋았다”고 회고했다. '얼굴'은 1970년 <신귀복 가곡집>에서 소프라노 홍수미가 노래하면서 음반으로 처음 발표했다. 이 때문에 한동안 '얼굴'은 가곡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앨범을 처음 발매했을 때 반응이 좋았던 노래는 오세은이 번안한 타이틀곡 '고아'였다. 판매에 호조를 보였던 앨범은 갑자기 긴급조치 9호인 공연활동 정화대책이 발동되면서 급변했다. '고아'의 가사 내용이 “지나친 비정과 불신감 조장”는 이유로 금지되면서 판매에 제동이 걸렸다.
1970년대 최고의 작곡가들이 대거 참여한 만큼 기대가 컸던 앨범이었기에 지구레코드는 낙담했다. 이에 금지된 '고아'를 급히 빼고 '얼굴'을 타이틀곡으로 내세워 이수만의 '마음', '바닷가 모래 위'와 이필원의 '미련' 등 3곡을 추가한 재반을 발매했다. 재반에 참여한 이수만, 이필원까지 더하면 이 앨범은 1970년대 최고의 작곡가 8명을 망라한 초호화 앨범인 셈이다.
막 강제 지침이 내려와 수록한 건전가요를 추가해 총 14곡을 수록한 재반은 1976년 발매했다. 이 재발매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돌아왔다. 타이틀곡 '얼굴'이 방송과 다운타운가의 중요 신청곡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신청되고 흘러나오면서 앨범 판매가 급증했다.
1970년대 중반 많은 곡들이 사치풍조와 왜색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철퇴를 받고 사라질 때, 서정성이 강한 이 곡은 방송과 다운타운가의 반복적인 신청곡이 됐고 앨범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캠퍼스 안에서, MT 간 잔디밭에서, 학교앞 주점 곳곳에서 어깨동무한 젊은이들 뿐 아니라 초등생과 경노당의 노인들까지 좋아했다. 안개속에서 들리는 듯한 몽환적인 곡조에, 우수에 젖은 윤연선의 목소리, 서정적인 가사와 통기타 선율이 어우러져 결국 교과서에 까지 실리며 전 국민이 애창하는 국민가요가 됐다.
'얼굴'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윤연선은 물론 작곡가 신귀복도 학내외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사실 그는 한국 중고교 음악교육계의 거목이었다. 각 학교의 교가 작곡요청이 쇄도해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그가 교가를 작곡해준 학교만 전국 각지 84개교에 달한다. 그는 이태리 밀라노 유학 시절 행진곡풍으로 편곡한 '얼굴' 덕분에 12명이 지원한 베르디 음악원 교수 선발 시험에 최종 선발되기도 했다.
작사를 맡았던 생물 교사 심봉섭도 '얼굴'의 진짜 주인공과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주인공은 덕수중 교장을 역임했던 김말순이다. 윤연선은 이 노래에 대해 “정말 묘한 노래다. '얼굴' 덕분에 결혼했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얼굴'은 1998년 방영한 MBC TV의 인기 드라마 <사랑>과 2001년 KBS 드라마 <순정>의 배경음악으로도 채택되었다. 국민가요 '얼굴'과 금지곡 '고아'를 함께 수록한 초반은 남은 음반이 극히 적고 금지의 흔적이 뚜렷해 한국 포크의 명반으로 자리매김했다.
음반사가 금지곡 '고아'를 빼고 음반을 다시 재발매하면서 인기상승에 수반되는 적극적 활동요청과 음반사의 상업적 이해타산은 윤연선의 기질과는 반대되는 것이었다. 상업주의로 일관하는 가요계에 염증을 느낀 그녀는결국 활동을 그만두게 된다.
이후 윤연선은 한동안 방송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가 2000년대 들어서 콘서트 7080 등에 출연하는등 음악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윤연선에게는 감동적인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녀는 2003년, 첫사랑이었던 민성삼과 무려 30년 만에 재회하여 결혼식을 올리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훤칠한 키에 연예인답지 않게 수줍음이 많은 성격의 윤연선은 나이 50까지 미혼이었다. 대학시절 아주 깊이 사랑했던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고려대 의대생이었고 이를 안 그의 부모는 잘 키운 아들이 딴다라 출신과 사귄다며 노발대발한 까닭에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2002년 12월, 홍대 근처 20평 남짓의 카페 얼굴. 윤연선이 운영하고 있던 이 곳에 젊은 처자 두 명이 나이 지긋한 한 남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마침 그날 그녀가 나오지 않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다. 며칠 후 다시 찾은 이들은 결국 그녀를 만났고, 의대생이었던 남자와 그의 두 딸이 상봉을 한다. 이렇게 두 딸의 적극적인 간접 구애 덕분에 몇 번의 만남이 지난 후 남자는 다시 청혼을 하게 되고, 그녀는 고민 끝에 그 청혼을 받아 들였다. 윤연선과 의사 민성삼은 그 다음해 결혼을 하게 된다.
민성삼는 1남2녀를 두고 있었고, 93년 이혼한 상태였다. 민씨는 가끔 애들에게 가수 윤연선이 자신의 첫사랑이었으며, 자신의 뜻과 달리 아픈 이별을 하게 됐었다. 그러던 중 어느 신문사 문화부 기자가 윤연선이 30년만에 콘서트를 여는데 다른 통기타 가수들도 출연하며, 그녀가 아직 혼자 살고 있다는 기사를 덧붙인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2004년 7월에는 포크 음악의 부활에 앞장서는 청개구리에서 네번째 고운노래모음집을 발매했는데 2일간의 공연 실황을 담은 옴니버스 라이브 앨범으로 국민가요 '얼굴'의 주인공 윤연선이 참여하였다. 또한 '세노야'의 작곡가로 쉽게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았던 김광희와, '현경과 영애'의 박영애가 참여하였다. 개개인의 특징이 잘 살아나는 총 15곡이 수록되었으며 음유시인 김두수의 프로듀싱으로 작업되었다.
2018년 4월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공연에서 정인과 알리가 평양관객들 앞에서 합창하여 이 노래가 다시 주목 받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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