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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너'를 부른 가수 이종용

 

 

이종용은 1949년생으로 충남 예산 출신이다. 그는 서정적인 가사와 부드러운 음색으로 1970년대 포크 음악 팬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으며 당시 조동진, 이장희, 김민기 등과 함께 한국 포크 음악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뮤지션 중 한 명이다. 단순한 멜로디 속에서도 깊은 감성을 담아낸 음악 스타일이 특징으로 보고 있다.

 1975년 5월 발매된 이종용과 유심초의 스플릿 음반인 <이종용의 너 / 유심초의 너와의 석별>의 타이틀곡 '너'는 1975년 15주간 1위를 지키던 당대 최고의 히트곡이다. 이종용은 1975년 데뷔곡 ‘너’로 가요계 정상에 올랐으나 시상식 당일 연예인 대마초 사건으로 많은 연예인과 함께 체포돼 구속됐다.  

 

 

 

1975년 12월 3일, 당시 연예계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대마초 단속 과정에서 연예인 200여명이 잡혀들어갔는데 이종용은 대마초 공급책이라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러나 이는 이종용이 대마초와 전혀 연관이 없었음에도 부당하게 체포된 것이었으며, 이로 인해 서대문구치소에서 약 120일 가량 구금되었다. 구금 중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의 판결을 받고 구치소에서 나왔으나 4년간 연예활동 금지 처분까지 받았다. 당시 대마초 사범 일제단속의 구속 1호가 이종용, 윤형주, 이장희 였다고한다. 

 

 

바보처럼 살았군요

 

1980년 6월 발표한 <바보처럼 살았군요 / 기다리겠오>에서 타이틀곡인 '바보처럼 살았군요'가 히트하며 다시 복귀했다. 이곡은 김도향의 곡으로 그가 구속 중에 자주 불렀던 노래였으며 가장 먼저 발표했다. 원작자인 김도향과 가수 김태화도 모두 같은해 발표한 곡이기도 하다. 가장 늦개 발표했던 김도향이 부른 노래가 가장 크게히트했다. 
1980년 9월 발매한 <내영혼 / 겨울아이>에서  ‘겨울아이’ 가 크게 히트하였다.  '겨울아이'는 박원빈 작사, 작곡의 포크 발라드곡으로, 서정적인 노랫말과 감미로운 멜로디에 이종용의 정감 어린 목소리가 어우러져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지금까지도 대표적인 겨울 노래이자 생일 축하 노래로 꾸준히 방송에서 나오는 노래다.  빅히트곡인 이곡은 예수님의 12월 25일 탄생을 축하하는 곡이라고 한다. 

 

 

겨울아이

 

이후 이종용은 1980년 현대극단에서 기획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주연 ‘예수’ 역을 맡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누리며 활동을 재개하였다. 
이종용은 4년간의 출연금지 조치 이후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주인공 예수역을 맡게됐다. 전까지 연기를 해본 적이 없던 이종용이 이 역할을 갖게 된 덴 이유가 있다. 극 마지막 장면에 예수가 절규하는 노래가 있었다. 여기서 엄청 높은 음을 내야 했다. 뮤지컬 전문 배우가 거의 없던 시절, 가성을 쓰지 않고 그 정도의 고음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이종용이 유일했다. 당시 한국 뮤지컬 사상 처음으로 흑자를 낸 뮤지컬 공연으로 연일 흥행을 이뤘다. 윤복희 최주봉 유인촌 곽규성이 함께 출연했다. 그때 무용수였던 탤런트 박상원은 막내로 나중에 합류했다. 

그러나 그는 예정된 뮤지컬 공연이 끝나자 1982년 1월 미국으로 신학 공부를 위해 떠나 현재는 LA 코너스톤 교회 목회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때 떠난 이유에 대해서 이종용은
“1979년부터 1981년 12월까지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249회 공연을 마쳤습니다. 당시 빌라도 역은 유인촌(나중에는 박상원), 막달라 마리아는 윤복희, 헤롯은 곽규석, 유다는 추송웅 김도향, 예수는 저였죠. 뮤지컬이란 개념도 분명하지 않던 시절, 가수·코미디언·연극배우·탤런트 등 모두 당대 최고의 인물들로 배역을 채웠습니다. 하루 2회 공연에 2회 연습, 똑같은 대사와 노래를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그런데도 배역에 몰입이 안 되는 겁니다. 신(神)인 예수를 연기하니, 인간인 제가 그 마음을 도저히 알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의 생애를 기록한) 사복음서를 수없이 읽고, 산상수훈-배신-재판-고문-승천 등의 순간순간마다 ‘그때 심정이 어떠했을까’를 온종일 생각하며 그 마음에 다가가려 애를 썼던 거죠.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삶의 가치관이 달라지고 만 거죠(2016년 9월 21일, 한겨레신문 권태호 기자 인터뷰에서).” 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