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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작은거인 김수철

 

 

 

김수철은 우리나라에서 신중현과 함께 한국 대중음악사에 큰 자취를 남긴 음악인이자 기타리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1957년 음력 4월 7일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밥 딜런, 지미 헨드릭스, 딥 퍼플 등의 음악을 들으면서 기타 연주와 작곡에 눈을 떴고, 용산공고 1학년 때 록 밴드 파이어폭스를 결성해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고3 때 명동성당에서 최초로 록 음악을 연주했던 고교생이었다. 

 

 

작은거인 - 일곱 색깔 무지개

 


광운공과대학 통신공학과 재학 중이던 1977년에 KBS 라디오 프로 <젊음의 찬가>에서 '퀘스천'이란 밴드 멤버로 데뷔해 이듬해 '작은 거인'이라는 4인조 밴드의 프론트맨으로 활동했다. 밴드가 아닌 김수철 개인이 '작은 거인'으로 불리는 경우도 많다. 그 후 밴드 '작은 거인'은 TBC 동양방송에서 개최한 1979 전국 대학축제 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일곱 색깔 무지개'로 금상을 수상하면서 대학가 인기 스타로 떠올랐다. 1981년에는 멤버들이 여러 사정으로 떠나면서 해체했고, 김수철도 입대해 공백기를 가졌다. 제대 후 집안에서도 음악에 대한 반대를 하는 바람에 대학원 진학을 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사정으로 고별 앨범의 형식으로 솔로 1집을 냈다.  
김수철은 탁월한 작곡가로서 여러가수들에게 곡을주었다. 이광조의 '행복'(1979), 김태화의 '변덕스런 그대'(1980), 송골매의 '모두 다 사랑하리'(1981)를 작곡하며 3년 연속 MBC 국제가요제에 입선했다. 특히 송골매의 히트곡 '모두 다 사랑하리'는 단 10분 만에 작곡한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못다핀 꽃한송이

 

솔로 1집에 수록되었던 9곡은 모두 창작곡으로 편곡도 본인이 했다.  밝고 파격적인 이미지와 다르게 음악이 진지하고 어두워 발매 후 1년 동안 대중의 반응은 없었다.  
김수철은 앨범 발표 이듬해인 1984년, 영화 <고래사냥>에서 병태 역을 맡을 배우를 찾던 감독 배창호와 작가 최인호에게 픽업돼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배우로 출연하면서 영화음악까지 맡은 김수철은 영화 흥행을 주도하며 그해 백상예술대상 남자 신인연기자상까지 수상했다. 
이에 모든 매스컴에서 대서특필하며 김수철을 조명했다. 그 덕에 이미 발매된 1집 앨범까지 뒤늦게 재평가되어 동반 히트했다. '못다 핀 꽃 한 송이', '별리', '내일' 등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되면서 김수철은 1984년 KBS 가수왕, 내외신기자상, MBC 10대가수상, 1984년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신인연기상을 비롯해 무려 16개의 가요 관련 상을 휩쓸었다. 1집 앨범은 김수철을 대학가 스타에서 온 국민이 사랑하는 가수왕으로 만든 1980년대의 명반이었다. 특히 타이틀곡 '못다 핀 꽃 한송이'는 탁월한 멜로디 라인에 원초적인 한의 정서를 담은 1980년대의 명곡이다.  

 

 

 

 

1984년 발매된 2집앨범도 '나도야 간다'와 '젊은 그대'가 영화 <고래사냥>에 삽입되면서 대박을 터트렸다. 총 8곡이 수록된 2집 앨범의 타이틀 곡인 '왜 모르시나'는 김수철 음악의 기조인 감정의 절제가 뚜렷하게 녹아 있는 곡이다. '완성의 꿈'과 '젊은 그대'는 김수철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그가 아닌 다른 작사가(안양자, 오영근)가 참여한 노래들이다. 사실 2집의 수록곡들은 이미 오래 전에 작곡된 음악이었다. 2집 히트곡 '나도야 간다'는 1985년 1월 방송 금지곡이 됐다. 1930년대에 활동한  시인 박용철의 시 ‘떠나가는 배’에서 모티브를 따 온 노래이기도 한데, 한국공연윤리위원회에서는 이것 하나 가지고 가사 표절이란 이유로 당시 방송사들에게 방송금지 처분을 권고했다. 그러나 금지 처분을 받은 것과는 별개로 노래가 크게 히트했기 때문에 방송사는 이러한 권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김수철을 계속 출연시켰고, 결국 이 노래는 김수철의 대표곡 중 하나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1985년 3집 앨범이 발매되었다. 김수철이 음악 외적인 방황에 고뇌하던 당시에 제작된 앨범으로 ‘생각나는 사람’, ‘하루’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음반의 특징은 이전 음반들보다 포크적인 요소가 많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강했으나 대중성이 전혀 없어 대중들에게 사랑받지는 못했다. 

1987년 4집 앨범은 타계하신 아버님을 회상하며 만들었다고 하며 김수철이 새로운 사운드를 시도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트로트,소울,재즈,하드록 등 각 장르의 음악이 수록되었다. 

1987년 5집 앨범은 인간 김수철이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평범한 생활을 노래하고 있다.  ‘안타까워’, ‘우리 이제는’등의 애착곡이 수록되어 있다. 이 앨범의 특징은 대곡을 수록하지 않고 평범한 가요음반으로 제작했다는 것으로 노랫말들이 매우 일상적인 용어들로 구성되어 친근감이 느껴지고 사운드면에서 충실하다. 

 

 

변심

 

1988 년 6집 앨범은 12주년 기념음악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으며 작사,작곡,편곡,노래는 물론이고 연주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해내 전체적으로 원맨밴드의 성격이 짙다. 다분히 실험적인 앨범으로 국악기와 양악기를 총동원해 국악가요, 재즈가요,포크록,경음악이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다. 가수 데뷔 12주년을 기념하여 내놓은 앨범으로 데뷔 10주년을 잊고 지나쳐 이 앨범으로 기념을 대신하고 있다. ‘변심’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라틴리듬의 뛰어난 소화력과 사물놀이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샤프트 리듬과 배치시킨 음악성이 뛰어나다.

 

 

정신차려

 


1989년 발매한 7집앨범 <원맨밴드>는 김수철의 폭넓은 음악적 역량을 한눈에 엿볼 수 있는 기념비적 작품이다. 작사,작곡,편고,연주,노래를 혼자서 직접 다 해냄으로써 국내에서는 최초로 원맨밴드 앨범을 완성했다. 어쿠스틱기타,일렉트릭기타,베이스기타, 신시사이저,드럼 등 사용된 모든 악기를 김수철이 직접 연주했다. 수록곡 ‘정신차려’가 그의 독특한 율동과 함께 대단한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정신차려’는 김수철이 황천길(1989년) 등 국악 앨범을 몇개 만든 후 진 빚이 2억 가까이 되었는데 소속사의 권유로 빚을 갚기 위해 만든 곡이라고 한다. 당시 우스꽝스러운 안무로 크게 인기를 끌었는데, 그 안무가 탄생하게 된 배경은 춤을 출 줄 모르는 김수철이 춤을 춰달라는 방송사 PD의 말에 어정쩡한 자세로 중학교에서 배운 체조를 따라했는데, 그게 안무가 되었다고 한다.  

 

 

만화영화 날아라 슈퍼보드 주제곡 - 치키치키차카차카

1990년대 들어서는 대중가수보다 오히려 <날아라 슈퍼보드>의 주제곡인 '치키치키차카차카'를 만들고 부른 것으로 인기를 얻었다. 주제곡 뿐만 아니라 삽입곡들도 그가 직접 만들고 불렀다. 

특히 국악의 현대화와 퓨전에 엄청난 공헌을 하였다. 대부분 대중가수들의 국악 접목 시도가 1회성 이벤트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수많은 가수들이 국악과의 접목 운운했지만 대부분 기존 대중음악에 국악기 한두 개 혹은 사물놀이를 어설프게 끼워넣는 수준이었고 그나마 1회성이었다. 정식으로 국악을 공부해서 시도한 사람은 김수철뿐이다. 

1991년 발매한 8집앨범은 솔로 앨범이면서도 전체적인 음악 스타일이 그룹음악에 가깝다. 앨범 타이틀을<작은거인/김수철>이라고 붙인 것도 김수철이 그룹음악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 자신은 이 앨범을 ‘작은거인’3집 앨범으로 여기고 있다. 그의 다양한 음악성이 돋보이는 앨범이며, 국내 최초로 그룹음악과 국악 타악기 그리고 아쟁, 가야금, 철가야금의 협연곡도 수록되어 있다.

 

 

기타산조

 

 

'기타 산조'는 김수철이 이름 짓고 작곡 연주한 새로운 장르의 음악이며 산조 역사상 최초로 탄생된 곡이다. 이곡은 우리 악기의 대금산조, 아쟁산조, 피리산조, 가야금산조가 있듯이 전기기타로 우리의 가락인 산조의 형식을 빌어 산조 역사상 최초로 김수철이 작곡, 연주한 것이다. 

'기타 산조' 초연은 86 아시안 게임에서 연주되었고, '기타 산조'라고 명명 된 이후로는 공식적으로 1987년 중앙국악관현악단의 창단과 더불어 새롭게 시도 된 정기연주회에서 김덕수 사물놀이와 연주하였다.  

기타 산조는 1986 아시안 게임, 1988 서울 올림픽, 중앙국악 관현악단 정기연주회, 1993 대전 엑스포, 1997 무주·전주 동계 유니버시아드 개막식, 1998년 15대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 등의 행사에서도 연주되었다. 또한 '기타 산조'는 2002년 제57주년 '유엔의 날' 기념 공연에 김수철이 초청되어 뉴욕 유엔 본부 총 회의장에서 연주되기도 했다. 2002년 앨범으로 정식 발매되었으며 이앨범에 한일월드컵 음악이 들어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2019 김덕수 사물놀이 60주년 공연에도 '기타 산조'가 연주되었다

이렇게 '기타 산조'는 1986년 초연 이후 35년간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국내외 공연에서 많이 연주되었다.
김수철은 국악계의 명인들을 찾아다니면서 몇 년 동안 정식으로 배웠다. 그런 노력의 산물이 바로 <황천길>과 <불림소리> 음반. 이런 활동의 연장선상으로 바로 판소리 영화 <서편제>의 영화음악을 담당하였고, 이 외에도 <태백산맥>, <축제> 등 수많은 영화 음악 작업을 했다. 

 



그의 퓨전계열 음악들 중에 대중들에게 은근히 알려진 사례로는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칠성사이다 CF인데, 비디오 아티스트의 거장 백남준이 만든 영상작품에 입힌 BGM을 작곡하여 당시로서는 파격적 CF 스타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1986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 행사음악을 비롯하여, 1997 무주·전주 동계 유니버시아드, 2002 한일월드컵 등의 행사음악도 담당하였다. 

2001년판 KBS2 시그널송(좋은 방송 밝은 세상 KBS 한국방송) 및 현행 KBS1 로고송, 2011년판 KBS 사가, <삼국쥐전> 오프닝, KBS 재난탈출 생존왕 타이틀 음악도 김수철의 작품. 묘하게 KBS와 인연이 깊다. 또한 2021년 8월 16일부터 현재까지 KBS 뉴스 9 직전에 나오는 "정성을 다 하는 국민의 방송~" 시그널송도 김수철이 작곡, 편곡했다. 초기에는 작/편곡 김수철이라고 자막이 나왔다. 연극 무대 배경음악 작업도 한 적이 있다. 

<고래사냥>과 <금홍아 금홍아> 두 영화에서 주연배우로 출연한 일도 있으며 평가도 괜찮았던 편. <고래사냥>의 경우 음악도 같이 맡았고 그 뒤로 <고래사냥 2>, <칠수와 만수>, <개그맨> 등의 영화에서 OST 작곡가로서 계속 활동했다. 후반작업을 소흘히 하는 한국 영화계 풍토 속에서 영화음악의 자리를 제대로 잡게 하고자 고군분투했으며 한국 영화음악의 수준을 높인 작곡가로서 한국 영화음악을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작곡가 중 하나다. 

서편제 이후엔 임권택 감독의 영화에서 자주 음악을 담당했고 2010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영화 음악상을 수상한 후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올리기>, 2015년 <화장>에서도 음악을 담당했다.

 

 

김수철 - 천년학 (千年鶴)

 

유일하게 성공한 국악음반으로 평가받는 <서편제> OST는 발매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김수철의 증언에 의하면 홍보용으로 몇백장만 찍고 정식 발매는 안 하려고 했다고 한다. 발매 이후 영화의 성공과 함께 엄청난 주문이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찍기 시작했다고한다. 그리고 <서편제> OST는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는데... 서편제에 수록된 가장 유명한 곡인 '천년학' 의 작곡 비화는 영화 촬영기간인 5개월 동안 작곡 작업을 했으나 한 줄도 쓰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임권택 감독이 내일 모레 음악 가지고 오라고 했고, "대금으로 연주한다" 라는 생각만 가진 상태에서 다음 날 (임권택이 얘기한 전날) 녹음실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것도 없었다. 대금 연주자가 악보를 달라고 했는데 빈 악보만 가지고 있어서 "내가 쓴 게 없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고 스튜디오 한켠에 있던 피아노 앞에서 25분간 써내려간 곡이 그 유명한 '천년학'이다. 


2018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가운데 김수철 1집이 32위에, 작은 거인 2집이 47위에 선정되었다. 2020년대에도 각종 콘서트는 물론 록 페스티벌에도 출연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별리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시도하며, 영화음악, 국악작곡집, 무용음악, 드라마음악, 팔만대장경음악, 86 아시안게임 음악, 88 올림픽 음악, 2002 한일월드컵 개막식 등의 국제적인 행사음악 작곡과 음악 감독을 통하여 독보적인 그의 음악세계를 구축하여 온 김수철은 작곡가이자, 가수이자, 연주인이자, 음악감독이자, 문화위원이자, 국악인이기도 하며, 딱히 그 어느 하나의 명칭만으로는 묘사할 수 없는 음악인으로, 우리 음악사에 길이 남을 진정한 '작은거인'이라 할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