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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한국의 레이 찰스로 불리웠던 시각장애인 가수 이용복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인 가수로 한국의 레이스 찰스로 불리웠던 가수 이용복은 1952년 대구에서 음악과는 거리가 먼 집안에서 5남매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는3살 때 집안 마루에서 놀다가 마당으로 떨어지면서 돌부리에 찍혀 왼쪽 눈을 실명했으며 8살때 썰매를 타다 사고로 오른쪽 눈을 실명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또래보다 1살 늦은9살 때 서울맹아학교에 입학한 그는 당시 유일한 친구였던 라디오에서 외국의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성장했다. 4학년 겨울 방학때 혼자 있는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사다준 기타로 독학으로 기타를 배웠으며 밤낮없이 연습을 거듭하며 실력을 키워 나갔다. 점자 악보를 손으로 읽게 된 중3 때에는 선배들과 함께 4인조 스쿨 밴드 캑터스를 결성하여 당시 유행하던 비틀즈(Beatles), 벤처스(Ventures),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오티스 레딩(Otis Redding) 등의 음악을 연주했다. 고등학교 때는 작곡, 편곡뿐만 아니라 기타, 피아노, 드럼, 색소폰, 하모니카 등 각종 악기를 능숙하게 연주할 만큼 실력을 쌓았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안마사밖에 될 수 없는 선배들의 현실을 보면서 목숨을 걸고 음악을 했다”는 이용복의 말처럼 당시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였기 때문에 남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쌓기 위해 더욱 더 열심히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열심히 연습을 이어가던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오게 되었는데 열여덟 살 때인 1970년, 친구들과 놀러간 충무로 음악다방에서 장기자랑에 참여했던 이용복을 본 작곡가 김준규가 데뷔 기회를 만들어주게 되었다. 남대문의 한 스튜디오에서 1시간 동안 피아노를 치며 팝송 2곡을 불러 만들었던 데모 음반은 3개월 뒤 정식 음반 발매로 이어졌다.  

 

 

검은안경

 

 

그해 이용복은 5명이 참여한 컴필레이션 음반 <김준규 작곡집>에 참여하여 곡을 발표하였다. 이 앨범에는 B면 타이틀곡이었던 '지쳐버린 내사랑'을 포함해 4곡을 담고있으며 이 음반은 여성 시각장애인 가수인 조성희가 '여인의 블루스'라는 곡을 수록하면서 국내 최초로 남녀 시각장애인이 함께 발표한 데뷔음반으로 기록이 남아 있다.   

1970년 11월 신진레코드에서 발매한 이용복의 첫 독집 <이용복 힛트수록 제 1집>에서 작곡가 김준규가 시각장애인 이용복을 소재로 작곡한 '검은안경'을 타이틀곡으로 발표하였다. 이 앨범은 타이틀곡 외에는 모두 이용복이 즐겨 불렀던 번안곡으로 채워져 있다. 

1970년 당시 서울맹아학교 2학년이던 18세의 시각장애인 가수 이용복은 앨범 발매 후에 장안의 화제가 되었는데 뛰어난 가창력외에도 국내에 처음 등장한 시각장애인 가수라는 점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검은안경'은 당시 대중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 가수라는 점은 맹인 최초의 가수여서 받은 관심만 있던건 아니였으며, 당시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무시와 멸시도 받게 되었고 이로 인해 뛰어난 실력과 음악성을 가지고 있어도 배척당하는 좌절을 맛볼 수 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예가 1974년 [올해의 가수 대상]을 뽑을 때였는데 대상으로 뽑힌 그를 두고 방송사측에서 일방적으로 결과를 뒤집은 일이 있었다. 단지 그가 시각 장애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1971년에는 장미리와의 스플릿 앨범을 발표하였으며 번안곡인 '내사랑 나오미'를 포함한 6곡을 수록하였으나 이 앨범에서 히트곡은 나오질 않았다. 같은 해 두번째 독집 <이용복 힛트수록 제 2집>을 발표하며 리사이틀도 개최하였고 서울 시민회관 무대에도 오르면서 대중들에게 음악적인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히트곡은 여전히 없었는데 그러던 중 이용복은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운명의 노래를 만나게 된다. 1971년 7월 발매한 세번째 독집 <이용복군의 최신 걸작집>에 수록된곡으로 그 곡이 바로 이탈리아에서 열렸던 산레모 가요제의 입상곡인 Lucio Dalla(루치오 달라)의 '4 Marzo 1943(1943년 4월 3일생)'이란 노래로 이용복이 우리말로 부른 이 번안가요는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란 제목으로 발표돼 큰 인기를 끌었다.  

 

 

 


이 곡이 큰 인기를 끌면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1971년 여러 가요제에서 신인 가수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 앨범에는 이 곡 외에도 1971년 산레모 가요제 1위곡인 Nicola Di Bari(니꼴라 드 바리), Nada(나다) 의 'Il Cuore E Uno Zingaro(마음은 집시)' 역시 크게 사랑을 받았다. 

 

 

마음은 집시


1972년 2월 그가 서울맹아학교를 졸업할 때는 학교 운동장엔 그를 취재하러 온 보도진으로 장사진을 이룰 정도가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기도 하였다. 그해 3월에는 신체장애를 이겨내고 인기가수로 우뚝 선 그의 일대기가 동명의 영화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로 제작되었다. 김묵 감독이 연출을 맡은 이 영화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가수 남진이 그의 역할을 맡고, 누이 역엔 윤정희가 출연해 큰 히트를 기록했으며 이용복은 영화에 카메오로 특별 출연하기도 하였다. 또한 기타리스트로서도 재능이 있던 그는 양희은의 데뷔 앨범 <아침 이슬>에서 12현 기타를 연주하기도 했다.  

 

 

당시 채 스무 살 밖에 되지 않았던 이용복은 이 노래 한 곡으로 일약 인기 정상 자리에 등극한 뒤 메이저 레코드사로 소속을 옮겨 '친구', '사랑의 모닥불' 같은 노래를 연이어 히트시키며 인기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 얼굴에 햇살을

 


1972년 4월에 발표한 앨범 <이용복 스테레오>에서 김강섭 작곡의 '그 얼굴에 햇살을'이 크게 히트하면서 본격적인 인기가도를 달리기 시작했으며 그해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하였다. 
이 무렵 나온 그의 히트곡들은 이용복의 뛰어난 기타 솜씨와 작사, 작곡, 가창력 등 뮤지션으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확인할 수 있는 명곡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던 노래 중 하나가 '그 얼굴에 햇살을'이다. 
이용복 최대의 히트곡중 하나로 불리는 이 노래는 훗날 나훈아, 조영남 등이 리메이크 하기도 했으며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들을 수 있는 명곡이기도하다. 추후 KBS 관현악단장을 지냈던 김강섭 작사 작곡의 이 노래는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가 이용복의 목소리와 잘 어우러진 70년대의 명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랑의 모닥불

 


1972년 9월에 발표한 6번째 독집 <순아야/마지막 편지>에서 신곡으로 수록한 '사랑의 모닥불'이 또한 크게 히트했으며 같은 앨범에 수록된 '순아야', '꽃사연', '마지막 편지'등도 인기를 얻었다. 

1973년 9월에 발표된 송창식, 박일남, 홍민, 최안순, 태원, 바블껌 등과 함께 한 컴필레이션 앨범 <잊으라면 잊겠어요/목요일 밤에>에서 타이틀곡인 '잊으라면 잊겠어요'가 크게 히트하면서 연이어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게 되었다.   

 

 

잊으라면 잊겠어요

 


이렇듯 2년 연속 상을 받게 되면서 방송과 언론에서 관심을 보이게 되었고 시각장애인 가수로서 경험했던 사회의 보이지않는 장벽도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그를 한국의 레이 찰스라는 평가를 하면서 아티스트로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이시기에 이 곡들 외에도 '어린 시절', '줄리아', '달밎이 꽃', '마지막 편지/등의 연속적인 히트곡이 나오게 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게 되었다. 

줄리아

 

외국에는 레이 찰스(Ray Charles)나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호세 펠리치아노(Jose Feliciano) 등의 뛰어난 시각장애인 아티스트가 있는 것처럼 대한민국 최초로 맹인 가수로 또 한국의 레이 찰스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시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면서 뛰어난 아티스트로 자리매김 했을 뿐 아니라 그는 아직 TV가 많지 않던 시절 당시 여러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해박한 지식과 재치있는 뛰어난 말솜씨로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https://youtu.be/wRvENOTeLGU?list=RDwRvENOTeLGU

어린시절


1974년 5월에는 이용복의 최대 히트곡인 '어린시절'이 담긴 앨범 <어린 시절/우리 함께>이 발표되었다. 이 앨범은 트윈 폴리오, 펄시스터즈, 장미리, 문정선, 조영남 등과 함께 한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어린시절'은 1972년 7월에 발표하여 1973년도에 빌보드 싱글 차트 2위까지 기록한 Clint Holmes(클린트 홈스)의 ‘Playground In My Mind’을 번안한 곡으로 당시 MBC <금주의 인기가요>에서 1위를 하고, 그해 발표된 전체 곡 중에서도 8위에 선정된 곡이기도 하다.  이 곡은 또다시 조문진 감독에 의해 <이용복의 어린 시절>로 영화화 되는데, 아역배우 김정훈이 연기했으며 노래와는 달리 흥행에는 실패한 영화이다.

또 다른 히트곡인 '우리 함께'는 'I’d love you to want me'로 유명한 미국의 컨트리 싱어 Lobo(로보)의 'We'll be one by two today'를 번안한 곡으로 당시 큰 사랑을 받은 곡이다. 

 

 

우리 함께

 


하지만 1978년 앨범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음반을 발표하지 않고 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활동이 점차 뜸해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 미국유학을 떠나 6년 동안 컴퓨터를 이용한 작곡과 편곡 공부에 몰두했고 1991년 귀국 뒤에도 10여년 동안 녹음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벗님들, 이광조, 김수철 등 정상급 가수들의 음반 녹음에 참여했다. 2003년에는 25년만의 새 앨범 <있는 모습 그대로...> 을 발매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