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인희는 1970년대를 풍미한 지성파 여자 포크 가수로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아름다운 가사와 청아한 목소리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가수인 그녀의 본명은 박춘호로 1946년 3월 생이다.

박인희는 원래 연극배우가 꿈이었는데 풍문여고 2학년때 교내 연극인 춘향전의 주인공 춘향 역활을 맡을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숙명여대 4학년 때 이순재, 오현경 등이 활동했던 극단 실험극장의 신인배우 오디션에 지원해서 합격을 한다. 하지만 당시 합격자 명단이 일간지에 게재되는 바람에 집에서 알게 되어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로 배우의 꿈을 접었다고한다. 그녀는 훗날 당시상황을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꿈을 포기하니까 한숨만 늘었어요. 그 답답함을 달래는 방법이 노래였던 거예요"
숙명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졸업 후 서울 명동 미도파살롱 DJ로 활동하면서 1969년 혼성 듀엣 "뜨와에므와(Toi et Moi)"를 결성하고 1970년 1집으로 데뷔하였다. 본인이 작사한 '약속', 나애심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세월이 가면'으로 인기를 얻었고 많은 팬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큰 인기를 누렸던 이들은 당시 쟁쟁한 팀들을 제치고 1971년 9월 21일 TBC가요대상 중창단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창작곡과 번안곡을 함께 수록했던 이들은 1집에서는 이필원의 창작곡인 '약속'이 히트했고 2집에서는 '그리운 사람끼리', 3집에서는 '추억' 등이 크게 인기를 얻었다. 당시만 해도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편하게 바라보지 못했던 사회여서 인지, 당시 박인희 이필원은 적당한 연습실이 없어서 경복궁 벤치에 앉아서 기타를 치면서 노래 연습을 했는데 1971년 「주간경향」에서 이 모습을 보고 이필원과 박인희의 연얘스캔들로 기사를 쓰는바람에 갖가지 소문을 낳으며 절정의 인기와중에 해체를 하게되었다. 박인희는 1971년 1월부터 CBS 라디오에서 청소년을 위해 신설했던 팝송프로 '세븐틴'의 DJ로 일하게 되었으며 5월부터는 <3시의 다이얼>이란 라디오 프로그램의 DJ를 맡으며 가수에서 진행자로 방향을 선회했다.
솔로의 생각이 없었던 박인희는 작사가 박건호 작사의 '모닥불'로 다시 활동을 재개하게 되었다. 1972년 발매한 첫앨범<스테레오 골든앨범 VOL. 1>의 수록곡이었던 '모닥불'은 박건호를 일약 최고의 작사가로 만든 계기가 되었으며 가장 큰 히트를 기록하였다. 이후 '하얀 조가비', '방랑자', '봄이 오는 길', '얼굴', '세월이 가면'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맑은 목소리에서 나오는 서정성의 카리스마로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1972년 솔로로 독립하고서 1976년까지 앨범 6장과 시를 낭송한 음반을 내놓았는데 데뷔앨범에 수록되었던 자작시 '얼굴' 과 낭송 음반에 수록되었던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낭송한것이 가장 유명하다. 갸날프면서도 청아한 목소리는 기품이 있으면서도 여성스럽고 차분하여 대중가요인데도 음반이 발매될 때마다 문학, 고전음악과 샹송을 사랑하는 다수한 팬에게 많은 찬사를 받았다.
박인희의 음색은 매우 청아했고 노래할 때 감정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었으면서도 그녀가 추구한 음악은 촉촉한 감수성으로 가득하고 문학다운 낭만이 넘치는 매력이 있었다. 매우 쉬운 단어로 인생과 사랑을 속삭이는 듯하였으나 그 노랫말은 매우 지적이면서 깊은 뜻을 내재하고 있었다. 대표곡은 '모닥불'인데 이곡은 박건호 작사에 박인희가 작곡한곡으로 당시에서 1980년대까지 대학생들의 MT 때마다 즐겨 불리던 노래로, 누구든지 이 노래를 한 번도 불러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방랑자'는 깐소네인 'Vagabondo'를 박인희가 번안해서 불렀고, '하얀 조가비'는 박인희가 작사한 곡이다. '그리운 사람끼리' 역시 박인희 작사 작곡의 노래이며, '끝이 없는 길', '봄이 오는 길', 그리고 박인환의 시에 곡을 붙인 리메이크곡 '세월이 가면'도 크게 사랑받았다. 이런 노래는 가사나 멜로디에 불필요한 겉멋이나 너절한 장식이 들어가 있지 않은 탓에 21세기인 지금에 다시 들어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시집 <지구의 끝에 있더라도>, <소망의 강가로>과 수필집 <우리 둘이는>을 출간하는 등 문학가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글쓰기를 좋아하여 숙명여대 3학년 재학 중 지은 자작시〈얼굴〉이 회자되어 《한국의 명시집》에 수록되기도 하였으며, 이해인 수녀와 박인희는 풍문여중 시절 단짝 사이었는데 둘은 박인희의 생일날 이해인이 소월 시집을 선물하자 사진관에 가서 기념촬영을 하던 문학소녀들이었다. 훗날 이해인수녀와 주고받던 손편지들이 모여 수필집 <우리 둘이는>(1987년)이 발간되고 시집으로는 <소망의 강가로>(1989년) 두 번째 시집 <지구의 끝에 있더라도>(1994년)가 있다.
그렇게 글 솜씨에 일가견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심야 방송에서 라디오 DJ로도 명성을 떨쳤다. 가수 활동을 접고서 미국으로 건너가서 한인 방송국장으로서 일하면서 살았는데 연예계를 떠나고서는 언론에 노출되기를 싫어하여 알려진 근황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2016년, 근 35년 만에 한국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참이 지나도 자신을 기억해주는 팬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주저하면서도 다시 노래와 시를 쓰면서 지내다가 한국에서 콘서트를 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4월 30일 올림픽홀에서 여는 '그리운 사람끼리'를 시작으로 5월 30일까지 전국투어 콘서트를 했다.
그로부터 다시 8년이 지나 2024년 6월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2024년 5월 20일에서 23일까지 해외공연을 간 박승화 대신 박승화의 가요속으로의 임시 DJ로 진행을 맡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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