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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코스모스 피어 있는길을 부른 60~70년대 톱가수 김상희

 

 

대한민국 여자 학사가수 1호이자 여성 MC 1호인 가수 김상희의 본명은 최순강(崔純江)으로 1943년 서울에서 3男4女의 장녀로 태어났다. 1961년 고려대 법학대학에 입학했으며 대학 재학 1학년 때 서울방송국 (現 KBS)의 전속가수 모집에 함격함으로서 가수로서의 첫 발을 디디게 되었다.  

 



본명이 아닌 김상희라는 예명을 썼던 이유는 집안의 반대와 더불어 학교에서 알려지는게 두려워 가장 흔한 김씨 성에 친구 이름을 한 글자씩 조합해 만들었다라고 한다. 얼굴이 알려지는게 두려웠던 김상희는 무대에 나서지 않고 활동을 하다보니 당시 발표했던 곡들이 모두 묻혀버리는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 

 

 

삼오야 밝은 달

 


1961년 데뷔곡인 '삼오야 밝은 달'을 발표했으나 빛을 보지는 못했다. 이 곡은 1979년 와일드캣츠에 의해 '십오야'라는 곡명으로 변경되어 발표되면서 대히트를 치게 되었다. 

 

 

처음 데이트

 

이후 1964년 작곡가 손석우의 곡인 '처음 데이트'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는데 이 곡은 도입부에 성우의 목소리로 나레이션이 삽입된 유니크한 곡이며 손석우의 작곡집에 두 번째 곡으로 수록되었다. 이때 당시 대학4학년 재학시절이었는데 어느 날 버스를 타고가다가 이 버스가 굴러 부상을 가볍게 당했다 마침 같이 타고 있던 학보사 기자에 의해 그녀가 가수 김상희 였음이 드러나게 되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당시 진로소주CM송의 히트에 자극을 받은 샘표간장에서 CM송을 만들어 김상희에게 이 CM송을 부르게 했는데 CM송의 인기가 높아지자 별표전축, 드레스미싱등의 여러 업체에서 의뢰가와 수많은 CM송을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대머리 총각


1965년 대학 졸업 후 발표한 '오늘같은 날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1966년 경쾌한 차차차 리듬으로 그녀를 널리 알리게한 첫번째 대 히트곡 '대머리 총각'을 발표하면서 폭팔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하였다. 이 곡으로 10대가수 반열에도 오르기도 하는 등 엄청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 곡의 인기에 힘입고 영화 <대머리 총각>이 만들어 지기도 했는데 심우섭 감독이 구봉서, 서영춘 등 코메디언들과 함께 만든 코믹 영화로 뉴 서울극장에서 1968년 10월 개봉하여 일만오천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이후 발표한 '경상도 청년(1966년)',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1967년), ‘단벌신사’(1968년), '울산 큰애기' (1969년) 등이 연속적으로 큰 인기를 얻으면서 국민적인 애창가요로 불리워지기도 하였다. 이 중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은 10대가수상을 수상하게 해준 곡으로 가을이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던 곡이기도 하다. ‘대머리 총각’에 이어 ‘단벌신사’ 역시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1968년 김기품 감독에 의해 구봉서, 최지의 주연으로 국도극장에서 개봉하여 5만명의 관객을 동원하였다. 하지만 이 노래는 당시 북측에서 “지금 남조선에는 ‘단벌옷에 넥타이 두개로 지낸다’는 노래가 불려질 정도로 인민들이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역선전한 것이 빌미가 돼 방송금지가 되었다가 후일 풀리기도 하였다. 

 

 

울산 큰애기

 


1960년대 말에는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의 주인공을 맡기도 했는데 1966년 초연된 이 뮤지컬은 대한민국 뮤지컬의 효시로불리고 있으며 패티킴이 초대 주역을 맡았고 이후 2대 주인공인 '애랑' 역으로 김상희가 맡아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또한 주한미군 쇼에 출연함으로서 가요와 팝송은 물론 연기력마저 널리 인정을 받게 되어 각 라디오, TV방송국에서 김상희 개인 프로그램을 가질 수 있는 스타급 가수로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살짜기 옵서예

 

 

매력적인 목소리와 함께 능수능란한하면서도 재치있는 화술을 구사했던 그녀는 1967년 KBS TV <당신의 멜로디>란 쇼 프로그램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MC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점차 대중들의 인기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때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숱 많은 머리카락으로 이마를 가린 헤어스타일인 뱅 스타일은 현재까지도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으며 이 헤어스타일을 위해 30여년 동안이나 머리를 잘라주는 전속 미용사가 있을 정도라고 한다.  

 

 

빨간 선인장

 


1970년대 들어서도 김상희는 꾸준히 히트곡을 양산해 내며 인기를 얻었다. KBS TV 드라마 주제가였던 '빨간 선인장' (1970년)이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이 곡은 트윈폴리오, 김추자등이 리메이크하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잊지 못할 연인', '팔베게' (1972년), '어쩌나' (1973년), '황소 같은 사나이' (1975년), '행복할 수 있다면' (1976년) 등 수많은 히트 가요를 양산했다.  

 

잊지 못할 연인

 


또한 1971년 TBC 가요대상을 수상했으며 1973년 제1회 대한민국방송가요대상에서 여자가수부문을 수상했다. 1975년에는 동경국제가요제에 '즐거운 아리랑'으로 입상해 국위를 선양했다.  ‘성불사의 밤’, ‘그대에게 내 말 전해주’ 등을 담은 가곡 음반 김상희 가곡집  (72년)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작곡가 신중현과 손잡고 ‘어떻게 해’를 비롯, ‘나만이 걸었네’, ‘파도소리’ 등을 담은 ‘사이키델릭 음반’을 취입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을 발표하면서 그녀는 다재다능한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재능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만이 걸었네

 

60년대부터 70년대 말까지 기복 없는 인기를 보여주었던 그녀는 손석우, 김희갑, 남국인, 신중현, 박춘석등 여러 실력있는 작곡가들과 손을 잡고 꾸준하게 히트곡을 양산해 내었다. 그녀의 노래들은 젊은 남녀간의 풋풋하고 순수한 사랑을 주제로 한 곡들이 많았고 아주 보편적인 소시민의 시각을 담은 밝은 노래로 당시 젊은이들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경상도 청년’의 가사와 텁수룩한 얼굴이 나이보다 7∼8세 위로 보이지만 구수한 사투리가 매력적이라는 내용과 행여나 장가간 게 아닐까 궁금할 정도로 나이 들어 뵈지만 그래도 내일 또 만나질까 기다려진다는 ‘대머리 총각’등의 가사내용에서 보듯 그녀의 노래는 당시 이상향의 대상에서 한참 벗어난, 평범한 남자들에 대한 따듯한 마음이 물씬 배어 있다. 이농 현상이 심했던 당시에 서울에는 어여쁜 아가씨가 많지만 그래도 순박한 울산 큰애기(경상도 지방에서 맏며느리를 부르는말)가 제일 좋더라라는 ‘울산 큰애기’등 서민의 마음을 잘 대변하는 가사와 밝고 경쾌한 노래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울산 큰애기’는 2000년 울산에 노래비가 세워졌으며 김상희는 명예시민이 되었다. 

 

 

당신을 알고부터

 

 

서울신문사 주최 '한국문화대상' 3회 수상을 비롯하여 동양라디오의 최우수 여자 가수상을 수상 하는 등 꾸준한 인기로 활동을 이어왔던 그녀는 1970년에는 일본에서 ‘EXPO 70’이 열릴 때 우리 문화를 알리기 위해 가수 패티김과 함께 도쿄에서 한 달간 ‘아리랑 페스티벌’을 열었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일본 측으로부터 음반 취입을 제의 받았으며 일본을 비롯해 홍콩, 태국 등에서 공연을 진행했다.  또한 미국 MGM과도 계약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71년 발매된 「스테레오힛트총결산」 앨범은 그녀의 대표적 히트곡인 <코스모스 피는길>외에도 <빨간 선인장>, <참사랑>, <당신을 알고부터> 등이 수록되었다. 특히 <코스모스 피는길>은 원래 곡명은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로 1967년 지구레코드에서 만든 컴필레이션 음반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부제:달이 뜰 때와 별이 뜰 때 - 김강섭 작곡집)의 타이틀 곡으로 처음 실렸다. 이 음반은 고려대 출신 학사 가수 김상희, 서울대 출신 학사 가수 최양숙, 엘리제의 여왕 이미자 등 당대의 스타여가수들의 노래가 담긴 음반이기도 하다. 

1971년 TBC 가요대상, 1973년 제1회 대한민국방송가요대상 여자가수부문, 1977년 도쿄 요요기 공원에서 열린 동경 국제 가요제에서 "즐거운 아리랑"을 부르며 특별상을 수상했다. 

 

즐거운 아리랑

 


 김상희는 현재까지도 가수활동과 더불어 방송 진행자로도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는 데 1967년 KBS TV <당신의 멜로디>란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방송진행자로 활동을 하고있다. 1967년 이때 당시 방송에는 여성 진행자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담당PD의 고집으로 진행자가 되었는데 이 담당 PD가 추후 그녀의 남편이 되었다. 이분이 유훈근씨로 KBS PD를 거쳐 MBC 뉴스앵커를 커쳐 MBC보도본부 차장을 지냈다. 이후 정치와 인연이 닿으면서 김대중 전대통령의 공보비서로 정치인생을 시작했다. 이 때문인지 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김상희는 무대에 오를 일이 점점 줄어들게 되었고 결국 이화여대앞에서 샌드위치를 장사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상희는 연예인 봉사단체 '사단법인 연예인 한마음회'를 만들어 몇 십년 째 사회봉사활동을 꾸준하게 해오고 있다. 매년 무료위문공연을 하고 여러 연예들과 함께 양로원이나 독거노인들을 찾아 위로릏 하였다.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2004년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았으며 2018년 대한민국 경제문화 공헌대상 가수 부문 공로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