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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꽃반지 끼고'를 부른 가수 '은희' 이야기

 

 

혼성듀엣 라나에로스포의 1기 여성 멤버 출신인 은희(본명 김은희)는 화려한 패선이 돋보였던 포크가수였다. 
본명이 김은희인 은희는 1951년 5월13일 제주도 모슬포의 평범한 집안에서 2남1여 중 막내로 태어났다. 
제주 남초등학교 재학중 방송국의 어린이 합창단원과 어린이 성우로 활약할 만큼 예능인으로서의 재능이 있었다. 그녀는 뛰어난 예능소질로 입학료를 면제받고 제주여중에 진학했다.  중학교에 진학한 그녀는 방과후 음악실에 홀로 남아 피아노를 연습할 만큼 음악에 빠져 들었다. 제주여고 때는 민속예술단의 일원으로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참가, 제주 해녀의 춤 솜씨를 뽐내기도 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중에 중견 연기자 고두심이 있다. 

 

 

은희는 당시의 시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자유분방하고 당돌했다고 알려진다. 1968년 1월 가족들 몰래 여군에 지원하여 주변을 놀라게 했다. 서울에서 여군훈련을 거친 후 대구에서 육군 제2군사령부 소속 여군 타자병으로 근무하였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 여군생활에 싫증이 났던 그녀는 1968년 6월15일 정기휴가 나간 후 귀대하지 않았다. 이후 서울 예고로 전학하였다.  


1970년 3월, 서울 예고를 졸업한 은희는 서울의 살롱가에서 무명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새롭게 결성된 이필원, 박인희로 구성된 혼성 듀엣 뚜와에무와의 인기가 높아갈 즈음이었다. 은희는 한민과 혼성듀오 <라나 에 로스포>(이탈리아어로 개구리와 두꺼비)를 결성하고, 대학가에 흘러 다니던 주인이 분명치 않던 '사랑해'를 타이틀곡으로 1970년 말에  음반을 발표하였다. 음반이 발표되고 몇달이 지나자 '사랑해'는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또한 '사랑해'의 애절한 노랫말은 한 대학생이 백혈병으로 죽은 애인을 그리며 지은 곡이라는 애틋한 사연과 이  노래의 목소리가 은희로 알려지면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사랑해

 

이곡은 서강대학교 학생이었던 변혁이 이 곡을 만들었다고 알려졌는데, 나중에 중앙대학교의 학생이었던 오경운이 가사를 만들었다고 밝혀졌다. 어쨌든 이 때문에 변혁 작사·작곡이나 오경운 작사, 변혁 작곡이라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사랑해'는 지금도 각종 모임의 막바지에 서로의 정을 확인하는 불멸의 연가로 애창되고 있다. 1972년 8월 평양에서 개최된 역사적인 최초의 남북적십자회담때 우리측 이범석 수석대표와 북측 김태희 대표단장이 손을 맞잡고 '사랑해'를 부르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박정희 대통령은 라나 에 로스포를 청와대로 불러 치하해 장안의 화제가 됐었다. 

은희의 목소리는 정말 독특했는데 맑고 깨끗하면서도 샹송처럼 지적인 느낌을 주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런 은희의 매력이 주목을 끌자 음반업계에서 은희에 대한 스카우트 경쟁이 벌어졌다. 은희는 그랜드 레코드가 1년반 동안 당시 쌀 한가마니값인 1만 원을 매달주기로 계약을 했다. 이후 제작자와 함께 라이브 무대에서 가수 김세환이 부르던 작자 미상의 노래 ‘오솔길’을 음반에 수록하고 싶어 찾아갔다. 그러나 김세환은 본인이 녹음할 것이라며 은희가 부르는 것을 거절했다. 그러자 제작자인 황우루는 레코드 녹음을 강행해 이 노래는 비슷한 시기에 김세환이 ‘오솔길’로, 은희가 제목을 바꿔 ‘꽃반지 끼고’로 발표한다. 당시에는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정확하게 모르는 작자 미상의 노래가 많아 레코드를 발표해버리면 선점할 수 있었다. 

 

 

꽃반지 끼고

 


은희의 영원한 인생곡 '꽃반지 끼고'는 그의 데뷔 앨범 수록곡으로 1971년 7월 발매됐다. 바닷가 오솔길을 함께 거닐었던 연인을 그리워하는 애틋함이 가사에 배어있다. 외국곡을 황우루가 번역하고, 은희가 새롭게 가사를 써 편곡해 불렀다. 은희의 첫 솔로 음반으로 발표된 이 곡은 음반이 발표되자 마자 엄청난 폭발력을 내며 뜨겁게 반응했다. 당시 5,000장만 팔려도 히트로 쳐주던 시기에 무려 7만 장이 넘게 팔렸다는 사실만으로 그 열기가 짐작되는 부분이다. 이런 인기로 1971년 MBC 10대가수상에서 신인상을 받게 된다. 
이렇게 발매한 1집이 대히트를 했음에도 자신에게 대접이 소홀한 것에 섭섭함을 느끼던 차에 오아시스 레코드에서 전속금 120만 원에 섭외가 들어왔으며, 이에 질세라 지구레코드에서 전속금 140만 원을 제의하자 그랜드 레코드에 계약종료를 통보하고 지구와 이중계약을 맺어버렸다. 


은희만큼 폭발적인 대중적 인기를 모았던 1세대 포크 여가수는 없었다. 통키타 포크 가수로 유명한 양희은은 은희보다 1년 후에 데뷔하였다.1970년대 초반 발표되는 곡마다 트로트 가수들을 제치고 가요차트의 상위에 랭크되었던 통기타 가수는 은희가 유일했다. 단순하고 쉬운 멜로디에 여성적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노래들로 인기 정상가도를 내달린 것이다.  

 

 

연가

 


애간장을 태울 만큼 달콤하고 상큼했던 그녀의 노래들은 학생층에 국한되지 않은 폭넓은 계층의 사랑을 받았다. 대표곡인 <사랑해>. <꽃반지 끼고>, <연가>, <등대지기> 등은 국민적인 연가로 지금도 애창되고 있다. 
1집에서 은희는 통기타 반주를 주로한 음반을 취입했지만 2집부터는 홍현걸, 박춘석, 남국인, 정민섭 등의 기성 작곡가들에게 곡을 받아 음반을 발매하면서 통기타가수의 이미지에서 일반 대중가수의 이미지로 변신했다.  

 

 

등대지기


은희는 1975년 미국으로 건너가 1976년 재미교포와 결혼해 패션 공부를 하고 1985년 돌아와 제주도에서 미용실을 하다가 1988년 강남에서 의상실을 했으며 1991년부터는 제주의 전통 옷감인 갈옷을 개발하여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은희는 "'땡감'을 이용해 염색하는 제주 토속의상 '갈옷'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내 의상 브랜드인 '복데강'은 제주도 방언으로 '이런 것 보셨어요?'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남제주초등학교, 제주여중을 함께 다녔던 은희와 고두심은 지금까지 오랜 우정을 쌓아온 사이라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