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복희는 1946년 충청남도 보령시에서 태어났고, 어릴 적 식구들과 함께 서울로 이주했다.
1951년 5살 때 국내 원맨쇼의 선구자이자 <부길 부길쇼> 등으로 유명했던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였던 아버지 윤부길을 따라 무대 생활을 시작했던 그녀는 6살이던 1952년 뮤지컬 〈크리스마스 선물〉을 통해 뮤지컬배우로 데뷔한 이른바 천재소녀였고, 미8군 무대의 쇼에서 깜찍한 모습의 재롱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1956년에는 손목인의 곡 '보고 싶은 엄마'를 녹음했지만 제작사 입장에서는 10살의 어린이 가수에게 흥행을 기대하기어려웠던지 발매는 무산이 되고 말았다.

미8군 무대에서 활약했던 윤복희는 14살 때 친구 송영란과 소녀 듀엣 투스쿼럴스를 결성해 활약했으며 1963년 워커힐 극장 개관 무대에 특별 초청된 루이 암스트롱과 즉석에서 루이의 히트곡인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을 같이 노래를 불렀고 그녀에게 감탄했던 루이는 미국공연을 약속하기도 했다고 한다. 리드보컬로 참여했던 4인조 여성 보컬 그룹 코리언키튼즈(The Korean Kittens)를 통해 1963년 필리핀과 홍콩, 싱가포르를 거쳐 영국, 독일, 스페인, 스웨덴, 미국으로 차례차례 건너가 1964년 미국 네바다 주 라스 베이거스에서 1967년까지 활동하였다. 세계적인 코미디언 봅 호프(Bob Hope)의 초청으로 미국 CBS-TV의 ‘봅 호프의 크리스마스 스페셜’에 출연하였다. 그해 성탄절에 CBS-TV를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되었다. 방송이 나간 이후 코리언 키튼즈에 대한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여러 매스컴에서 취재경쟁이 시작되었으며 코리언 키튼즈가 어떤 그룹인지, 윤복희가 어떤 가수인지에 대한 보도가 쏟아졌다. 그야말로 스타 탄생의 순간이었다.

1967년 1월 윤복희는 미국에서 잠시 귀국했었는데 이미 월드 스타가 된 윤복희에 대한 귀국 환영 열기 또한 대단했다. <세기의 스타 윤복희 귀국 쇼>가 시민회관에서 열렸으며 이 공연은 TBC가 TV중계를 편성한 데 이어 앙코르 공연으로까지 이어졌다. 또한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며 연일 이슈메이커로 등장했다.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계속된 방송 출연과 더불어 동아방송 연속극 주제가 ‘재혼'(이성제 극본, 이봉조 작곡)도 취입했다. 윤복희 귀국쇼와 더불어 이봉조의 곡인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 '마음이 변하기 전에', '웃는 얼굴 다정해도' 등7곡외에 5곡은 팝송으로 총 12곡을 수록한 데뷔 독집 음반을 발표했다. '웃는 얼굴 다정해도'가 히트를 했던 이 앨범의 커버를 장식한 윤복희의 미니스커트 사진은 당시 중앙일보가 서소문 고가도로 위에서 찍은 것으로 이 당시 사회에 크나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지금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사진이지만 1967년 당시 대중에게는 외국의 여성들이나 입을 법한 미니스커트 사진은 대중들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으며 덕분에 새롭고 파격적이었던 그녀의 패션에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이에 미니스커트는 1960년대의 뜨거운 문화아이콘이 되었으며 이를 주도했던 윤복희는 신문, 방송, 잡지를 통해 패션 리더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윤복희의 미니 스커트는 당시 여성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면서 그당시 시대적으로 여성들의 치마가 짧아지는 것을 금기시 했었고 결국 정부에서는 치마를 일정 길이 이하로 못 줄이게 하고 경찰들이 줄자로 치마 길이 단속에 나서는 해프닝까지 벌어지기도 하였다.
또한 당시 신문 등 언론에서는 미니 스커트를 민족의 반역자 취급까지 했으며, 윤복희가 공항에서 미니스커트를 입고 입국하다가 군중들에게 계란 세례를 맞았다는 루머까지 나돌 정도로 파장이 컸다. 그러나 사실은 1996년에 제작된 신세계의 페이크 다큐멘터리 광고 때문에 그렇게 인식이된 것이였으며 후에 TV에서 윤복희는 “김포공항에 귀국할 당시는 겨울이어서 털 코트에 장화를 신고 있었고, 추워서 미니스커트를 입지 않았다”며 기존에 잘못 알려진 사실을 뒤집었다.

2번의 결혼과 이혼을 하였던 윤복희는 1968년 12월 가수 유주용과 결혼을 하였다. 유주용은 김소월의 시에 노래를 붙인 '부모'라는 곡으로 나름대로 인기몰이를 하던 가수였다. 유주용과의 결혼은 처음에는 순탄하였으나 전업주부로 살고자했던 윤복희와의 불화와 마침 터진 남진과 스캔들로 인해 결국 이혼하고 만다. 이후 1976년 스캔들의 당사자인 가수 남진과 결혼했다가 악성루머로 인해 1979년에 이혼하였다.
윤복희의 대표적 히트곡인 '여러분'은 가수 남진과 3년7개월 만의 결혼생활을 끝낸 직후 오빠 윤항기가 동생의 상처를 위로해 주기위해 만들었다. 이곡은 한 때 금지곡이 된 적이 있었는데, 그녀가 청와대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을 때, 가사 중 '네가' 부분이 반말이라는 이유로 '그대'라고 바꾸어서 부르라고 했지만 그녀는 거절했고 공연 도중 율동할 때 대통령에게 삿대질하는 게 논란이 되는 바람에 금지곡이 되기도 하였다.
오랜 세월을 한결같이 무대에서 가수로서 배우로서 살아온 윤복희는 노래뿐 아니라 뮤지컬을 통해서도 음악적인 열정을 불태운 아티스트이다. 국내 뮤지컬계에서는 대모로써 대접을 받고있다. 뮤지컬 <빠담빠담빠담>,<피터팬>,<장보고>,<Jesus Christ Superstar>등을 통해 한국뮤지컬의 개척자로서도 존경을 받고 있으며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마리아 막달레나 역을 1980년 초연부터 한것으로도 유명하다.
오빠인 윤항기와 서울국제가요제에 참가해 '여러분'으로 대상을 차지 했을 뿐 아니라 하와이 국제가요제에서도 '나는 당신을'로 대상을 차지해 국가를 대표하는 가수로 인정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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