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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나의 20년'을 부른 콧수염 가수 장계현과 포크록 그룹 템페스트

 

 

템페스트는 1970년 결성된 그룹사운드로 리드보컬에 장계현, 리더인 유상봉(드럼), 성정민(기타), 김영무(베이스), 유광선(오르간)의 멤버로 결성되었다. 그룹의 리드보컬이자 팀의 핵심이었던 콧수염 가수 장계현은 비음이 가미된 독특한 허스키 보컬로 포크, 록, 팝, 컨트리, 트로트, 발라드 등 여러 장르의 노래를 소화했던 가수이다. 아마추어 통기타 가수에서 대학시절 캄보 밴드의 베이스 연주자로, 록 그룹의 보컬에서 싱어 송라이터로 활동하며 1967년 데뷔 이래 현재까지 중단 없는 음악 외길인생을 걸어가는 보기 드문 아티스트이다.. 대부분 록 그룹 연주자들이 미 8군의 클럽을 주무대로 경력을 시작했던 것과 달리 그는 콘테스트를 통해 록 그룹의 보컬이 된 특이한 출발점을 지녔다. 오랜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히트 곡은 젊은 층에 어필됐던 ‘ 잊게 해주오’, ‘ 나의 20년’, ‘너너너’, ‘햇빛 쏟아지는 들판’ 정도이지만 ‘나의 20년‘은 당시 청소년 층의 큰 사랑 덕택에 정상의 인기를 누려, 그의 대표곡이 되었다. 



장계현은 원래 미술을 전공하는 미대생이었지만 기타연주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는 그런 학생이었다.
그는 고등학교시절 기타를 선물받아 기타를 접하고 대학시절 째즈페스티벌에 참여하고 김세환, 김운호(운보 김기창의 아들)과 "트리플"을 결성하여 잠시 활동하기도 한다. 그러다 1969년 주간경향에서 주최한 "전국 아마츄어 포크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은뒤 당시 콘테스트 주최사였던 주간경향 기자 서병후의 눈에뛰어 윤항기에게 소개시켜줬고 대학 졸업반이었던 1970년 1기 키보이스 창단멤버였던 윤항기가 만든 그룹 키브라더스의 보컬로 음악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드러머였던 유상봉의 제안으로 포크록 그룹 <템페스트>를 결성합니다.  

장계현은 인터뷰에서 "당시 키브라더스는 한국 최초의 고고클럽, 닐바나에서 활동했는데 당시 클럽에서 같이 활동했던 다른 팀이 있었는데 이 팀과 합쳐서 템페스트를 만들었다고한다. 장계현의 얘기로는 '그 팀이 저랑 나이가 저와 비슷해서. 키 브라더스는 저와는 좀 안 맞고, 또 제가 막내니까 저를 좀 부려먹었습니다. 제가 키 브라더스를 나와서 그 친구들하고 만든 팀이 템페스트죠."라고 이야기 했다. 

 

 

 

 

6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인기를 얻었던 포크음악에서 좀더 록적인 성향의 밴드들(페어포트컨벤션,크로스빌 스틸앤내쉬 등)이 많이나오면서 미국 팝계의 영향아래 있었던 우리나라에도 포크락 그룹들이 나오게 되는데 그중 큰 인기를 얻은 그룹이 바로 템페스트이다. <템페스트>는 ‘미풍을 안은 폭풍’이란 뜻으로 ‘포크를 안은 록’을 추구한다는 의지에서 만든 그룹명이다.


감미롭고 서정적인 노래들을 불러온 템페스트는 1971년 1집인 <템페스트 히트곡 제1집>을 발표한다. 그러나 대중에게서 별다른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들은 음반의 성공보다는 공연을 위주로 했던팀이라 서울 시민회관에서 최초로 단독 리사이틀을 가질 정도로 인기를 얻으며 꾸준히 공연위주로 활동을 계속했다.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오아시스에서 당시로서는 거액이었던 50만을 받으며 전속계약을 했다. 1973년 2집인 <템페스트의 블루고고>를 발표하게 되는데 이 앨범에서 그들의 대표곡인 명곡 ‘잊게 해주오’가 탄생하게 된다.


이 무렵의 템페스트는 스타 그룹싸운드의 반열에 올라 안정적인 밤무대 활동을 보장 받았으며 전국에서 A급으로 분류되어 그룹싸운드계에 암흑기가 도래했을 때도 버텨낼 수가 있었다.

 

 

파도

 

 

1974년 3집인 <파도>를 발표하는데 이 앨범에서는 주로 팝송 번안곡이 수록이 되어 총 12곡중 신곡으로는 ‘파도’를 포함하여 4곡만 수록되었다. 수록곡 '파도'는 바니걸스의 첫 독집 <엄마의 노래>에 수록된 곡 '파도'를 리메이크 한곡이다.
1975년 장계현은 템페스트를 떠나게되는데, 친동생 장계돈과 락그룹 '하얀날개'에서 활동하게 된다. 

 

1975년 장계현이 빠진 상태에서 제작, 발매되었던 통산 4집 <지구 전속 1집, 약속시간 / 잊을 수 없는 그대>와 1976년 <Tempest 골든앨범 Vol. 1, 그러나 / 파도> 앨범은 상업적으로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했다. 

 

 

템페스트 - 사랑이 흐르던 강

 

1976년 통산 5집인 <장계현과 템페스트 - 혼자있어도/사랑이 흐르던 강>을 발표했다. 하지만 지금도 개선되지 않고 있듯 노래하는 가수만이 집중 조명을 받는 현실 때문에 리드보컬 장계현의 이름을 따 음반을 발표하는 가운데 갈등이 생길수 밖에 없었다. 결국 장계현은 이 앨범의 활동뒤에 솔로로 독립하였다. 당시는 대마초 파동으로 중요 인기 록그룹 멤버들이 무대에서 상당수 사라졌던 시기였으나 장계현은 대마초는커녕 술도 담배도 하지 않았던지라 대마초 돌풍 속에서도 건재했다.

 

 

장계현 - 나의 20년

 

1977년 <장계현 골든앨범 77>을 발표했으며 수록곡중 자작곡 "나의 20년"은 반응은 대단했다. KBS, TBC, DBS, CBS 등 유명 방송사의 가요 관련 상들을 휩쓸고 TBC라디오 인기 프로그램 ‘밤을 잊은 그대’에서는 15주 연속 1위를 차지했을 만큼 공전의 히트가 터졌다. 단번에 인기가수 대열에 오른 그는 콧수염을 기른 특이한 외모와 비음이 가미된 독특한 음색의 가수로 주목받으며 폭넓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솔로가수로서의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방송활동만 솔로로 활동했을뿐 라이브활동은 지속적으로 템페스트와 함께했다. 

 

장계현 - 햇빛 쏟아지는 들판

 

1978년 <햇빛 쏟아지는 들판>(신세계) 에서는 브라스가 많이 사용되면서 섹스폰 송명석이 보강되었다. 이 앨범에서는 장계현의 곡인 "햇빛 쏟아지는 들판"을 타이틀곡으로 하였다. 이후 장계현은 연주 활동에 전념하려는 마음에 3년간 템페스트 멤버들과 함께 부산 코모도호텔 나이트클럽 무대에서 활동했다. ‘나의 20년’의 빅히트로 정상의 인기가수가 되었건만 그는 솔로 가수로서의 인기보다는 음악적인 만족을 주는 그룹사운드에 훨씬 애착을 느꼈다. 1980년  발표한 "내 청춘 다시 한 번"이라는 노래가 들어있는 <말좀 해봐요/내곁에 있어주>앨범을 발매했다.  

 

 

장계현 - 너너너

 

1981년 장계현은 사랑의 아픔을 가벼운 디스코 리듬에 표현한 ‘너너너’를 발표해 건재를 과시했다. 이때 오리엔트의 나현구 사장과 포크 곡 메들리 작업을 했다. 원래 나 사장의 친척인 김세환이 부르기로 했지만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어 활동 금지가 되어 대신 장계현이 작업한 것으로 2~3일 만에 30곡이나 불러 무척 힘들었다고한다.  

장계현 - 나 없이도행복해다오

 

1987년에는 이색 트로트 곡 ‘나 없이도 행복해다오’를 발표해 초판이 모두 팔려나가고 방송 인기순위 10위권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는 “자꾸 다른 장르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시도해 본 거죠. 트로트가 노래하기 가장 힘든 것 같아요.” 라고 인터뷰에서 얘기했다. 이후 그는 교통사고 등으로 2년 동안 휴양한다. 1991년 트로트 곡 ‘내청춘의 이력서’는 신시사이저와 컴퓨터 음향을 배제하고 통기타와 바이올린 등 현 위주의 24인조 어쿠스틱 반주의 대담한 편곡으로 야심차게 시도했던 곡이다. 

 

 

장계현 - 어둠속에 서서


IMF가 한참이던 1998년 4월. 한동안 잠잠하던 장계현은 이번엔 컨트리 음악으로 만든 9집 <어둠 속에 서서>를 발표했다. 미국 테네시주 내시빌에서 녹음 작업을 한 이 음반은 미국과 일본에서 동시 발매되었다. 음반 발표 기념으로 자신의 히트 곡들과 신곡들을 모아 정동문화예술회관에서 이틀간 콘서트도 개최했다. 불황의 찬 바람에 몸서리치던 30대 이상을 위한 공연이었다. 2001년 4월 정동문화예술회관의 팝콘서트 '원더풀 투나잇'에서도 장계현과 템페스트는 중견 가수들의 백세션과 더불어 추억의 팝송을 노래했다. 5월엔 이틀간 세종문화회관에서 한대수, 송창식등 70,80년대 포크가수 25팀과 함께 한국포크 30년 기념공연 ‘행복의 나라로’에 참여했다.



2003년에는 부산 송정에서 '동녘에 해뜰 때' 카페를 열어 사업가로도 변신한 그는 올해 4월 성인가요 취향의 '내 청춘 다시 한번' '잊을 거에요' 등 5곡을 비롯, 왕년의 히트곡들을 포함한 10곡을 담아 11번째 앨범 <아픈 사랑>을 발표했다. 당시 그는 "중년가수가 밀려나면서 가요계가 시끄러운 댄스와 힙합, 그리고 트로트로 양분되는 시점에서 퓨전 트로트를 선택했습니다. 멜로디 강한 곡에 팝 창법으로 노래를 불러 성인가요에 내 스타일을 접목하려 애썼습니다." 라고 예기했다. 또한 2003년 7월에는 템페스트 멤버들과 함께 시청 광장에서 7080세대를 위한 ‘여행을 떠나요’ 콘서트 무대에 올라 주옥같은 팝 레퍼토리로 열대야를 잊게 해줬다. 

현재 마포 공덕동에서 '장 스튜디오'와 부천 중동의 라이브 카페 '사운드'를 운영하며 음악 외길 인생을 걸어가고 있는 그는 "선진 음악시장의 경우 컨트리 가수를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이 두터운 팬 층의 지지로 음악적인 열정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 국내 가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고 털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