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림은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 연출가 허남식 선생의 외동딸로 1970년 초반 당시 양희은, 이연실, 어은경 등과 함께 활발하게 활동하였던 여성 포크 싱어 이다. 1972년 '별이야기'로 데뷔하였으며 허림은 음색이 곱고 소리끝이 떨리는 애잔한 목소리로 한국의 "존 바에즈"로 불리웠다.
이 음반의 대표곡은 '별이야기' 인데 이 곡은 미국의 Neil Sedaka의 'Next Door To An Angel'을 샘플링 한곡이다.
이후 1974년 '인어 이야기', 1976년 '엄마이야기', 1978년 '나뭇잎/ 대한팔경'등의 앨범을 발매했다.
가수 허림과 인어 이야기
[퍼온 글]
1973년이었다. 명동 입구에 분위기 괜찮은 스탠드 바가 하나 있었다.
그곳에서 작곡가 김기웅 선생을 만나 이야기하던 중에 즉석에서 <인어 이야기>라는 가사 한 편을 썼다.이것을 보신 선생은 또 즉석에서 거기에 곡을 붙이셨다. 노래 한 곡이 작사 작곡 합쳐도 채 30분이 안 걸려 완성 되었다.
우리 둘은 흥분했다. 그러나 마땅히 그 노래를 부를 가수가 없었다. 이미 박인희는 녹음이 다 끝나 앨범이 나오기만 기다리는 중이었고 다른 가수들은 노래의 이미지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후였다. 어느 잡지사 사진기자와 이야기하던 중에 그의 수첩에서 허림이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나는 묵은 편지 속에서 잊혀진 이름을 발견한 듯 반가웠다. 바로 그가 <인어 이야기>를 부를 가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작곡가 변혁 씨 집에서 그녀의 노래 <별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신선했다. 그녀의 노래가 히트하지 않은 것은 시대가 빨랐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녀가 산다는 보광동 버스 종점까지 찾아갔다. 집앞 다방으로 나온 그녀는 수줍어하는 소녀의 인상이었다. 서른이 된 가정주부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그녀는 한 남자의 아내였고 한 아이의 엄마였다.
“노래를 하시지 않겠어요?” 나의 이 뚱단지 같은 질문에 그녀는 뭐라고 대답도 못하고 그저 어리둥절해 했다. 시골에서 갓 올라온 촌놈같은 모습의 나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정작 문제의 걸림돌은 그 다음에 있었다. 음반사에서 앨범을 내주는 조건으로 40만원의 공탁금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당시 신인가수들은 제작비 일부를 부담하거나 괜찮다고 인정받는 유망주라도 PR은 자신의 돈으로 해야 하던 시절이었다. 이 조건을 보증하기 위해 회사에 얼마간의 공탁금을 거는 것이 관례였다. 나는 그녀에게는 그런 돈이 없다고 설명을 했다. 그러자 회사 측에서는 음반을 내줄 수 없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나는 다른 회사를 알아보고 다녔다. (아마 이런 사실을 그녀 자신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 달 후였다. 먼저 회사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나를 보자 사장은 그까짓 신인 가수한테 빠져서 회사에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 그리고 그 가수와 어떤 관계냐고 물었다.
나는 똑똑히 말했다.
“그녀는 아주 노래를 잘 합니다. 그리고 히트할 자신이 있습니다.”
사장은 빙그레 웃었다.
“정 그러면 한 번 잘 만들어 봐.”
나는 그 자리에서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문예부장에게 녹음 스케줄을 부탁했다.
노을 빛이 물드는 바닷가에서
금빛 머리 쓰다듬던 어떤 소녀가
울먹이는 가슴을 물에 던지며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다가
인어가 되었다네 꿈이 변하여
인어가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인어 이야기>는 전설적인 스토리의 노래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로렐라이(하이네 시)>를 좋아하던 나는 늘 그런 분위기의 이야기를 시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어느 날 문득 <인어 이야기>로 탄생한 것이다.
“허림 양은 마치 가엾은 제 동생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제 동생은 다리가 아파 언제나 휠체어에 앉아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허림양이 제 동생이 되어 주었으면 고맙겠습니다.”
어떤 대학생이 허림한테 이런 팬 레터를 보내왔다. 그녀의 앳된 목소리를 듣고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어리게 느껴지는 그녀의 목소리가 하늘이 준 커다란 선물이었다면 그녀의 인생은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었다.
서울예전의 유덕형 학장은 그녀가 수기를 쓴다면 그보다 기구한 이야기의 소설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함께 일하면서 겪은 일만 해도 그렇다. <인어 이야기>의 반주 음악을 녹음하고 얼마 안있어 그녀는 마포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노래 연습하는 것을 보기 위해 나는 그녀의 마포 아파트를 자주 찾았다.
그때마다 보게되는 그녀의 아들 재석이의 모습은 너무나도 눈물겨웠다. 예방주사를 잘못 맞아서 그렇다고 했다. 아직 세 살밖에 안된 재석이는 언제나 노인처럼 숨을 가빠했다. 말도 못하는 아이가 접어 놓은 이불에 비스듬히 누워 노래 연습을 하는 엄마를 방실방실 웃으며 바라보던 모습은 귀엽다기 보다 차라리 안쓰러웠다. 옆에서 바라보는 내 심정이 그러한데 그녀나 그녀 부근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녀한테 또 하나의 불행이 닥친 것은 친정 어머니의 객사(客死)였다.
'인어 이야기'가 음반으로 나오던 날이었다. 보름 동안 집을 나가 연락이 없던 어머니의 시체를 어느 여대생이 발견하고 구청에 연락하여 가매장을 시킨 뒤 연락이 왔다. 그녀의 어머니는 처음부터 그들의 결혼을 반대했기 때문에 보광동에 혼자 살았다. 그녀나 그녀의 남편은 그것을 가슴 아파했다. 어머니가 반대한 결혼과 기형적인 아들을 둔 그녀는 무슨 업보를 갖고 태어났는지 정말 기구한 운명이었다.
어쨌거나 그녀는 음반이 나왔으니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와 나는 아는 사람도 없이 방송국과 신문사 등을 찾아 다니며 도와 달라고 했다. 천성적으로 착한 허림을 대하는 모든 연예 관계자들은 그래도 따뜻하고 호의적이었다. 방송국에는 그녀 아버지의 제자들이 더러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허림은 우리나라 최초로 뮤지컬을 연출했던 연출가 허남실 선생의 외동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는 극작가 유치진 선생과 절친했다고 한다.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인기가수 대열에 들어섰다. 그러나 어느 날 재석이의 죽음은 그녀한테 또 하나의 슬픔을 안겨 주었다. 다섯 살이 넘어야 수술을 할 수 있는데 네 살을 넘기지도 못했던 것이다.
지금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어 여기저기서 간증하고 다니다가 미국으로 건너 갔다는 말을 들었다. 허림은 정말 슬픈 여인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인어 이야기'라는 노래 때문이 아니었을까.
글 가져온 곳 : http://cafe.daum.net/pkhsmodakbul/K0RW/71?docid=1AgkV|K0RW|71|20080506120545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 공주"가 모티브가 된 이 노래는 포크음악의 본질 중 하나인 순수를 잘 담아내고 있다. 선율의 일부가 존 바에즈가 부른 '솔밭 사이로 강물은 흐르고 (River in the pines)'와 흡사한 부분이 있고 허림의 보컬도 흡사한 부분이 있어 허림이 한국의 존 바에즈로 불리게 된 노래이다.
사랑과 아들을 함께잃고 입산하기위해 머리까지 깎았던가수 허림양이 자신의 심경을 담은 '엄마이야기'로 가요계에 다시 복귀했다. 허양은 피아니스트인 김모씨와 헤어지고 이름모를 병에 네살난아이까지 잃자 중이 되려한것. 이숙 양등 동료가수들의 권유로 다시 노래를하게된 허양은 자신의아픈마음을 담은 '엄마이야기'를 취입하면서 목이메어 세번이나 녹음이 중단되었다고.
1972년 '별 이야기', 1974년 '인어 이야기', 1976년 '엄마 이야기' 등 이야기 노래만 불려서 이야기 가수라 는 별명을 가졌던 가수 허림의 '엄마이야기'는 그녀의 이야기이다.
"가수 허림입니다. 월남 위문 미 8군 쇼를 3년간 공연를 마치고 1972년 2월에 다시 한국에 도착했읍니다. 그해 '별 이야기' 첫 작품인 노래가 나왔지만......,태어난지 29째 날부터 거의 4년 가까이 서울대학 부속병원의 병실에서 저와 내 아들이 살게 됩니다. 엄마! 이 한마디 말도 못한,내 애기는...어느날,어렵게 숨을 쉬다가 끝내 세상을 떠났읍니다.그 해 어머님 마저 애기가 죽기 9개월 전에 이미 돌아 가셨읍니다. 일년 안으로 온 가족이 모두 내 곁을 떠나 갔읍니다. 그 날부터 모든 것이,하늘도 땅도 모두 보이는 것이 캄캄하기만 했습니다.
불과 1년새 사랑하는 자식과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남편도 제 곁을 떠났고 저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때 주님은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저를 건져내셨고 삶의 목표와 희망을 주셨습니다. 지금은 모든 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출처: 중앙일보] 머리깎고 입산했던 가수 허림양
중년 이상된 한인들에게는 ‘인어이야기’라는 히트곡으로 기억되고 있는 가수 허림.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CCM 가수로 활동하고있다.
허림은 현재 미국인 남편, 두딸과 함께 감사하면서 살고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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