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안개 속에 눈물을 감추어라'
이곡은 정훈희의 데뷔곡이자 히트곡인 '안개'의 가사이다.
정훈희는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 정근수와 밴드 마스터였던 작은 아버지, 밴드 히식스의 기타리스트인 큰 오빠 정희택 등 음악과 인연이 깊은 집안에서 1951년 태어났다. 참고로 조카가 가수 J이다.

1967년 여름 부산에서 올라온 17살 여고생 정훈희는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클럽 악단장이자 피아니스트인 작은아버지의 반주에 맞춰 팝송 ‘러브레터’를 유창하게 부르고 있었다. 마침 호텔에 있던 작곡가 이봉조가 노래를 부르는 정훈희를 보고 했던말은 “얘는 누구야? 가시나 쪼깐한 게 건방지게 노래 잘하네.” 당시 이봉조는 1967년에 개봉하는 동명의 영화 주제곡으로 사용하기 위해 '안개'라는 곡을 만든 후 자신의 색소폰 연주로 취입한 상태였는데 그 노래에 맞는 목소리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이봉조는 자신의 곡 ‘안개’의 연주가 담긴 레코드판을 쥐어 주며 당부했다. “이 곡 멜로디를 꼭 외워 놓아야 한다. 알았지?”
며칠 뒤 정훈희는 가수 오디션에 참가하는 친한 언니들을 따라 워커힐 호텔 나이트클럽에 갔다. 언니들이 마이크를 잡을 때 무대 밑에서 노래를 흥얼거렸는데 우연히 흥헐거리는 노래를 들은 호텔 지배인이 물었다 “얘는 누구야?”
클럽의 악단장이었던 작은아버지로부터 “내 친형의 딸”이라는 말들 전해들은 지배인은 “얘, 너 오늘부터 당장 일해라”며 소녀의 등을 떠밀어 무대 위로 올렸다. 때마침 나이트클럽에 놀러 왔던 TBC TV의 황정태 PD 역시 노랫소리에 물었다. “쟤는 누구야?”
‘안개’, ‘무인도’, ‘꽃밭에서’로 친숙한 정훈희는 그렇게 해서 가수가 됐다. 정훈희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50년 세월도 돌아보면 한순간 같다”며 “52년 전 여름 ‘얘는 누구야’ 세 마디가 오늘날 나를 가수로 만들어준 셈”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여고생 정훈희는 1967년 17살의 나이로 작곡가 이봉조의 '안개'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1967년에 발매된 정훈희의 데뷔앨범은 이봉조 작품집으로 당시 유행하던 스플릿 방식의 앨범으로 차중락, 유주용등의 곡이 같이 수록되어 발매되었고, '안개', '숙명', '내 마음 나도 몰라' 등 다섯 곡의 정훈희 노래가 수록되었다. 이 앨범은 당시 4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는데 신성일, 윤정희 주연의 영화 '안개'의 주제가로 쓰여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이 곡은 2007년 이명세 감독의 영화 <M>, 2022년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도 사용되었다.
그 후 1970년 제1회 도쿄국제가요제에서 '안개'로 가수상을, 이듬해 아테네 국제가요제에서는 곡 '너'로 아사아에서 유일하게 수상했다. 1972년 제3회 대회에는 '좋아서 만났지요'를 가지고 참가하여, 입선과 함께 우수가창상 및 작곡가 상을 수상하였으며 1972년 봄에 개최된 아테네국제가요제에는 곡 '너'를 가지고 참가하여 유일한 아시아 수상자가 되었다. 또한 1975년 칠레가요제에서 작곡가 이봉조와 함께 참가하여 스페인어로 1절을 2절은 우리말로 부른 '무인도'로 3위 상과 최고가수상을 받아 영예를 누렸다. 1981년 K.B.S 세계가요제에서 동상을 수상한 '목소리'로 그녀는 6차례나 국제가요제에서 입상하면서 국내에서는 최다수상하는 기록을 남겼다.
1970년대 초에는 일본에서 2년 동안 활동했고, 그러다 1975년에 칠레가요제에서 상을 받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곧바로 대마초 파동이 터졌고 훈방되긴 했지만 이후 활동이 막히고 방송 출연을 정지당했다.
“1975년부터 1980년까지 만 5년을 쉬고 난 뒤에 (활동 금지 조치가) 풀렸어요. 그런데 김태화씨랑 연애하면서 스캔들이 나니까, 전두환 전 대통령이 가요계 분위기를 흐렸다며 2년간 방송 활동 금지 조치를 내리더라고요. 결국 1975년부터 1982년까지 7년간 발이 묶이고 만 거죠. 그 기간 동안에는 앨범도 못 냈고 방송도 못했지요. 그래도 1978년에 발표된 이봉조 선생님의 ‘꽃밭에서’를 들고 1979년 칠레 가요제에 나가서 최고가수상을 받고 들어왔어요. 혹시라도 시끄러워질까 봐 ‘국제가요제에 나간다’ 이런 거 일체 알리지 않고 조용히 다녀왔어요.”
- 정훈희 월간 중앙 인터뷰 중
1979년 제20회 칠레가요제에 출전한 정훈희 & 이봉조 콤비는 이종택이 작사한 '꽃밭에서'를 스페인어로 번안한 ' Un Día Hermoso Como Hoy' (오늘처럼 아름 다운 날)를 불러 최우수 가수상을 수상했다. 당시 5만명을 수용하는 노천극장에서 대통령이 참가한 가운데 치른 칠레가요제는 거국적인 행사였다.
대마초 가수로 처벌받고 해금된 정훈희가 국제가요제 수상으로 국위를 선양하자,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당국에서는 “국위를 선양한 대마초 연예인에 대해서는 선처를 베풀 것”이라고 입장을 표명했고, 정훈희의 칠레가요제 실황 필름은 전국에 방송되었다. 1981년 완전히 해금된 그녀는 '너 하나 때문에', '안개', '무인도', '꽃밭에서' 등의 곡을 담은 재기 음반을 발매했지만 재기는 뜻대로 이뤄지지는 못했다.
1980년 록밴드 ‘라스트찬스’의 리더인 김태화와 약혼한 정훈희는 집안 반대 등의 이유로 헤어졌다가 재회했고, 1983년 첫아들을 낳았다. 1989년에는 만삭인 상태에서 김태화와 듀엣곡 ‘우리는 하나’를 발표했고, 2008년에는 데뷔 40주년 기념앨범<40th Anniversary Celebrations>을 냈다. 40주년 기념앨범은 독집으로는 30년 만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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