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 5월 남녀 혼성 듀엣 뚜아에무아가 통기타 음악 최초의 창작곡 '약속'을 출반한 이후 한국의 통기타 음악계에 혼성 듀엣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뚜아에무아의 뒤를 이어 1971년 2월에 라나에로스포(이태리어로 개구리와 두꺼비)란 또 하나의 혼성 듀엣이 '사랑해'라는 곡을 대히트시키면서 그 바람은 속도를 더해간다.
라나에로스포의 리더인 한민(두꺼비, 본명 박윤기)은 1963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가요계로 진출하여 1967년 솔로 데뷔 음반을 발표했던 기성 가수였다. 데뷔 음반은 별로 알려지지 못했고 1968년 서울 종로 YMCA 옆 세기음악학원에서 기타 강사와 무명 통기타 가수로 활동했다. 1969년 한민은 여성 멤버(이름은 알 수 없다)를 맞이하여 커플즈라는 혼성 듀엣으로 새로운 활동을 이어가다가 세기음악학원의 오르간 강사로일했던 작곡가 김학송의 소개로 김은희를 소개받고 멤버를 교체한다.
제주도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노래와 춤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당차고 미모를 자랑했던 은희(본명 김은희)는 1970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와 미8군 무대에서 라틴송과 컨트리송을 부르다 명동 YWCA 청개구리 홀에서 미니 리사이틀을 열었던 여군 출신으로 가수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한민의 남녀 혼성그룹 커플즈는 은희를 맞이하여 1970년 3월부터는 팀명을 라나에로스포로 바꾸고 1970년 6월에 문을 여는 '청개구리'에 드나들면서 통기타 음악인들과 교류를 시작했다. 그때 만난 사람이 라나에로스포의 첫 음반에 실린 대히트곡 '사랑해'의 작곡자 변혁이었다.
라나에로스포는 1970년 11월 서울YWCA 문화공간 청개구리에서 미니 리사이틀을 가진 뒤 1971년 1월 서음에서 첫 음반을 발매했다. 이 음반은 신중현의 곡 '상처입은 사랑'과 변혁의 곡 '사랑해', 그리고 유진상의 '그대는 떠나고'가 창작곡이었고 나머지 9곡은 한민이 팝송을 번안하여 편곡한 것이었다. 이 음반에서 '사랑해'가 히트하면서 출시 3개월 만에 3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자 지구레코드사는 50만원이라는 거액으로 라나에로스포를 전속시킨다.
'사랑해'는 1966년경 만들어져 1969년 쯤부터 당시 작사가와 작곡가가 미상인 캠퍼스송으로 대학가에서 이 곡이 불리면서 알려졌고, 1970년 8월 녹음되었고, 1971년 1월 10일 정식으로 발매되었다. 1970년 앨범이 취입되면서 서강대학교 학생이었던 변혁이 이 곡을 만들었다고 알려졌는데, 나중에 중앙대학교의 학생이었던 오경운이 가사를 만들었다고 밝혀졌다. 어쨌든 이 때문에 변혁 작사·작곡이나 오경운 작사, 변혁 작곡이라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 곡은 대학가에서 한국판 '러브 스토리'로 널리 불리던 노래였다. 오경운은 열렬히 사랑했던 애인과 졸업 이후 결혼하기로 약속하였으나 그 애인이 백혈병으로 사망하자 그가 군에 입대해 그 애인을 그리워하는 경험을 토대로 작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오경운 자신이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힌 적이 없으므로 확실히는 알 수 없다.
이 곡이 팝송을 번안했다는 설이 있는데, 1960년대 후반에 작사가와 작곡가가 미상인 채로 이 노래가 대학가에서 불렸고, 이 노래를 부른 라나에로스포가 이 곡을 처음 수록한 앨범에는 몇몇 곡을 제외한 나머지가 팝송 번안곡으로 채워져 있고 이 곡 자체가 외국에서도 유명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 통기타 세대를 대표하는 포크송 중 하나이며 엄청난 히트를 쳤다.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1963년 가요계에서 활동을 시작한 이후 8년이라는 무명의 세월을 보내고 라나에로스포란 이름으로 자신의 시대를 맞이하기 시작한 한민은 이때부터 새로운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출발부터 여성 멤버의 역량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라나에로스포는 그 이후 13명의 여성멤버가 바뀌는 진기록을 수립한다.
음반 발매 이후 '사랑해'가 히트하기도 전에 은희는 한민과 음색과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라나에로스포를 떠나 솔로 가수로 독립하는 바람에 라나에로스포와 은희는 각자가 다른 무대에서 '사랑해'를 부르는 신경전을 벌인다. 1971년 8월 발표한 자신의 독집 '꽃반지 끼고'가 대히트하며 은희는 더는 라나에로스포의 그늘에 의지할 필요가 없는 정상급 가수로 발전해나갔다.
두 번째 멤버 장여정은 두 달 정도 연습만 하다 탈퇴해버리고 세번째 멤버인 1971년 5월 예그린 합창단 출신 최안순을 맞이하여 1971년 9월에 2집을 발매하여 '소리'를 히트시켰지만 10월에 최안순마저 한민과 음악적인 의견이 맞지 않는다며 6개월 만에 팀을 떠나버렸다. 최안순은 1972년 6월 '산까치야'가 히트하면서 역시 솔로 가수로서 입지를 구축한다. 이후에도 계속 여성 멤버는 바뀌었는데 한민의 모친이 하도 답답해 점을 보았더니 여성 멤버가 한민보다 키가 큰 것이 문제라는 진단이 나왔다. 1976년 7월 한민(162cm)보다 키가 작은 유경숙(157cm)이라는 새로운 여성 멤버를 9번째로 맞이하여 심기일전을 다짐했으나 점괘는 맞아 들어가지 않았다.
4대 여성 멤버는 서울합창단에서 소프라노를 맡았던 이경란으로, 입단사만 남기고 나갔다. 5대 여성 멤버는 동아방송 성우 출신인 미모의 오정선이다. 그녀는 1년 6개월간 2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그대여'를 히트시켰다. 하지만 오정선도 독립해 솔로 가수로 성공했다. 이때부터 “라나에로스포를 거치면 인기 가수로 뜬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여성 멤버가 견디지 못하고 탈퇴한다는 것은 남녀혼성듀엣이 사랑하는 남녀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만큼 부담감이 서로에게 존재했다. 라나에로스포를 거쳐간 여성가수들은 한결 같이 한민에 대해 사생활을 지나치게 간섭하여 부담스러웠다고 고백했다.
한민은 1980년 솔로 음반을 발표하여 트로트풍의 '어차피 떠난 사람'을 조금 히트한 바 있다. 그 뒤로도 라나에로스포의 여성 멤버는 계속 교체됐고 한민은 2000년 12번째 멤버로 김희진을 맞아들여 음반까지 발매했으며 13번째 마지막 여성 파트너는 리더 한민의 친딸 박윤정이 맡아 화제가 되었다. 2006년 세상을 떠남으로써 여성 멤버의 교체는 끝날 수 있었다.
뚜아에무아는 남녀가 비슷한 음악적 역량을 가졌고 화음 또한 환상적이었으나 활동에 소극적이어서 업적을 많이 남기지는 못했다. 그에 비해 라나에로스포는 여성 멤버의 역량에 많이 의존한 바람에 멤버 교체가 심했지만 뚜아에무아보다는 대중적으로 더 알려졌고,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수면 아래에 머물던 한국의 통기타 음악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가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옛시인의 노래'를 부른 가수 한경애 (2) | 2025.11.30 |
|---|---|
| '꽃반지 끼고'를 부른 가수 '은희' 이야기 (2) | 2025.11.27 |
| 남녀 혼성듀엣 '뚜아 에 무아' 이야기 (1) | 2025.11.25 |
| '여러분'의 전설적인 가수 윤복희 (0) | 2025.11.24 |
| 한국의 다이아나 로스라 불리웠던 디바 정훈희 (0) | 2025.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