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M.은 1980년 미국 조지아주 애선스에서 결성된 4인조 미국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로 마이클 스타이프(리드 보컬), 피터 벅(기타), 마이크 밀스(베이스 기타), 빌 베리(드럼 & 퍼커션)에 의해 결성되었다. 이들은 최초의 인기 얼터너티브 록 밴드 중 하나로 여겨졌으며 마이클 스타이프의 거칠지만 몽롱한 보컬등 남성적인 소리로 주목받았다.
R.E.M.의 뜻은 Rapid Eye Movement, 급속 안구 운동의 약자로 렘 수면 할 때의 렘이 이 단어를 뜻한다. 마이클 스타이프가 사전에서 무작위로 고른 이름이라고 한다.
8,90년대 록 음악계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크게 성공한 밴드 중 하나이며, 너바나, 라디오헤드를 비롯한 1990년대에 활동했던 수많은 밴드들이 이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대략 8500만장의 앨범판매고를 기록했으며 90년대 이후 음악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로 손꼽히며, 특히 얼터너티브 록과 모던 록의 초석을 다졌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여러 음악 잡지에서도 쉴새없이 거론되며 점점 더 평가가 높아지고 있는 그룹이기도 하다.

락매니아었던 기타리스트 피터 벅은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다니던 애틀랜타 에모리 대학교를 중퇴하고 웍스트리(Wuxtry) 레코드점 점원으로 일을 하게 된다. 그러다 그곳을 뻔질나게 드나들던 조지아 대학교 예술대학 신입생이었던 보컬리스트 마이클 스타이프와 친구가 된다. 벅은 자신이 사고자하는 레코드 판마다 자신만이 아는 기호를 남겨서 찜해놓는 버릇이 있었는데 꼬박 꼬박 그 레코드 판을 사가 허탕치게 만드는 손님이 바로 스타이프였다고 한다. 둘은 영국 펑크 록 음악을 비롯하여, 패티 스미스, 벨벳 언더그라운드 같은 뉴욕 언더그라운드 씬 뮤지션 등 음악 취향이 비슷했는데, 이는 영국 록 음악과 펑크 락에 대한 인지도가 낮았던 고리타분한 미국 남부 분위기에서는 매우 마이너한 취향이었다.
나머지 두 멤버인 마이크 밀스와 빌 베리는 고등학교 밴드부에서 서로 베이시스트 및 드러머로 만나 친해진 사이로, 대학도 조지아 대학교으로 같이 진학하여 룸메이트로 같이 살고 있었다. 이들 네명은 빌 베리의 여자친구였던 캐슬린 오브라이언의 소개로 서로를 알게 되고, 단번에 밴드가 결성된다.
결성 당시 피터 벅의 기타 실력은 초보 수준인데 반해, 피아노 교사의 아들인 마이크 밀스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악기를 접했던 덕분에 이미 기타를 웬만큼 칠 줄 알았다. 밀스의 월등한 기타 실력 때문에, 벅은 자기가 밴드에서 베이스를 맡거나 키보드를 담당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밀스와 베리가 학창시절부터 오랜기간 베이스와 드럼을 연주하며 서로 맞춰왔던 사이였기에 이들의 합이 너무 좋았고, 밀스 역시 본인이 계속 베이스를 하길 원했다. 새로운 기타리스트 멤버 영입도 어려워지면서 자연스럽게 피터 벅이 계속 기타를 담당하게 된다.
처음에는 생일파티 등 조지아 대학 학생들이 노는 곳에서 연주하고, 주로 블루스나 컨츄리음악이 틀어지던 작은 펍이나 바 등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연주했다. 초기에는 여느 컬리지 밴드들과 마찬가지로 주로 커버곡을 레퍼토리 삼아 공연했다. 이후 밴드는 자작곡을 쓰고 연주하기 시작했고, 노스캐롤라이나의 공연장에서 이들을 보며 감명받은 제퍼슨 홀트는 밴드에게 매니저를 자처했다.
당시 서던 락이 주류이던 미국에서 이들의 음악은 신선함을 불러 일으켰고, 점점 전국적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기 시작한다. 밴드 활동이 잦아지며 멤버들은 결국 학업을 포기하고 밴드 활동에 매진하기로 마음먹는다.

몇몇 레이블이 R.E.M.에 관심을 갖고 접근했고, 1981년 인디 레이블 Hib-Tone을 통해 첫 싱글 'Radio Free Europe' 이 발매됐다. 하지만 Hib-Tone은 곧 사라졌고, 밴드는 I.R.S 레이블로 둥지를 옮겨서 82년에 첫 EP <Chronic Town> 을 발매했다. 처음에 메이저 방송국에서는 R.E.M.에 전혀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는데 그이유는 팝이 지배하던 당시의 분위기와 맞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뜬금없이 조지아 주 대학 방송국에서 이들의 음악을 틀어대기 시작했다. 멤버 네 명 모두 애씬스의 조지아 대학 출신이어서 비록 무명이었어도 이들은 조지아 대학을 대표하는 밴드였던 끼닭에 인기를 얻게 되었다.
1983년 데뷔앨범 <Murmur>를 발매했다. 'Radio Free Europe'을 재녹음해 수록했으며, Hib-Tone에서 발매된 싱글과는 약간 다르다. 이 데뷔앨범 <Murmur>는 평단의 호평을 얻었고, 그 해 마이클 잭슨의 대표 음반인 <Thriller> 앨범을 누르고 롤링 스톤지가 선정한 올해의 앨범이 되었다. 그만큼 이들의 음악이 혁신적이었다는 것이다.
이 앨범은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는데 기본적으로는 버즈나 러빈 스푼풀의 영향을 받은 컨트리/포크 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연주나 곡 구조면에서는 벨벳 언더그라운드나 패티 스미스, 텔레비전 같은 미국 펑크 영향도 강하게 영향을 받아 단순하고 반복적인 구성을 보이고 있으며, 전반적으로는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강하다. 보컬이나 가사 역시 으르렁거리기 보다는 추상적인 '중얼거림'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헤비메탈이나 주류 팝하고는 완전히 다른 가능성을 개척했다고 평가받는다.
히트 싱글 'Radio Free Europe' 이 수록된 데뷔 앨범은 20만 장 남짓 팔렸지만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지역 밴드로 존재하던 R.E.M. 을 단번에 전국구로 끌어올렸다. 음악지 롤링 스톤(Rolling Stone)은 <Murmur> 를 1983년 최고의 앨범으로 선정했다.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폴리스의 <Synchronicity>, U2 의 <War> 같은 후덜덜한 경쟁작들을 물리치고 웬 듣보잡 남부 인디밴드가 최고 앨범을 먹었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인지도가 바닥이었던 R.E.M. 의 선정은 충격이었다.
데뷔 앨범 <Murmur>가 발매된 지 1여년이 채 되지 않은 1984년 발매한 2집 <Reckoning>은 소포모어 앨범이다. 전작이 워낙에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둔 터라 밴드는 바쁘게 후속 앨범 작업에 돌입했고, 투어 일정이 끝나자마자 곧장 녹음을 시작했다.
본래는 닐 영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엘리엇 메이저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에서 녹음을 시작했지만, 이후 전작과 마찬가지로 사우스캐롤라이나로 자리를 옮겨 돈 딕슨과 미치 이스터의 프로듀싱 아래 앨범이 녹음되었다.
라이브 공연의 현장감을 재현할 수 있도록 바이노럴 녹음 방식을 채택했다. 그 덕에 전반적으로 사운드가 다층적이고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편이다. 앨범은 1면인 'Left Side'와 2면 'Right Side'로 구성되었으며, 대학교 라디오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1985년 발매된 3집 <Fables of the Reconstruction>은 닉 드레이크의 앨범을 프로듀싱 한 것으로 유명한 조 보이드가 프로듀싱하였다.
녹음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영국 런던에서 녹음이 진행되었는데, 세션을 진행하던 2월의 런던은 끔찍한 날씨로 멤버들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특히나 마이클 스타이프가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지속되는 투어에 이은 해외에서의 녹음으로 향수병 증세가 있었다고한다. 조 보이드는 훗날 녹음 과정에서 밴드 내에 긴장감이 느껴졌다고 털어놓기도 했으며, 조 보이드 자신의 완벽주의적 성향과 R.E.M.의 즉흥성이 충돌하는 부분이 있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3집은 포스트 펑크 장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첫 두 앨범과는 꽤나 상이한 분위기를 띄는 것이 특징이다. 미드 템포의 포크 록 사운드가 특징이며 남부 고딕 장르의 소설을 연상케 하는 테마가 전반적으로 앨범에 깔려있다. 차분하면서도 어딘가 불안한 분위기가 느껴지며,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밴조, 하모니카, 현악기 등을 도입해 보다 다채로운 사운드를 구현했다.
가사적인 측면에서는 그동안 추상적인 이미지 나열 중심의 작사법을 주로 사용하던 마이클 스타이프가 본격적으로 스토리텔링 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미국 남부의 실패한 이상주의를 그린다. 황량함, 도덕의 붕괴, 원주민 학살, 소외된 인물 등을 주제로 다루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R.E.M.의 매니아층에게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음반이며, 비평적으로도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1986년 발매된 4집 <Lifes Rich Pageant> 앨범은 흔히 초기 R.E.M.의 마지막 앨범으로 분류되는데 그이유는 다음 앨범부터는 프로듀서로 스콧 릿을 고용하면서, 본격적으로 메이저 음반사와 계약하여 스타덤에 올랐기 때문이다. 첫 세 음반의 음악적 색깔과 방향성이 결집된 초기 R.E.M.을 대표하는 명반이다.
전작이 실험적인 사운드와 모호한 가사로 평이 갈린 것과 달리, <Lifes Rich Pageant>는 전반적으로 대중친화적인 사운드가 주를 이루었으며, 밴드 특유의 멜로디 감각이 돋보이는 결과물이 되었다. 이러한 노선 전환 덕분에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21위에 올랐고, 리드 싱글로 발매된 'Fall on Me'는 싱글차트 탑 100 진입에 성공한 세 번째 R.E.M.의 싱글이 되었다.
1987년 발매된 5집 <Document>는 R.E.M.을 스타덤에 오르게 해준 앨범으로 밴드 처음으로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싱글컷된 'The One I Love'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무려 9위를 기록하며 히트를 쳤고 'It's the End of the World as We Know It (And I Feel Fine)' 역시 R.E.M의 대표곡으로 남게 되었다.
I.R.S. 레코드에서 발매된 마지막 앨범으로 이후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와 계약, 메이저 데뷔를 하면서 밴드의 인디 시절에 마침표를 찍었다. 프로듀서 스콧 릿과 함께한 첫 번째 앨범으로 이 앨범 이후 <New Adventures in Hi-Fi>까지 계속 함께 하게 된다.
음악적으로는 인디 시대를 끝마치는 음반이니만큼 전반적으로 이전까지의 실험을 융합하고 팝적으로 정돈한 스타일로, 이러한 중도적인 성향으로 인디 시절 팬들에게 큰 호평을 받으면서도 대중들에게도 R.E.M.이라는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또한 밴드는 이 앨범에서부터 새로운 악기들을 활용하기 시작하는데 'King of Birds'에서는 덜시머를, 'Fireplace' 에서는 색소폰을 활용했다. 이 실험은 후속작 <Green>과 <Out of Time>에서 만돌린을 적극 활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작 발매 이후 1여년 만인 1988년 공개된 정규 6집 <Green >앨범은 I.R.S.와의 계약이 마무리되고,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와의 계약 후 발매된 첫 음반이며 실질적인 메이저 데뷔작이다. 레이건 행정부 말기에 정치적 이슈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화제를 낳았고, 음악은 인디밴드 시절을 벗어난 차트 히트곡을 겨냥한 록 음악을 담았다. 메인스트림 록 차트 정상에 오른 'Orange Crush' 는 흥겨운 사운드 이면에 베트남 전에 사용되었던 고엽제(Agent Orange)를 다룬 프로테스트 송이었다. 그런가 하면 만돌린, 첼로 같은 다양한 악기를 사용하는 실험적 시도도 병행해서 사운드적인 면에서 진일보한 앨범이다. 80년대를 풍미한 LA 중심 헤비메탈 씬이 서서히 침몰해 가던 80년대 말이 되어야 비로소 메인스트림 록 밴드로 떠오른 R.E.M. 의 <Green> 은 전세계적으로 약 400만장이 팔렸으며 'Stand', 'Orange Crush' 등이 싱글로 발매되어 큰 인기를 끌었고, 밴드는 상업적으로도 성공 가도를 달렸다.
1991년 발매한 7집 <Out of Time>은 메이저 레이블인 워너 브라더스와 계약해 발매한 두 번째 앨범이다. 팝 멜로디와 현악 사용이 더욱 심화되었으며, 컨트리 뮤직의 요소도 보인다.
발매 이후 빌보드 200에서 2주간 1위를 차지했으며 이후에도 108주간 차트에 머물러있었다. 이듬해 열린 그래미 어워드에서 얼터너티브 앨범 우수상 부문을 수상했고, 싱글 'Losing My Religion'도 싱글챠트 4위까지 올랐으며 뮤직 비디오 부문과 팝 퍼포먼스 부문에서 수상하면서 그래미 3관왕이라는 쾌거를 거두었다. 전세계적으로 대략 1800만장 이상 팔린 밴드 최대의 히트 앨범 중 하나이다.
'Losing My Religion'은 R.E.M.의 최대 히트곡이자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 음악과 쟁글 팝 음악 최고의 명곡 중 하나로 꼽히는 곡. 어클레임드 뮤직 선정 올타임 노래에서 39위,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곡에서 2010년에 170위, 2021년 개정 때는 112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1992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베스트 얼터너티브 뮤직 퍼포먼스, 베스트 팝 퍼포먼스, 베스트 뮤직비디오(Losing My Religion) 3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인상적인 만돌린 리프는 밴드의 기타리스트 피터 벅이 연주하였는데, 당시 피터 벅은 만돌린을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TV를 보면서 이리저리 연습하고 있다가 이 리프와 곡의 벌스와 코러스를 만들었다고 한다. 곡의 제목인 "Losing My Religion"은 직역하면 "내 종교를 잃다"로 해석되지만, 미국 남부 지역에서는 이 말은 "이성을 잃어버리다",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다", "좌절과 절망감을 느끼다"는 정도의 표현으로 쓰인다고 한다. 밴드의 보컬 마이클 스타이프는 이 곡을 더 폴리스의 'Every Breath You Take'와 같이 강박적이고 지독한 짝사랑을 다루는 곡이며, 종교에 대해 다루는 곡은 절대 아니라고 설명하였다.
이 곡은 앨범의의 리드 싱글로서 발매되게 되는데,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에서는 이 곡의 싱글 발매를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싱글로 발매되고 난 후에는 빌보드 핫 100에서 4위, 1991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에서 33위, 아일랜드에서 5위, 영국에서 19위에 오르는 등 상업적으로 대 히트를 치면서 R.E.M. 곡 중 미국에서 가장 흥행한 곡이 되었으며, 밴드의 위치를 완전히 바꿔놓은 곡이 되었다. 나온지 20년이 넘어가는 지금도 종종 미국 라디오나 모던 록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곡이다.
특유의 감각적인 뮤직 비디오도 아주 유명한데, 이 뮤직 비디오는 영화 <더 셀>로 유명한 타셈 싱이 감독하였다고 한다. 영상미의 극에 달했다는 타셈 싱의 작품답게 아주 화려한 색감과 연출을 보여 준다. 곡이 흥행하는 데에는 이 뮤직 비디오도 한 몫 하였다. 1991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비디오 상, 최우수 그룹 비디오 상, 획기적인 비디오 상, 최고의 아트 디렉션 상, 최고의 연출 상, 최우수 편집 상을 수상하며 무려 6관왕을 찍는 영예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롤링 스톤 선정 100대 뮤직비디오에서 63위에 올랐으며, 2022년 9월 기준으로 이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서 조회수 10억회를 넘었다.
'Shiny Happy People'는 두번째 싱글로 발매되어 빌보드 핫 100 10위, 영국 싱글 차트 6위에 오른 히트곡으로 쾌활한 가사와 멜로디와는 다르게 천안문 6.4 항쟁에서 중국공산당의 프로파간다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가사와 뮤직비디오 모두 반복적이고 발랄한데, 천안문 학살 이후 중국 정부의 은폐와 세뇌공작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추측이 우세하다. The B-52's의 보컬인 케이트 피어슨이 참여하였다.
1991년 너바나의 Nevermind의 기록적인 성공으로 미국 록 신에 일약 얼터너티브 록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미국 얼터너티브 록의 터줏대감이었던 R.E.M. 역시 <Out of Time> 앨범이 크게 히트하고 그래미상까지 받으며 밴드는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갑작스럽게 인기 밴드 반열에 오른 뮤지션들이 흔히 그렇듯 R.E.M. 역시 후속작에 대한 부담을 안게 되었다. 특히나 R.E.M은 무명 지방 밴드에서 메이저 입성까지 해낸 당대 얼터너티브 록의 상징적인 존재였으며, 1988년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한 후로도 상업성과 타협하지 않고 꾸준히 고유의 음악성을 간직해내 많은 후배 얼터너티브 밴드들의 존경을 받는 롤 모델이었기에 그 부담감은 더했다.
여기에 데뷔 이후 꾸준히 정규 앨범을 제작하고 긴 기간동안 월드투어를 돌던 밴드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지쳐있었다. 때문에 멤버들은 앨범 투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온전히 스튜디오에서 힘을 쏟은 스튜디오 음반을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이에 밴드는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해 자신들이 자랐던 고향으로 여행을 떠났다. 밴드 멤버들은 자신들의 어릴 적 추억들이나 여행의 경험, 고향 마을의 분위기 등을 모티브로 해서 곡들을 만들어 나갔다.
마이클 스타이프는 앨범 작업 당시를 회상하며, 로널드 레이건 - 조지 H.W. 부시 집권 시기를 겪으면서 느낀 젊은 세대의 좌절감과 극에 달해 있던 에이즈에 대한 공포가 반영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검사 결과 스타이프는 음성 반응이 나왔으나, 퀴어로서 주변 인물들을 떠나보낸 것에 대한 상실감 등이 종합적으로 담긴 결과물이 바로 이 앨범인 셈이다.
그 결과 1992년 발매된 8집 앨범 <Automatic for the People>은 R.E.M.의 앨범들 중에서도 가장 서정적이고 섬세한 작품이 되었으며 밴드의 최고 음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녹음은 미국 전역을 돌며 이루어졌고, 레드 제플린의 멤버였던 존 폴 존스가 현악 편곡으로 참여해 앨범의 감성적이고 어두운 사운드에 기여했다. 이는 전작의 비교적 밝고 활발한 분위기와는 정 반대에 위치한 것이었다.
레코드사는 밴드의 이러한 갑작스러운 변화에 난색을 표했으나 결과적으로 이 앨범은 'Everybody Hurts', 'Drive', 'Man on the Moon'같은 히트 싱글을 배출하며 큰 상업적 성공을 이루었다. 비평적으로도 엄청난 호평을 받았으며 평론가들은 물흐르듯 흘러가는 앨범의 구성과 개별 곡들의 뛰어난 퀄리티를 극찬했다. 앨범의 성공으로 R.E.M.은 얼터너티브 장르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으며 이 앨범은 <Murmur>, <Document>와 더불어 밴드의 최고작 중 하나로 꼽힌다.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반에선 2012년 249위, 2020년 96위에 랭크되었다. 이후 이 앨범은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음악을 추구하는 얼터너티브 록 밴드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앨범명은 밴드의 고향인 조지아주 아테네의 한 식당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며, 앨범 아트는 안톤 코빈이 촬영한 사진이다.
'Drive'는 앨범의 오프닝 트랙이자 리드 싱글로.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는 28위에, 영국 싱글차트에서는 11위까지 올랐다. 워너 레코드에서는 반대했지만, 밴드는 이 곡을 싱글로 발매해야 한다고 밀어붙이면서 싱글이 되었다. 진지하고 비장한 어쿠스틱으로 시작되면서 현악이 더해지는 치밀한 구성이 특징이다.
'Everybody Hurts'은 빌 베리가 처음 아이디어를 냈고 모든 멤버들이 보완해 곡이 완성되었다. 피터 벅에 의하면 빌이 낸 초안은 짧은 분량의 컨트리 트랙이었는데 스택스(Stax)나 오티스 레딩같은 영적인 흑인 음악스러운 분위기로 변모했다고 한다. 현악 편곡은 존 폴 존스의 작품이다.
가사는 기존의 R.E.M.의 가사와 다르게 상당히 직설적이고 단순한 내용이 특징이다. 당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던 10대 소년들의 자살을 막고 위로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가사이기 때문이라고한다.
서정적인 곡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R.E.M. 노래로 MBC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에 사용되기도 했다. 영국의 음악 평론가 크리스 로버츠는 이 곡이 현 시대의 'Let it Be', 'Candle in the Wind'와 같은 곡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Man on the Moon'은 앨범의 두 번째 싱글로 발매되어 빌보드 핫 100 30위에 올랐다. 영국 싱글 차트에서는 18위까지 올라갔다. 70~80년대에 활동했던 코미디언이자 배우인 앤디 카우프만에게 헌사하는 곡이다. 가사 전반에 카우프먼과 관련된 레퍼런스들이 등장한다. 밀로스 포먼 감독이 연출한 앤디 카우프만의 전기 영화 맨 온 더 문의 제목도 이 곡에서 따왔으며, 영화에도 삽입이 되었다.
1994년 발매한 9집 <Monster>는 R.E.M.의 디스코그래피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사운드가 특징인 앨범이다. 앨범 계획에서부터 투어를 목적에 두지 않아 조용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로 흘러간 전작과 <Out of Time> 달리, 제작부터 대규모 투어를 염두에 둔 상태에서 진행된 탓에 라이브 공연에 특화된 에너지 넘치는 곡이 많은 편이다.
특히나 강한 디스토션이 걸린 날것의 기타 소리를 기반으로 한 글램 록의 색채를 짙게 띠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스웨이드, 펄프, 블루 에어로플레인스 등과 같은 글램 록에서 영향을 받은 당대의 밴드들에게 영향을 받은 결과물이라고 한다. 피터 벅 특유의 서정적인 아르페지오 기타 사운드도 찾아보기 힘들며 의도적으로 이펙터를 쓰고 바코드나 파워 코드를 적극적으로 차용했다.
영국과 미국 앨범 차트에서 모두 첫주에 1위를 차지했고, 싱글로 발매된 'What's the Frequency, Kenneth?', 'Bang and Blame', 'Crush with Eyeliners' 등의 트랙 역시 준수한 반응을 얻었다.
당대 유행하던 얼터너티브 록 씬을 이끈 시애틀 그런지 를 상징하는 퍼즈 톤 기타와 듬뿍 먹인 디스토션과 거리가 먼 음악을 해 왔던 R.E.M. 은 갑작스레 시끄럽고 조율되지 않은 듯한 노이즈를 전면에 내세우며 뒤늦게 그런지 사운드에 합류한 느낌이었다. 프로듀서로 참여한 스콧 릿은 오리지널 녹음본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으나, 멤버들은 기타가 전면에 배치된 엔지니어링 방향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What's the Frequency, Kenneth?'은 <Monster>의 리드 싱글로 발매되었으며,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21위, 영국 싱글 차트에서는 9위까지 기록하며 히트를 쳤다. 곡 제목은 1986년, 의문의 남자가 미국의 언론인 댄 래더에게 'What's the Frequency, Kenneth?' 라고 물으며 무차별적으로 폭행한 사건에서 따온 것이다. 이후 레이트 쇼 위드 데이비드 레터맨에서 댄 래더와 함께 라이브로 선보이기도 했다. 앨범은 얼터너티브 록 인기에 힘입어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로 데뷔하고 미국에서 300만 장, 세계적으로 900만 장 팔리는 3연타석 홈런을 쳤다.
1996년 발매한 10집 <New Adventures in Hi-Fi>는 드러머 빌 베리가 참여한 R.E.M.의 마지막 앨범이며, 앞선 다섯 장의 앨범 프로듀서였던 스콧 릿이 프로듀싱한 마지막 앨범이기도 하다. 흔히 R.E.M.의 마지막 명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대규모로 진행되었던 Monster 투어 도중에 많은 곡들이 작곡되었다. 그 때문인지 여행과 관련된 가사가 주를 이루며 한편의 로드 무비같이 진행되는 점이 특징이다. R.E.M. 특유의 징글 쟁글한 기타 사운드가 자취를 감추었고, 전반적으로 기타 노이즈가 부각되는 트랙이 많다.
마이클 스타이프는 이 앨범을 가리켜 R.E.M. 음악의 정점이라 부르며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라 밝히기도 했다. 라디오 헤드의 톰 요크는 가장 좋아하는 R.E.M.의 앨범으로 이 앨범을 꼽았으며, 'Electrolite'가 최고의 트랙이라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다. 상업적으로 이전의 세 앨범만큼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미국에서 100만 장, 세계적으로 700만 장 팔렸으며 열성 팬들에게는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 컬트적인 음반이다.
1998년 발매된 11집 <Up>은 드러머 빌 베리의 탈퇴로 3인 체제가 된 R.E.M.의 첫 앨범이다. 빌 베리의 탈퇴는 앨범의 방향성에 전면적으로 영향을 끼쳤는데, 그 드럼머신을 전면적으로 도입한 것이 그 예이다. R.E.M.은 새로운 드러머를 영입하지 않은 채 세션 드러머와 녹음했고, 그 외에는 드럼머신을 사용했다.
여기에 <Lifes Rich Pageant>부터 <New Adventures in Hi-Fi>까지 줄곧 밴드의 전성기를 함께 했던 프로듀서 스콧 릿이 참여하지 않고 새로운 프로듀서인 팻 매카시와 작업했다. 이러한 까닭에 보통 이 앨범부터를 후기 R.E.M. 앨범으로 구분한다. 때문에 전작의 목가적이고 기타 중심적인 트랙은 거의 배제된 채 차분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트랙들이 앨범 전반에 걸쳐 배치되었다. 피터 벅 특유의 아르페지오 기타는 거의 배제되다시피 했고, 노이지한 사운드를 내는 데에 주력했다.
기타나 드럼같은 악기의 사용이 줄어든 탓에 R.E.M. 답지 않은 음악이라는 평가를 들으며 대중들에게는 호불호가 엇갈리는 반응을 얻었고, 빌보드 앨범차트 3위가 최고 성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t My Most Beautiful', 'Daysleeper' 등의 트랙은 밴드가 특유의 캐치한 멜로디와 서정성은 잃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2001년 발매한 12집 <Reveal>은 프로듀서 Pat McCarthy 와의 공동 프로듀싱을 통해 Rock, electronic 장르에 도전해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 6위와 영국 앨범차트 1위에 오른 성적을 얻었다.
영국 싱글차트 6위에 오른 행복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록 음악 'Imitation of Life' 와 영국 싱글차트 24위에 오른 낭만적인 분위기의 서든 록 음악 'All the Way to Reno (You're Gonna Be a Star)', 그리고 영국 싱글차트 44위에 오른 아련한 분위기의 포크 록 발라드 음악 'I'll Take the Rain' 을 차례로 싱글 공개했다.
싱글로 공개한 음악들 외에도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돋보이는 포크 록 음악 'She Just Wants to Be' 와 신비로운 분위기의 프로그레시브 록 음악 'Saturn Return' 등도 인상적인 트랙들이라 하겠다. 앨범의 백미 'I've Been High' 는 아련하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팝 & 록 음악으로 기타와 신디사이저 연주가 서로 교차하면서 마이클 스타이프의 속삭이는 듯한 보컬을 더욱 감성적이게 물들인다.
2004년 발매된 13집 <Around the Sun>앨범의 전체적인 인상은 차분하다. 기타는 정갈하게 전개되고 피아노는 명징하게 반짝이며 마이클 스타이프의 보컬은 특유의 비음 섞인 음성을 중저음으로 들려준다. 후렴에서 노래는 금방 귀에 익는 선율로 흐르고 악기들은 풍성해지지만 좀체 오버하지 않는다. 'Leaving New York'을 비롯해 'Make It All Okay' 등이 그런 경우다. 일렉트로닉한 느낌을 주는 'Electron Blue'나 마이클 스타이프가 “예-예-예-예-” 하며 한 옥타브 비약하는 'The Ascent of Man'도 한 꺼풀 벗겨보면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이번 음반에선 드물게 피터 벅(기타)의 오른손이 바삐 움직이는 'Final Straw'나 중간 이상의 템포인 몇 안 되는 곡 중 하나인 'Aftermath', 'Wanderlust'도 예전 같았으면 특유의 흥겹게 찰랑이는 쟁글 팝 스타일로 편곡되었을 것이다.
2008년 발매된 14집 <Accelerate>앨범의 가장 큰 변화중 하나는 앨범의 런닝타임이 약 36분정도로 아주 짧다는 것으로 그만큼 강렬하고 함축적인 사운드를 느낄수 있으며 이들이 초귀로 회귀한듯한 느낌을준다. 작년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며 어느덧 전설이 되어가고 있는 R.E.M. 본작은 이들을 기다렸던 팬들을 충분히 만족시킬만한 수작이라 할 수 있다.
15집 <Collapse into Now>는 밴드가 발표한 마지막 정규 앨범이자 2011년 해체 선언 직후의 작품으로 앨범은 12곡으로 구성되며, 에디 베더, 패티 스미스, 피치스, 레니 케이 등과의 다양한 콜라보가 특징이다. 밴드 스스로 <Out of Time> 이후 최고의 앨범으로 꼽기도 한 이 앨범은 빌보드 앨범차트 5위로 데뷔했다.
어쿠스틱 찬가풍의 ‘Uberlin’과 차분한 멜로디의 감성 발라드 ‘Every Day Is Yours to Win’ 는 밴드의 서정성을 잘 드러낸 곡이며, ‘Alligator_Aviator_Autopilot_Antimatter’에서 밴드는 당찬 여성보컬 피치스의 힘을 빌려 전형적인 70년대에서 후반80년대 초반의 로큰롤을 재현하고 있다.
R.E.M.은 15번째 음반에서 자신들의 역사적 의의를 더욱 분명히 했다. 패티 스미스(이번 앨범의 타이틀도 그녀의 아이디어다), 펄 잼의 에디 베더 같은 70년대와 90년대 슈퍼 스타들이 음반에 참여했고 히든 카메라의 보컬 조엘 깁과 여성 신스팝 뮤지션 피치스와의 공동 작업은 음악의 외연을 더욱 넓혔다. 하나같이 작가적 기질을 갖춘 뮤지션들이다.
어쿠스틱 찬가풍의 ‘Uberlin’과 차분한 멜로디가 돋보이는 ‘Every Day Is Yours to Win’ 은 R.E.M.의 서정을 잘 드러낸다. 마지막곡 ‘Blue’는 CD가 멈춘 뒤에도 오랜 여운을 남긴다. 하나 같이 R.E.M.이 왜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에 대한 답을 알려주는 곡들이다.
록의 에너지도 여전하다. 첫 곡 ‘Discoverer’는 마치 듣는 이와 대화를 나누는 것만 같은 마이크 스타이프의 희망적인 보컬이 여전히 강렬한 록의 느낌을 실어 나른다. ‘Alligator_Aviator_Autopilot_Antimatter’는 전형적인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의 로큰롤을 재현한다.

이들은 1980년대 대학가 라디오 방송 운동을 이끈 록 밴드였다 이는 인디 시절 소속되어있던 I.R.S. 레이블의 전략도 있었지만 미국 대학 방송은 그 수가 대단치 않았고 청중도 소수에 불과했다고 한다. R.E.M.와 I.R.S.는 어찌보면 마이클 잭슨과 대비되는 틈새시장을 개척한 셈이다. 당시 대학가에 널리 퍼진 이러한 음악들을 통틀어서 '컬리지 록'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당시 팽창할 대로 팽창한 팝 음악계에 반발하는 인디 록의 선구자였다. 이러한 이유로 'Radio Free Europe'(Hib-Tone에서 발매된 싱글이다.)은 2009년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선정한 National Recording Registry에 영구 등재되었다.
이들의 사운드는 비틀즈와 버즈가 시도했던 쟁글 팝의 영향을 받았다. 쟁글 팝은 말 그대로 쟁글거리는 기타 사운드가 중심이 되는 장르로, 기타리스트 피터 벅은 여기에 독특한 아르페지오를 구사하며 밝으면서도 꽉 차 있고 역동적인 사운드를 만들어 냈다. 패티 스미스와 텔레비전, 벨벳 언더그라운드 같은 예술적이고 시적인 뉴욕 펑크를 기초로 컨트리나 버즈나 러빈 스푼풀 같은 포크 록, 컨트리, 빅 스타와 렛츠 액티브, 필리스 같은 파워 팝 흐름과 갱 오브 포라던가 와이어 같은 영국 펑크 혁신가들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이런 여러 성향의 음악을 잘 접목시키면서 1980년대 주류 팝이나 록 음악과 다른 길을 개척했다.
이러한 특성은 후에 너바나가 이어받게 된다. 실제로도 너바나는 R.E.M.과 비슷한 면이 많았다. 얼터너티브 록이였지만 팝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었고, 인디 씬을 대표하던 밴드였지만 메이저 밴드가 되고, 상업적으로 변한 자신들의 모습에 고뇌하였으며, 성 소수자 자신이거나 그들을 대변하는 사람이었다. 마이클 스타이프는 커밍아웃한 퀴어, 커트 코베인은 양성애 지지자였다. 서로간에 어느 정도 음악적 교류도 있었는데, 초창기 너바나가 R.E.M.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R.E.M.은 1994년작 <Monster>에서 너바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그런지 사운드를 시도했다.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었는지 'What's the Frequency, Kenneth?' 뮤직비디오에서 피터 벅은 커트 코베인이 사용하던 펜더 잭스탱을 들고 나와서 연주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영국의 밴드 더 스미스와 자주 엮이기도 한다. 두 밴드 모두 80년대에 활동했으며 양 국의 인디록 씬을 주름잡았다. R.E.M.이 그런지 록으로 대표되는 90년대 미국식 얼터너티브 록의 시초라면, 스미스는 브릿팝으로 대표되는 90년대 영국식 얼터너티브 록의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60년대의 기타 뮤직과 70년대의 펑크에서 음악적인 영향을 받았고, 쟁글팝을 비롯한 기타 뮤직을 주로 선보였기 때문에 사운드에서도 유사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가사적으로는 우울하고 사춘기적인 정서를 공유한다. 두 밴드의 프론트맨이었던 마이클 스타이프와 모리세이 둘 다 양성애자이며 가사가 퀴어 친화적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평론가와 힙스터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밴드라는 부분까지 유사하다.
라디오헤드 역시 이들의 팬으로, 특히 보컬인 톰 요크가 이들의 앨범 <New Adventures in Hi-Fi>를 엄청나게 좋아한다고 한다. 실제로 라디오헤드의 세 번째 앨범 <OK Computer>의 경우 음악적으로 <New Adventures in Hi-Fi>의 영향을 매우 크게 받은 모습을 보인다.
R.E.M.의 주요 히트곡들은 20년 넘게 지난 지금 들어도 그렇게 옛날 노래라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Losing My Religion'이나 'Everybody Hurts', 'It's the End of the World as We Know It' 등은 지금도 미국 모던 록 방송에서는 자주 들을 수 있으며, 모던 록 라디오에서 틀어주는 곡들 중 제일 오래된 곡들이 R.E.M.의 곡이라고 한다.
2023년 R.E.M.은 송라이터 명예의 전당 후보로 지명되었고 2024년 6월에 헌액되었다.
1집 Murmur 1983년 4월 12일
2집 Reckoning 1984년 4월 9일
3집 Fables of the Reconstruction 1985년 6월 10일
4집 Lifes Rich Pageant 1986년 7월 28일
5집 Document 1987년 8월 31일
6집 Green 1988년 11월 8일
7집 Out of Time 1991년 3월 12일
8집 Automatic for the People 1992년 10월 5일
9집 Monster 1994년 9월 26일
10집 New Adventures in Hi-Fi 1996년 9월 9일
11집 Up 1998년 10월 26일
12집 Reveal 2001년 5월 14일
13집 Around the Sun 2004년 10월 5일
14집 Accelerate 2008년 3월31일
15집 Collapse into Now 2011년 3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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