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프로그레시브 록을 대표하는 밴드 캔스는 바이올린을 전면에 활용한 독특한 편성, 철학적이면서도 서정적인 가사, 그리고 복잡한 리듬과 멜로디가 특징인 밴드이다.
캔자스(Kansas)는 1973년 캔자스주 토피카 에서 결성된 미국의 록 밴드이다. 1970년대에 앨범 중심의 록 차트에서 처음으로 인기를 얻었고, 이후 'Carry On Wayward Son'과 'Dust in the Wind' 와 같은 히트 싱글로 더욱 유명해졌다. 이 밴드는 9개의 골드 앨범, 3개의 멀티 플래티넘 앨범( Leftoverture, Point of Know Return, The Best of Kansas), 1개의 플래티넘 스튜디오 앨범(Monolith), 1개의 플래티넘 라이브 더블 앨범(Two for the Show), 그리고 밀리언셀러 싱글 'Dust in the Wind'를 발표했다. 캔자스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미국 빌보드 차트에 200주 이상 머물렀으며, 북미, 유럽, 일본 전역의 아레나와 스타디움에서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Carry On Wayward Son'은 1995년 미국 클래식 록 라디오에서 두 번째로 많이 재생된 트랙이었고 1997년에는 1위를 차지했다.
캔자스는 1969년, 돈 몬트레와 케리 리브그렌 (Kerry Livgren 기타, 키보드, 신시사이저)은 고향인 토피카에서 "Reasons Why"라는 밴드에서 활동했다. 이후 린 메러디스, 댄 라이트와 함께 "Saratoga"라는 밴드를 결성했고, 스콧 케슬러가 베이스를, 지크 로우가 드럼을 맡아 리브그렌의 자작곡들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1970년에 이들은 밴드 이름을 "Kansas"로 바꾸고 라이벌인 토피카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White Clover"의 멤버들과 합병했다. White Clover의 멤버인 데이브 호프 (Dave Hope 베이스)와 필 이허트 (드럼, 퍼커션)는 리브그렌, 보컬리스트 메러디스와 Greg Allen, 키보디스트 몬트레와 라이트 색소폰 연주자 Larry Baker와 합류했다. 때때로 Kansas I이라고도 불리는 이 초기 Kansas 그룹은 이허트, 호프 및 다른 몇몇 멤버들이 White Clover를 재결성하기 위해 떠난 1971년 초까지 지속되었다.
에하트는 지크 로우로, 이후 브래드 슐츠로 교체되었고, 호프는 로드 미킨스키로, 베이커는 색소폰과 플루트를 맡은 존 볼튼으로 교체되었다. 이 라인업은 때때로 캔자스 II로 불리며, 30년 후 "프로토-카우"라는 이름으로 재결성되었다.
1972년 에하트가 다른 음악가들을 찾기 위해 영국에 갔다가 돌아온 후, 그와 호프는 로비 스타인하트(Robby Steinhardt) (보컬,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Steve Walsh (보컬, 키보드, 신시사이저, 퍼커션), Rich Williams (기타)와 함께 White Clover를 다시 결성했다. 1973년 초, 그들은 두 번째 Kansas 그룹에서 리브그렌을 영입했는데, 그 그룹은 이후 해체되었으며 결국 그들은 Don Kirshner 의 오른팔인 Wally Gold가 그들의 데모 테이프 중 하나를 듣고 1973년 3월 캔자스주 엘린우드 에서 열린 지역 공연 중 하나를 직접 보러 온 후, 그의 이름을 딴 Kirshner 레이블과 음반 계약을 맺었다. Kirshner와 계약한 후, 그룹은 "Kansas"라는 이름을 다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Kansas>은 뉴욕에서 녹음된 지 거의 1년 만인 1974년 3월에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미국식 부기 록과 변화하는 박자를 가진 복잡한 교향악적 편곡이 혼합된 밴드의 시그니처 사운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스타인하트의 바이올린은 이들 밴드 사운드의 독특한 요소였으며, 대부분의 프로그레시브 록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따랐던 재즈와 클래식의 영향보다는 컨트리 뮤직과 블루스, 로큰롤을 기반으로 하는 하트랜드 록(Heartland rock)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커쉬너의 홍보와 데뷔 앨범 부터 1975년 2월 발매된 2집 <Song for America>와 1975년 10월 발매된 3집 <Masque> 의 광범위한 투어 덕분에 밴드는 서서히 컬트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Masque>는 수록곡인 ‘Icarus – Borne on Wings of Steel’이 심오한 가사와 함께 어필하며 20만장이 넘는 판매를 기록했다.
캔자스는 1976년 10월 네 번째 앨범인 <Leftoverture>를 발매했고, 이 앨범에서 히트 싱글 'Carry On Wayward Son'이 빌보드 핫100 챠트 11위에 오르는등 크게 히트했다. 이곡을 쓴 케리 리브그렌은 추후 인터뷰에서 "이 노래는 자전적인 노래입니다. 제 음악 경력과 병행하여 저는 항상 진리와 의미를 찾아 영적인 여정을 걸어왔습니다. 이 노래는 스스로에게 보내는 격려의 노래였습니다. 저는 계속 진리를 찾으면 제가 찾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제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라고 얘기했다. 앨범 역시 빌보드 팝 앨범 차트에서 5위를 기록하며 500만장(2001년 기준)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밴드에게 큰 성공을 안겨주었다. 앨범의 성공은 이들이 이미지를 확립하는데 큰 방향성을 제시했다. 음악적으로도 확실한 자신들의 스타일을 유지해 나갔고, 이들만의 독특한 밴드 이름 문양도 이 앨범부터 이어진다. 또한 가사 만큼이나 심오해 보이는 앨범 재킷 또한 이 앨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77년 10월에 발매된 <Point of Know Return>은 타이틀곡 'Point of Know Return'과 'Dust in the Wind' 두 곡 모두 히트 싱글이 되었다. 밴드의 최고 히트곡이 된 'Dust in the Wind' 는 싱글챠트 6위에 오르며 100만 장 이상 판매되어 골드 싱글 인증을 받았다. 앨범 역시 앨범챠트 4위까지 올랐으며 전작에 이어 미국에서 400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 이곡의 가사는 리브그렌이 썼는데 인디언 시집을 읽으며 '우리 모두 바람 속의 먼지이기 때문에'(For All We Art Is Dust in the Wind)에서 영감을 받아 물질적인 가치와 진정한 성공의 의미를 생각하며 노랫말과 곡을 썼다고 한다.
'Point of Know Return'은 탐색에 대한 노래이자, 미지의 세계로 두렵고 조심스러운 첫걸음을 내딛는 것에 대한 노래이다. 그 미지의 세계가 무엇이든 이 노래는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을 때,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을 때 느끼는 독특하고도 두렵지만 동시에 거부할 수 없이 매혹적인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싱글챠트 28위까지 올랐다.
앨범 커버에서도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데 낡은 범선이 고대인들이 생각했던 평평한 세상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서 있다가,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곳으로 곧장 뛰어들려는 듯한 모습이다. 이 앨범이 말하는 주제는 지식, 탐구, 발견, 그리고 신비에 관한 이야기이다. 타이틀명인 Point of Know Return에서 원래는 No를 써야하지만 언어적 유희로서 Know를 썼다고 한다.
이 시기에 캔자스는 최고의 인기 밴드로 자리매김하며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을 비롯한 당시 록 밴드들이 공연할 수 있는 가장 큰 규모의 공연장을 매진시켰다. 밴드는 1977년부터 1978년 투어의 다양한 공연 실황을 담은 더블 라이브 앨범 <Two for the Show>를 1978년 발매했는데 캔자스는 스튜디오 녹음을 라이브로 충실하게 재현하는 뛰어난 능력으로 확고한 명성을 얻었다.
1979년 5월 발매된 6집 앨범 <Monolith>은 자신들이 직접 프로듀싱한 앨범으로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싱글 'People of the South Wind' 는 Top 40 싱글로 발매되었는데, 이 곡의 제목은 캔자스 주와 밴드 이름의 유래가 된 'Kanza' 원주민 부족의 의미를 나타낸다. 이 앨범은 이전 두 앨범만큼의 판매량과 라디오 방송 횟수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빌보드 앨범 챠트 10위에 오르면서 결국 플래티넘을 달성했다. 싱글 'People of the South Wind'는 1979년 8월 빌보드 핫 100 23위에 올랐으며 두 번째 싱글로 'Reason to Be'를 발매하였으며 싱글챠트 52위에 올랐다.
[앨범명인 Monolith는 하나의(mono-) 돌(lith)이라는 의미로, 한 덩어리의 석재로만 이루어져 있을 때 붙을 수 있는 명칭이다. 단순히 돌덩이를 지칭하는 단어였지만,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의 모노리스(스페이스 오디세이)가 거대한 돌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이후 외계에서 온 것 같은 거대한 돌 비슷한 무언가가 등장하면 모노리스라고 부를 정도로 유명해졌다.]
캔자스 멤버들은 1980년대 초부터 점차 서로에게 멀어지기 시작했다. 모놀리스(Monolith) 투어 도중 호프와 리브그렌은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이는 1980년 9월 발매된 <Audio-Visions>를 시작으로 이후 세 장의 앨범 가사에 반영되었다. 이 앨범의 수록곡이자 빌보드 차트 Top 40에 오른 싱글 'Hold On' 은 리브그렌이 아내에게 복음을 전하는 간절한 호소를 담은곡으로 그의 새로운 신앙심을 잘 보여주고있다. 이 앨범은 (1999년에서 2000년 사이에 잠시 재결합하기 전까지) 오리지널 라인업으로 발매된 마지막 앨범이자, 미국 음반 산업 협회(RIAA)로부터 골드 인증을 받은 마지막 캔자스 스튜디오 앨범이기도 하다. 이후에 케리 리브그렌은 솔로 앨범 <Seeds Of Change>를 내놓기도 했는데 이 앨범에는 로니 제임스 디오가 보컬로 참여하여 록 발라드인 타이틀곡 ' Seeds Of Change' 을 불렀다. 데이브 호프와 케리 리브그렌이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변신하여 독실한 신앙인이되면서 여타 멤버들과 갈등을 빚게 된다.
다음 앨범의 가사 방향에 대한 창작적 견해 차이로 인해 리드 보컬리스트 스티브 월쉬(Steve Walsh)는 1981년 10월에 "Streets"라는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기 위해 떠났다. 1982년 초 보컬/키보디스트/기타리스트인 John Elefante가 들어왔으며 Elefante가 참여한 캔자스의 첫 앨범인 <Vinyl Confessions>는 1982년 5월에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그룹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고, 몇 년 만에 빌보드 메인스트림 록 차트에서 4위를 기록한 'Play the Game Tonight' 으로 밴드의 첫 톱 20 히트를 탄생시켰다. 앨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독교적 가사는 새로운 팬층을 끌어모았고, 당시 신생이었던 컨템포러리 크리스천 뮤직 (CCM) 라디오 방송에서 인기를 얻었다. 이 앨범에는 바로 옆 스튜디오에서 녹음 중이던 퀸 의 드러머 로저 테일러가 백킹 보컬로 참여했다. 하지만 앨범 판매량은 골드 레코드 달성에는 미치지 못했다.
1983년 7월 <Drastic Measures>가 발매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리브그렌은 앨범에 단 세 곡만 참여했고, 나머지 곡들은 존 엘레판테와 그의 동생 디노가 작곡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스테인하르트가 녹음 세션 전에 그룹을 탈퇴하면서, 앨범은 보다 주류적인 팝 록 스타일로 바뀌었다. 이 앨범은 <Masque> 이후 캔자스의 앨범 중 가장 낮은 차트 순위 인 41위에 그쳤지만, 싱글 'Fight Fire with Fire'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빌보드 핫 100 차트 에서는 40위권 안에 들지 못했지만, 빌보드 메인스트림 록 차트에서는 3위를 기록했다.
엘레판테가 보컬로 활동하던 시절, 리브그렌은 캔자스가 자신의 기독교적 세계관을 대변하는 것에 점점 불편함을 느꼈다. 1983년 12월 31일 새해 전야 마지막 공연 후, 리브그렌과 호프는 워렌 햄, 마이클 글리슨과 함께 밴드를 떠났으며 이후 드러머 데니스 홀트가 합류했다.
엘레판테, 에하트, 윌리엄스는 캔자스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이어가고자 했고, 'Perfect Lover'라는 곡을 하나 더 녹음했다. 이 곡은 베스트 앨범인 <The Best of Kansas>(1984년 8월 발매)에 수록되었는데, 이 앨범은 미국에서만 400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 하지만 리마스터링된 재발매반에서는 다른 곡들을 위해 'Perfect Lover'가 제외되었다. 앨범 발매 후 그룹은 해체되었고, 이로써 이 앨범은 엘레판테가 참여한 마지막 캔자스 음반이 되었다.
1985년 7월, 밴드는 Ehart, Williams, 월시( Streets 해체 후 1985년 봄과 여름에 Cheap Trick의 투어에서 잠시 키보드를 연주했다)와 함께 다시 뭉쳤지만 Livgren, Hope, Steinhardt는 없었다. 새로운 라인업에는 Streets의 베이시스트 Billy Greer 와 기타리스트 Steve Morse (이전 Dixie Dregs 출신)가 포함되었다.
재결성된 밴드는 1986년 10월 28일에 열번째 앨범 <Power>를 발매했다. 첫 번째 싱글인 'All I Wanted'는 빌보드 톱 40 차트에 진입한 마지막 캔자스 싱글이 되었으며, 싱글챠트 19위를 기록했다. 이 곡은 빌보드 앨범 록 트랙 차트에서 톱 10에 진입했고 MTV에서 상당한 방송 횟수를 기록했다. 타이틀곡인 'Power'와 'Can't Cry Anymore' 두 싱글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는데, 'Power'는 핫 100 차트 하위권에 진입하며 상당한 방송 횟수를 기록하고 록 차트에도 올랐지만, 'Can't Cry Anymore'는 재치 있는 뮤직비디오에도 불구하고 방송 횟수가 적었다. 이 앨범은 약 40만 장이 판매되었다.
밴드는 배턴루지 출신의 그렉 로버트를 키보드와 백업 보컬로 영입하여 새로운 라인업으로 1988년 10월 앨범 <In the Spirit of Things> 를 발매했다. 콘셉트 앨범과 이후 투어는 팬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지만, MTV에서 방영된 'Stand Beside Me' 뮤직비디오를 제외하고는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모스는 1989년 4월 독일 투어를 끝으로 잠시 밴드를 떠났다.
1991년 3월, 몇 년 전 에하트에게 자신의 연주 테이프를 보냈던 바이올리니스트 데이비드 랙스데일 이 그룹에 합류하게 되면서, 캔자스는 초기 곡들을 원곡에 더 가까운 편곡으로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리브그렌은 1991년 여름 투어 도중 탈퇴했고, 스티브 모스가 다시 임시로 그 자리를 대신했다. 투어 후 모스는 자신의 프로젝트를 위해 밴드를 완전히 떠났고, 결국 딥 퍼플의 멤버가 되었다. 랙스데일은 추가 기타 파트를 맡게 되었고, 윌리엄스가 메인 기타리스트로 남게 되었다. 에하트, 그리어, 랙스데일, 로버트, 월시, 윌리엄스로 구성된 라인업은 1991년부터 1997년까지 지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라이브 앨범과 비디오인 <Live at the Whisky>(1992년 7월)와 스튜디오 앨범 <Freaks of Nature>(1995년 5월)가 발매되었다.
1995년 7월 28일에 캔자스는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Rock Walk of Fame)에 헌액되었다.
1998년 5월, 캔자스는 래리 베어드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앨범 <Always Never the Same> 을 발매했다. 이 앨범은 베어드의 새로운 편곡이 가미된 기존 캔자스 곡들과 몇몇 신곡, 그리고 'Eleanor Rigby' 커버곡으로 구성되었다.
2000년 7월에 발매된 스튜디오 앨범 <Somewhere to Elsewhere> 에는 캔자스의 원년 멤버 전원과 그리어(Greer)가 참여했으며, 모든 곡은 케리 리브그렌(Kerry Livgren)이 작곡했다. 오리지널 라인업으로 만들어진 만큼 앨범 전반은 ‘Kansas’만의 유니크한 특징들이 가득 담겨 있다. 아트라 칭할 만한 앨범 재킷부터 여전히 그들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7분 이상의 대곡을 5곡이나 포진 시킨 큰 스케일 또한 여전히 그들답다. 음악적인 부분 또한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2016년 9월에는 15년 만에 스튜디오 앨범 <The Prelude Implicit>을 발매하여 앨범챠트 41위에 올려놓았다. Steve Walsh에 대신 Ronnie Platt가 리드 보컬을 맡은 첫 앨범으로 서정적인 락을 선사하는 'With This Heart'와 'Rhythm in the Spirit'등이 수록되었다. 2020년 7월 현재까지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인 <The Absence of Presence> 를 발매했다.

캔자스는 1970년대를 주름잡은 미국의 주요 록밴드 중의 하나이며, 1980년대는 물론 현재까지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1970년대 당시 미국에 흔치않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로 스틱스와 함께 미국에서 그나마 내세울 수 있을 만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다. 하지만 영국의 유명 프로그레시브 밴드들보다는 약간 더 대중이 받아들이기 쉬운 구성에 하드락이 융합되어 상대적으로 지루함이 덜한 음악을 했다.
하지만 단순히 팝적이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고 팝적인 경향이 강한 밴드는 오히려 스틱스이다. 스틱스도 어려운 곡이 많지만 좀더 하드락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순수한 하드락 밴드보단 안정감있는 느낌의 작곡 스타일과 서사와 판타지가있는 심오한 가사도 무시할 순 없다. 특히 스틱스, 저니, 보스턴, 아시아, 토토 등등 성인 취향의 록음악(AOR)을 좋아하는 음악팬들이 이들의 음악을 좋아하고, 이들을 AOR 밴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의 풍토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밴드들은 초창기부터 상업성을 염두에 둔 밴드들이 많았다.

캔자스 의 특징 중하나로 바이올린을 꼽을수 있는데 여타 록 그룹들이 사용하지 않았던 악기로 키보드와 바이올린이 주도하는 복잡한 연주로 기승전결 전개의 드라마틱한 긴 곡으로 유명하다. 바이올린 주자 로비 슈타인하르트는 70년대엔 영국의 에디 좁슨과 함께 록계에서 이름을 날린 대표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여겨지고 있다.
이 밴드의 가장 유명한 히트곡은 바이올린 연주와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아름다운 포크록 스타일의 발라드 'Dust in the Wind', 그리고 경쾌한 하드록 넘버 'Carry On Wayward Son' 이다. 국내에선 'Dust in the Wind'가 너무 유명해 이런 아름다운 록 발라드만 하는 밴드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곡은 빌보드 싱글챠트 최고 6위까지 올랐던 그들의 최고 히트곡중 하나이며 이곡은 기타연습을 하다가 만들어진 곡이라고 한다. 어느날 쓰리핑거 연습을 하고있는데 옆에서 튿던 아내 비키가 곡이 좋다고 가사를 붙여보라고해서 탄생한 곡이라고한다. 국내에서도 쓰리핑거 연습곡의 대표적인 곡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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