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요

1970년대의 대표적인 3대 저항 포크 가수 양병집

 

 

은유적이고 시적인 노랫말과 맑고 순수한 정서를 담아 노래했던 김민기와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의 기운이 강력했던 한대수는 멜로디와 가사를 만들고 직접 노래까지 했던 싱어송라이터이자 1970년대 금지 가수의 대명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김민기, 한대수와 더불어 양병집은 1970년대의 3대 저항 가수로 불렸다. 

양병집은 구전가요나 외국 곡을 번안해 한국적 이미지로 재창출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포크가수였다. 그는 김민기나 한대수처럼 자작곡으로 자신만의 멜로디를 창작하지는 못했지만, 외국 포크송을 가져와 우리의 해학, 미학적 색채를 주는 번안곡으로 만들어 당시의 사회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사회 현실을 비꼬는 노랫말을 담아 한국적 향기가 풍기는 구수한 보컬로 노래하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만들며 1970년대의 중요 포크 뮤지션으로 자리매김했다. 
 
1951년 부산시 구포에서 태어난 양병집(본명 양준집)은 중앙고 재학 시절부터 음악감상실 디쉐네나 남태평양, 미도파 살롱을 드나들며 음악을 즐겼던 조숙한 아이였다. 고교 2학년 때 자퇴를 한 그는 대입 검정고시에 응시해 1969년 서라벌예대 작곡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대학 생활도 1년을 넘기지는 못했다. 그는 1971년 10월 미국문화원에서 친구들이 마련해준 조촐한 노래 발표회 무대에 서며 노래에 대한 갈증을 달랬다. 대학 중퇴후 아버지를 따라 증권사에 입사한후 1년뒤인 1972년 월간팝송에서 개최한 제1회 포크 콘테스트 포스터를 우연히 보고 참가했다. 

 

 

역

 


당시 3살 어린 동생 양경집의 이름으로 출전해 불렀던 노래가 그의 대표곡 중 하나인 번안곡 '역'이었다. 이 대회에서는 훗날 포크 그룹 따로또같이의 리더가 될 서울대 체육과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이주원이 1위를 차지했고, 김민기와 함께 포크 듀오 도비두의 멤버로 활동했던 김영세의 동생 김준세가 2위로, 양병집은 3위로 입상했다. 양경집이란 이름으로 참가했지만 입상자 발표 때 양병집으로 잘못 호명하자, 그는 아예 그 이름을 예명으로 삼아버렸다. 이때 부른 노래가 밥 딜런의 'Don't Think Twice, It's Alright' 에 직접 노랫말을 붙인 그의 대표곡 ‘역’(逆)이었다. 

 

 

 

타복네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한 그는 명동 오비스캐빈, 내쉬빌, 르시랑스 등 통기타 가수들이 주로 올랐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자신이 함경도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던 구전 동요를 다듬어 포크송으로 만든 '타박네'를 서유석이 불러 히트하자, 그는 가수보다는 작곡가로 먼저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곡은 서유석의 음반 <I Want See My Mother>(1972)에 처음 실린 후 널리 알려지면서 양병집과 서유석을 대표하는 곡 중 하나가 된다. 양병집의 타복네와 서유석의 타박네가 발음은 다르지만 '바가지를 때린다'는 의미로서 같은 뜻이다.  사실 이곡은 양병집이 동양방송 PD였던 이백천과 함께 모 음반사를 방문했었는데 양병집은 대화 도중 잠시 앞마당에 나와서 '타복네'를 불렀다. 마침 곁을 지나며 이 곡을 유심히 듣고 있던 서유석과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이후 서유석은 준비하고 있던 후속 앨범에 '타복네'를 '타박네'라는 제목으로 바꾸어 수록했다. 자신의 앨범에 실으려고 준비하던 곡이 다른 음반에 수록된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양병집은 크게 화를 내었다고한다.  

1973년 양병집이 서울 신촌 아현동에 오픈한 자그만한 음악 카페 OX에 포크 가수 이연실이 찾아와 “음반 제작을 도와 달라”고 부탁하자 '소낙비', '잃어버린 전설' 등의 노래를 준 인연을 바탕으로, 성음제작소 나현구 사장의 제안으로 데뷔 음반을 발표할 기회가 찾아왔다. 

 

 

서울하늘1

 

1974년 성음제작소에서 발매한 양병집의 첫 독집<넋두리>에는 총 10곡을 수록했다. 도수 높은 안경 너머로 째려보는 작은 눈매와 담배를 질끈 문 음반 재킷 사진은 인상적이다. 이 이미지는 고집스러운 그의 음악세계를 예측케 한다. 강근식이 주도한 록 밴드 동방의빛이 연주에 참여한 수록곡 중 '서울하늘1'과 '서울하늘2'는 문제작으로 손꼽힌다. 

우디 거스리의 'New York Town'을 번안한 '서울하늘1'은 신랄한 풍자적 어법으로 1970년대 서울에 꿈을 찾아 올라온 청년의 순진한 소망을 짓밟는 도시의 비정함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하지만 이 곡은 방송 부적격이란 이유로 금지되어 대중이 들을 틈도 없이 사장되고 말았다. 

한편 피트 시거의 'The Ballad of Lou Marsh'를 번안해 1970년대 서울의 풍경을 스케치한 '서울하늘2'는 1960년대 이래 경제 개발과 국가 재건을 모토로 달려온 결과가 결국 빈부 격차임을 처음으로 증언한 노래였다. 대중의 풍요와 빈곤이라는 이중성을 은유적으로 묘사한 이 곡 역시 '서울하늘 1'처럼 금지곡이 되는 전철을 밟았다. 

2면 네 번째 트랙 '역' (원곡은 밥 딜런의 'Don't Think Twice, It's Alright')은 시대를 앞서간 그의 혜안에 감탄하게 만드는 노랫말이 비범하다.  
“한겨울에 수영복 장수, 한여름에 털장갑 장수, 남자처럼 머리 깎은 여자, 여자처럼 머리 긴 남자, 백화점에서 쌀을 사는 사람.” 
30년 전 그가 예견한 미래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섬뜩한 자화상이다. 발표 당시에도 히트했던 이 노래는 요절한 후배 가수 김광석이 1990년대에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로 제목을 바꿔 다시 부르면서 널리 알려졌다. 

또한 유일한 창작곡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그리며 작곡한 '아가에게', 피트 시거의 'The Thresher'를 번안한 '그녀'도 주목할 만한 노래이다. 양병집은 한 인터뷰에서 “군사정권에 의해 무기력증에 빠진 당시 사회를 항해 노래라도 계속 부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곡이었다”고 밝혔다. '타복네(타박네)'는 구전 민요를 다시 작•편곡한 노래로 양병집의 어머니가 들려준 노래라 한다. 본인이 많은 애정을 가진 노래로 후에 여러 음반에서 리메이크되었다. 

 

 

잃어버린 전설

 

'소낙비'와 더불어 피터, 폴&메리의 미국 구전 민요 ‘Weep For Jamie’를 개사한 '잃어버린 전설'도 당대에 많이 회자되었다. 이는 이른바 민청학련 등에 연루되어 투옥되어 죽거나 사라진 젊은 영혼을 애도하는 사회성 짙은 비장한 노래였다. 모든 수록곡은 양병집의 힘찬 목소리와 자신만만한 기타 퉁김 연주로 풍자적인 노랫말만큼이나 통쾌하다. 

양병집의 첫 독집은 성음제작소에서 홍보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표지 사진의 담배를 꼬나문 양병집의 모습부터 아침이슬을 금지시킨 정부에겐 당연히 불순해 보였을 가사들까지 문제가 되어 대부분 사회 풍자적인 노랫말과 어두운 곡들로 포진한 이 음반은 발매 1년 만인 1975년 7월 5일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고 잔여 음반들이 모두 회수된 후 마스터 테이프와 함께 폐기되는 비운을 겪는다.

양병집은 이 앨범의 금지 조치에 대해 “2,400장을 제작한 음반은 금지 조치 이전에 800장 정도가 팔렸고 나머지는 전량 회수 후 폐기되었다”고 전했다. 시작부터 활동에 제약을 받은 양병집은 이 음반의 금지 조치 이후 김민기, 한대수와 더불어 1970년대의 대표적인 3대 저항 포크 가수로 회자되었다. 

 

 

아침이 올때까지

 

1980년 2집 <아침이 올때까지/바둑/사랑해보자>는 1집 앨범이 금지 음반이 된 뒤 1집의 풍자와 토속성을 가진 곡과는 조금 다른 포크 락의 분위기도 있는 곡들을 수록한 앨범이다. 

양병집은 자신의 솔로 음반을 기획하고 발표한 것 외에 음반제작자로도 활동했다. 1981년 양병집은 자신이 운영하던 음악카페 ‘청개구리’에서 후배의 소개로 만난 동서남북의 음악에 심취하며 대중음악사에서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는 명반 <N.E.W.S.>를 제작한다. 평가와 달리 이 앨범은 발매 당시에 히트를 기록하지 못했다. 또한 계약 직전에 엇갈려서 함께 하지 못했던 듀엣 해바라기는 양병집과의 인연으로 대중음악계에 등장할 수 있었다.  

 

 

이런 사람을 찾습니다

 

이후 양병집은 6년간의 공백기를 가진 뒤 조금은 대중적인 노선으로 방향을 틀어 1985년 발매한  3집 <양병집 넋두리 II>에서는 제목부터 양병집 넋두리 음반의 계승작이라 볼 수 있을 작품이다. 양병집이 작곡료를 주고 받은 당시 신인이었던 정태춘의 곡 2곡과 우리노래전시회 1집에도 수록된 조동익 작곡의 '이 세상 사람이' 등이 수록되어있는 참여진도 화려한 앨범이다. 포크 록의 적인 면이 강하면서도 서정적인 음악인 '이런 사람을 찾습니다', '얘기', '오늘 같은 날', '우리의 김씨' 등의 노래등이 수록되었다. 

1988년 발매된 4집 <부르고 싶었던 노래들>에서는 제목처럼 자신의 곡 리메이크나 독립군가, 김의철, 한대수, 정태춘 등이 만든 '저 하늘에 구름 따라(불행아)', '바람과 나', '양단 몇마름' 등이 수록되어 있다. 
1989년 5집 <긴 세월이 지나고>은 자신의 곡 리메이크나 신곡, 구전가요(부활가) 등이 실려있다. 1993년 발표한 6집 <1993>은 양병집이 호주로 이민 간 뒤 일시 귀국해 작업한 앨범이다. 곡들의 분위기는 전작들과 비슷하다.

양병집은 1980년대에 이화여자대학교 인근에서 음악 카페 '모노'를 운영했었다. 이곳은 밴드 들국화가 결성이 된 곳이기도 하다.

1986년 가족회의 끝에 선택의 여지 없이 호주로 이민 갔던그는 그곳에서 자동차 딜러, 청소부, 음식점·소주방 운영 등 각종 직업을 전전했으나 여전히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실패한 뒤 거리의 음악인으로 나서고 자살까지 시도하고 결국 1999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그의 인생에는 반전이 없었다. 들국화, 해바라기 등의 재능을 알아보고 발굴했으나 끝내 제작에는 좌절하고, 2004년 손지연이라는 재능있는 여성 포크가수의 음반 제작을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손지연 판을 만들고 잘 안 팔렸을 때 4~6월 이태원에서 거리공연을 했어요. 하루 6, 7만원 벌이가 됐어요. 많은 때는 10만원도 벌었고요. 2009년, 2010년, 2011년도엔 광화문, 인사동, 강남 등지에서도 했어요.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더군요. 지금은 하지 않아요. 자랑스런 이력이 못 되잖아요.” 
양병집은 그렇게 거리공연을 통해 어렵게 번 돈 일부를 노숙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음악을 하면 사회가 따뜻해져요. 나는 그들보다 가진 자이고 음악을 할 수 있죠. 제가 돈을 주면 처음에 안 받으려 하다가 나중엔 저에게 우유를 주고 반응이 와요.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였지만…. 정치인도 지식인도 음악을 알아야 해요. 그래야 사회가 따뜻해지니까요.” 

 

 

이 땅은 너와 나의 땅

 

 

2005년 12년 만에 발표한 7집 앨범 <Fade Away>를 선보였으며 2012년 말에는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라는 자전 에세이집을 내기도 했다.  
2013년 발표된 8집 <Ego & Logos>은 양병집의 ‘죽기 전에 내 목소리가 제대로 담긴 CD 하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만들어진 앨범으로 곡들은 모두 전작에 수록되었던 것들이다. 이 음반 소개글에 적혀 있는 양병집이 한 말 중에는 ‘저는 그리 오래 살 것 같지 않아요’란 말이 있는데 2021년 양병집이 세상을 떠나고 이 앨범이 유작이 되며 여러 모로 씁쓸한 내용이 되었다. 
2014년 12월 5일에 남자 없는 여자들을 위한 송년 콘서트의 공연을 진행했다.
2016년 6월에는1집,2집, 3집, 6집을  2장의 CD에 모은 컴필레이션 <The Sounds Of Yang Byung Jip> 을 발표했다. 

 

 

오늘같은 날

 

 

2021년 7월 24일, 복합문화공간 다락방의불빛 공연도 하였으며 11월 30일에는 저서 <밥 딜런을 만난 사나이>를 펴내며 꾸준히 활동하였다. 
2021년 12월 24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자택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사망 전 12월 24일에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가 양병집과 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었는데 약속 시간이 지나도 양병집이 카페에 나타나지 않았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카페 주인이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신고를 접수받고 나서 자택에 도착하였고 사망한 양병집을 발견했다. 

양병집은 가수로서 또 작곡가로서 국내 가요계에 남긴 족적도 대단히 크며, 2000년대에 이르러 김민기, 한대수와 함께 초창기 한국 포크음악의 주역으로 기록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