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희은은 자신의 노래 상당수가 금지된 1980년 활동을 중단하고 1981년에 한국을 떠나 1년여간 미국과 유럽 등을 여행하고 돌아왔지만, 여행하며 평정심을 되찾은 그녀는 1982년 여름 귀국했지만 난소암 진단을 받고 생의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되었다. 서른 즈음 양희은은 인생 최대 위기를 맞았다. 난소까지 퍼진 종양 제거 수술을 받기 위해 대학병원에 입원한 그녀는 두려움과 번민 속에 매일 기도에 매달렸다.
2번에 걸쳐 암수술을 받았고 투병 생활 을 하는 등 인생의 굴곡이 많았다. 여동생 양희경이 직접 옆에서 병간호를 했으며, 병고로 신음소리만 겨우 내는 그녀의 모습에 "정말로 언니가 죽는 줄 알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 일로 영구히 자식을 가질 수 없게 되었지만, 남편을 만나 강아지들을 자식 삼아 키우며 긍정적으로 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암 수술비와 관련해 윤형주의 도움이 있었다고 한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투병 중일 때 경험이 반영된 곡이 1983년에 발표한 앨범 <양희은 신곡집 /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 하얀 목련>에 수록된 '하얀 목련'이다. 1983년 이른 봄날, 기도를 마친 후 무심코 창밖을 본 양희은의 메마른 시선은 눈부시게 핀 하얀 목련에 한동안 머물렀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자신의 처지와 반대로 너무도 아름다운 목련을 보자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한다. 병실 창밖에 만개한 하얀 목련을 보고, 마지막으로 남기는 유언이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쓴 한 편의 짧은 시가 바로 '하얀 목련'이었다. 뉴욕에 있는 친구가 보낸 "너는 잘 싸우고 있어? 너와 같은 병을 앓던 사람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봄비 맞아 목련이 툭툭 떨어지고 있어" 편지를 보고 밤에 몇십 분 만에 가사를 완성했던 노래라고 밝혔다.
수술 후 기적적으로 소생한 양희은은 절대 절명의 순간을 담아낸 자작시를 작곡가 김희갑의 멜로디에 얹어 노래로 만들었다. 명곡 '하얀 목련'은 이렇게 탄생했다. 라디오 진행을 다시 맡으며 활동을 재개했을 무렵, 그녀의 노래들도 금지의 족쇄를 벗어났다.
총 14곡(건전가요 포함)을 수록한 음반에서 신곡은 '하얀 목련' 1곡뿐이다. 나머지 곡 중에서도 다시 녹음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빼고는 이미 발표했던 노래들이 다시 수록됐다. 즉 ‘신곡집’이란 타이틀을 내세웠지만 이 앨범은 사실상 양희은의 베스트 음반에 가깝다. '하얀목련' 노래를 들은 대중은 감동했고, 이후 1985년에 나온 하덕규의 곡 '한계령'까지 연이어 히트하면서 양희은은 재기에 성공했다.
당시 양희은이 음반을 내던 레코드사는 양희은이 죽을 거라 생각하고 청계천 도매상에 '양희은 시한부! 마지막 재고 정리'라고 문구를 걸고 앨범을 팔았는데,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양희은이 전화로 서운함을 표하자 몇 달 뒤 곡 작업을 하자고 연락을 했고, 킹레코드 대표인 킹박도 미안했는지 작곡가로 김희갑까지 모셔왔다. 상당수 곡의 금지곡 지정 사태에 시한부 판정까지 받은 양희은을 재기시켜준 곡이며, 양희은이 아침 이슬 그 후 10여 년이 흘렀음에도 대학가에서 인기가 여전했음을 보여준 곡이기도 하다.
'하얀 목련'은 양희은이 직접 쓴 슬프도록 아름다운 가사말로 대한민국 가사대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이 노래는 최성수, 박강성, 그리고 작곡가 김희갑과 최종혁 등 유독 남자 음악인들이 즐겨 리메이크했다. 반면 '하얀 목련'을 리메이크한 여자 가수는 찾기 힘들다. 이는 양희은 본인의 애틋한 이야기를 그녀 자신보다 잘 소화할 여가수가 없었기 때문일 수 있다.
1985년 9월 발매된 앨범 <찔레꽃 피면>은 힘든 투병을 견뎌내고 발표한 앨범으로 1970년대 포크 여전사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노래를 들려준다.
1980년대 양희은의 대표곡 '한계령'을 수록한 이 음반에서는 원작자인 하덕규의 노래와 조동진, 이주호의 노래를 다시 불렀다. 앨범은 하덕규의 곡 '찔레꽃 피면'으로 시작했다. 밴드 동방의빛 멤버이자 1970년대의 유명 세션 베이시스트였던 조원익의 리코더 연주에 청아한 양희은의 목소리가 잘 어우러진 이 곡은, 일제강점기에 갓 결혼한 남편이 징용에 끌려가 죽었지만 시신마저 돌아오지 못한 슬픔을 노래했다.
뒷면 첫 곡 '한계령'도 하덕규가 작사 작곡한 곡이다. 이는 하덕규가 힘든 시기를 겪다 생을 마감하려고 설악산 한계령에 올라 굽이진 계곡을 보고 만든 곡이었다. 2곡 모두 하덕규나 시인과촌장의 정규 앨범에는 싣지 않은 곡으로, 양희은이 처음 녹음했다.
'한계령'은 음반에 하덕규 작사 작곡으로 표기했지만, 사실 작사는 시인 정덕수가 10대 시절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원 작사가의 이름으로 바로잡았다. 이 앨범에는 남성 듀오 해바라기의 리더 이주호의 노래가 있다. 1983년 발매한 <해바라기 1집> 수록곡 '고개를 숙인 사람', '갈 수 없는 나라' 2곡이다.
음반 발매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양희은에게 많은 영향을 준 조동진의 곡도 3곡 실었다. 실제로는 김민기가 썼으나 음반에는 양희은 작사 작곡으로 표기한 2곡도 눈길을 끈다. 앞면 마지막 곡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뒷면 마지막 곡 '잘 가오'였다. 원작자의 이름을 밝히지 못한 것은, 이때까지도 음반에 김민기의 이름을 표기하는 데 제약이 많았기 때문이다. 김민기는 <김민기 1>에 '잘 가오'를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불렀다. <김민기4>에는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을 '봉우리'란 제목으로 다시 불렀다. 양희은도 1997년 <더불어 살아온 모든 이들에게 Tribute to 김민기>라는 부제를 단 음반에서 이 곡을 다시 불렀다.
대표곡 '한계령'은 양희은이 결혼과 투병으로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 탓도 잇지만 발표 당시에는 너무 무거운 분위기라 음반사가 홍보를 포기해버렸지만 1990년 재발표 때 큰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양희은의 금지곡들은 모두 해금조치 되었고 뛰어난 뮤지션으로 다시 평가받기 시작했다. 1971년 데뷔 이래 양희은은 한국 포크 음악의 선두주자였다. 1980년대에도 '하얀 목련'과 '한계령' 등 히트곡을 내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매정했고 그녀도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포크는 이제 더 이상 시대를 선도하는 음악이 아니었고, 양희은 역시 영원한 청춘의 상징일 수 없었다. 건강에도 이상이 생긴 그녀는 1980년대 후반 침체기에 빠졌다. 한동안 한국을 떠나 살기도 했다. 시간은 흘러갔고 1990년대가 찾아왔다.
그런 의미에서 1991년 킹레코드에서 LP와 CD로 발매한 이 앨범 <양희은 1991>은 양희은의 재기작으로 볼 수 있다.
중년에 접어든 그녀는 훨씬 성숙하고 관조적인 모습으로 돌아와 담담하게 노래한다. 그녀의 곁에는 젊고 탁월한 기타리스트 이병우가 함께했다.
짧지만 빛났던 남성 듀오 어떤날 활동을 마감하고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났던 이병우는 당시 솔로 기타 연주 앨범을 발표하는 등, 한국과 오스트리아를 오가며 학업과 음악 활동을 병행하고 있었다. 양희은과 이병우의 만남은 빼어난 결과를 낳았다. 별다른 기교를 부리지 않은 이병우의 담백한 기타 연주, 이전의 맑고 고운 고음 대신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노래하는 양희은의 목소리는 포크 미니멀리즘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두 사람의 작업물인 이 음반으로 한국 포크계에 새로운 정경이 펼쳐졌다.
수록곡 8곡 중 소르(F.Sor)의 연습곡에 가사를 붙인 '나무와 아이'를 제외한 7곡을 이병우가 작곡했다. 이병우가 가사까지 쓴 '가을아침'과 '11월 그 저녁에'의 2곡을 제외한 6곡에 양희은이 직접 가사를 붙였다. 이 중 '잠들기 바로 전' 은 <어린왕자>의 일부를 발췌한 양희은의 내레이션이 가사를 대신했다. '11월 그 저녁에'는 1989년 어떤날 2집에 먼저 수록한 곡이다.
앨범의 절정은 B면의 3번째 곡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다. 이 곡은 기타 하나와 목소리만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깊이의 최대치를 이끌어냈다. 제목 그대로 이 노래는 쓸쓸하다 못해 처연하기까지 하다. 사랑하기에 끝내 피할 수 없는 하나의 단면이 ‘쓸쓸함’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 노래만큼 그것을 적확하게 잡아내 드러낸 노래도 없을 것이다.
이병우가 작곡과 편곡을 전담하며 앨범을 조율했지만, 크레딧에서 외국인들의 이름을 발견하는 것도 흥미롭다.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제랄 벤자민(Jeral Benzamin)은 루이즈 본파(Luiz Bonfa)나 허비 만(Herbie Mann) 같은 유명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한 거물급 프로듀서다. 레코딩 엔지니어로 참여한 마이클 맥도날드(Michael MacDonald)도 앨범의 사운드를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타이틀곡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는 2000년 ‘맨발의 디바’로 불리는 이은미, 2004년 이수영, 2007년 김연숙에 이어 2015년 소프라노 조수미가 시각장애인 하모니카 연주인 전재덕의 피처링으로, 2016년에는 위일청 등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했다.
한편 이 앨범은 2007년 가슴네트워크가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순위에서 91위를, 2011년 음악 웹진 <100비트> 가 선정한 ‘90년대 베스트 앨범 100선’에서 70위를 차지하며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양희은은 1991년 미국으로 찾아온 기타리스트 이병우와 함께한 앨범은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직접 기획하고 제작한 첫 음반의 성공으로 자신을 얻은 그녀는 1993년 영구 귀국했다. 이후 남편 조중문과 함께 설립한 음반기획사 <옹달샘>을 통해 자신의 음반들을 본격적으로 기획하고 제작하는 변신을 했다.
양희은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중음악을 젊은이들이 이끌어간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문화 다양성이 없으면 세대 간극이 깊어질 거라고 우려했다. 그녀는 자기 세대의 노래가 사라지는 현실에 안타까워했다.
결국 그녀는 ‘중년층의 노래 욕구’를 자극할 노래를 고민하다 1995년 이 시리즈 앨범 <양희은이 부르는 양희은의 노래들>을 발표했다. “나이가 들수록 노래는 메시지를 서투르게 강조하기보다 대중의 아픔과 슬픔을 만져주어야 한다. 마흔 넘은 나이에 부르는 '아침이슬'에는 열아홉 살 때 불렀던 느낌과 세월의 무게만큼 괴리감이 있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나이에 따라 끊임없이 맛이 다르다.”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3장으로 구성한 시리즈 음반은 장당 11곡씩 총 33곡을 수록했다. 이 시리즈는 양희은 부부가 설립한 옹달샘 기획이 제작한 2번째 프로젝트였다. 1995년 로얄레코드에서 LP와 카세트테이프로 발매했고, LG미디어에서도 CD와 카세트테이프로 동시 발매했다.
3집 <양희은이 부르는 양희은의 노래들 셋>에는 타이틀곡 '하얀목련', '숲', '한계령', '찔레꽃 피면' 등 하덕규의 작품을 4곡이나 실었다. 예전에 발표한 곡이 아닌, 양희은이 새롭게 전곡을 부른 시리즈 음반에는 의도적으로 김민기의 노래를 배제했다. 이는 대중에게 각인된 민중가수의 이미지를 벗고 대중가수로 거듭나고자 했던 양희은의 의지와 다양한 시도를 반영한 것이다.
같은 사진을 사용했지만 로얄레코드 버전은 <양희은이 부르는 노래들/하나>로 표기했고, LG미디어 버전은 <양희은이 부르는 노래들 하나>로 표기해 조금 다르다. 또한 1집의 로얄레코드 버전 사진에서는 양희은이 웃고 있지만, LG미디어 버전에서는 입을 굳게 닫고 있어 약간 차이가 있다. 게다가 킹레코드에서 같은 음원에 <양희은의 노래>라는 제목을 붙여 카세트테이프 버전으로 발매하는 바람에 혼란이 더욱 가중되기도 했다.
양희은의 귀국 시점과 활동 상황, 그리고 이 음반보다 한 달 앞서 발매한 정규 앨범 <양희은 1995>(LGM-A004), 동시 발매한 <양희은이 부르는 사랑노래>(LGM-A009)의 고유 번호 및 여러 정황으로 미뤄, 이 음반의 발매 연도는 1995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시리즈의 완결편인 3집 타이틀곡 '하얀목련'은 기타를 중심으로 한 4명의 심플한 연주가 양희은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받쳐준다. '하얀목련', '들길따라서' 등 총 11곡의 수록곡은 1999년 CD 2장으로 발매한 <셋 · 사랑노래> Disc.1에도 재수록했다.
이 음반은 전반적으로 1명이 지휘하고 연주자 9명이 연주하는 구성을 택했다. 김기표는 오케스트라, 함춘호는 기타 중심으로 편곡에 참여했다. 특히 시리즈 1집에 수록한 이주원의 곡 <내님의 사랑은>은 원곡과 달리 리듬을 슬로우 록에서 칼립소로 바꾸고 연주 시간을 늘렸다.
2012년 KBS <불후의 명곡>에서 윤하, 쏘냐, 노을 등 12명의 가수들이 이 시리즈 음반 1, 2편에서 각 6곡씩 새롭게 편곡해 다시 불렀다. 2014년 같은 프로그램의 양희은 편에서도 홍경민, 알리, JK 김동욱 등 7명이 양희은 노래들을 다시 불렀다. 방송 후 온라인으로 발매한 19곡 중 무려 13곡이 이 시리즈 음반들에 수록한 곡이었다. 이는 이 앨범에 수록한 노래들이 지금도 대중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2012년 예전미디어가 제작한 <불후의 명곡-양희은>은 과거의 음원을 재수록한 음반이었다.
양희은이 1991년 컴백하기 전에 제작한 여러 음반은 과거의 음원을 재수록한 편집 음반들이 많다. 반면 이 시리즈 음반은 40대로 접어든 그녀의 성숙한 목소리와, 1990년 이후 대중음악 연주자들의 세련된 연주가 새로운 편곡으로 만난 작품이란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녀와 뗄 수 없는 존재인 김민기의 노래가 없는 음반, 가수가 직접 기획한 음반, 새로운 편곡을 가미한 음반-이러한 특징 때문에 이 음반은 양희은이 민중가수에서 대중가수로 변신하는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이 시리즈 음반 중 LP 버전은 소량만 제작했기에 오늘날 희귀 음반으로 대접받고 있다.
2001년에 발표한 30 Years Anniversary <그대가 있음에 / 사랑, 당신을 위한 기도>는 데뷔 30주년 앨범이지만, 양희은이 진행하는 <여성시대> 라디오에서 그 동안 양희은 진행하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청취자 추희숙 씨를 위해 만든 추모 앨범이다. 당시 말기암으로 제대로 몸도 못 가누던 추희숙 씨가 4일에 걸쳐 보내온 편지를 보며 엄청난 감정을 느꼈던 듯하다. 데뷔 30주년 앨범을 추모 성격의 앨범으로 제작하려고 했을 때 주위에서 걱정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양희은의 강한 주장으로 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2002년에는 데뷔 30주년을 맞아 30주년 기념 라이브음반<30 Live>를 발매했으며 2006년에는 양희은 35 (양희은 35주년 앨범) <인생의 선물 / 당신만 있어준다면>을 발매했다.
2011년에는 데뷔 40주년을 맞아 그동안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뮤지컬 <어디만큼 왔나>를 2011년 8월 중순까지 공연하였다.
가수 경력뿐만 아니라 라디오 DJ로서도 전설적이다. 젊은 시절부터 CBS, TBC 등에서 팝 음악방송 DJ를 했을 만큼 방송 경험도 풍부한 편이다. 1993년에 다시 CBS로 돌아와 <양희은의 정보시대>를 진행했고 SBS에서 <두시의 친구 양희은입니다>를 1998년까지 진행했으며 손숙의 뒤를 이어서 1999년부터 2025년 현재까지 MBC 표준FM <여성시대>를 진행 중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이런 경력에도 불구하고 MBC 라디오에서는 타 방송사 경력을 인정해 주지 않아 MBC 라디오 명예의 전당인 골든마우스에서 2019년이 돼서야 골든마우스 시상을 하였다.
칠순을 넘겼음에도 여전히 목소리에 힘이 가득하기로 유명하다.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목소리가 매우 힘차고 또렷해서 듣기만 해도 양희은임을 알아챌 수 있다. 다만 동생도 목소리가 매우 비슷해 속기 쉽다. 물론 양희경이 좀 더 나긋나긋하지만 양희경이 작정하고 따라 하면 친척도, 지인도 구분이 어렵다. 두 사람이 방송, 특히 라디오에 함께 나오면 바로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유심히 듣고 톤의 차이로 구분해야 할 정도. 심지어 둘의 모친도 목소리가 둘과 같아서 가족들과 모친의 지인들이 많이 속는다고 한다.
2014년에 후배 음악인들과의 프로듀싱 음반 작업을 진행했다. <뜻밖의 만남> 이란 주제로 싱글곡들을 발표하였는데 후배 뮤지션이 만든 노래를 양희은이 부르는 것으로 10월에 윤종신이 만든 노래 '배낭여행'을 발표했고 11월에는 이적이 만든 노래 '꽃병'을 발표했으며 2015년 2월에는 이상순(밴드 롤러코스터의 기타리스트)이 만든 노래 '산책'을 발표했다. 그리고 2015년 4월 발표한 '엄마가 딸에게'는 직장인밴드 동물원 멤버였던 김창기의 이야기(친딸에게 못한 이야기, 병원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한)를 바탕으로 1절을, 2절은 양희은 씨가, 타이미가 랩가사를 썼다고 한다. 9번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새로운 변화를 성공적으로 시도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2014년 11월에는 2014 양희은 <나영이네 냉장고 / 당신 생각 /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말>을 발표하며 재즈를 시도했다. 동생 양희경, 불독맨션의 이한철, 인디 보컬 그룹 바버렛츠, 장미여관의 육중완 등이 앨범에 참여했다. 타이틀곡인 '나영이네 냉장고'는 김나영의 에세이 수필집 '마음에 들어'의 수필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리고 수록곡 '나영이네 냉장고'로 데뷔 후 44년 만에 뮤직 비디오를 찍었다. 뮤직비디오에는 김나영, 장미여관, 김준호, 김숙이 출연하였으며, 감독은 송은이가 하였다. 참고로 KBS에서는 특정 냉장고 브랜드 노출을 이유로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다.
2024년 진행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에서의 '북미 원주민의 지혜' 내용을 낭독하여 녹음했다.
1971년 -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 <아침이슬 / 세노야 세노야>
1972년 - 불나무
1972년 -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 제2집 <아름다운 것들 / 서울로 가는 길 / 백구 / 작은 연못>
1973년 -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 3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 행복의 나라>
1974년 - 내 님의 사랑은... <내 님의 사랑은>
1975년 - 한 사람 <한 사람 / 세월이 가면>
1976년 - 양희은 Best <들길 따라서 / 주여 이제는 그곳에>
1978년 - Yang Hee Eun <산장의 여인 / 부모>
1979년 -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 / 고무줄놀이 / 늙은 군인의 노래 / 천릿길 / 식구 생각>
1980년 - 양희은 <이름 모를 소녀 / 빗속을 둘이서>
1981년 - 양희은 새노래 <어디만큼 왔니 / 누구나 다 있지>
1983년 - 양희은 신곡집 <하얀 목련 /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1985년 - 양희은의 새노래 모음 <한계령 / 찔레꽃 피면 /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1988년 - 양희은의 새노래 모음 <이별 이후 / 숲>
1991년 - 양희은 1991 <그 해, 겨울 /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 가을 아침>
1995년 - 양희은 1995 <못다한 노래 / 내 나이 마흔 살에는>
1998년 - 양희은 1998 <저 하늘 구름 따라 / 연인들>
1999년 - 양희은 하나, 둘 (베스트 앨범)
1999년 - 양희은 셋, 사랑의 노래 (베스트 앨범, 리메이크 앨범) <사랑한 후에 / 내 사랑 내 곁에>
2001년 - 30 Years Anniversary <그대가 있음에 / 사랑, 당신을 위한 기도>
2002년 - 30 Live (양희은 30주년 기념 라이브 앨범) <일곱 송이 수선화 / 사랑, 당신을 위한 기도>
2006년 - 양희은 35 (양희은 35주년 앨범) <인생의 선물 / 당신만 있어준다면>
2014년 - 2014 양희은 <나영이네 냉장고 / 당신 생각 /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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