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7년 2월 아세아레코드에서 배호의 대표곡 '돌아가는 삼각지'를 처음 수록한 음반 <돌아가는 삼각지 / 둘이서 울던 타향>을 발매했다. 총 12곡을 담은 이 음반은 배호, 안다성, 남일해, 김복자 등 11명의 가수가 참여했으며, 전형적인 1960년대 스타일의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앨범 발매 이후 마침내 긴 무명생활의 배호를 하루 아침에 스타덤에 올려준 곡이 발표됐다. 바로,. '돌아가는 삼각지' 였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병세가 악화된 상태에서 가래를 여러번 뱉으며 앉아서 간신히 취입한 이 곡은 병마에 시달리는 무명가수겸 밤무대 악단 연주자인 24세의 한 젊은이의 인생을 180도 바꾸어 버렸다. 하지만 인기 급상승이 그의 건강을 해결해 주진 못했다. 동분서주 할 수 밖에 없는 일정은 오히려 그의 병세를 더욱 악화시켰고, 의사가 진단한 그의 남은 인생은 불과 3-4년이었다.
히트곡이 된 '돌아가는 삼각지'는 지금은 철거되어 사라진 삼각지 입체 교차로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다. 하지만 이 노래는 입체 교차로가 건립되기 전인 1963년에 이미 작곡이 마무리되었던 곡이다. 당시에는 서울 전차가 삼각지를 지나다녔고 분수대도 있었다.
이 노래의 작곡자 배상태는 노량진에서 전차를 타고 충무로까지 출퇴근하면서 삼각지라는 지명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삼각지에서 연인과 이별한 사내가 홀로 쓸쓸하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작사가 이인선이 가사를 쓴 노래가 '돌아가는 삼각지'였다.
지금은 국민가요로 사랑받고 있지만 이 노래는 완성 후 3년간 노래할 가수를 찾지 못했다.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 남일해는 바쁜 스케줄 탓에 이 노래를 연습만 몇 번 하다 말았고, 인기 가수 금호동은 “이런 구닥다리 노래를 왜 부르느냐”며 노골적으로 거절했다. 배상태는 당시 잘나가던 신인 가수 남진이 노래를 취입해주길 바랐지만 여의치 않았다. 결국 '돌아가는 삼각지'는 아세아레코드의 무명 가수 김호성이 처음 녹음했지만 음반으로는 제작되지 못했다.
자존심이 상한 작곡가 배상태는 서울 을지로 천지카바레에서 신나게 드럼을 치며 노래하던 배호를 떠올렸다. 그는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서울 청량리 인근에 있던 배호의 허름한 전셋집을 찾아가 그에게 '돌아가는 삼각지'의 악보를 건넸다.
당시 신장염에 걸려 거동조차 힘들었던 배호는 처음에 노래 취입을 사양했다. 하지만 쓸쓸한 노래가 자신의 처지를 말하는 것 같다고 느낀 뒤 마음을 바꿔 가래를 뱉어가며 병상에서 취입을 강행했다. 음반에 수록한 오리지널 버전 '돌아가는 삼각지'는 박자가 일부 끊기고 목소리 역시 병색이 완연하다. 그 때문에 노래가 처음 발표되자 대중은 ‘병자의 노래’, ‘깡패소리 같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후 건강을 회복한 배호는 '돌아가는 삼각지'를 다시 녹음해 발표했다. 그 바람에 이 앨범은 같은 해에 나온 초반과 재반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음반 번호는 AL123으로 같지만, 재킷 이미지와 수록곡은 다소 차이가 있다.
초반에서 배호의 사진은 흑백으로 장식됐지만, 재반에서는 배호가 중절모를 근사하게 쓴 컬러 사진으로 바뀌었다. 초반에는 배호의 노래로 '비겁한 맹서'와 '돌아가는 삼각지' 2곡을 실었지만, 재반에는 '인생나루' 등 3곡을 수록했다. 대신 1면에 있던 최유진의 '옛날의 영자가 아니에요', 백야성의 '마도로스 연정' 2곡은 빠졌다.
배호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다시 취입한 이 노래는 4개월 후 KBS 대구방송 가요 차트 8위를 시작으로 전국적인 반응을 얻기 시작했다. 이후 '돌아가는 삼각지'는 장장 5개월간 정상을 석권하는 놀라운 상업적 성과를 올렸다.
'돌아가는 삼각지'가 대히트하면서 그는 곧 1960년대 최고의 인기 가수로 자리잡았다. 그 이후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누가 울어'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10대 가수로 선정되었다.
1980년대 중반을 전후하여 대중들은 ‘우리 것’을 촌스럽게 생각했다. 그래서 당대 젊은 가수들은 노래 제목에 전국 각지의 지명을 넣는 것을 피하고 싶어 했다. 반면 트로트 장르는 평범한 서민들의 애환을 대변하며 적극적으로 각 지방의 지명을 주요 소재로 다뤄왔다.
여성 트로트 가수의 상징인 이미자나 하춘화의 노래에 전국 각지의 지명이 무수하게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구체적인 서울의 지명이 자주 등장하는 배호의 노래도 예외는 아니다. 배호의 대표곡에는 삼각지, 장충단 공원, 명동거리 등 서울의 지명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60년대의 젊은 대중은 배호의 트로트 노래를 촌스럽기보다는 세련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형식은 트로트였지만, 세련된 무대 매너와 폭발적인 재즈풍의 창법은 국내의 흔한 지명조차 세계적인 어느 도시의 지명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마력을 발휘했다. 배호의 허스키 보컬은 당대 여성들의 애간장을 녹였고 사내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으며 그를 남성 트로트 가수의 상징으로 각인시켰다.
1967년 아세아레코드에서 발매한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을 최초로 수록한 컴필레이션 음반 <안개낀 장충단공원 / 신사임당>은 커버를 장식한 배호를 비롯해 박가연, 김복자, 신행일, 아리랑시스터즈, 황인자 등 6명의 가수가 노래한 총 12곡을 수록했다.
타이틀곡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은 몇 달 앞서 발표한 '돌아가는 삼각지'와 함께 큰 인기를 얻은 배호의 출세작이다. 앨범에 수록한 배호의 노래는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을 비롯해 '기타에 노래싣고', '사랑찾아 천리길', '영월의 애가' 등 총 4곡이다.
금테 안경에 특유의 허스키 음색이 매력적이었던 배호는 ‘안개’를 떠올릴 때 빼놓을 수 없는 가수이다. 그의 대표곡 중 하나인 이 앨범의 타이틀곡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은 듣는 이들이 안개 자욱한 고요한 공원을 연상하게 하는 슬로우 템포가 특징이다. 이 곡은 너무나 젊은 나이에 요절한 가수에 대한 안타까움까지 더해져 듣는 이를 뭉클하게 한다. 당대의 인기 가수 최희준은 배호에 대해 “타고난 가창력은 두려울 정도였다. 그가 죽지 않았더라면 남진과 나훈아의 라이벌 시대도 열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술회했다.
1967년은 정국이 혼탁했던 해다. 특히 6.3 부정총선은 정국을 혼탁하게 했고 한일호 침몰사건과 치솟는 물가는 사회를 어수선한 분위기로 몰고 갔다.
이에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은 그해에 데뷔한 정훈희의 '안개'와 더불어 ‘안개 가요 열풍’을 몰고 왔다. 대중가요에는 안개를 소재로 발표해 히트한 노래가 많다. 현미도 1962년 번안곡 '밤안개'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현미의 '밤안개'는 배호의 노래와 장르가 다르지만 듣는 이를 매료시키는 명곡이란 점은 같다. 이미배가 허스키 음색으로 부른 '당신은 안개였나요'도 안개를 소재로 한 히트곡이다. 안개를 노래한 가수들은 공통적으로 당대에 빼어난 가창력을 인정받은 경우가 많았다. 이는 듣는 이의 가슴을 적시는 풍성한 음색 없이 안개를 노래하기가 힘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960년대 중후반 배호의 주요 히트곡은 모두 트로트였지만, 애초 스탠다드 팝 스타일의 노래로 출발했던 가수인 만큼 배호의 창법은 정통 트로트와 달랐다. 그는 트로트의 간드러진 꺾기 창법 대신 묵직한 저음을 기반으로 절제된 바이브레이션을 구사했다.
1968년 아세아레코드에서 발매한 영화 <금수강산> OST 음반에서 배호는 '뉘우친 마음', '적도' 등 2곡을 수록했다. 1968년 국도극장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흥행에는 실패했는데, OST 음반은 한국 영화사상 최고의 여배우로 평가받는 윤정희가 직접 부른 영화 주제가를 수록한 진귀한 앨범이다.
1969년 아세아레코드는 최고의 인기 가수 배호의 베스트 음반 <배호 힛트앨범>를 제작했다. 1967년에 발표되어 동반 히트한 '돌아가는 삼각지'와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을 포함해 그때까지 발표된 배호의 히트곡들을 다시 스테레오로 녹음한 음반이다.
음반을 다시 녹음한 것은 첫 녹음을 배호의 건강이 나쁠 무렵 병상에서 한 탓으로 보인다. 그 때문에 '돌아가는 삼각지'와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은 초반과 재반이 각각 있다. 실제로 이 앨범의 초반 앨범 커버에 등장한 배호는 신장염 탓에 몸이 퉁퉁 부은 상태였다. 반면 1969년 제작한 베스트 앨범 커버에 담긴 배호의 모습은 날렵하기 그지없다.
정규 음반은 아니지만 당시까지의 히트곡을 망라한 이 베스트 음반은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건강을 회복한 배호의 전성기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인기가 높다. 또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스테레오 방식으로 녹음해 음원의 질을 높인 점도 의미가 있다.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이 크게 히트하자 이 곡은 1971년 남한 감독이 연출한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배호의 사후 조직된 배호가요제위원회는 1993년 제1회 배호가요제를 서울 장충단공원에서 개최했다.
1971년 앨범 <0시의 이별>은 배호가 세상을 떠나기 전인 7월 29일 발매했다. 총 10곡의 전곡을 작곡가 배상태의 곡으로 채운, 배호와 여가수 이주영이 함께 한 스플릿 앨범이다. 배호의 사진으로 커버를 장식한 이 앨범 타이틀곡은 앞면 첫 트랙을 장식한 '0시의 이별'이다.
두 번째 트랙인 '마지막 잎새'와 마지막 트랙 '울기는 왜울어'까지 배호의 노래는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해 더욱 화제가 되었다. 배호의 데뷔곡이 '굳바이'란 사실도 그의 사후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졌다. 음악 활동 시작부터 마치 짧은 이별을 예고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음반 뒷면을 장식한 이주영은 이미자를 연상시키는 음색의 트로트 여가수였다.
“가수의 운명은 자신의 히트곡을 따른다”는 속설이 있다. 대중들이 ‘요절’이라는 개인사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유작인 '0시의 이별'과 '마지막 잎새'는 인기가수의 운명에 비극성을 더하는 요인이 되었다.
'0시의 이별'은 발매 이후 금지의 아픔까지 겪었는데 통행금지가 있던 당시 “자정인 0시부터 통행금지 시간인데 0시에 이별하면 어떡하느냐”는 것이 금지 이유였다. 황당한 금지 사유와는 상관없이 배호의 절절한 목소리는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야 하는 아쉬움이 배어나와 듣는 이의 가슴을 시리게 한다.
'마지막 잎새'와 '향수'는 작사가 정귀문(음반에는 정문으로 표기됨)의 작품이다. 그는 고향인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에 있는 현곡초등학교 교정에서 늠름한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에 달린 잎사귀가 힘없이 떨어지는 광경을 보면서 노랫말을 떠올리고 낙엽에 '마지막 잎새'의 가사를 적었다. 당시 전근을 떠나는 교장 선생의 딸을 좋아했던 그는 더는 그녀를 볼 수 없으리라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가 배호의 유작을 작사한 셈이다. 조미미의 히트곡 '바다가 육지라면'도 그의 작품이다. 2003년 작사가 정귀문의 고향인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남사저수지 앞에, 배호의 유작 '마지막 잎새'의 노래비가 들어섰다.
1971년 경기도 문산의 한 공연에서 쓰러진 배호는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감지했다. 1971년 10월 20일 출연한 MBC의 인기 심야 음악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가 그의 마지막 방송이었다. 방송 후 귀가길에 비를 맞아 그는 감기 몸살에 걸렸다. 서울 종로의 신한의원에 입원했지만 병세가 심상치 않았다. 신촌 연세의대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겼지만 11월 7일 저녁 8시에 회복 불가능 통고를 받았다. 배호는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미아리 고개를 오르던 앰뷸런스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다음날 11월 8일 오후 2시 KBS 라디오 <오후의 로타리>에서 그의 사망 소식이 처음 알려졌다. 정규 뉴스 시간에 아나운서의 첫 멘트가 아닌 배호의 노래가 흘러나오자 처음에 청취자들은 방송사고로 여겼다.
배호의 장례는 11월 11일 예총광장에서 가수협회장으로 거행됐다. 동료 가수 리타김의 울먹이는 조사 속에 진행된 장례에는 남진, 이미자, 정훈희, 박춘석, 이봉조, 배삼용, 송해, 엄앵란, 최무룡 등 많은 연예인이 참석했다. 조문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 장례식 날, 전국은 애도의 물결로 흐느꼈다. 경기도 양주군 장흥의 신세계 공원묘지로 향하는 운구 행렬에는 소복을 입은 많은 여성 팬들이 뒤따랐다.
세브란스 병원 침상에 누워있을 때 배호는 그의 어머니에게 쓸쓸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말했다고 한다. "어머니. 내 노래는 이상한 징크스가 있어요. 건강할 때는 항상 히트가 되지 않고 병상에서 신음하면서 취입할 때 히트가 되거든요."
그의 말처럼 '돌아가는 삼각지'가 그랬고 '안개낀 장충단공원'이 그랬고 '비내리는 명동'이 그랬다. 배호의 어머니는 "병마에 시달려 초췌하게 야위어갈 때 부른 노래들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줄 수 있었던 겄은 아마도 현실속에서 삶과 죽음의 사이를 끊임없이 방황하던 비운의 모습을 노래속에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고 얘기했다.
배호의 유가족들도 평탄치 못한 삶을 살아야 했다. 배호가 가수 활동 등을 통해 구입한 주택과 여러 재산이 있었지만, 그의 어머니가 이웃사람을 위해 보증을 서주었다가 그만 부도가 나는 바람에 집이 압류되었고 정신질환자였던 여동생과 심장병으로 투병 생활을 하던 어머니가 수입 없이 지출만 있다 보니 더 가난 속에 시달려야 했다.
배호는 불꽃처럼 살다 갔다. 애수에 젖은 저음의 바이브레이션 창법, 절규에 가까운 진한 호소력을 담은 그의 애절한 노래는 말그대로 여성 팬의 ‘애간장’을 녹였다. 남성 트로트의 대명사로 불리는 그의 노래들은 지금도 중년 남성들의 애창곡으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1981년 MBC에서 특집으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수' 1위에 선정되었고 2005년엔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은 국민가수 10인'으로 선정되기도 하는 등 요절한 후에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2003년 10월 20일에 대한민국 가요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옥관 문화훈장이 추서되었으며 2003년부터 배호 가요제가 열리고 있다. 2005년 5월 20일에는 소담출판사에서 <배호평전>(김선영 지음)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삼각지의 한 거리가 배호 길로 명명되었다.
불과 8년간 활동 후 세상을 떠난 요절가수이지만, 아직도 많은 팬들이 그를 그리워한다. 배호는 대중음악사상 가장 많은 노래비를 보유한 가수이다. 경기도 양주 장흥의 묘소에 '두메산골'이, 서울 용산 삼각지에 '돌아가는 삼각지'가, 강원도 강릉 주문진에는 '파도'가, 경상북도 경주 현곡에는 유작 '마지막 잎새' 등 무려 4개의 노래비가 건립되었다.
배호는 7년여의 짧은 활동 기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20여 장의 음반과 약 200여 곡(리바이벌곡 등을 합하면 300여 곡)을 발표했고 그 중 50여 곡을 히트시켰다. 굵직한 저음, 부드러운 중음, 호소력 있는 고음 등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그의 목소리와 가창력은 반세기가 지나면서 다시 트로트 열풍이 불며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배호는 MBC TV 특집 여론 조사 가수 기여도 부분에서 1위로 선정되었고, 최초 가요 60년사 여론 조사에서 좋아하는 가수 1위로 선정되었으며, 조선일보의 건국 이후 음악 전문가 여론 조사에서 가수 50명 중 6위를 차지하였다.
1963년 <김광빈 작곡집>
1964년 <두메산골>
1966년 <황금의 눈 / 태백산맥>
<누가 울어 / 검은 나비>
1967년 <돌아가는 삼각지>
<목마른 장미>
<안개낀 장충단 공원 / 신사임당>
1968년 <결혼각서>
<물방아 고향 / 빗속의 연가>
<금수강산> OST
1969년 <배호 힛트앨범>
1971년 <마지막 잎새 / 영시의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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