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인조 밴드 트리퍼스는 차영수가 이끄는 파이오니어스, 윤항기의 키브라더스와 함께 1970년대 초․중반 국내 브라스 록을 대표했다. 1966년 결성된 이들은 월남 위문 공연을 마치고 귀국 후 멤버를 재정비해 서울 소공동의 라스베이거스 살롱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트리퍼스는 당시 클럽가에서 인기가 좋았는데 특히 김훈의 인기가 엄청났다. 호남, 쾌남 스타일의 외모와 훤칠한 키, 거기에 더해 상남자 이미지가 더해져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좋아했다.
트리퍼스의 정식 데뷔 음반 <Trippers Go Go〉은 1971년 발표됐으며, 앨범 수록곡 '옛님'(작사 지웅, 작곡 김희갑)의 히트로 고고클럽의 간판급 밴드가 된다.
앨범의 A면은 창작곡, B면은 커버곡으로 구성된 이 음반은 김희갑 작편곡집이다. 즉 A면의 창작곡은 자작곡이 아닌 김희갑의 곡들이며(작사는 지웅), B면의 커버곡들 역시 김희갑이 편곡한 것이다. 창작곡들은 처음 정규 음반을 발표하는 그룹 사운드가 직업적 작곡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정황을 보여주며, 커버곡들은 독특한 선곡이나 연주라기보다는 번안 없이 오리지널 그대로 부르는 단계를 보여준다. 이 음반이 데뷔작이란 점을 감안하면 그게 그리 큰 흠은 아닐 것이다.
B면 커버곡들이 이 시기 트리퍼스가 브라스 록이 아니라 보컬 하모니를 잘 구사하는 그룹 사운드였음을 알려준다면, A면의 김희갑 곡들은 이를 더 극명하게 보여준다. 현악 세션으로 시작하는 첫곡 '옛님'은 잔잔하게 깔리는 어쿠스틱 기타와 오르간 위로 서정적인 멜로디 라인과 중창의 백킹 코러스가 인상적이다. 이어지는 '그 언제일까'는 분위기를 바꿔 다소 거친 기타 연주가 곡을 리드하는 그룹 사운드 본연의 업 템포 넘버인데, 이런 곡에서도 역시 맛깔스러운 보컬 코러스가 돋보인다. '메아리'는 앞의 두 곡의 특징을 잘 혼합한 곡으로 아기자기한 구성과 보컬 하모니를 극대화한 점이 돋보인다. '얄미운 사람'은 신중현 식 소울·싸이키델릭 가요를 떠올리게 하는 곡이다.
트리퍼스는 1973년 멤버 간 충돌로 인해 김훈과 트리퍼스, 신시봉과 트리퍼스, 김선민과 자이언트로 분열됐다.
그룹 이름은 10월 유신으로 인해 1975년께 한글 팀명인 나그네들로 바뀌었다.
김훈은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Rock Group의 리더로서 촉망 받는 싱어 송 라이터였다. 당시는 미국의 '시카고(Chicago)'와 같은 Brass Rock이 인기 몰이를 하던 시기였는데, 그는 8인조 밴드를 이끌고 트로트와 Brass Rock을 조합한 음악 세계를 구현했다.
그러나, 이들이 구사한 Brass Rock 과 트로트의 만남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니다. 1975년 대마초 파동이 닥치면서 그룹 사운드의 활동은 급격히 위축되고, 그 자리를 정갈한 포크 음악과 트로트가 대신하게 되고 그룹 사운드 음악은 불온한 것으로 간주되고 탄압 받게 되었다.
본래부터 트로트에 절반 쯤, 발을 담그고 있던 김훈은 완전히 트로트로 전향(轉向)하는데, 1975년에 나온 2집이 대표적이다. 1975년 발표된 2집 <나를 두고 아리랑/사랑의 추억>은 총 10곡이 수록된 앨범으로 김훈과 트리퍼스의 음반이다. 히파이브가 히트시켰던 노골적인 트로트 곡 '정주고 내가 우네'가 실렸지만, 음반의 전반적 분위기는 밴드가 추구하던 시원한 브라스 록 사운드를 담고 있다.
트리퍼스를 일약 스타의 위치로 끌어올린 대표적 히트곡은 '나를 두고 아리랑' 이다. 이 곡은 Brass 사운드가 주도 하는 가운데, 트로트 창법과 비슷하면서도 텁텁한 매력이 있는 그의 목소리가 호소력을 발하는 노래였다.
셔플 리듬의 호쾌한 진행을 선보이는 '세월만 가네'는 밴드의 지향점을 그대로 드러낸 수작이다. '몰라주네'는 남성 듀오 어니언스, 김인순 등 주로 포크 가수들의 음반 편곡자로 참여했던 안건마가 작곡했다. 어니언스나 현혜미의 음반에 수록된 버전과 달리 이 음반에 수록된 버전은 안건마의 기본 편곡 틀에서 벗어나 깔끔하고 정갈한 밴드 사운드를 들려준다. 한편 김훈과 트리퍼스는 선우성이 1975년에 발표한 <선우성의 모든 것>에서도 네 곡의 연주에 참여했다.
초기 트리퍼스의 히트곡인 '옛님', '메아리'는 새로운 편곡으로, '그 언제 일까'는 오리지널 버전 그대로 실려 초창기 하모니 보컬 위주의 사운드에서 김훈의 리드 보컬 체제로 변화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브라스 록과 세미트로트가 결합된 '나를 두고 아리랑'은 1976년 <월간 팝송>이 주최한 팝스 그랑프리에서 작곡가 김중신에게 작곡상을 안겼다. 이곡은 김상희의 '즐거운 아리랑', 하춘화의 '대관령 아리랑'과 함께 히트하였다. 김훈은 1976년 MBC 10대 가수에 올랐으며 이듬해에도 10대가수에 올랐다. 하지만 이는 밴드 트리퍼스가 아닌 보컬리스트 김훈의 성공이었다. 이는 리드 보컬의 솔로 독립과 밴드 해산으로 이어졌다. 멤버들이 장발로 등장한 초반 재킷과 더불어 짧은 머리를 한 재반, 솔로 독립 후 김훈의 얼굴로 장식한 여러 버전이 존재하지만 음반 수록곡은 같다.
당시 김훈의 높은 인기로 인해 김훈이 주연인 영화 '의혈문'도 개봉 되었다.
솔로 가수로 독립한 김훈은 '그리운 내 고향', '모래탑'등 히트곡을 발표하지만, 1979년 지상파 방송에서 장발을 이유로 출연이 정지되자 가요계를 떠났다. 가업이었던 버스 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1980년 15개월 만에 트리퍼스 멤버인 기타리스트 이경천이 작곡한 '바람'으로 재기했다.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그룹 멤버들 중에는 김훈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의 유명 가수가 두 사람 있다. 1970년대 ‘옛님’과 ‘나를 두고 아리랑’을 히트시킨 김훈과 트리퍼스의 김훈과 1980년대 ‘오라리오’로 인기를 누렸던 훈이와 슈퍼스타의 김훈이 바로 그들이다.
두 사람 모두 전성기 직후 가수 활동을 그만두고 해외로 떠났다. 김훈과 트리퍼스의 김훈은 1980년대 초반 미국으로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훈이와 슈퍼스타의 김훈은 1980년대 말 독일로 떠났다가 몇 년 후 귀국했으나 배드민턴 전문채널 K SPORTS TV를 운영하는 등 사업을 벌이다가 2018년에야 가요계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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