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부
주다스 프리스트는 1969년에 결성되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영국의 헤비 메탈 밴드이다.
METAL GOD, 즉, 메탈의 신이라 불리며, 이것은 자타공인의 주다스 프리스트의 수식어이다. 이 수식어가 주다스가 메탈 역사에 얼마나 큰 족적을 남겼는지, 그리고 지금도 남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198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메탈 무브먼트, NWOBHM(New Wave Of British Heavy Metal)시대의 최고의 헤비메탈 그룹 가운데 하나이며 메탈 룩의 시초로 알려져있다.
블랙 사바스와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헤비메탈을 발전시킨 주다스 프리스트는 송곳 같은 트윈 리드기타와 메탈스러운 보컬로 상징된다.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먼저 보컬에 매료되지만 꾸준히 애청자로 남게 만드는 것은 바로 트윈 리드기타이다. 트윈 리드기타는 이전부터 있었으나 이를 헤비메탈식으로 발전시킨 밴드가 바로 이들이다. 단순히 리드가 2명인 것과 더불어 한 파트의 솔로를 쪼개서 두 리드기타가 텐션을 유지하며 긴박하게 주고받는 식으로 연주하는 특징도 있다. 이러한 특징은 이후 유러피안 파워 메탈이라는 장르의 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밴드의 결성은 1969년 몰락의 기운이 완연한 철강도시 버밍엄으로 넘어가면서 시작된다. 같은 버밍엄 출신인 블랙 사바스와 비교했을 때 비슷한 평균연령에도 불구하고, 주다스가 전성기를 너무 늦게 맞이하였다. 그래서 70년대 후반부터 시작해갖고 80년대에 유명세를 탄 밴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데, 실제로는 60년대 말에 활동을 시작한 노땅 중의 노땅 밴드다.

절친한 친구이던 웨스트 브롬위치에서 자란 이언 힐과 케네스 다우닝은 서로 의기투합하여 '프레이트'라는 밴드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안이 베이스, 케네스가 기타를 담당하고 드러머 존 엘리스를 영입. 이후 보컬을 구하던 도중, 당시 버밍엄에서 '주다스 프리스트'라는 밴드를 이끌다 프레이트로의 이적을 원하던 앨런 앳킨스(통칭 알 앳킨스)를 섭외하게 된다.
프레이트에 가입하게 된 앨런은 우리 밴드의 이름을 내가 재적하던 밴드의 이름인 '주다스 프리스트'로 바꿔보는건 어때? 난 그 이름이 정말 마음에 드는데. 라고 권유하게 되었는데 알란이 지은 이름은 아니라고 한다, 앨런의 권유를 받아들인 두 친구와 존 엘리스는 이때부터 밴드의 이름을 주다스 프리스트로 결정한다. 밴드 이름은 밥 딜런의 노래 'The Ballad of Frankie Lee and Judas Priest' 에서 따왔다고한다. 버밍엄과 주변 지역에서 활동을 개시하던 주다스 프리스트는 데이브 홀랜드 가입 이전까지 쭉 애로사항으로 자리잡는 드럼 세션의 고질적 문제를 겪으며 드러머를 존 엘리스 앨런 무어, 크리스 캠벨, 그리고 존 힌치로까지 교체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동안 정규 앨범은 내지 못했지만 조금씩 인지도를 얻으며 트래피즈와 씬 리지의 오프닝 밴드를 서면서 점점 이름을 알려나간다.
그러나 1973년, 그들의 노력만큼 들어오지 않는 수익과 정상 가도를 달리던 블랙 사바스의 토니 아이오미의 회사 IMA의 매니지먼트 문제로 인해 결국 보컬 알 앳킨스와 당시 재적중이던 드러머 앨런 무어가 밴드를 떠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 이 시절을 핼포드가 언급하길 '투어가 끝난 후 벤에서 자고 무료 식권을 얻어 식사를 하던 거지꼴이나 다름없던 시절 '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밴드는 어려웠다. 당시 처참하게 몰락하던 영국의 경제 상황을 보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이야기이다.
졸지에 다시 보컬과 드럼을 구하는 것부터 시작하게 된 밴드는 당시 이안 힐과 교제중이던 수 핼포드의 추천으로 그녀의 오빠인 롭 핼포드를 보컬로 영입하게 된다. 이에 롭은 자신과 함께 이전에 '히로시마' 라는 밴드에서 드럼을 치던 존 힌치를 데려와 함께 주다스 프리스트에 흔쾌히 가입하게 된다. 그리고 4인조의 의기투합 끝에 마침내 첫번째 스튜디오 앨범을 녹음하게 된 1974년, Gull 레이블과 음반 계약을 체결했다. Gull은 밴드의 사운드를 채우기 위해 다섯 번째 멤버를 추가할 것을 제안했고, 두 번째 리드 기타리스트로 Glenn Tipton을 영입했다.
1974년 9월 발매한 첫 앨범인 <Rocka Rolla>는 결성후 5년이나 걸렸다. 블랙 사바스의 프로듀서로 이름을 날렸던 로저 베인이 프로듀싱을 했던 이 음반은 드러머 존 힌치가 참여한 유일한 음반이다. 앨범 녹음 직전에 합류한 글렌 팁톤이 타이틀 곡 'Rocka Rolla'와 'Run of the Mill' 의 작곡에 참여했다. 앨범은 상업적으로 실패했고, 밴드는 음질과 믹싱, 마스터링에 대한 불만을 표명했다. 앨범은 여러 차례 재발매되었으며, 2024년에는 발매 50주년을 기념하여 리믹스 및 리마스터 버전이 발매되었다.
흔히 롭 핼포드, 글렌 팁튼, K.K.다우닝, 이언 힐, 데이브 홀랜드를 전성기 멤버로 친다. 정확히는 데이브 홀랜드는 <Killing Machine> 앨범 발표직후 1979년부터 참가하였으나, 이후 1989년까지 대부분의 전성시대를 함께했기 때문에 그냥 원년멤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시절부터는 확실히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이미 그 전 앨범부터 성공한 밴드의 표본인 일본 단독공연을 성사시켰으며, 각종 차트 상위권에도 이름을 올렸다. 당시에 본격적으로 데뷔한 아이언 메이든과 함께 황금시대를 맞이한 모터헤드, 그리고 로니 제임스 디오의 영입으로 다시 2차 전성기를 맞은 블랙 사바스까지, JD의 전성기이자 그야말로 NWOBHM의 황금시대였다.
1976년 3월 발매한 두번째 앨범 <Sad Wings of Destiny>가 발매되었다. 힌치는 밴드를 떠났고, 앨런 무어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무어는 1975년 10월에 밴드로 복귀했다. 밴드의 재정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멤버들은 하루 한 끼만 먹고, 몇몇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2,000파운드의 예산으로 2집 앨범을 녹음했다. 이들은 정통 록에 프로그레시브적인 요소를 가미한 앨범을 만들 계획이었다. 앨범 커버에는 불꽃에 둘러싸여 악마의 세 갈래 십자가를 쓰고 있는, 땅에 쓰러진 채 고군분투하는 천사가 묘사되어 있으며, 이는 밴드의 상징이 되었다. 이 앨범은 'The Ripper'가 리드 싱글로 선정되었으며 밴드는 1976년 4월부터 6월까지 영국에서 헤드라이너 투어를 진행하며 앨범을 홍보했다. 이 앨범은 처음에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펑크 록의 부상으로 인한 비평적 경쟁 때문에 주목받기 어려웠 지만 롤링 스톤지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후 팬, 비평가, 그리고 밴드는 <Sad Wings of Destiny>를 주다스 프리스트가 자신들의 사운드와 이미지를 확립한 앨범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 앨범은 팁턴과 다우닝이 블랙 컨트리의 공장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한 헤비한 리프와 복잡한 곡 구성을 특징으로 하고있다. 앨범의 메인곡인 'Victim of Changes'는 앳킨스의 'Whiskey Woman'과 핼포드의 'Red Light Woman'을 결합하여 탄생했으며,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 되었다.
<Sad Wings of Destiny>는 CBS Records 의 관심을 끌었고, 새로운 매니저 David Hemmings의 도움으로 밴드는 CBS와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으로 인해 Gull과의 계약을 파기해야 했고, 그 결과 첫 두 앨범과 데모를 포함한 모든 관련 녹음물의 권리가 Gull의 소유가 되었다.
밴드는 초창기 드럼에서 여러 차례의 멤버교체가 있었다. 존 힌치에서 다시 앨런 무어, 그리고 레스 빙크스로 바뀌었다가 데이브 홀랜드가 들어온 것이다. 그 후 1977년 딥 퍼플의 베이시스트 였던 로저 글로버가 프로듀스한 3번째 앨범 <Sin After Sin>에선 드러머계의 거성인 세션 전문 드러머 '사이먼 필립스'가 레코딩에 참여를 해주어 드럼 세션이 풍족해진 느낌을 준다. 허나 사이먼은 당시에 전문 세션 드러머였기 때문에 밴드에는 합류하지 않았다.
1977년 4월 발매된 3집 <Sin After Sin> 앨범은 Deep Purple 의 베이시스트 Roger Glover를 프로듀싱으로 완성되었다. 이앨범은 메이저 레이블 데뷔 앨범으로 미국 음반 산업 협회 (RIAA)로부터 골드 또는 플래티넘 인증을 받은 11개의 연속 앨범 중 첫 번째 앨범이었다. 드러머 앨런 무어는 앨범 녹음 세션 중에 다시 떠났고 세션 드러머 사이먼 필립스로 교체되었다. 이 앨범은 특히 'Dissident Aggressor' 와 같은 트랙에서 더블 킥 드럼 연주를 사용하는 등 헤비메탈 기법에서 상당한 발전을 보여주며, 포크 가수 존 바에즈의 'Diamonds & Rust' 를 팝 메탈로 커버한 곡도 포함되어 있다.
1978년 2월 10일에 발매된 <Stained Class>는 네 번째 음반이다. 이 음반은 드러머인 레스 빙크스가 수록된 세 음반 중 첫 번째 음반이자, 잘 알려진 로고가 수록된 첫 음반이다. 앨범은 미국에서 골드를 기록했다. 이 음반은 어두운 가사와 테마로 악명을 얻었으며, 1990년 이 밴드가 두 명의 십대들의 자살 시도를 이끈 것으로 알려진 백마스킹을 했다는 비난을 받은 민사소송 재판도 있었다. <Stained Class>는 Stereogum.com에서 가장 위대한 주다스 프리스트의 음반으로 선정되었으며, Allmusic.com에서 스티브 휴이에 의해 "주다스 프리스트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묘사되었다.
1978년 11월에 발매된 <Killing Machine>은 다섯 번째 음반으로 미국 발매시에는 <Hell Bent for Leather>로 앨범명이 변경되었다. 이 음반은 밴드를 좀 더 상업적인 스타일로 몰아붙였지만, 여전히 이전 음반의 어두운 서정적인 주제들을 담고 있으며 보다 상업적인 사운드를 추구하여, 블루스적인 영향을 되살린 단순한 곡들이 수록되었다. 수록곡인 'Hell Bent for Leather'가 인기를 얻었으며 국내에서는 발라드곡 'Before the Dawn'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전작에 이어 미국에서 골드레코드를 기록했다.
비슷한 시기에, 밴드 멤버들은 동성애자 가죽 문화에 대한 롭 핼퍼드의 관심에서 영감을 받아 현재 유명한 "레더 앤 스터즈" 패션 이미지를 채택했다. 이 음반은 드러머 레스 빙크스가 참여한 밴드의 마지막 스튜디오 음반이기도 하다.
이 음반의 제목은 1979년 초 미국 발매로 <Hell Bent for Leather>로 불렸다. 클리블랜드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논란으로 인해 컬럼비아/CBS의 미국 지부가 타이틀의 "살인적인 의미"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이 두 타이틀곡들은 초기 플리트우드 맥 커버인 〈The Green Manalishi (With the Two Prong Crown)〉가 미국 발매에 추가된 음반의 곡들에서 따왔다.
Killing Machine 투어이후 발매된 라이브 앨범 <Unleashed in the East> (1979)는 Judas Priest의 수많은 플래티넘 앨범 중 첫 번째 앨범이었다. 라이브 앨범으로 홍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튜디오 보정 및 오버더빙을 사용한 것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밴드의 연주 스타일은 점차 더 헤비해졌으며, 'Exciter', 'Tyrant', 'Diamonds and Rust'와 같은 곡들의 라이브 버전은 스튜디오 버전보다 훨씬 더 헤비하고 빠르게 연주되었다.
1980년 원년 라인업으로 사실상 현재의 주다스 프리스트를 있게 만든 메탈 앨범들의 스탠다드이자 명반인 <British Steel>이 발표되었다. 수록곡들은 이전보다 짧아지고 주류 라디오에서 듣기 좋은 멜로디를 갖췄지만, 기존의 헤비메탈 느낌은 그대로 유지했다. 'United', 'Breaking the Law', 'Living After Midnight' 같은 곡들은 라디오에서 자주 방송되었다.
이때부터 K.K, 팁튼의 트윈기타가 멜로디를 완전히 주도하고 베이스 이언 힐은 철저하게 트윈기타를 받치는 리듬악기로 자리를 잡았다. 이 전에 발매했던 앨범들과 비교해 곡 길이도 짧아지고 더 단순하게 사운드 변화를 시도하여 80년대 헤비메탈의 원형을 완성하였다. 발표 직후 영국 앨범 차트에서 4위까지 수직상승을 하고,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도 30위권까지 도약하며 우선 상업적인 성공을 확실하게 거두었고,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헤비메탈을 완벽하게 정의한 앨범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올뮤직, 롤링 스톤 매거진등을 포함한 매체에서 만장일치 만점을 받으며 주다스 프리스트의 시대를 열었다.
주다스 프리스트에게 상업적 성공을 가져다 준 밴드의 명반 중 하나로 꼽힌다. 이전까지와는 음악적으로 크게 다른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했는데 이미 전작 'Killing Machine'에서 간을 본 미니멀한 스타일을 본격적으로 전면에 내세워 곡들이 매우 직선적이고 단순하게 변했다. 과거의 아트 록의 영향을 받은 화려한 구조와 각종 변주가 들어찬 곡 구성을 완전히 탈피하고 메인 리프 하나에 보편적인 절-후렴 구조, 중독성 있는 후크의 반복으로 앨범 내내 달려주는 식으로 음악성이 변화했다. 그 대신 단번에 뇌리에 각인되는 인상깊은 리프와 훅들을 강조하게 되었고, 이는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해 대표적인 명곡들으는 'Breaking The Law', 그리고 언제나 주다스 프리스트 라이브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Living After Midnight'가 수록되어 있다. 두 곡 모두 영국 싱글차트 톱 40에서 12위까지 도약하며 주다스 프리스트를 영국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없는 밴드로 만들기 시작한다.
음반의 프로듀싱 역시 그 전까지의 앨범들에 비해 매우 강렬하고 파괴적으로 변했다. 이전까지의 주다스 프리스트의 앨범은 70년대의 녹음 수준을 감안해도 하드 록 계열의 밴드라기에는 굉장히 얄팍하고 날카로운 믹싱이었는데 <British Steel>에서는 흔히 80년대 헤비메탈 하면 떠오를 만한 바로 그 느낌으로 녹음되었다. 악기 소리들이 따로따로 분리되어 놀던 이전 음반들과는 달리 각 트랙들이 하나로 합쳐져 무겁고 강력한 튠을 형성하는 프로듀스는 이후 1980년대 하드 록/헤비메탈 녹음의 교본으로 기능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심플하게 변한 음악성에 기존 올드 팬들은 상당수가 불호를 표했지만 그 이상의 신규 팬들을 양성한 <British Steel>은 결과적으로 큰 성공을 기록했다. 이 앨범의 성공으로 밴드는 버밍엄의 컬트 밴드에서 단숨에 NWOBHM의 선두로 거듭났고, 이후로도 성공가도를 달리며 "Metal God"으로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팬들 사이의 평가로는 선호에 따라 <Sad Wings of Destiny> 같은 전기 앨범, 혹은 <Screaming for Vengeance>, <Painkiller> 등의 중후기 앨범을 최고작으로 꼽는 경우가 많지만 당대 메탈 음악사에 끼친 영향력으로는 전부 이 앨범을 따라올 수가 없다. 또한 곡들의 단순성과 중독성으로 주다스 프리스트 입문작으로 자주 추천되는 앨범이기도 하다.
<British Steel> 앨범의 성공 이후로 주다스 프리스트는 1981년 <Point of Entry> 앨범을 발매하며 'Heading Out to the Highway', 'Don't Go' 같은 히트곡들을 다시 발표한다. 충분히 훌륭한 앨범이었지만 <British Steel> 앨범의 임팩트가 너무 컸던 탓인지 다소 묻히는 감이 없잖아있는 앨범이다.
그리고 1982년 7월 주다스는 다시 한번 명반을 발표하는데, 그 유명한 <Screaming for Vengeance> 앨범이다.
빌보드 차트 17위라는 헤비메탈이라는 장르의 접근성을 감안하면 엄청난 순위에 등극하였고, 2014년 현재까지 미국에서만 250만장 이상, 전세계적으로 500만장이 넘게 팔린 주다스 프리스트의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앨범. 평론의 평가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어서 'Electric Eye', 'You've got Another Thing Comin' 같은 명곡들이 이 앨범에서 쏟아져 나왔다. 주다스 프리스트의 위치를 단순히 영국 대표 헤비메탈 밴드가 아닌 세계수준의 헤비메탈 밴드로 올려준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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