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부
슬립낫(Slipknot)은 1995년 미국 아이오와 주에서 결성되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뉴메탈 밴드이다.
슬립낫의 가장 큰 특징은 멤버 전원이 각자 기괴한 디자인의 마스크를 쓰는 활동하는 것인데 이때문에 밴드 특유의 분위기와 외형 및 캐릭터 구축이 탄탄하게 자리잡았고, 여기에 뛰어난 음악성이 맞물려 아이오와 주 출신, 혹은 헤비 메탈 밴드 중에서도 손꼽히게 성공한 밴드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마스크를 쓰게 된 것은 밴드 내부에서 호불호가 많이 갈렸던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가면이야말로 슬립낫의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괴기스럽고 사나운 비주얼 덕분에 미디어나 인터넷 커뮤니티, 매체 등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밴드로도 잘 알려져 있다. 가면의 디자인은 매 앨범마다 조금씩 바뀌며, 멤버마다 상이하지만 크레이그 존스나 믹 톰슨처럼 디자인이 거의 달라지지 않은 채 일변도로만 가는 멤버도 있고, 코리 테일러나 시드 윌슨처럼 디자인의 기초나 컨셉만 지니고 매 앨범마다 바꾸는 멤버도 있다.
멤버의 수가 9명으로 다른 그룹들에 비해 많은데, 이건 그들의 음악적 시도가 매우 폭넓기 때문으로 기본적으로는 헤비메탈과 록에 그 뿌리를 두지만, 모던 헤비니스나 얼터너티브 메탈, 메탈코어, 스래쉬 메탈과 데스 메탈, 얼터너티브 록, 뉴메탈,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힙합과 발라드의 요소도 받아들이는 등 실험적이고 특색있는 시도가 많다. 그러다보니 멤버 간의 역할이 다양한 편으로, 리듬 기타와 리드 기타의 구분은 물론, 턴테이블 DJ와 그를 보조해주는 샘플링 및 키보드, 커스텀 퍼커션 인원만 각각 둘씩이다. 원래는 이런 다양한 멤버마다 0부터 8까지 고유번호를 갖고 있었고, 이 번호가 찍힌 점프수트를 입고 등장하기도 했었다. 오리지널 멤버들의 각자 번호는 멤버별 오른팔을 보면 볼 수 있다. 조이 조디슨이라면 1, 코리 테일러라면 8. 하지만 5집 시점부터 새 멤버들은 모두 번호를 배정받지 않았기에 팔에 번호가 없다.
이렇게 멤버가 많다보니 초기였던 1999년~2013년까지 가는 공연마다 정말 난장판이 따로없는 퍼포먼스로 매우 유명하다. 이들의 데뷔 당시 1999년~2000년, 2002년은 보통 팬들이 생각하면 떠올리는 슬립낫 최대 전성기였어서 특히 더 모든 맴버들이 활발하게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각 곡을 연주하면서 잘 가나 싶지만 갑자기 자신이 연주하던 퍼커션 장비들에 박치기를 날리는 리더 숀 크레이언, 본인의 연주 파트가 아니라면 무대 아래 관객들에게 텀블링을 하고 저질 몸개그와 막춤을 추는 시드 윌슨, 자신의 마스크의 코로 참 보기 좋지 않은 행위를 보이는 크리스 펜, 키다리 아저씨를 연상시키는 긴 다리로 점프를 하며 기타를 치는 짐 루트, 반쯤 쭈그려 앉아 기타를 치면서 헤드뱅잉을 하는 믹 톰슨, 그리고 일단 보컬이자 프론트맨으로서 입만 열면 욕을 남발하는 코리 테일러까지. 드러머와 샘플러(크레이그 존스 포함)만 빼면 사실상 전원이 저런다고 봐도 틀린 말 아니다.
2000년대 초 등장한 모던 헤비니스 음악 세력의 첨병으로, 메탈리카나 메가데스, 슬레이어와 같은 구세대 스래쉬 메탈이라 정의하지 않으나, 그들의 격렬성을 받아들인 또 다른 장르를 주로 연주한다. 그들은 고전적인 '메탈' 스타일까지 받아들이지는 않고 오로지 '에너지 분출 표현의 수단'으로만 받아들이며, 그 대신 난해한 가사를 읊조리거나 중얼거리고, 토해내는 등 다양한 보컬 창법에 더해 세련된 기타리프와 후렴구로 에너지와 선동성이 넘치는 '메탈' 계통의 페스티벌 음악을 만들어냈다. 이는 비평과 대중성 두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전세계에서 총 4,000만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였으며, 2개의 앨범을 빌보드 2위에, 3개의 앨범을 빌보드 1위에 올리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샘플링과 백 보컬링, 비트의 능력도 모두 탁월하며 보통 밴드나 음악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 포지션이나 악기들, 혹은 본인들 작업에 따라 필요하면 성가대까지 동원하는 등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능력도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납량영화와 같은 괴기한 분위기를 연출해내는 2명의 퍼커셔니스트와 DJ, 샘플링과 미디어와 키보드를 담당하는 등의 여러가지 기술을 맡는 샘플러는 그로울링 등 브루털 창법이나, 히스테릭하게 중얼거리는 보컬과도 좋은 시너지를 발휘한다.

1995년 아이오와 주 디모인에서 현 퍼커셔니스트인 숀 크레이언은 드러머, 폴 그레이는 베이시스트, 앤더스 콜세프니는 보컬, 도니 스틸과 쿤 농은 기타리스트로서 'The Pale Ones' 이라는 이름으로 밴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훗날 세계적인 밴드로 성장하게 되는 밴드 슬립낫으로서의 첫 발딛음이었다.
숀 크레이언은 커스텀 퍼커션을 추가로 넣은 밴드를 결성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밴드가 결성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럼 세트를 테스트하기 위해 폴 그레이가 조이 조디슨을 리허설에 초대하게 된다. 조이는 리허설을 본 직후 바로 드러머로 밴드에 합류했고, 숀 크레이언은 커스텀 퍼커션으로 포지션을 변경한다. 앤더스 콜세프니도 보컬과 커스텀 퍼커션을 함께 담당하게 되었다.
밴드 초기에는 대체로 조이, 폴, 숀이 조이가 밤에 일하던 Sinclair 주유소에서 계획한 세션에 의해 개발이 이루어졌다. 쿤 농이 탈퇴하여 세컨드 기타리스트가 필요했던 밴드는 조이 조디슨과 Modifidious라는 밴드에서 함께 활동했던 조쉬 브레이너드를 영입했고, 1995년 11월 5일 디모인에서 열린 자선 콘서트에서 Meld 라는 이름의 밴드로 라이브 데뷔를 하게 되며 폴 그레이, 숀 크레이언, 앤더스 콜세프니, 도니 스틸, 조이 조디슨, 조쉬 브레이너드 6명의 라인업으로 밴드 활동이 시작된다.
1995년 후반, 이들은 'Slipknot'이라는 곡을 쓰게 되었는데 조이가 밴드 이름을 이 곡 이름인 '슬립낫' 으로 바꾸자고 제안했고, 밴드 이름은 슬립낫으로 바뀌게 된다. 또한 이때부터 숀이 광대 마스크를 착용하고 공연에 섰으며, 다른 멤버들도 숀을 따라 마스크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1995년 12월, 슬립낫은 아이오와 주에 있는 SR Audio라는 스튜디오에서 레코딩 작업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작업 후반인 1996년 2월 기타리스트 도니가 개인적인 신념 문제 때문에 밴드를 탈퇴해버리고 만다. 조이 조디슨은 탈퇴한 도니의 자리를 메꾸기 위해 Modifidious에서 함께 활동했던 크레이그 존스를 기타리스트로 영입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스튜디오에서 보내는 시간 만큼 양질의 레코딩을 해내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다. 후에 크레이그가 샘플링으로 자리를 옮겨 기타리스트 자리는 다시 폴과 함께 Body Pit이란 밴드에서 활동하던 믹 톰슨을 영입해 메꾸었다.
결국 1996년 10월 31일 할로윈데이에 슬립낫의 첫 자작 앨범이자 데모 테이프인 〈Mate. Feed. Kill. Repeat.〉를 1000장 한정으로 제작한다. 이 당시 슬립낫의 음악은 메탈뿐만 아니라 몇몇 트랙에서 재즈, 디스코 장르 등이 섞인 카오틱 성향을 띠기도 했다.
이 앨범은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 간간히 틀어줬지만, 레코드 레이블에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슬립낫은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가 새로운 곡을 작곡하기 시작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공연 도중 관객으로 있던 시드 윌슨도 즉석으로 캐스팅한다. 계약을 따내기 위해선 좀 더 멜로딕한 보컬리스트가 필요하단 생각에 아이오와에서 나름 유명한 밴드였던 스톤 사워의 보컬리스트 코리 테일러를 영입하려고 했다.

슬립낫 멤버들은 코리가 일하던 성인용품점에 찾아가 코리를 설득했다. 코리는 스톤 사워와는 다른 음악성을 중요시하는 모습에 매력을 느껴 슬립낫에 가입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원조 보컬이였던 앤더스 콜세프니는 퍼커션 및 백보컬링으로 포지션을 바꾸다 결국 1997년 9월 밴드를 탈퇴하게 된다. 이후 퍼커션 멤버로 그렉 웰츠가 가입한다. 이 당시 멤버들은 번호를 배정받게 된다.
0 시드 윌슨
1 조이 조디슨
2 폴 그레이
3 그렉 웰츠
4 조쉬 브레이너드
5 크레이그 존스
6 숀 크레이언
7 믹 톰슨
8 코리 테일러
멤버들이 직접 번호를 골랐다. 0번인 시드 윌슨은 자신이 오물같은 존재라 생각했기에 자연수가 아닌 0을 선택했고, 조이 조디슨은 드럼이 첫 번째로 녹음되기 때문에 1번, 베이스인 폴 그레이는 그 뒤를 잇는 2번, 숀 크레이언은 666이 연상되는 6번, 믹 톰슨은 행운의 숫자인 7번, 코리 테일러는 무한대를 뜻하는 ∞와 8번이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코리 테일러를 영입한 이후 슬립낫은 레코드 레이블에서 많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98년 2월 프로듀서 로스 로빈슨의 눈에 띄어 데뷔 앨범을 제작해주겠다며 준 메이저 레이블인 로드러너로 발탁되며, 7월 8일에 공식적으로 계약하게 된다.
1999년 1집 작업을 마무리하고있던 와중에, 갑자기 기타 담당이였던 조쉬 브레이너드가 탈퇴해버린다. 그러자 보컬 코리 테일러는 스톤 사워에서부터 함께했던 기타리스트 짐 루트를 추천하게 되며, 슬립낫의 전성기 라인업이 만들어진다.
3 크리스 펜
4 짐 루트
그렇게 1999년 6월에 발매된 데뷔 앨범이자 셀프 타이틀 앨범 <Slipknot〉은 단순하고 광폭한 메탈 사운드임에도 불구하고 기록적인 세일즈를 수립하였고, 미국뿐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콘, 데프톤즈, 림프 비즈킷, 린킨 파크, 파파 로치, 마릴린 맨슨과 견줄 만한 빅 밴드로서 성장했다.
이 앨범은 슬립낫을 뉴 메탈의 새로운 거두로 앉혀준 씬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명실상부 슬립낫 역사상 최대의 명반이자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데뷔 앨범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오프닝의 음산한 분위기를 시작해 '(Sic)'으로 순식간에 분위기를 휘몰아쳐 쉴 틈 없이 달리는 게 특징이다. 라이브 앨범인 <(Sic)nesses>에서도 1집 앨범의 트랙을 다량 찾아볼 수 있다. 괴기스러움, 분노, 쉴 새 없이 달리는 파워. 그리고 9명이나 되는 멤버들의 파트를 모두 활용한, 특히 삐끗하면 존재감 없이 묻히기 십상인 디제잉이나 샘플링의 경우도 깔끔하게 소화해 낸 앨범으로써 그야말로 뉴메탈 매니아들의 바이블 격 앨범이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쏟아부은 앨범인지라 사운드도 슬립낫 앨범 중 오랜 시간 지났는데도 제일 빡센 분위기를 풍기는 앨범이고, 거의 많은 팬들에게 레전드 격으로 추앙받는 앨범이다.
발매 당시 음악계는 80년대를 선도한 메탈음악에 대한 반발감에 힘입어 얼터너티브록이 성행중이었고, 동시에 메탈리카 등의 기성 메탈밴드 또한 기존의 공격적인 음악성에서 탈피하는 방향성을 지향하고 있었다. 물론 얼터너티브 이외에도 뉴메탈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긴 했지만, 당시 뉴메탈에 대한 시선은 메탈의 아류조차 아니었으며 그저 메탈에서 영향을 받은 잡탕음악에 불과했다. 간단히 말해 2020년대 기준 힙합과 하이퍼팝의 그것과 비슷했다. 이러한 음악 시장의 흐름에 기존 메탈음악의 몰락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으며, 동시에 그러한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메탈헤드들은 실망과 혐오, 불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세기말, 슬립낫은 데스메탈의 그것을 연상케 하는 충격적인 사운드와 그와는 차별화되는 그루비한 연주, 마스크라는 강렬한 컨셉트를 통한 전례없는 인상을 각인시키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랩과 샘플링, 디제잉 등 분명 힙합적인 어프로치가 섞여있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분노를 쏟아내는 표현수단이자 불길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장치로써 작동하고 있었다. 기존 메탈에서 서브컬쳐적인 면모를 덜어낸 지극히 세기말스러운 정서와 사운드 디자인 면에선 분명 뉴메탈이긴 했지만, 동시에 기존 뉴메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렬한 공격성과 그를 넘어선 괴기스러움을 선보인 것이다. 이는 강렬하고 헤비한 사운드를 예찬하던 기존 메탈헤드들 뿐만 아니라, 신선하고 실험적이던 장르에서 점차 메인스트림 파티뮤직으로 편입되어가던 뉴메탈에 염증을 느끼던 이들에게도 훌륭한 셀링포인트로 작용했다. 갈피를 잃었던 수많은 메탈헤드와 힙스터들이 동시에 열광했고, 그에 따라 슬립낫 매니아들은 급속도로 불어나기 시작하였다. 앨범은 발매 후 겨우 일주일 만에 1만 장이 판매될 정도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현재까지 집계된 판매량은 대략 250만 장에 이른다.
슬립낫의 2집 정규 앨범 <Iowa>는 2001년 8월 발매되었다. 앨범명은 멤버들의 출신지던 아이오와주에서 앨범명을 따왔다. 앨범 발매 이후 9.11 테러로 인해 앨범 홍보에 난항을 겪게되었다.
데뷔 앨범의 성공함에 따라 차기 앨범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커져만 갔고, 밴드에 대한 압박 또한 커졌다. 이 시기에 멤버들 서로의 관계는 악화되었고, 멤버들은 이 당시가 가장 어두운 시기였다고도 언급했다.
2001년에는 일본에 방문하여 SUMMER SONIC 2001 출연을 성사시켰고, 2001년과 2002년에 걸쳐 Iowa world tour라는 이름으로 밴드 첫 월드투어를 달성시키는데 성공, 일본에는 2002년 4월 4일 동경 베이NK 홀에서 공연했다.
고된 투어 일정과 밴드 내 불화로 밴드 분위기는 가장 험악하고 힘든 시기였으나, 이와는 별개로 앨범 자체는 역대 슬립낫 앨범 중 가장 훌륭한 뉴메탈 앨범으로 평가되는 편이며, 1집 활동 시절 다소 기복이 있던 보컬 코리 테일러의 라이브가 2집 활동 시에 가장 안정되어 이 때를 슬립낫의 전성기로 보는 해외 팬이 많다.
디제잉과 샘플링 사운드가 조화를 이루던 뉴 메탈에 충실하던 사운드의 전작과는 달리 이 앨범은 래핑과 디제잉 등의 비중을 크게 낮추고 그로울링과 더불어 묵직하게 드롭 튜닝 한 기타 리프, 빠르고 격렬한 드러밍 등 소위 헤비한 사운드에 치중한 모습을 보인다. 때문에 항간에서 역대 슬립낫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헤비하다고 말하는 앨범이기도 하다. 데스 메탈과 그루브 메탈 향취가 강하다는 평을 받는 등 보다 메탈 본위적 접근법이 이 작품의 묘미이다.
한결같이 헤비한 분위기로 일관하기에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평단에선 나름 푸짐한 점수를 그럭저럭 받는 뉴메탈의 고전 걸작선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롤링 스톤이나 NME 등 평단에선 8/10점 가량의 점수와 함께 뉴 메탈씬 전문 잡지 등지에서도 꾸준히 명반선으로 등재되고 있다.
슬립낫의 정규 3번째 앨범 <VOL.3: (THE SUBLIMINAL VERSES)>은 2004년 5월 25일 발매했다.
기존 1, 2집과는 헤비함이 많이 사라진 절제되고 안정된 사운드와 메탈코어식 전개가 주를 이룬다. 이는 1, 2집을 프로듀싱했던 로스 로빈슨에서 릭 루빈으로 프로듀서가 변경된 영향으로 보인다. 기존의 헤비한 리프 위에서 성대를 무리하게 사용하며 몰아치던 보컬과 특유의 뒤틀린 감성의 사운드는 이제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프로듀서 릭 루빈은 Def Jam의 설립자이자,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시스템 오브 어 다운 등을 프로듀스한 락계의 마이다스이다.
앨범 발매 이후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렸으며, 기존 팬들 사이에서는 부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뤘다. 특히 1세대 뉴메탈 팬들의 평가는 극도로 혹독했다. 팬들이 기대했던 슬립낫의 3집은 1집의 광기와 2집 이상의 헤비함이 결합된 형태였다. 앨범 발매 전 상황을 살펴보면, 당시 린킨 파크를 필두로 한 2세대 뉴메탈 밴드들이 차트를 휩쓸며 대중성과 상업성을 강조하던 시점이었다. 이와 동시에 콘, RATM과 같은 1세대 뉴메탈 밴드들이 쇠퇴하면서 코어 팬들의 실망감은 커져만 갔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새로 나올 슬립낫의 3집에 대한 기대는 더욱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앨범은 특유의 말끔한 믹싱, 멜로딕한 메탈코어, 어쿠스틱 기타 발라드 트랙들로 구성되어 기존 팬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과거 자신들의 음악성을 대중성에 타협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슬립낫이었으나, 이번 앨범에서는 기존과는 다른 대중친화적인 음악을 선보이며 팬들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다. 이에 따라 평가는 급락했으며, 많은 팬들이 변해버린 슬립낫을 "변절자"라며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평론가들은 이번 앨범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번 작품이 기존보다 더 노련한 슬립낫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앨범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2집 <Iowa>가 앨범 전반에 헤비한 트랙들만 배치해 중반부부터 다소 지루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것과 달리, 이번 3집은 다양한 장르의 시도와 각 트랙마다의 독특한 분위기를 통해 듣는 이로 하여금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구성되었다는 점이 호평받았다. 또한, 멤버들의 연주법과 곡 전개에서의 발전, 그리고 새로운 변신을 시도한 코리 테일러의 보컬이 돋보였다는 평가도 있었다.
코리 테일러의 보컬 스타일은 전작들보다 소프트해졌다는 이유로 팬들에게 질타받기도 했으나, 훗날 그의 초기 보컬 창법과 시간이 지나며 악화된 그의 목소리가 주목받으며, 이는 밴드 내에서 보컬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또한 1, 2집과 달리 가사에 욕설 사용이 크게 줄어들어 Parental Advisory 레이블이 붙지 않은 슬립낫의 첫 앨범이 되었다.
앨범 발매 전에 수록곡 'Pulse of the Maggots'를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무료 다운로드 형식으로 공개했다. 이 트랙은 2004년 3월 30일 단 하루 동안 제공되었으며, 이를 통해 슬립낫의 새로운 월드 투어인 The Subliminal Verses World Tour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2004년 5월 4일, 'Duality'가 첫 번째 공식 싱글로 발매되었다.
정규 네 번째 앨범 <All Hope Is Gone>은 2008년 8월 26일에 발매하였다. 베이시스트 폴 그레이와 드러머 조이 조디슨이 마지막으로 참여한 앨범으로, 0번부터 8번까지의 멤버들이 공석 없이 전부 참여한 마지막 앨범이기도 하다.
1집에서의 센세이셔널한 등장, 2집에서의 극강의 포스를 보여주며 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슬립낫은, 3집에서 기존 팬들의 혹평을 받았으나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며 1세대 뉴메탈 팬들의 마지막 보루로 자리 잡았다.
4집이 발표되던 2000년대 후반, 메탈 장르는 사실상 쇠퇴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뉴메탈 또한 사장 직전의 상황으로, RATM과 Korn은 이미 몰락했고, 2세대 뉴메탈을 이끌던 린킨 파크를 포함한 다수의 밴드들이 뉴메탈 장르에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 거기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까지 겹치면서 음악 소비 시장은 큰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메탈 팬들은 슬립낫 4집이 메탈이라는 장르를 구원할 구세주가 되길 기대했다. 특히, 1~2집 시절의 파괴력 넘치는 음악을 재현하길 바랐고, 드러머 조이 조디슨도 "이번 앨범은 밴드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헤비한 앨범이 될 것이며, 3집의 실험적인 스타일 또한 포함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하지만 4집은 많은 메탈 팬들의 기대처럼 음악 판도를 바꿀 만한 센세이션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앨범 자체의 완성도가 부족했다기보다는, 당시 상황이 워낙 악조건이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4집에서 슬립낫이 인터뷰를 통해 언급했던 '헤비함'은 팬들이 기대했던 1~2집 시절의 광폭한 사운드가 아닌, 3집에서 선보였던 메탈코어 기반의 테크니컬한 연주를 의미했다. 여기에 대중성을 의식한 발라드 트랙까지 포함되어 있어 기존 팬들에게는 낯선 스타일로 느껴졌다. 발매된 4집은 여느 대중적인 얼터너티브 메탈 밴드와 비슷한 스타일의 앨범이었다. 결국, 3집에 이어 4집 역시 기존 팬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크게 갈리게 된다.
이 앨범은 굉장한 대중적 성과를 보인 작업물이었다. 발매 첫주 빌보드 200 1위를 찍고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으며, 수록곡 'Psychosocial'은 그래미 시상식 후보에도 노미네이트 되었다.
거기에 DJ와 샘플링의 활용을 이것저것 실험하기도 했고, 백킹 보컬과 기타 솔로들과 같은 세세한 부분에서의 진보가 이루어진 앨범이다. 특히 3집에서부터 시도되었던 스톤 사워 스타일 송라이팅과의 결합이 제법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창출한 앨범이기도 하다. 1,2집 당시의 좋게 말하자면 광기 넘치고 나쁘게 말하자면 정돈되지 못한 사운드에서 벗어난 음악성은 기존 팬층의 분열을 낳기도 했지만, 발매 당시 9년차 원로 밴드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좀 더 딱딱 맞아 떨어지는 사운드로 완숙하고 연륜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쉽게 말해 헤비하면서도 기존보다 훨씬 군더더기 없고 그루브를 느끼기 편한 연주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슬립낫의 이전 앨범과는 달리, 이 앨범의 작곡 과정에는 9명의 밴드 멤버 전원이 참여했다.
'Gematria (The Killing Name)', 'This Cold Black', 'All Hope Is Gone'과 같은 헤비한 트랙들은 메탈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곡들이었다. 또한, 'Psychosocial'과 'Sulfur'는 강렬한 사운드와 대중성을 겸비하며 4집의 스타일을 대표하는 곡들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Gehenna'와 'Wherein Lies Continue' 같은 곡들은 슬립낫 특유의 스타일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았다. 특히 'Snuff'와 'Dead Memories' 같은 발라드 트랙은 기존의 메탈 팬들, 특히 1집과 2집의 강렬한 사운드를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집의 묵직하고도 그루브한 사운드는 밴드의 연륜이 드러나는 중요한 강점으로 평가받았다. 적절한 멜로디와 몰아붙이는 파워의 조화, 비중 높은 기타 솔로, 그리고 DJ와 샘플링의 실험적 활용은 앨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며, 충분히 칭찬받을 만한 요소로 남아 있다.
수록곡 'Psychosocial'은 1집의 '(Sic)', 2집의 'People = Shit'과 함께 4집 특유의 그루브함을 보여주는 슬립낫의 대표곡 중 하나로 앨범 발매 전 2008년 7월 7일에 앨범의 두 번째 싱글로도 발매되었다.
뮤직 비디오는 앨범을 녹음한 장소인 아이오와주 자메이카 사운드 팜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으며, 멤버들이 연주하는 장면과 티저 사진에서 밴드 멤버들이 착용했던 연옥 가면을 태우는 장면 등이 나온다. 적당한 헤비함과 어느 음정과 템포에도 적절하게 어울리는 범용성 덕에 'Space jam'과 더불어 리믹스 밈의 대표주자 중 하나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4집은 연륜에서 나오는 묵직하고도 그루브한 사운드, 적당한 멜로디와 실험적 시도가 돋보이는 앨범이었다. 다만, 기존 팬층과의 괴리로 인해 팬들 사이에서 극명하게 엇갈리는 평가를 받은 앨범으로 남게 되었다.
그렇게 2008년 4월 1일부터 슬립낫의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앨범 홍보를 위해 총 10개의 티저 영상이 공개되었다. 처음 9개의 티저에서는 멤버들의 얼굴을 본딴 듯한 연옥 마스크(Purgatory Mask)를 착용한 멤버들이 등장했고, 마지막 10번째 티저에서는 새로운 마스크를 착용한 슬립낫 멤버들의 사진이 공개되었다.
앨범의 커버 아트와 트랙 목록은 2008년 7월 8일에 공개되었고, 다음 날 새로운 월드 투어인 All Hope Is Gone World Tour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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