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부
다섯 번째 정규 앨범 <.5: The Gray Chapter>는 2014년 10월 17일 발매했다. 제목인 그레이 챕터가 암시하듯, 2010년 사망한 베이시스트 폴 그레이를 위한 추모 앨범이다. 또한 퍼커션 멤버 크리스 펜이 마지막으로 참여한 스튜디오 앨범이기도 하다.
<All Hope Is Gone> 이후 무려 6년 만에 발매된 앨범이다. 긴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로 데뷔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슬립낫의 스튜디오 앨범 역사상 두 번째 기록이다.
그러나 밴드 창설 이래로 한 번도 변하지 않았던 멤버 구성에 변화가 생겼다. 베이시스트 폴 그레이는 심장병과 펜타닐 및 모르핀 과다복용으로 인해 사망했으며, 드러머 조이 조디슨은 급성 횡단성 척수염으로 인해 밴드를 탈퇴했다.
폴 그레이가 사망한 이후 라이브에서 베이스를 대신 담당하던 도니 스틸도 앨범 제작에 일부 참여했지만, 가정을 꾸리기 위해 슬립낫에 다시 합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새롭게 합류한 멤버는 앨범 발매 전 2014년 9월 12일에 발표한 'The Devil in I' 뮤직 비디오에서 모습을 처음 드러냈으며, 서로 비슷한 삼베 마스크를 착용했고, 정체는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새로운 멤버들은 2015년 3월에 해고된 드럼 테크니션에 의해 정체가 유출되었고, 같은 해 5월에 공식적으로 베이시스트 알레산드로 벤츄렐라와 드러머 제이 웨인버그가 발표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계속 활동하지는 않는다고 밝혔고, 슬립낫의 상징적인 멤버 번호도 배정받지 못했다. 다만, 이후 6집에서도 활동하게 되면서 사실상 정식 멤버로 자리 잡게 되었다.
2011년부터 시작된 코리 테일러의 목소리 문제는 2013년에 절정에 달했다. 5집 공연에서는 이전보다 나아졌지만, 초창기나 4집 시절의 보컬 스타일과는 차이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보컬 톤이 더욱 부드러워졌고, 이로 인해 메탈코어적인 느낌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중성은 오히려 증가했다.
2010년 5월 24일 베이시스트 폴 그레이가 사망한 후, 슬립낫은 폴을 추모하는 공연인 Memorial World Tour를 2010년부터 진행했고 2012년부터 Knotfest라는 슬립낫 메인의 공연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앨범 제작은 2013년 중반부터 이야기가 나왔지만 같은 해 12월 12일, 드러머 조이 조디슨이 갑작스럽게 밴드를 탈퇴하고 만다. 슬립낫은 이런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앨범 제작을 시작하게 된다. 기타리스트 짐 루트는 4집과 마찬가지로 앨범 대부분의 곡을 작곡했는데, 코리 테일러는 슬립낫의 앨범 제작에 더욱 집중하라는 의미에서 스톤 사워에서 짐 루트를 탈퇴시켰다.
슬립낫은 2014년 3월에 새 앨범의 녹음을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당시에는 앨범 제목을 "Vol. 5"라고 불렀다. 시간이 지나고 공식 홈페이지에서 새로운 Knotfest 일정을 홍보하며 새로운 뮤직 비디오와 티저를 공개했다.
2014년 8월 5일 첫 공개한 뮤직 비디오는 'The Negative One' 이었으며, 뮤직 비디오의 마지막엔 새로운 슬립낫의 로고가 등장했다.
정규 6번째 앨범 <We Are Not Your Kind>는 2019년 8월 9일 발매되었다. 앨범의 제목은 2018년 10월 31일에 공개된 싱글, 'All Out Life'의 가사에서 따온 것이다. <.5: The Gray Chapter> 이후, 커스텀 퍼커션과 백 보컬링을 담당하던 크리스 펜이 탈퇴한 이후로 발매된 첫 앨범이다. 전 앨범에서 임시 멤버로 들어간 알레산드로 벤츄엘라, 제이 웨인버그 역시 앨범에 참여를 하였다. 크리스 펜의 경우, 'All Out Life'에서 퍼커션과 백보컬링으로 참여를 했지만, 해당 곡은 앨범에 수록되어있지 않다. 첫 싱글 컷에서 등장한 새로운 멤버의 경우, 앨범 슬라이드 노트에 이름이 적혀있지 않다고 한다.
메타크리틱 점수로 무려 89점을 받는 등 비평가들로부터 꽤나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으며, <All Hope Is Gone> 과 <.5: The Gray Chapter>에 이은 빌보드 200의 1위를 찍는 3번째 앨범으로 데뷔하게 된다. 아무래도 3집부터 시작된 그동안 지속된 음악스타일의 변화에 대한 기존팬들의 적응 및 대중성 확보로 인한 신규팬들의 유입 등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작품에선 인더스트리얼 장르의 사운드를 어느 정도 도입했는데. 이게 기존 슬립낫의 이미지와 적절하게 혼합되면서 매니아들에서 긍정적인 반응까지 이끌어냈다.
슬립낫의 정규 7번째 앨범 <The End, So Far>는 2022년 9월 30일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밴드가 1998년에 계약을 맺은 Roadrunner를 통해 발매된 마지막 앨범이며 세상을 떠난 조이 조디슨의 자리를 대체한 제이 웨인버그의 완벽한 드럼 연주와 여전히 괴물과도 같은 그로울링을 발산하는 코리 테일러의 보컬 등 전성기의 모습을 방불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 특유의 킬링 트랙으로 기록될 첫번째 싱글 커트된 ‘The Chapeltown Rag’를 비롯하여 ‘The Dying Song (Time to Sing)’, ‘Yen’ 등 12곡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미국에서는 빌보드 200 차트 에서 2위로 데뷔했는데, 이는 2004년 Vol. 3: (The Subliminal Verses) 이후 처음으로 1위로 데뷔하지 못한 앨범이다. 2001년의 <Iowa> 와 2019년의 <We Are Not Your Kind> 에 이어 영국 앨범 차트 에서 세 번째 1위를 차지했다. 이 앨범은 2021년 7월 잠자던 중 사망한 전 드러머 Joey Jordison 에게 헌정되었다.
2023년 6월 7일 돌연 크레이그 존스의 퇴출 소식과 동시에 대체 멤버가 공개되어 팬들이 충격에 빠졌다.이어 11월 16일, 제이 웨인버그와도 역시 결별하였다는 소식에 충격은 점점 밴드의 미래에 대한 우려로 변하고 있다. 2024년 4월 25일에 열은 소규모 공연으로 새로운 가면과 새 드러머 일로이 카사그란데가 공개되었다.
2003년 말에 내한공연이 확정되었으나, 새 앨범 녹음에 집중하고 싶다는 멤버들의 의견에 따라 투어가 취소되었고, 결국 약 1년 뒤인 2004년 말에야 첫번째 내한 공연이 이루어졌다.

조이 조디슨은 슬립낫의 초대 드러머이자 슬립낫을 결성한 멤버 중 한 명이다. 시드와 마찬가지로 밴드 컨셉에 있어 중심이 되었던 인물이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접했다고 하며, 8살 때 부모님에게 기타와 드럼을 선물받고 드럼을 처음 연주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재능이 있고 빨리빨리 실력이 늘어서 일찌감치 밴드를 만들고 활발한 음악 활동을 했다고. 다만 가정 환경이 썩 좋지 않아 10대 때는 Sinclain 이라는 주유소에서 야간 근무를 하거나 악기나 CD 등을 판매하는 회사에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했을 정도로 힘들게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좋지 못했던 가정 환경과 경제적 핍박을 이기지 못해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그래서 오전에는 음악 생활을, 오후에는 야간 근무나 투잡 혹은 쓰리잡 이상의 일을 하면서 여러 밴드에서 활동했다. 당시엔 크레이그와 Modifidious라는 밴드에서 활동했으며, 폴과 Anal Blast라는 그라인드코어 밴드를 한 적도 있다. 한 번은 폴이 조이에게 새로운 밴드를 같이 하자는 제안을 하고, 조이는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렇게 시작된 밴드의 이름은 The Pale Ones 였다. 이후 조이는 본인이 작곡한 'Slipknot'이라는 곡을 발표하게 되고, 조이는 밴드의 이름을 '슬립낫'으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160cm라는 굉장히 작은 단신에 체격 또한 작은 편이지만 특유의 공격적인 드러밍으로 무시무시한 포스를 뿜어낸다. 기존의 익스트림 메탈만큼 빡세면서도 더욱 그루비한 리듬과 무식하게 필인을 때려넣는 플레잉으로 향후 얼터너티브 메탈의 드러밍 메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밴드의 작곡 과정에 참여하며 아이코닉한 드럼 인트로 또한 많이 뽑아낸 편이다.
라이브 시에는 드럼 스테이지에 드럼을 고정하는 특수 장치를 달고 좌석에는 안전벨트를 매달아, 공중에서 90도 정도로 기울어진 상태에서 360도 회전을 하며 연주를 하는 등의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한다. 밴드의 로고를 디자인하기도 했으며, 의외로 밴드 멤버 중에서 유일하게 문신을 하지 않았다. 대신 아랫입술과 오른쪽 눈썹, 그리고 왼쪽 콧등에 피어싱이 있다.

능력이 워낙 출중하고 업계에서도 명성을 인정받아 이곳 저곳 대타로 자주 뛰었다. 그 중에서도 2004년 메탈리카의 영국 도닝턴에서의 대타 공연이 유명한 편. 당시 개인사정으로 라이브 일정을 수행하지 못한 라스 울리히 대신 드럼을 연주하였다. 이때 라스를 대신해 나왔던 콘서트에서 보여준 'Creeping Death'는 전설로 회자된다. 마찬가지로 당일날 연주했던 'Seek & Destroy'와 'Enter Sandman' 등의 곡들을 조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잘 쳤다고한다. Korn의 서포트 드러머로서 활동한 적도 있으며 마릴린 맨슨과도 친분관계가 있어서 마릴린 맨슨의 'Tainted Love' 뮤직비디오에 우정출연을 한 적도 있다. 이러한 적극적이고 훌륭한 음악적 역량 덕분에 2016년에는 그가 새 밴드 신세이넘을 결성 및 헤비메탈 잡지 'Metal Hammer'에서 주최하는 골든갓 어워즈에서 평생 공로상 수상자로 조이 조디슨이 선정되었다. 시상 기념으로 직접 인터뷰도 하였는데, "제가 사라진 것은 마약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급성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끔찍한 척수염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자신과 음악을 위해 이 지옥같은 재활 치료를 견뎌냈습니다. 저는 헤비메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헤비메탈을 연주할 겁니다."
조이 조디슨이 수상 소감을 밝히고 기자들이 "밴드에서 해고됐는데 (자신을 버린) 멤버들이 밉지 않나요?"라고 질문했는데, 이에 조이 조디슨은 나지막히 웃으면서 "저는 슬립낫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밴드는 나를 그렇게 버렸을지 몰라도 저는 여전히 멤버들을 제 형제라고 생각하고, 저는 아직도 그들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며 따뜻한 대인배의 모습을 드러내서 수많은 전세계 슬립낫과 메탈 팬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밴드의 드러머이기 때문에 많이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기타 연주도 수준급이었다. 어릴 때 부모님한테 기타와 드럼을 같이 배웠다는 윗문단의 서술이 있는 것처럼 드럼과 마찬가지로 꾸준히 연습한 듯하다. 때문에 사이드 프로젝트였던 'Murder dolls'에서는 기타를 담당했다.
코리가 조이 조디슨의 탈퇴에 관해 입을 열었는데, 급성 횡단성 척수염에 걸려 더 이상 드럼을 연주할 수 없게 되어 탈퇴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2015년부터 해비메탈 밴드 Scar The Martyr를 VIMIC라는 이름으로 바꿔서,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다. 2016년에는 Sinsaenum이라는 데스메탈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다. 이러한 조이 조디슨의 열정적인 활동 모습과 메탈을 향한 집념에 인스타그램 유저를 비롯한 몇몇 팬들은 Joey Jordison God of Metal(조이 조디슨은 메탈의 신)이라는 팬 페이지를 만들기도 했다. 여담으로 원피스의 바질 호킨스는 조이 조디슨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캐릭터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본인 사망 11년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난 폴 그레이와 마찬가지로 그의 유족들 증언에 따르면 생전 온화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슬립낫 멤버가 하도 욕지껄을 자주 하는데다 2집 제작 당시 난투극이나 여러 소동이 잦았기도 했고 코리 등 몇몇 멤버들이 상당히 거칠고 공격적인 모습이 많았는데다 조이 역시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는 사진이 흔해서 성격이 거칠 것으로 착각하는 팬들이 은근 있다고. 하지만 가족들한테도 그렇고 가까운 사이의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성격이었던 모양이다.
조이 조디슨은 다시 드럼을 연주하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그는 기초적으로 공을 차는 것부터 시작하여, 퇴원 후에는 자신처럼 이러한 질병들에 걸린 사람들의 사회복귀를 위한 재활 센터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자신의 코어, 즉 근육을 키우는 등의 많은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재활 치료와 훈련을 성공적으로 이겨내서 2016년에 신세이넘 멤버로서 녹음 작업과 앨범 발매를 준비하여 이 앨범은 현재 발매되었다. 하지만 몇 년 후에 급성 횡단성 척수염이 재발하고 말았고, 조이는 또 다시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결국 2021년 7월 26일 자신의 고향 아이오와주 디모인에 있는 자신의 자택에서 수면 중 향년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슬립낫 멤버들을 비롯한 헤비 뮤직 씬의 아티스트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18년을 활동하다가 급성 횡단성 척수염이라는 병에 걸려 하반신이 마비, 드럼을 연주할 수 없게 되어 밴드에서 해고 당하고, 본인이 새로 만든 밴드도 법적 문제가 걸려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등 고생은 다하다가 결국 요절한 정열적인 음악인으로 역사와 팬들의 기억에 남게 되었다.
어찌되었든 재결합은 커녕 서로 화해조차 제대로 못 한 상태에서 조이가 요절하면서 여러모로 밴드의 행보에 아쉬움을 느끼는 팬들이 많아졌다. 조이 조디슨은 사망 4년이 지난 2026년 현재도 폴 그레이와 함께 슬립낫의 역대 멤버 중 '팬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멤버 2'로 남게 되었다.

폴 그레이는 슬립낫을 결성한 멤버 중 한명으로 초창기 슬립낫의 곡들을 조이 조디슨과 함께 작곡했다.
백인과 흑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며, 제임스 루트를 제외한 아이오와 출신인 다른 멤버들과 달리 LA출신이다. 아버지가 자살하는 등의 암울한 유년기를 보냈다고 하며, 어린 시절 슬레이어의 2집 앨범 투어 공연을 보고 감명을 받아 왼손잡이용 Gibson 플라잉 V를 사서 독학으로 기타를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청소년기엔 기타 하나만 들고 집을 나가 노숙자 생활을 했으며,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약간의 돈으로 아이오와에 있는 집을 사서 아이오와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아이오와의 음반가게에서 슬립낫 원조 보컬인 앤더스 콜세프니가 밴드를 만드는데 베이시스트가 필요하다고 하자 오디션에 지원했고, 형의 친구에게 빌린 베이스를 왼손으로 잡고 기타 리프를 베이스로 연주했다고 한다. 이후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기타리스트에서 베이시스트로 전향하게 된다.
베이시스트로 전향한 후엔 클리프 버튼의 연주 테이프를 카피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해서 듣고, 메탈만이 아닌 펑크와 재즈를 들으며 슬랩 등의 테크닉을 배웠다. 그렇게 베이시스트로서 입지를 다지면서 앤더스 콜세프니와 믹 톰슨과 함께 Body Pit이라는 밴드에서 활동했으며, 조이 조디슨과 Anal Blast라는 그라인드코어 밴드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숀 크레이언과 앤더스 콜세프니와 함께 슬립낫의 전신인 The Pale Ones를 결성하게 되고, 커스텀 퍼커션과 드럼 세트를 실험하기 위해 조이 조디슨을 밴드로 초대하게 되면서 슬립낫을 결성하게 된다.
유명 베이시스트들처럼 무지막지한 테크닉이나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베이스의 기본에 충실하면서 간간이 맛깔나는 리프를 써내기도 하는, 밴드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든든한 베이시스트로 작곡이나 작사에도 두각을 나타냈다.

인디 시절에도 백킹 보컬로서 활동을 했었고, 이후에도 라이브에서 코러스 부분에서 백킹 보컬을 맡곤 한다. 'Psycosocial' 에선 후렴구에 화음을 넣기도 하고, 특히 'Spit It Out'의 마지막 코러스는 아예 코리 옆으로 와서 코리가 주는 마이크로 부른다.
그렇게 활동하던 중 2010년 5월 24일 아이오와주에 있는 어느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38세였으니, 한창 때에 요절해버리고 만 것이다. 발견 시각은 오전 10시 50분. 호텔 직원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발견되었으며,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고 한다. 침대 옆에선 주사 바늘이 발견되었으며 많은 알약이 방 안에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경찰이 사망 원인을 알아내는 데에는 한 달이라는 비교적 긴 시간이 걸렸는데, 사망 원인은 지병이었던 심장병과 약물 과다복용에 의한 부작용이었다. 그는 진정 효과가 모르핀보다 약 50배 정도 강한 것으로 알려진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을 모르핀과 함께 복용했으며 이후 심장병도 왔다고 한다. 파장이 컸는지 슬립낫은 한동안 활동이 뜸해졌다. 일각에서는 해체설이 나돌았으며 실제로 멤버들끼리도 분쟁이 있었지만, 숀 크레이언이 부인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폴이 죽고 난 후 2011년 여름 투어 때는 밴드 멤버 모두가 옛날의 빨간 점프수트를 착용하였고 시드, 크리스, 제임스, 숀은 옛날에 쓰던 마스크를 착용하였다. 폴의 빈자리에는 옷걸이에 폴의 사이즈인 점프수트와 1집 때의 돼지 마스크를 걸어 놓고 공연을 하였으며, 공연은 평소보다 살짝 느린 템포로 진행되었다. 베이스 자리는 밴드에서 잠시 기타를 담당했던 전 멤버 도니 스틸이 폴 대신 베이스를 연주하였다. 하이라이트는 'Til We Die'를 틀어놓고 멤버들 모두가 그의 점프수트를 껴안으며 애도하였다는 장면이다.
한편 폴의 사망으로 듬직한 베이시스트를 잃은 밴드는 2014년 폴 그레이의 후임으로 현재의 베이시스트 알렉산드로 벤츄렐라를 영입하여 변동없이 폴을 대신하여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드러머 쪽은 멤버 변동이 꽤 생긴 것에 팬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많은 반면 그나마 베이스와 나머지 포지션들은 한 차례씩 멤버가 바뀌고 나서 2026년 현재까지 쭉 유지되고 있다. 마침 생전 폴 그레이의 훌륭했던 음악적 역량을 후임인 알렉산드로 역시 베이스의 탄탄한 기본기에 충실하면서도 생전 폴보다 더 큰 188cm의 거구에 화염방사기 등 적극적인 퍼포먼스로 2014년, 2019년, 2022년까지 총 3차례에 걸쳐 3개의 앨범 녹음 작업과 라이브 모두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서서히 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 발매된 5집 <.5: The Gray Chapter>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를 추모하는 작품이다. 폴 그레이의 사망은 주변인들에게도 전세계 팬들에게도 모두 큰 슬픔이었지만 밴드 또한 크게 뒤흔들어 놓은 비극이었다. 원년 멤버이기도 했고, 멤버들의 말마따나 온화한 성품으로 개성이 강한 팀원들을 잘 중재해주는 역할을 해 줬기에 후폭풍은 더 컸을 테니 이 시점에서 개개인의 심경 변화가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폴 사망 이후에는 밴드 내 갈등이 눈에 띄게 심해지고 일종의 파벌 같은 것까지 형성되며 멤버 퇴출도 몇 차례 일어나는 등, 음악 외적으로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이러한 뒤숭숭한 분위기는 그 사이 앨범도 몇 개 더 내고 새로운 멤버들도 좋은 활약을 보이던 2023년까지도 이어지고 있기에 올드팬들은 여러 이유로 폴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상황이다.
1999.06.29 SLIPKNOT
2001.08.28 IOWA
2004.05.24 VOL.3: (THE SUBLIMINAL VERSES)
2008.08.26 All Hope Is Gone
2014.10.21 .5: The Gray Chapter 폴 그레이 추모 앨범.
2019.08.09 We Are Not Your Kind
2022.09.30 The End, So F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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