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5년 한일간 국교정상화가 되면서 우리나라에 최초로 진출한 일본의 가수가 있었다. 혼성 3인조 트리오인 Japanese (저패니스) 였다. 이 그룹명을 라틴어로 발음하여 ‘하파니스’라 하였는데, 그들의 음악은 라틴 음악이었다.
한때 국내에서 활동하면서 1971년 앨범 발표를 하면서 서툰 발음이지만 국내 곡을 한국어 발음으로 부른 한국어 앨범도 발표한 바 있는데. 이 앨범에는 ‘안개’(정훈희), ‘사랑해’(라나에로스포) 등의 한국 곡을 라틴풍으로 편곡하여 부른 곡들이 있었다.
하파니스는 당시 국내에서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한국의 음악가들에게 라틴풍의 음악에 대한 깊은 인상을 남기는데 일조하기는 했다. 이에 그 영향을 받아 국내에도 라틴음악을 하는 그룹들이 생겨나게 되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그룹이 역시 혼성 3인조 포맷의 세샘트리오였다.
권성희는 1970년대, 마리아 칼라스 같은 오페라 프리마돈나를 꿈꾸며 동덕여대 성악과에 입학했다. 그러던 중 건설업을 하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해 가세가 기울기 시작해 낮에는 음대생으로 수학했고, 밤에는 밤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돈을 벌었다.
권성희가 처음 방송 무대에 선 건 아버지의 지인인 KBS 전 관현악 단장 김강섭이 진행하던 아침 생방송 프로그램이었다. 이후 몇 차례의 방송 기회를 받아 나간 무대들에서 그녀의 노래가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이 덕분에 당시 최고급 무대 중 하나인 엠버서더 호텔의 트리오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공연에 올랐다. 그녀는 당시 유행하던 팝송을 부르며 정기적으로 출연하며 돈을 벌었다.
서구적인 마스크와 시원한 가창력이 음반 관계자의 이목을 끌면서 1977년 데뷔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앨범은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사장되게 되었다.
권성희 가요계에 본격적으로 입성하자 재학 중이던 동덕여대 성악과 학과장은 그녀가 소위 ‘딴따라’로 전향하는 것에 대해 한사코 말렸다. 당시 권성희는 졸업 후 유학을 다녀오는 조건으로 동덕여대 조교수 자리가 보장돼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성희는 명동과 소공동의 내로라하는 레스토랑과 극장식 식당의 무대에 지속적으로 오르며 가수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1977년, 당시 라틴 그룹을 꿈꾸던 탤런트 출신 가수 전항이 그녀에게 라틴 그룹 결성을 제의하게 된다. 또 한 명의 멤버는 그룹 코리아나(Koreana)의 전신인 아리랑 싱어즈의 메인 보컬 홍화자의 동생으로 라틴 기타의 명인 홍신복을 영입하여 3인조 라틴 그룹 별난트리오가 결성되게 되었다. 이 라인업으로 1977년부터 서울 시내 살롱가에서 무명 생활을 1년여 가량 이어갔다.

별난트리오는 1977년년 제1회 서울가요제에 참가하게 되는데, 이 대회에는 당시 윤항기, 진미령(소녀와 가로등) 등이 참가했던 그 대회였는데, 당시 대상은 혜은이의 ‘당신만을 사랑해’가 그랑프리를 받은 그 대회였다.
비록 별난트리오는 입상을 하지는 못했지만 작곡가 길옥윤은 무명 생활을 하던 이들 트리오를 눈여겨보던 중 음반 녹음을 제안했다. 그룹 이름 ‘세샘’은 ‘세 개의 맑은 샘’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길옥윤이 직접 지어줬다. 이듬해인 1978년 팀명을 별난트리오에서 세샘트리오로 바꾸고, 길옥윤 프로듀서하에 데뷔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권성희, 전항, 홍신복으로 구성된 세샘트리오는 1978년 히트 레코드를 통해 1집 <세샘트리오 노래모음집>을 발매한다. 원래 [길옥윤 작편곡집]으로 제작된 음반으로 길옥윤이 작곡한 9곡과 리더 전항이 작곡한 2곡 ‘봄이 와서’, ‘나의 아버지’, 패티 김이 작사한 번안곡 ‘바람 따라 별 따라’를 수록했다.
이 앨범에 세샘트리오의 최대 히트곡인 ‘나성에 가면’이 수록되었다. 이 곡의 성공으로 히트 가수 반열에 오르며 대중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이들은 보컬 권성희의 풍부한 성량이 돋보이는 즐거운 분위기의 라틴 음악을 구사했다.
무엇보다 세샘트리오를 대스타 반열에 오르게 해준 곡 ‘나성에 가면’은 밝은 분위기의 가벼운 템포감이 느껴지는 라틴 팝 스타일에 권성희의 시원시원한 음색이 어우러진 곡으로 당시 큰 인기를 얻게 됐다. 원래 ‘나성에 가면’의 원제는 ‘LA에 가면’이었는데, 당시 박정희 독재 정권에서 노래 제목에 영어를 쓰지 못하게 하던 심의 규정 탓에 길옥윤이 고심 끝에 LA를 ‘나성’으로 고쳐 재녹음을 하였다. 그러나 ‘나성’이라는 어감이 대중들의 입에 잘 맞았고, 큰 성공까지 이어지게 됐다.
곡의 밝은 분위기와 다르게 ‘나성에 가면’은 이별 노래다. 당시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 결정을 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당시의 이민은 영영 만날 수 없는 이별과 다름없었기 때문에 가사에 애절한 감성이 담겨있었다.
시원한 창법으로 인기가 많았던 권성희는 “노래를 부를 때 남아메리카 악기 카바사를 사용했는데 처음 연습할 때는 노래가 반대 박자로 나와서 애로사항이 많았지만, 차후에는 습관이 되어서 카사바가 없으면 노래가 안 될 정도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나성에 가면’의 대성공으로 세샘트리오의 권성희는 패티 김, 박경희를 이을 대형 가수의 탄생이라는 평을 받았고, 엄청난 인기 탓에 스토커까지 따라다니며, 보디가드를 고용해야 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심지어 함께 차 한 잔만 마셔주면 3억을 주겠다는 제안도 들어올 정도였다고 한다.
‘1979년 서울국제가요제’에 ‘젊음의 계절’이라는 곡으로 참여한 세샘트리오는 국제가요제로 확대 편성된 가요제의 엄청난 인기로 인해 국내 예선에 참가하여 본선에 진출했다. 당시 1979년 서울국제가요제에서는 가수로 활동했던 배우 장국영이 처음으로 서울을 찾았던 가요제였다. 본선에서 입상하면서 세샘트리오는 데뷔하자마자 큰 주목을 받았다.
이 곡은 이후 2002년 그룹 불독맨션이 리메이크하기도 했고, 2014년 한국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 배우 심은경이 리메이크하여 OST에 수록되기도 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은 바 있는 곡이다. 또한 이 앨범에는 1980년 혜은이가 리메이크하여 히트시킨 곡으로 유명한 ‘울지 않아요’가 수록되어 있기도 하다.
데뷔 앨범이 크게 성공한 이후 1979년 2집 앨범<오!오!오!/하얀 날개>를 발매했지만, ‘나성에 가면’ 만큼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1집의 명랑한 라틴 팝 스타일에 남성 멤버들과의 하모니가 어우러진 곡을 들려주기도 했다. 이시기 남자 멤버인 전항과 홍신복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서 홍신복이 팀을 탈퇴하였다. 탈퇴 이유는 당시 정황상 리더 전항과 홍신복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앙금이 남아있던 것으로 추측됐다. 1981년 모 방송국의 녹화장에서 주먹 다툼을 벌인 일이 기사로 공개되기도 했다. 홍신복은 세샘트리오 탈퇴 후 비슷한 포맷의 ‘무지개 트리오’라는 그룹을 결성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홍신복이 탈퇴 후 세샘트리오의 리더 전항은 자신의 친동생인 전언수를 영입하는데, 전언수는 70년대 가수 이태원과 포크 듀엣 쉐그린으로 활동했었다. 이렇게 전씨 형제와 권성희로 멤버가 재편된 이후 발표한 3집 앨범에서 ‘영원한 사랑’을, 1981년 4집에서는 ‘오해야 오해’가 히트했다.
노래 부를 때마다 남아메리카 전통악기인 카바사를 들고 노래 부르던 홍일점 권성희는 이 앨범을 끝으로 1983년 팀을 탈퇴하여 솔로 독립을 하였고, 전씨 형제는 현진옥을 영입하여 활동하다가 현진옥이 탈퇴한 뒤에는 사촌 동생 전미수를 영입하여 잠시 더 활동하다가 해체하고 전언수는 노래 제목처럼 LA로 이민을 가게 된다.
권성희는 시원시원한 창법으로 솔로 활동을 하면서 주로 라틴풍의 곡인 ‘띠아모’, ‘하이난 사랑’ 등으로 활동했다.
당시 높은 인기를 누리던 그녀는 평범한 연기자 박병훈과 화촉을 밝혔다.
현재까지도 가수로서 방송 활동을 이어갔다. 가수 활동과 별개로 30여 년 동안 주로 노인과 소외계층을 비롯해 불우이웃, 소년소녀 가장, 군경을 위한 무료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또한 2009년부터 봉사단체 한국 연예인 한마음회 회장을 맡아 노인 등을 위한 공연을 열기도 했다. 2012년 제20회 대한민국 문화 연예대상 연예부문 공로상을 받았다. 올해로 70세를 맞이한 권성희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방송 등에 간간이 모습을 보이고 있다.
1953년 대구에서 태어난 홍신복은 1977년 권성희·전항과 함께 세샘트리오를 결성해 1979년 2집을 발표한 뒤 팀을 탈퇴했다. 1980년 함영미·김영수와 '무지개트리오'를 결성해 같은 해 열린 TBC 세계가요제에 '사랑의 길목'으로 입상했다. 무지개트리오 탈퇴 이후엔 작곡가로 활동하며 가수 김수희 히트곡 '고독한 연인', '이래도 되는 건가요' 등을 작곡했다. 홍신복은 2025년 4월 지병으로 고인이 되었다.
전항, 전언수 형제는 ‘나성에 가면’ 제목처럼 실제로 미국 LA로 이민을 떠났다. 전항은 미국에서 목사로 봉직 중이며, 동생 전언수 역시 미국에서 음악 카페 ‘쉐그린’을 운영 중이라고 한다.
이들의 최대 희트곡 '나성에가면' 은 제목의 ‘나성(羅城)’이 미국 서부의 L.A.를 가리키는 말이다. 권성희는 2015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원곡은 'LA에 가면'인데요, (토쿄를 동경으로 불러야 했듯이) 당시 영어를 못 쓰게 하는 규정 때문에 심의에 걸렸어요. 노래를 만든 길옥윤 선생님이 고심 끝에 ‘나성’으로 고쳐 재녹음했죠"라고 말했다. TV조선 <마이웨이>에서는 "녹음할 때 고쳐서 부르는 데 되게 어색했어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화성, 금성, 목성과 같다는 건지. 우리는 되게 의아해 하면서 불렀어요. 근데 그게 의외로 사람들이 궁금했나봐요"라고 말했다. 그 궁금증을 유발하는 지점이 화제를 몰고오고 롱런의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고 한다.
세샘트리오 1집 - <노래모음집> 1978년
세샘트리오 2집 - <오!오!오!/하얀 날개> 1979년 6월
세샘트리오 3집 - 지구전속1집 <영원한 사랑/미스리> 1980년 5월
세샘트리오 4집 - 지구전속2집 <오해야 오해/영원한 사랑> 198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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