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연실은 1950년 전북 군산에서 4남2녀중 차녀로 태어났다. 군산대학교 교수였던 아버지와 유복한 가정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가수 이연실은 군산여고를 졸업하고 홍익대 미대에 입학한다. 늘씬한 키와 짙은 쌍꺼풀의 서구적 외모, 청순하고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던 여대생 가수 이연실은, DJ로 활동하며 ‘노래하는 시인’이란 애칭으로 사랑받은 박인희와 더불어 단시간에 청춘남녀 팬들이 사랑하는 가요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포크 1세대인 그녀는 홍익대 미대 시절 라이브클럽에서 노래하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1971년 가수로 데뷔한다. 좋은 노래를 만들고 부르기 위해서 대구로 내려가 ‘다방 레지’를 체험하고, 노래하다가 시비 거는 취객과 맞붙어 싸우는 등 음악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는 일화도 있다.
1960년대 미국 팝 시장을 강타한 ‘포크의 여왕’ 존 바에즈의 등장이 그러했듯 뛰어난 음악적 재능과 지성을 갖춘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출현은 남자 가수들이 주도하고 있던 국내 포크 씬에도 신선한 변화를 몰고 왔다. 화려하진 않지만 이들의 등장은 한대수, 송창식, 윤형주, 서유석 등 젊은 남자가수들의 아성을 위협하기엔 충분했다. 음악적 재능에 관한한 이들은 남자가수에 전혀 꿀릴 게 없었고, 여성들이 뚫기 힘든 ‘유리 천정’ 또한 다른 분야에 비해선 사정이 나았다. 보컬리스트로서의 영역을 넘어 스스로 작사, 작곡까지 담당하는 싱어송라이터의 능력을 보여준 이들에 의해 70년대 청년문화는 더욱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된다.
1970년대 활동했던 여러 싱어송라이터 중에서도 이연실에게선 통기타로 음악을 만들고 부르는 포크 가수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그녀는 또래 여가수들처럼 다소곳한 성향이 아니라 매사 똑 부러지게 자기주장을 할 줄 아는 당찬 분위기로 대중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런 성향은 이후 이연실이 가수로서 자신의 음악적 목표를 정립하는 데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녀가 처음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70년 열린 <가수 팔도대항전>이란 가요제 때부터였다. 전북 대표로 출전해 입선한 이연실은 소공동 조선호텔 근처의 라이브클럽 "포시즌"에서 아르바이트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이때부터 은연 중 가수의 꿈을 꾸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때 긴 생머리 휘날리는 미모의 여대생 가수를 눈여겨 본 이가 서울대 철학과 출신으로 가수 배호의 '누가 울어'를 비롯해 '안개 속에 가버린 사람' 등의 히트곡을 작사한 전우이다. 1천여 곡의 노래를 만든 중견 작사가이자 ‘히트곡 제조기’로 유명했던 그는 소공동 포시즌 무대에 오른 이연실의 재능을 알아보고 후원을 자처했다.
전우의 주선으로 음악 관계자들의 눈에 띈 이연실은 1971년 9월 12일 DJ 박원웅이 진행하던 MBC라디오 <뮤직다이얼 팝 패밀리 콘서트>를 통해 마침내 자신의 데뷔 무대를 갖는다. 명동 소재 ‘코스모스살롱’에서 열린 이날 콘서트에는 6백여 명의 관객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여대생 가수의 데뷔무대는 이례적으로 다음날 일간지 문화면에도 적잖은 비중으로 소개됐다.
“홍대 서양화과에 다니던 화가지망생이었다. 재학 중인 이연실의 경우 '조용한 여자' 등 자작곡을 통해 퍽 진지한 무대를 보여줬고 최근 국내 팬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 미국 여가수 멜라니 사프카의 여유와 기교를 과시하는데 일단 성공. 여성 포크싱어 기근의 국내 팝스계 입장에서 볼 때 큰 기대를 가져봄직한 유망주라는 게 참석했던 전문 종사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_1971. 9. 13 신문기사 중
하지만 대중에게 보인 것은 그녀의 일부분뿐이었다. 노래뿐 아니라 작사, 작곡에 이르기까지 다재다능한 재능을 뽐냈던 그녀는 인생과 음악을 더 깊이 탐구해 보겠다며 6개월간 학교를 휴학하고 대구에서 다방레지 생활을 자청했을 만큼 당찬 구석이 있는 신인 가수였다. 오비스캐빈이나 포시즌에서 노래하던 시절, 술에 취해 시비를 걸어오는 취객과 피하지 않고 맞붙어 싸운 일화도 유명했다.
여세를 몰아 이연실은 1971년 11월, 자신의 첫 앨범 <비둘기집/새색시 시집가네>를 내놓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유니버살레코드에서 제작한 이 LP앨범은 모두 10곡의 노래가 담겨 있는데 이연실은 A, B면의 타이틀곡인 '비둘기 집'과 '새색시 시집가네'를 비롯해 모두 5곡의 노래가 수록되었다.
아직은 음반 전체를 자작곡으로 채울 여력이 부족했던지 이석, 정우, 박재란, 이찬, 조영남 등 여러 가수들과 함께한 옴니버스 형태로 제작된 데뷔 음반은 아직 20대 초반이었던 그녀의 해맑은 목소리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앨범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이 앨범의 성공으로 스타덤에 오른 이연실은 일약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포크 가수로 떠올랐다.
김신일 작사 작곡의 '새색시 시집가네'뿐만 아니라 '둘이서 걸어요', '비둘기 집', '조용한 여자' 등 삶의 체험을 통해 체화한 한국적 정서는 이연실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유신의 서슬이 퍼렇던 1972년 7월 송창식,윤형주,김세환,어은경과 함께 국내 최초의 포크 컴필레이션 앨범<비의 나그네 / 아가씨들아>를 발표하게 된다. 이 앨범에서 이연실은 '그이 지금 어디에'와 자신이 작사한 '찔레꽃'을 발표한다. 이 컴필레이션 앨범에 이연실의 ‘찔레꽃’이 실려 있는데 이곡은 대중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자작곡은 아니지만 이 노래는 이연실의 탁월한 음악성을 보여주는 명곡으로 지금도 높게 평가된다.
원래 이 노래의 원곡은 1920년대에 박태준이 작곡하고 아동문학가 윤복진이 작사한 동요 '기러기'가 원곡이다. 사실 박태준 작곡으로 알려졌지만 원곡이 따로 있다. 미국 작곡가 스테판 포스터(Stephan Foster)의 'Massa’s In De Cold Cold Ground'가 원곡이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작사자인 윤복진이 월북을 하게 되었고 당시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엄격했던 시절이라, 월북 작가의 작품은 법적으로 전면 금지곡이 되었다. 아름다운 멜로디를 이대로 묻을 수 없었던 음악계는 가사를 완전히 새로 바꾸기로 해서 탄생한 동요가 교과서에도 실렸던 이태선 작사의 '가을밤' 이다.
이연실은 아동문학가 이원수가 1930년 잡지 <신소년>에 발표했던 ‘찔레꽃’이란 동시의 노랫말을 조금 바꿔 '가을밤'의 선율에 맞춰 불러 크게 히트시켰다. 훗날 여러 가수들이 리메이크해서 불렀지만 올드팬들은 지금도 대부분 이 ‘이연실 버전’을 첫손에 꼽는다.
찔레꽃은 보통 늦봄에서 초여름(5~6월)에 흐드러지게 피는 꽃인데 노래의 멜로디는 가을의 쓸쓸함을 담은 '기러기'와 '가을밤'에서 왔다. 꽃은 봄에 피는데 노래의 기운은 가을인 이 기묘한 계절감의 어긋남이, 역설적으로 노래 속 어머니를 향한 정서를 더욱 아련하고 초현실적인 슬픔으로 극대화하는 예술적 효과를 낳았다.
1973년 3월 김민기, 한대수와 함께 ‘3대 저항가수’로 꼽히던 양병집의 도움을 받은 세 번째 앨범 <시악시 마음 / 잃어버린 전설>을 계기로 이연실은 자신의 노래 색깔을 완전히 탈바꿈한다. 이른바 저항적 색채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앨범에선 밥 딜런의 노래 ‘A Hard Rain's a-Gonna Fall’을 번안한 '소낙비'가 큰 인기를 모았다.
1973년 12월 이연실과 최헌의 스플릿 앨범에서 '이밤', '소낙비', '나의 길'을 발표하였다.
1975년 12월, 대마초 파동에 휘말려 동료가수인 정훈희 이수미 이현과 함께 자수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연실은 사안이 경미하다고 하여 훈방조치 된다. 가수 활동의 고비를 맞았뻔 했던 이연실은 1976년 6월 <고운노래 모음집>에서 자작곡 '조용한 여자', '이제는'을 발표하며 대표곡가 된 '조용한 여자'에서 이연실은 특유의 청아한 음색으로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이곡으로 재기를 노렸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한 동안 음악 활동을 멈췄다.
수록곡 중에는 그녀가 직접 작사 작곡한 '조용한 여자'를 비롯해 '찔레꽃', '가을메들리' 등이 히트했다. 이연실은 이전 음반에서 번안곡을 주로 불렀지만, 이 음반의 수록곡 '조용한 여자'를 시작으로 이후 발표한 음반에는 자작곡을 다수 수록했다.
존 오드웨이의 'Dreaming of Home and Mother'를 번안한 동요 '여수'를 동요 '기러기' 앞에 붙여 '가을메들리'를 완성하기도 했다. 이처럼 동요 '기러기'>는 이연실의 손을 거치면서 '찔레꽃'과 '가을메들리' 2곡의 포크송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서늘하면서도 청명한 음색의 '찔레꽃'과 '가을메들리'는 가을 시즌송으로 지금도 사랑받고 있다.
1981년 발매한 앨범<반지/스텐카라친>의 수록곡이자 자신의 최대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목로주점'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 노래는 싱어송라이터로서 그녀의 뛰어난 재능을 완벽하게 증명하는 노래였다. 대학가 주변에서 가볍게 마실 수 있는 학사주점들이 인기를 끌던 무렵이라 경쾌한 컨트리풍의 멜로디와 꾸밈없는 가사가 인상적인 이 노래는 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모았다.
수록곡 중 '드높은 사랑'은 브론디(Blondie)가 1981년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The Tide is High'가 원곡이다.
또한 록 오페라 <에비타(Evita)>의 주제곡 'Don't Cry For Me, Argentina'를 '설워마오 조국이여'로 번안해 불렀다.
이 앨범에는 1980년대 대학가의 모습을 담은 '목로주점', '상아탑'과 함께 '성연아 일루와', '아가와 기도', '5월' 등 담백한 정서의 예전 포크송도 함께 실었다. 오랜만의 복귀작인 이 앨범에서는 일관되고 선명한 주제 아래 노래를 묶기보다, 다양한 곡을 선보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당시에는 드물게 일본인 야나기하라 야스시가 엔지니어를 맡아 관악과 현악 녹음을 무리 없이 담아냈다. 녹색을 주조색으로 한 감각적인 사진과 서체 등 스타일리시한 재킷 디자인은 이연실이 직접 맡았다.
1983년 2월 이태원의 '솔개'를 만든 작곡가 윤명환과 손을 잡고 10번째 앨범에서 '그이', '문을 닫고', '겨울'등을 발표했다.
1985년 그룹사운드 ‘검은바비와 호랑나비’의 키보디스트였던 김영균과 결혼해 가정을 이룬 이연실은 1985년 5월 남편인 김영균과 함께 12번째 앨범에서 '잠실 야구장', '어떤 약속'를 발표했으며 1989년 4월 그녀의 18년 음악인생을 결산하는 앨범인 13번째 앨범<고운노래 모음 1집>에서 '역', '찔레꽃', '비'등을 발표했다. 13번째 앨범<고운노래 모음 1집>과 14번째 앨범인 <고운노래모음 2집>등 결산과 출발을 의미하는 2장의 앨범을 4월에 동시에 발표하게 된다. 그중 14번째 앨범 수로곡인 '노랑 민들레'는 겨울공화국의 민중서정시인이자 평민당 국회의원을 지낸 양성우씨의 서정시에 이연실이 곡을 만든 것으로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희생된 넋들을 기리는 일종의 진혼곡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가수 활동을 이어나갔던 이연실은 1990년대 중반 자식을 잃은 슬픔과 이어진 가정불화로 남편과 결별한 것으로 알려진 그녀는 어느 날 홀연히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일설에 의하면 이연실은 그 뒤로 방송국의 섭외에 응하지 않는 것은 물론, 2000년대 들어 유행처럼 번진 ‘7080 콘서트’류의 섭외에도 일절 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통기타 가수로 가요계에서 유일하게 그의 근황을 알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후배 남궁옥분조차도 쉽게 만나지 못한다고 했다고 한다. 역시 남궁옥분은 올 여름에 어렵게 전화번호를 입수해 통화한 뒤 딱 한번 뵌 적 있다면서 건강하게 잘 지내신다고 전해지고 있다. 남궁옥분은 또 한 곳에 정착하신 이후 한번도 다른 곳으로 이사한 적이 없고, 공식적으로 가수활동만 하지 않을 뿐 유쾌한 모습 그대로다고 말했다.
'가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를 부른 배따라기 (1) | 2026.07.16 |
|---|---|
| '엽서'를 부른 미모의 가수 정윤선 (0) | 2026.07.15 |
| 어디쯤 가고 있을까를 부른 가수 전영 (0) | 2026.07.13 |
| '백지로 보낸 편지' 의 가수 김태정 (0) | 2026.07.10 |
| 드라마 주제곡 '사랑도 미움도' 를 부른 가수 권은경 (1) | 2026.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