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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음악

우리나라에서 인기있었던 칸소네(canzone) 번안곡 (60년대~70년대) 2부

Vincenzo Pastorelli

 

6. Volevo un gatto Nero(Vincenza Pastorelli, 1969) ⇨ 검은 고양이 네로(1970)/박혜령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1959년부터 시작된 12살 이하의 어린이들만 대상으로 하는 "제키노 도로"라는 콩쿠르 형식의 칸초네 페스티발이 있었는데, 우승곡과 입상곡 18곡을 선정해서 음반으로 만들어 유럽 전역으로 배급하고 있었다. 1969년 제11회 대회에서는 비록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3위로 입상했으며 네살의 Vincenzo Pastorelli가 탱고리듬의 'Volevo un catto nero' 노래를 깜찍하게 불러 어마 어마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노래를 번안곡으로 만들었는데 여섯살 박혜령이었다. 1970년도에 드디어 한국판 검은 고양이 네로가 출반되었고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7. Volano le Rondini (Giglioda Cinquetti, 1969) ⇨ 내 마음 제비처럼/물레방아

1964년에 산레모 가요제에서 'Non Ho L'eta'란 곡으로 당당히 우승 16세의 나이에 스타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1974년 가수로써는 유일하게 이탈리아의 국위를 떨친 공로자에게만 주는 최고의 상인 누메로 우노상을 받기도한 그녀는 1964년 발표한 Non Ho L'eta가 10년동안 전세계에 1000만장 이상 판매하며 이탈리아의 국위를 선양했다고 해서 준 상이었다.


이곡은 77년 혼성듀엣 물레방아가 "내마음 제비처럼" 이란곡으로 번안하여여 불렀고 물레방아 멤버였던 백영규씨가 79년 다시 솔로 앨범을발표하며 재 리메이크 하였다. 


 

 

 

 

8. Il cuore e uno zingaro (Nada, Nicola Di Bari, 1971) ⇨ 마음은 집시/ 김추자 

 

<마음은 집시(Il cuore è uno zingaro)>는 1971년에 개최된 제21회 산레모 가요제(Sanremo Music Festival)에서 1위(우승)를 한 곡이며, 노래는 이탈리아 출신의 남녀가수인 '니콜라 디 바리(Nicola Di Bari, 1940-)'와 '나다(Nada, 1953-)'가 했다. 
이 곡의 가사 역시 같은 해 준우승곡인 "케세라(Che sara)"의 가사를 썼던 '프랑코 미글리아치(Franco Migliacci)'가 썼고, 작곡은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재즈 피아니스트인 '클라우디오 마토네(Claudio Mattone, 1943-)'가 담당하였다. 


이 곡은 사랑했던 연인이 떠나간 후 상처받은 마음을 1년 후에 다시 돌아 온 그 연인에게 같은 방법으로 되갚는 아이러니한 사랑 이야기이며, 이탈리아 칸초네에서만 느낄 수 있음직한 아름다운 선율에 '니콜라 디 바리'와 '나다' 두 가수 모두 호소력있는 창법으로 잘 부름으로써 심사위원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니콜라 디 바리'는 이탈리아 남부 "자포네타(Zapponeta)"에서 농부의 여덟번째 아들로 태어나 여러가지 직업을 전전한뒤 음반회사의 프레스 공을 거쳐 1964년 가수테스트에 합격, 다음 해 열린 산레모 페스티벌에서 <청춘을 사랑하자(Amici mieri)>를 부르고 입상하여 본격적인 가수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이 곡으로 우승한 후 그 다음 해에도 <무지개가 피던 날(I giorni dell'arcobaleno)>로 산레모 가요제에서만 2년 연속으로 우승, 이탈리아 가요계에서 부동의 거목이 되었으며, '나다'는 1969년 산레모 가요제에 15세의 나이로 데뷔하여 71년 2년만에 이 곡으로 우승을 하고, 그 다음해인 1972년에는 <다이아몬드의 왕(Il re di denari)>으로 동 가요제에서 3위를 차지 함으로써 가수로서의 성공의 길을 걷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김추자, 정훈희,이용복등 여러가수가 번안하여 불렀다.

 

 

 

 

9. 4/3/1943 (Lucio Dalla, 1971) ⇨ 1943년 3월 4일 생(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이용복 

<4 Marzo 1943(1943년 3월 4일생)>은 1971년에 열린 제 21회 "산레모 가요제(Sanremo Music Festival 1971)"에서 3위에 입상한 곡이며, 노래는 이탈리아 볼로냐 출신의 젊은 싱어송라이터(Singer-Songwriter)이자 가수인 루치오 달라((Lucio Dalla, 1943-2012)와 이탈리아 팝밴드 그룹인 '에뀌페 84(Equipe 84)'가 했다.


'파울라 팔로티노(Paola Pallottino, 1939-)'가 가사를 쓰고, '루치오 달라'가 작곡한 이 곡은 '루치오 달라'의 자서전적인 이야기를 노래에 담은 곡인데, 실제로 곡의 제목인 <4 Marzo 1943(1943년 3월 4일생)>은 루치오 달라의 출생년월일과 동일하며, 가사 속에 나오는 "아기예수(Gesu bambino)"도 소년 시절에 루치오 달라에게 붙여졌던 별명이라고 한다.
루치오 달라는 1960년대 중반에 클라리넷 연주자로 음악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이 곡은 그의 첫 히트곡이자 그의 이름을 가요계에 널리 알린 곡이 되었다.
이탈리아 의 전설적인 오페라 가수인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를 흠모하여 1986년에 발표한 <카루소(Caruso)>는 전세계적인 슈퍼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는데, 테너가수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른 <카루소(Caruso)>는 무려 1천만장 가까이 판매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이 곡은 산레모 가요제에서 입상된지 얼마 되지않은 1971년 4월경에 음반으로 출시되어 팝송 팬들에게 크게 인기를 모은 가운데, 같은 해에 이용복이 이곡을 번안하여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함으로써 외국의 유명 히트곡이 이후 대대적으로 번안가요로 등장하는 계기를 마련한 곡 중 한곡이다. 

 

 

 

 

 

 

10. Vagabondo (Gianni Morandi, 1972) ⇨ 방랑자/박인희

‘vagabondo’는 이탈리아어로 ‘방랑하는’, ‘방랑자의’라는 뜻으로 이 곡은 1970년 발표된 ‘Gianni 7’에 수록됐다.
지아니 모란디는 1963년 데뷔했으며 1969년 이탈리아의 대표 음악 경연인 칸초니시마 페스티벌(Canzonissima Festival)에서 우승하며 세계적 가수로 발돋움했다. 이후 1970년 유러비전 송 콘테스트(Eurovivion Song Contest)에서 ’Occhi di Ragazza'를 히트시키고, 1987년 산레모 페스티벌(Festival of Sanremo)에서 우승하였다. 


니콜라 디 바리(Nicola Di Bari) 역시 ‘Vagabondo’로 사랑 받았는데 지아니 모란디와 같은 1963년에 데뷔한 그는, 칸초니시마 페스티벌, 산레모 페스티벌,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등 지아니 모란디가 주목 받은 음악 경연에서 역시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지아니가 ‘Vagabondo’를 발표한 같은 해, 1970년 작 ‘Nicola Di Bari’에 수록된 니콜라 디 바리의 ‘Vagabondo’는 지아니의 곡보다 감성적인 매력이 어필하고 있다.

1976년 앨범 ‘박인희 고운노래모음Vol.3’의 타이틀곡으로 수록된 <방랑자>는 박인희의 대표곡중 하나이다.
이정선이 편곡을 맡아 완성도를 높인 이 곡은 박인희의 맑고 고운 목소리가 원곡보다 훨씬 더 매력적으로 들린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