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939년에 결성된 '저고리시스터즈'가 그 주인공입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인 그 당시 걸그룹이라 믿기지 않죠? 물론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걸그룹과는 좀 다른면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레코드사의 기획으로 꾸며진 최초의 대중적인 음악을 하는 중창단인것은 동일합니다.

'저고리시스터즈'는 1933년 문을연 OK레코드사의 기획 작품입니다. 당시 OK레코드는 <타양살이>의 '고복수'와 <목포의 눈물>의 이난영을 히트시킨 기획사 겸 레코드회사로 잘 알려있었으며 고복수, 손목인, 이난영, 김정구, 남인수, 이화자, 장세정, 이인권, 조명암, 박향림 등이 오케레코드에서 활동하였습니다. 1935년 발표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은 전국적인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크게 흥행하는 등 인기를 얻었습니다.

'저고리시스터즈'는 이난영의 남편이자 작곡가겸 가수였던 김해송의 아이디어로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였던 이난영을 앞세워 '저고리 시스터즈'를 만들게 됩니다.
이난영, 장세정, 박향림, 이화자등 4명의 멤버로 구성된 '저고리시스터즈' 는 리더였던 이난영과 장세정 두사람만이 고정된 멤버로 활동하였고 나머지 두 멤버는 고정되 않고 여러 사람들이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고 합니다.

이난영은 <목포의 눈물>로 한국 가요계의 한 획을 그었던 가수였으며 <오빠는 풍각쟁이야>를 부른 박향림과 <연락선은 떠난다>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장세정, <화류춘몽>으로 잘 알려진 민요가수였던 이화자로 구성되었습니다. 이후 멤버로 들어왔던 이준희는 일본'쇼쿠치'악단출신이었으며, 김능자와 홍청자는 다카라즈카 가극단 출신이었습니다. 홍청자는 1940년에 다카라즈카 가극단을 퇴단하면서 그룹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들 멤버의 상당수는 '조선악극단'의 멤버로서 중복활동을 하였다.

정식앨범 한장 내지않고 공연 활동만 하였던 '저고리시스터즈'는 왜 저리고시스터즈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요?
이들이 활동했던 시기는 일제 시대였기 때문에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하는 차원에서 무대의상으로 저고리를 입고 족두리를 쓰고 나왔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고합니다.
'저고리시스터즈'는당시 무대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던 아트랙션이었는데, 사전적의미로 끌어당긴다는 뜻을 지닌 아트랙션(attraction)은 당시 신문에도 이 용어가 그대로 쓰였으며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노래나 춤등 흥행요소가 있는 공연물을 뜻합니다.

1940년 3월 23일, 동아일보 (석간)에선 ‘오케그랜드쇼’에 출연하는 이들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고리 시스터. 자주 끝동을 놓고 거기에 금색 수(壽) 복(福)의 글자를 박은 저고리를 입은 처녀들을 볼 때에 우리 의상 아니 조선의 정서가 거기에 고히 잠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서를 담은 악극자매단(樂劇姉妹團)을 이름 지어 “저고리 씨스터”라고 했다. 이 자매단의 무대 등장은 만도(滿都)의 인기를 독차지 할 것이다.
당시 가수들의 인기는 매우 높았는데 현재 가수들 못지않게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거리의 꾀꼬리요, 거리의 꽃으로 이 땅을 꾸미는 훌륭한 민중음악가― 그는 레코드계의 가수들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천재를 찾아냅시다. 당신께서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가수의 이름을 남녀별로 적어서 우표를 붙여 보내주세요." 1934년 11월, 잡지 '삼천리'에 실린 광고입니다.
당시 투표의 반응은 뜨거웠는데, 전국에서 1만장이 넘는 편지가 잡지사로 몰렸습니다. 1935년 10월 발표된 최종 투표 결과 여자 인기 가수는 왕수복(1903표), 선우일선(1166표), 이난영(873표) 순이었고, 남자 가수는 채규엽(1844표), 김용환(1335표), 고복수(674표) 순이었습니다. 당시 왕수복은 정오에 평양에서 공연한 뒤 비행기를 타고 경성(서울)에 내려 다시 청중 앞에 설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렸다고 합니다.
열성 팬이 스타를 쫓아다니는 모습은 당시에도 낯선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음반사로 오는 팬레터가 한 달에 수백 장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팬이 편지를 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를 직접 찾아가는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당시 대중가수들은 일제 강점기에 힘들게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많은 위안을 주었으며 저고리시스터즈 역시 지금의 걸그룹 못지않게 노래와 춤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공연활동을 하였고 큰 인기를 끌었으나 광복이후에는 해체하고 말았습니다.

해방이후 2기 저고리 시스터즈로 다시 활동을 하였는데 1기 멤버였던 이난영, 장세정과 새로운 멤버로 신카나리아, 옥잠화, 나성녀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당시 KPK악극단에는 속해있던 핵심 멤버 이난영을 비롯하여 장세정, 홍청자도 합류한 점으로 미뤄 이들을 2기 저고리시스터로 보고있습니다. 2기 멤버 중 인지도가 높은 가수로는 신카나리아와 백설희이가 있으며 2기 역시도 음반이 확인된 적은 없습니다.

KPK악극단은 김해송이 이철사장이 별세하면서 오케레코드 산하에 있던 조선악극단의 멤버들을 모아 만든 극단입니다. 이들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부터 1950년 전쟁 전까지 가장 활발하게 활동 하였습니다. 김해송은 전쟁으로 인해서 생사가 불분명해졌는데 KPK악극단의 후배가 밀고해서 김해송은 납북되었으며 얼마안가 죽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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