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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음악

1960년대 팝음악에 대하여 2부

1960년대 초반 미국 서부지역에서는 서프 뮤직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으며 반대쪽인 동부지역에서는 포크음악이 서서히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포크송에서 벗어나1940년대 중반부터 피트 시거와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에 의해 저항가요의 형태로 발전된 포크 음악은 60년대 들어 진보적인 백인 대학생들에게 어필하면서 새로운 호소력을 발휘했다. 그대표적인 가수는 밥 딜런(Bob Dylan, 본명은 로버트 짐머만)으로 포크 음악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포크의 혁신자였다.

 

밥 딜런

 

밥 딜런이 처음부터 포크의 원형을 만들어내지는 않았다. 딜런은 우디 거스리의 음악에서 모범을 찾았고, 현대적인 포크 음악을 만들어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1961년 전통적인 멜로디에 근거한 셀프 타이틀 앨범을 낸 이후 밥 딜런은 곧 자신만의 언어와 음악을 만들어냈다. 'Blowin' In The Wind'이라는 포크 명곡이 수록된 [Freewheelin'](1962) 등의 걸작 앨범이 그렇게 탄생했다.

자작곡인 〈Blowin' in the Wind〉은 피터, 폴 앤 메리가 불러 빌보트 차트 2위에 올랐으며 그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었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와 소련 시인 예브게니 옙투셴코와 비교 평가하는 글을 실었다. 이 노래는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히피들의 혁명가가 되었다. 음반의 성공을 통해 당시 활발했던 사회적 저항 운동의 상징적인 음악가가 되었으며, 특히 잭 케루악, 앨런 긴즈버그 등 비트닉 작가들의 영향을 받은 그의 시적인 가사는 대중음악에서의 가사의 수준을 끌어 올렸다.

그가 기타와 하모니카 단 두개의 악기와 비음 섞인 목소리로 읊조리듯 노래했던 그러나 그 단순한 음악 속에서도 깊은 사상과 냉철한 현실 인식을 보여주면서 마침내 그는 음악을 문학의 경지에 끌어올렸다.

 

 

 

 

이전에 활동했던 다른 포크 가수들과 비교했을 때 밥 딜런의 가사는 보다 풍자적이고 시적이었다. 운율과 의미 둘 다를 완벽하게 구현한 시인이자 사상가였다. 또한 그의 텍스트들은 미국 사회에 대해 저항의 뜻을 분명히 했고, 그는 정치적이 될 것을 주장했다. 밥 딜런의 프로테스트 포크는 환영 받았지만 모든 대중들이 그의 뜻에 동조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공은 존 바에즈, 필 오크스 등 여러 포크 가수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싱어송라이터들에게 밥 딜런의 존재는 공룡과도 같았다. 소니 앤 셰어, 버즈, 더 밴드, 러빙 스푼풀, 터틀즈, 도노반, 사이먼 앤 가펑클 그리고 헤비 메탈 사운드를 제시한 지미 헨드릭스까지 모두 밥 딜런의 세례를 받은 뮤지션들이다.

자신이 의도치도 않았던 저항 가수로서의 굴레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딜런은 언론과 자주 마찰을 일으키게 되며, 당시 비틀즈를 위시로 한 브리티시 인베이전 밴드들의 일렉트릭 사운드에 자극을 받아 정통 어쿠스틱 포크에서 일렉트릭 사운드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패션 스타일 또한 당시 런던에서 유행하던 모즈룩의 영향을 받게 된다. 1971년 그는 이렇게 술회한 바 있다.

“ 그들(비틀즈)은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코드는 정말 도에 지나친 것이었지만 하모니가 그것을 타당하게끔 했다. 그러나 맹세하건데 난 정말 그들에게 빠졌다. 모두들 그들이 어린 10대를 위한 광대이며 곧 사라질 것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내겐 명확했다. 그들이 지속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난 그들이 음악이 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내 머리 속에는 비틀즈가 전부였다. ”

Bob Dylan - Like A Rolling Stone (Live at Newport 1965)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The Newport Folk Festival)에서 록 밴드 폴 버터필드 블루스 밴드와 키보디스트 알 쿠퍼를 대동하고 일렉트릭 사운드를 선보인 사건은 수많은 대중과 포크 팬들의 야유와 반발을 불러 일으키지만, 딜런은 자신의 음악적 전환을 확고하게 이어갔으며 이를 통해 포크 록이라는 새로운 음악적 영역을 창조하고 발전시켰다. 이 시기의 음반으로는 《Bringing It All Back Home》(1965), 《Highway 61 Revisited》(1965), 《Blonde On Blonde》(1966)가 있다. 대표곡으로는 'Like a Rolling Stone'이 있다.

포크락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 중반, 밴드 버즈(Byrds)가 하던 음악을 최초로 ‘포크락’이라 명명하기 시작하면서 보편화되었고 밥 딜런(Bob Dylan)이 자신의 음반에 일렉트릭 사운드를 추가하면서 유명해졌다. 하지만 밥 딜런의 곡을 리메이크한 버즈의 ‘Mr. Tambourine Man’이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면서 포크락은 주류, 비주류를 막론하고 미국시장에서 하나의 주요쟝르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California Dreaming’으로 잘 알려진 마마스 앤 파파스(The Mamas & Papas),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포크락에 접목한 버팔로 스프링필드(Buffalo Springfield) 등이 미국을 대표했던 포크락 밴드라면 영국에는 페어포트 컨벤션(Fairport Convention), 펜탕글(Pentangle), 스틸아이 스팬(Steeleye Span), 스트롭스(Strawbs)등이 대표적인 포크락 아티스트라고 할수 있다.

 

The Mamas & The Papas - California Dreamin'

 

밥 딜런 류의 정치적 포크와는 달리 편안하고 달콤한 상업적 포크 음악도 그 이전부터 동시대까지 크게 사랑 받았다. 킹스턴 트리오(Kingston Trio)가 포크송 'Tom Dooley'(1958)으로 거대한 성공을 거두었고, 비슷한 성향의 3인조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And Mary)도 1963년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이노래 역시 킹스턴트리오의 곡으로 피터폴앤메리의 재발매 히트곡), ‘If I Had A Hammer’ 등으로 큰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국내에서도 'puff, the magic dragon', '500miles'등의 곡들이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그룹들의 음악은 밥 딜런의 그것보다 도시적인 팝 음악의 전통에 보다 기대고 있었고, 저항색채가 훨씬 덜했다. 노래 부르기 스타일도 훨씬 부드러웠으며, 하모니는 매끄럽고 전문적이었다. 그러나 피터 폴 앤 메리가 1963년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를 녹음하면서 포크의 두 진영이 함께 포크 리바이벌을 이끌게 되었다.

 

Peter, Paul & Mary - Puff The Magic Dragon (Live 1965)

 


소울 음악 (Soul Music)은 재즈 본래의 정신을 "Soul (영혼)"이라는 말로 표현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소울이 의미하는 바는 블루스의 정신이며, 또 직접적으로 나타난 것으로는 흑인의 교회 음악, 가스펠 등의 영향을 가끔 볼 수 있다.

 

1950년대까지 흑인음악은 블루스를 거쳐 두웝 사운드를 유행시켰고 무엇보다 로큰롤을 파생시켰다. 하지만 미국 백인 자본의 철저한 흑백분리 고수 원칙과 인종차별 때문에 흑인가수들은 음반 한 장 제대로 내기 힘들었다. 그러나 ’60년대부터 흑인음악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위한 수단으로서 그리고 흑인들의 주체성을 찾기 위한 투쟁의 수단으로 소울 음악이 존재했으며, 소울이란 말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본질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소울 음악은 단지 양식뿐 아니라 신념이었으며 귀속의식, 잠재력, 자존심의 회복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따라서 소울 음악이 미국 내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흑인들의 인권 운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였다.미국 남쪽 지방에 거주하던 시골 흑인 노동자들이 동부, 서부, 북부 등 미국 전역으로 이주했던 기차의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그 시대의 흑인들이 북쪽으로 이주하여 공장 노동자 생활을 하게 됨에 따라 그들이 즐기던 음악이 세련된 도시 음악인 재즈 (Jazz)라는 음악과 융합을 이루게 되어 레이스 뮤직(Race Music)이라 불리는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새롭게 생겨난 음악은 리듬 앤 블루스 (Rhythm & Blues)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아레사 프랭클린

 

R&B는 이를 즐기는 백인과 흑인으로 나뉘게 되면서 더 많이 발전하게 된다. 백인들만을 위한 로큰롤 (Rock'n Roll)과 다른 하나는 흑인들만을 위한 소울 (Soul)이다. 소울의 음악적 특징은 록이나 발라드처럼 절정 부분에서의 호흡법보다는 계속적으로 발생되는 호흡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해결하느냐에 따라 음악이 전하는 느낌이 다르다.

 

Ray Charles

 

그 중심에는 레이 찰스(Ray Charles),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 샘 쿡(Sam Cook) 등의 걸출한 가수들이 있었으며, [모타운], [애틀랜틱]과 같은 흑인 전문 레이블이 든든히 뒤를 받쳐 주었다. 우선 레이 찰스, 아레사 프랭클린 등을 발굴했던 [애틀랜틱(Atlantic)] 레코드. [애틀랜틱]은 40년대 중반 터키계 미국인이었던 아메트(Ahmet), 네슈이 어테군(Nesui Ertegun) 형제가 재즈와 블루스를 위해 설립한 소규모 레이블이었다. 하지만 작곡자 겸 프로듀서 제리 웩슬러(Jerry Wexler)를 영입한 이후 흑인음악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부터 대표적인 흑인음악 레이블이 되었다.

애틀랜틱 레코드의 대표가수는 레이 찰스(Ray Charles)로 1930년 조지아에서 태어난 그는 6살 때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었다. 다행히도 장애를 겪기 전 피아노를 배워 10대 후반까지 냇 킹 콜 풍의 가수이자 피아니스트로 일했다. 대부분의 소울 가수들이 교회 출신이지만 레이 찰스는 예외였다. 그러나 그는 R&B 스타일에 가스펠의 요소들을 혼합했다.

 

Ray Charles - Georgia On My Mind (Live)

 

레이 찰스는 1959년 ‘What’d I Say’의 히트로 백인들에게 인정 받은 첫 번째 흑인가수가 되었는데, 그 곡에서 보면 리드 보컬에 답하는 가스펠 스타일의 ‘주고 받기(call and response)’를 들을 수 있다. 특히 레이 찰스가 다른 소울 가수들과 구별되는 뛰어난 재능은 컨트리, 리듬 앤 블루스, 재즈를 가스펠과 접목시켰다는 점이다. 그의 밴드 편곡은 컨트리와 블루스적인 요소들을 혼합했고, 그의 피아노 연주는 가스펠에서 영향 받았다.

 

Ray Charles - Hit the road Jack!

 

그의 명곡으로는 "Georgia on My Mind"(1960년)와 "I Can't Stop Loving You"(1962년에 녹음)이 있다. 그밖의 히트곡들로는 "I Got a Woman"(1955년), "What'd I Say"(1959년), "Hit the Road Jack"(1961년), "Busted" (1963년), "Crying Time"(1966년), "I'll Be Good to You"(1990년)과 "A Song For You"(1993년) 등이 있다.

 

소울뮤직의 대부라 일컬어지는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은 야성적이고 독특한 무대매너 때문에 ‘미스터 다이너마이트’라는 별명을 얻은 소울의 혁신자였다. ‘소울 브라더 넘버 원’이고도 불리는 그는 침례 교회에서 가스펠을 배웠고 50년대 중반 스와니스(Swaness)라는 가스펠 그룹에서 활동했다.

 

제임스 브라운은 가스펠을 통해 세속적인 주제를 노래했으며, 극적이고 정력적인 발성으로 무대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듯 라이브 공연에 몰입했다. 1963년도의 전설적인 음반 [Live At The Apollo]는 그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공연 실황이다.

 

또한 그는 ‘Out Of Sight’(1964), ‘Papa’s Got A Brand New Bag’ 같은 곡에서 보듯이 아프리카 토속의 폴리 리듬과 멜로디에 근거한 새로운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그것은 바로 펑크(funk)였다. 제임스 브라운은 소울과 펑크(funk) 무브먼트에 둘 다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제임스 브라운의 히트곡으로는 'Papa 's Got a Brand New Bag', ' I Got You (I Feel Good)', ' It 's a Man 's Man 's Man 's World'와 같은 싱글이 있다.

 

James Brown - I Got You (I Feel Good)

샘 쿡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로 '소울의 왕'(King of soul)으로 알려져 있다.

1957년과 1964년까지 미국 톱 40에 30곡을 올렸으며, 사후 3곡을 더 올렸다. 대표곡은 'You Send Me', 'A Change Is Gonna Come', 'Cupid', 'Chain Gang', 'Wonderful World', 'Another Saturday Night', 'Twistin' the Night Away' 등이 있다. 당시의 흑인 음악가로서는 드물게도 가수, 작곡가로서의 경력을 한층 더 증진시키기 위해 음반사와 출반사를 세우기도 했다. 또, 민권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소울 음악계에서의 공헌은 아레사 프랭클린, 바비 워맥, 알 그린, 커티스 메이필드, 스티비 원더, 마빈 게이의 등장에 영향을 주었으며, 오티스 레딩과 제임스 브라운이 인기를 누리게 도왔다. "A Change Is Gonna Come" 등의 싱글을 발표하였다.

 

Sam Cooke – You Send Me

 

한편 자동차의 도시로 유명한 디트로이트에서는 또 하나의 흑인 사운드가 탄생하고 있었다. 베리 고디(Berry Gordy Jr.)가 창설한 [모타운(Motown)] 레코드였다. 베리 고디가 직접 발표한 ‘Reet Petite’와 재키 윌슨(Jacky Wilson)에게 준 ‘Lonely Teardrop’(1959)의 성공과 함께 [모타운]의 신화가 시작되었다. 그 곡들이 밀리언 셀러가 되자 베리 고디는 1959년 가족들에게 800달러를 빌려서 [모타운] 레코드를 설립했다. 잠시 자본난에 허덕이기도 했던 베리 고디는 스모키 로빈슨과 미라클스를 레이블의 주력 그룹으로 내세워 승승장구 해나가기 시작했다.

 

모타운 레코드는 말하자면 스타 양성소와도 같은 곳이었다. 작곡가와 안무가, 프로듀서들을 일류로 배치시켰으며, 소속 아티스트에게 말투, 행동, 걸음걸이까지 마치 자동차 공정처럼 하나에서 열까지 스타가 되는 모든 과정을 엄격하게 교육시켰다. 심지어 세련돼 보이도록 가수들에게 가난한 흑인들은 절대 걸칠 수 없던 턱시도, 중절모 등을 입게 했다. 베리 고디는 그렇게 만든 [모타운]의 세련된 이미지를 미국 주류에 어필할 수 있는 가스펠과 결합시켰다. 향후 베리 고디는 걸 그룹 사운드의 유행을 감지하고 걸 그룹들을 집중 양성해 마벨레츠, 마사 앤 더 반델라스, 그리고 다이애나 로스의 슈프림스(Supremes) 같은 슈퍼스타를 탄생시켰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