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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음악

1960년대 팝음악에 대하여 4부

 

Jimi Hendrix

 

 

현재까지도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손꼽히며 기타리스트들의 절대적인 존경을 받는 지미 헨드릭스는 1966년 애니멀즈의 베이시스트 채스 챈들러의 눈에띄어 영국으로 넘어가 3인조밴드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를 결성하였다. 그해 12월, 밴드의 첫 싱글 '헤이 조(Hey Joe)'가 발매되고 영국 차트 4위까지 오른다.

 

지미 헨드릭스는 정통의 블루스뿐 아니라 블루스와 록음악을 결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블루스 록 음악을 완성했다. 이는 에릭 클랩튼, 피터그린, 제프벡, 피트 타운젠드등의 기타리스트들을  위시로 한 영국 블루스 록 음악계에서는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Jimi Hendrix Hey Joe Live at the Monterey 1967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는 투어 도중 짬짬이 곡을 만들고 녹음을 하여 1967년 정규 앨범 'Are You Experienced' 을 발표, 영국 차트 2위까지 올랐으며 'Purple Haze', 'Foxy Lady', 'Red House', 'Fire' 등이 이 앨범의 대표적인 곡들이다. 그 해 6월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는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 출연하였으며 1969년, 급조한 밴드의 한계였는지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는 해체하게 된다. 그 후 헨드릭스는 솔로 활동을 하며 우드스탁 페스티벌에도 참여하였다.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해체 이후 흑인 멤버들로 구성된 친구였던 빌리 콕스(베이스)와 버디 마일스(드럼)와 함께 밴드 오브 집시스를 결성하며 보다 펑크와 소울 음악 등 흑인 음악에 경도된 음악을 들려주었다. 1970년 필모어 이스트에서 밴브 집시스의 데뷔 공연을 한다. 또 다시 전설이 시작될 것 같았으나, 같은 해 9월 18일 헨드릭스는 런던의 스마르칸트 호텔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겨우 27세였다.

 

The Jimi Hendrix Experience - Foxey Lady (Miami Pop 1968)

 

지미 헨드릭스는 그의 연주 주법이나 와우 페달, 옥타비아, 퍼즈 박스 등의 이펙터의 적절한 사용과 놀라운 퍼포먼스는 당시로서는 무척이나 혁신적이고 새로운 시도였던 만큼 '록이란 어떻게 연주하는가'에 꼭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또한 기타나 그 주법만이 아닌 음악계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준 사람이다. 

 

사이키델릭 록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노래는 모두 지미 헨드릭스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주 장르인 블루스, 사이키델릭 록 쪽은 말할 것도 없고, 재즈 뮤지션들도 그의 독특한 화성 방식이나 주법에 영향을 받았다. 사실상 후대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자는 장르를 불문하고 그의 발자취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미 헨드릭스는 틀림없이 록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주자다. 헨드릭스는 일렉트릭 기타의 범위와 어휘를 음악가가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영역으로 확장했다. 그의 무한한 추진력, 기술력, 그리고 창의적인 적용은 로큰롤의 소리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 로큰롤 명예의 전당

 

 

The Yardbirds

 

 

1963년 결성된 야드버즈는 팝음악 역사상 여러 중요한 뮤지션들이 참여했던 밴드로 크림, 지미 헨드릭스와 더불어 블루스가 미국에서 영국으로 넘어와 블루스 록, 하드 록, 헤비 메탈 등 다양한 파생 장르들이 만들어지는데 크게 기여한 밴드로 평가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3대 기타리스트라고 불리우는 에릭 클랩튼, 제프 벡, 지미 페이지가 모두 거쳐간 그룹으로 알려져있다.

 

1963년 에릭 클랩튼이 기타리스트로 참여하였으나 64년에 에릭 클랩튼이 블루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탈퇴하면서 제프 벡이 기타리스트로 영입되어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베이스의 폴 샘웰스미스가 탈퇴하자 1966년에 지미 페이지가 영입된다. 지미 페이지는 처음에는 베이스를 위해 가담했지만 후에 제프 벡과 함께 공동 리드기타 역할을 맡게 된다.

 

The Yardbirds - For Your Love (1965)

 

이후 야드버즈는 제프 벡 등의 탈퇴로 해체의 위기를 맞게 되고, 밴드를 남겨두고 싶었던 지미페이지가 로버트 플랜트 등을 불러 모아 'New Yardbirds' 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 밴드가 후에 전설로 불리게 되는 레드 제플린으로 레드 제플린이라는 이름은 더 후의 키스문이 지어 주었다.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은 영국의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로,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기타 연주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롤링 스톤》지가 선정한 100인의 가장 위대한 기타 연주자 4위, 100인의 위대한 음악가 53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존 메이올 & 더 블루스 브레이커스, 야드버즈와 함께 블루스 록의 창시자로 꼽히며, 크림과 함께 하드 록의 창시자로 꼽히기도 한다. 또한 그는 델타 블루스와 사이키델릭 록("Sunshine of Your Love"), 팝("Change the World"), 레게("I Shot the Sheriff") 등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에릭 클랩튼은 야드버즈와 블루스 브레이커스를 거처 최초의 록 수퍼밴드라고 평가받는 크림을 결성하게 되었다. 1966년 결성된 '크림(Cream)'은 데뷔 음반 《Fresh Cream》을 발표하여 큰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이후 영국과 미국에서 순회공연을 하면서 성공을 거두었으며 같은 해 2집 《Disraeli Gears》를 발표하여 즉흥 연주의 정수를 보여 주었다는 평을 받게 되었다.

 

 

Cream - Sunshine of Your Love

 

크림은 에릭 클랩튼 이외에도 최고의 연주실력을 가진 잭 브루스(베이스), 진저 베이커(드럼)가 멤버로 있던 밴드로 락 역사상 최초의 수퍼밴드로 얘기되는 밴드로 기타 - 베이스 - 드럼(이중 한 멤버가 보컬 겸업)을 연주하는 트리오 밴드로서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어 이후 이를 본딴 수많은 락 트리오들이 나타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cream

 

1968년에는 더블 앨범 《Wheels of Fire》가 발표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드러머 진저 베이커가 10분 동안 펼치는 솔로 드럼 연주가 인상적인 "Toad"를 비롯해 부커 T. 존스의 "Born Under a Bad Sign", 에릭 클랩튼과 조지 해리슨이 공동 작곡한 "Badge" 등은 하드 록 팬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팀의 내부 불화로 마지막 음반인 《Goodbye》를 끝으로 해체되어었고 1969년 컴필레이션 음반 《Best of Cream》이 발매되어 빌보드 앨범 차트 3위, 영국 음반 차트 6위 등을 기록하며 호응을 얻었으며, 1993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밴드 크림에선 잭 브루스와 에릭 클랩튼이 번갈아 보컬을 맡았지만 주로 잭 브루스가 중요한 보컬을 맡았다. 당시 크림의 음악은 락의 조류였던 사이키델릭 락을 선도하면서 몽롱하고 느릿하기만 한 사이키델릭이 아닌 꽉 짜여진 연주와 힘찬 기타 리프, 반복적이고 강렬한 리듬, 무거운 베이스를 깐 락 음악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크림은 이후 탄생하는 하드락과 헤비메탈의 연주측면에서의 방향성을 제시하게 되는데 "Sunshine of Your Love"와 "White Room"을 리프의 교과서라고 불리기도 한다.

 

Cream - White Room ( Farewell Concert 1968)

 

 

 

60년대 중반부터 태동되었던 락음악은 야드버즈, 크림, 지미 헨드릭스등을 거쳐 점차 강렬하면서도 다양한 음악으로 대중적인 인기를얻게되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