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3년 퀸은 첫앨범 [QUEEN]이 발매되고 평론가들로부터 꽤나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고 1974년에 그들의 세 번째 앨범 [Sheer Heart Attack]을 발매한후 상업적인 성공도 거두게 되었다. 이 앨범의 여덟 번째 트랙 “Stone Cold Crazy”는 스피드 메탈과 스래시 메탈의 최초의 예가 되었으며 이후에 메탈리카와 메가데스 등의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앨범의 대표곡은 “Killer Queen”으로 UK챠트 2위에 오르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
이듬해 1975년, 퀸은 4집 [A Night at the Opera]를 발매했고, 앨범의 싱글컷트된 6분에 달하는 대곡 “Bohemian Rhapsody”가 우여곡절 끝에 발매되어 영국 1위, 미국 빌보드 9위를 기록하며 퀸은 세계적인 밴드로 도약하게 된다.
1976년, 퀸은 5집 [A Day at the Races]를 발매하는데, 프레디 머큐리 작곡의 "Somebody to Love"가 히트하며 전작의 성공이 단순한 행운이 아니었음을 입증하게 된다. 6집 [News of the World]를 발매하고 "We Will Rock You"와 "We Are The Champions" 를 히트시킨 퀸은 펑크 록의 영향으로 여타 선두주자 밴드들이 주춤하는 사이 이 앨범의 히트에 힘입어 음악계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굳혀 갔다. 7집 앨범 [Jazz]는 프레디 작곡의 "Don't Stop Me Now"가 사후 재평가를 받으며 지금까지도 인기를 얻는 곡으로 남아있다.
1980년, 밴드는 8번째 정규 앨범 [The Game]을 발매하는데, 처음으로 신디사이저를 도입하고 팝-펑크(funk) 지향적인 사운드로 변화를 꾀한 앨범이었다. 그 결과 앨범이 빌보드 차트 1위에 등극하고, 최초로 남미에서 투어를 한 메이저 밴드가 되는 등 인기의 정점을 맞이한다.
싱글 "Another One Bites the Dust"와 엘비스 풍의 컨트리 곡인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두 곡도 빌보드 1위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프레디 머큐리의 가창력과 무대 매너는 이때 절정에 올랐다.
이 두 곡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섭렵해서 보여주던 퀸에게도 이질적이고 특히나 컨트리, 디스코의 영향을 받은 미국색이 강한 곡이었는데, 그런 이질적인 곡조차 미국인이 듣고 미국의 밴드인 줄 알고 열심히 틀어대 빌보드 Hot 100 1위까지 만들었다는 점에서 퀸의 장르 흡인력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1984년, 11번째 정규 앨범 [The Works] 를 발매했다. UK 앨범 차트 2위에 올랐고, 싱글 "Radio Ga Ga"가 19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며 퀸의 80년대 곡들 중 최다 히트곡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I Want To Break Free"(UK 3위), "It’s a Hard Life"(UK 7위)까지 무려 3곡이나 UK차트 10위 안으로 진입하며 최소한 유럽과 남미에서는 예전의 인기를 완벽하게 화복했다.
1991년에 발매된 14번째 앨범 [Innuendo]는 "Innuendo", "The Show Must Go On" 등의 명곡들이 포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퀸 전체 커리어에서도 손꼽히는 명반으로 뽑히기도 한다.(개인적으로도 최고로 생각하는 음반이기도 하다) 게다가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하지만 여전히 프레디의 건강 문제로 투어는 불가능했으며 투어는 커녕 공식 석상에도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좋은 떡밥을 낚아챈 언론이 가만 있지 않았고, 눈에 띄게 초췌해진 프레디 머큐리와 관련해 온갖 루머가 나돌게 된다.
그러던 1991년 11월 23일, 그 루머가 사실이 되었다. 결국 프레디 머큐리는 성명을 통해 에이즈 환자임을 인정했고, 24시간이 지나지 않아 사망하게 된다.
퀸은 하드 록(<Tie your mother down> 등), 프로그레시브 록(<The March Of The Black Queen>, <Innuendo> 등), 글램 록(<Killer Queen> 등), 팝(<Radio Ga Ga> 등), 잉글리시 뮤직홀, 포크송('39 등), 오페라(Bohemian Rhapsody 등), 로커빌리(<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등), 심지어 디스코(<I Want to Break Free> 등) 등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시도했다.
이는 전 멤버가 각기 다른 음악적 취향을 가진 작곡가였기에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이로 인해 팬덤이나 호의적인 평론가들에게는 록을 바탕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시도했던 것으로 평가받았던 반면에 비판적인 평단에서는 이도저도 아닌 잡탕 음악이라는 식의 비평을 들어야 했다.
퀸의 음악에서 가장 독특했던 요소 중 하나는 거대한 규모의 보컬 하모니였는데, 주로 프레디, 브라이언, 로저 세 명이 반복녹음한 것을 오버더빙 작업을 통해 흡사 합창단의 사운드처럼 만들었다. 덕분에 많은 곡들이 웅장한 스케일의 구성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 역시 의견이 갈려 화려한 스케일에 높은 점수를 준 평단이 있던 반면, 비판적인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과장된 음악일 뿐이고 라이브에서 온전한 재현이 불가능하다며 까내리곤 했다.
그들의 음악은 지나치게 하드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장르에 분포하고 있었다. 히트곡들은 강한 멜로디를 바탕으로 한 대중성을 갖추고 있었으며, 프런트맨 프레디 머큐리가 양성에게 모두 어필했기 때문에 다양한 연령, 성별의 팬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항상 투어의 영역을 넓혀나가면서 보다 여러 국가와 지역에서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1974년, 그룹 프리(Free) 출신의 보컬리스트 폴로저스(Paul Rodgers)가 만든 그룹 배드컴퍼니는 킹 크림슨 베이스 연주자 보즈 버렐(Boz Burrell), 모트 더 후플(Mott The Hoople)의 기타리스트 믹 랄프스(Mick Ralphs), 드러머 믹 랄프스(Mick Ralphs)로 결성되었다. 이들은 하드 록에 또다른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데뷔 앨범[Bad Company]를 발매했으며 앨범 수록곡중 “Can't Get Enough”, “Feel Like Making Love”등을 연속 히트시키며 정통 하드 록에 블루스 필을 섞어낸 독특한 탁월한 연주력과 음악성으로 브리티쉬 블루스 하드 록의 이정표를 세운 슈퍼밴드로 레드제플린의 레이블인 스완송(Swan Song)을 통해서 음반이 발매되었다.

요란한 무대 분장과 매력적인 하드록으로 대표되는 키스(Kiss)는 온갖 상상력을 동원한 독특하고 파격적인 무대는 키스 마니아들을 탄생시켰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다른 아티스트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1974년 발매된 데뷔앨범 [KISS], 같은해 발매된 [Hotter Than Hell]과 1975년 발매작인 [Dressed To Kill]을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에 걸쳐 발매했다. 그들은 라이브 메탈 앨범의 초기 모델이 되는 더블 라이브 앨범 [Alive!](75년)가 챠트 10위에 오르고 “Rock'N'Roll All Nite”가 싱글 차트 12위에 오르면서 키스는 로큰롤 수퍼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뒤이은 [Destroyer](76년)는 그룹의 첫 플래티넘 앨범이 되었으며, 피터 크리스의 강력한 발라드 ”Beth”를 톱 텐에 올렸다.
1979년앨범 [Dynasty]에서 디스코풍의 싱글 “I Was Made For Lovin' You' 를 빌보드 싱글 차트 11위에 올려다시 한번 플래티넘을 기록한 후 메멉들의 솔로 활동과 탈퇴등으로 부진을 격었으나 요란한 치장을 벗고 발매한 [Lick It Up](83년)을 발표, 이들의 변화에 대한 팬들의 호의적인 반응에 힘입어 4년만에 다시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한편 1969년 결성된 영국 헤비 메탈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는 두 기타리스트가 리드미컬한 리프를 연주하는 트윈리드기타를 소개하였다. 주다스 프리스트는 하드 록과 파워 메탈 음악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주다스 프리스트와 레인보우는 파워 메탈의 기초를 만들었다. 이들은 1980년 명반 British Steel이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하드 록 씬에서 또다른 중요 그룹인 반 에일렌은 1978년에 혜성같이 등장했다. 반 헤일렌의 음악은 키스, 에어로스미스, 퀸과는 다르게 기타리스트 에디 반 헤일렌의 기타 테크닉에 주로 근거하고 있었다. 앨범 Van Halen에 실린 노래 "Eruption"은 반 헤일렌의 테핑등 놀라운 테크닉적 요소를 보여주며 큰 영향력을 떨쳤다.
1979년, 고전적인 하드 록 음악과 떠오르는 헤비 메탈 음악의 차이는 오스트레일리아 밴드 AC/DC가 두 번째로 중대한 앨범 <Highway to Hell>을 들고 나타났을때 극명해졌다. AC/DC의 음악은 주로 리듬앤블루스와 1970년대 초의 하드 록 음악에 기초하고 있었고 그들 스스로 "헤비 메탈"이라는 딱지를 거부했다.
대조적으로 영국 밴드 모터헤드는 앨범《Overkill》을 내면서 스래시 메탈의 틀을 마련했다.
1977년 항공 사고로 리드 싱어 Ronnie Van Zant와 기타리스트 Steve Gaines가 사망하여 레너드 스키너드가 해산하였으며 1년 후 더 후의 드러머 키스 문이 클로메티아졸의 과용으로인해 32살의 나이로 잠자는 도중 사망했다. 미국의 디스코 음악과 영국의 펑크 록의 열풍이 시작되면서 하드 록은 경쟁에 맞부딪치게 되었다. 디스코는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펑크는 록 음악이 한때 지녔던 반항적인 역할을 가져가버린 것처럼 보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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