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램락에서 펑크음악으로...
글램락은 1960년대 후반 사이키델릭 록과 아트락의 흐름에서 탄생한 락의 장르중 하나로 다양한 음악적 영역을 아우르는 장르이다.

글램락의 가장 큰 특징은 음악보다도 비주얼적인 부분인데 글램락은 30년대 할리우드 스타일부터, 50년대 핀업걸의 섹스 어필 스타일, 문학적인 요소를 차용한 스타일, 공상 과학, 고대 미신까지 다양한 요소를 비주얼적으로 차용했으며 중성적이며 퇴폐적인 것이 특징이다.
초기 대표주자로는 티렉스(T.rex)의 마크 볼란과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를 들 수 있다. 1971년에 볼란은 티렉스(T.rex)를 조직하였으며, 번쩍거리는 장식을 한 의상과 화장을 한 그의 스타일은 대담하고 도발적인 것으로 보였지만 엄청난 선전효과를 가져왔다.
1971년에서 1973년의 기간에 이들은 ”Ride a White Swan”, “Get it On”, “Jeepster', 'Hot Love”를 위시한 히트 싱글을 연속적으로 발표하였다. 이들은 꿈꾸는 듯한 시적인 목소리에 신나는 전기악기의 사운드를 결합하여 쾌락주의와 섹스를 찬미하였다.
1970년대 초에 데뷔하여 오랫동안 변함 없는 영향력을 과시한 아티스트로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를 들 수 있다. 그는 가수 겸 작사,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로 영국의 대중가수들 중에서 사회적인 영향력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1969년에 앨범 [Space Oddity]를 발표하자마자 대성공을 거뒀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 "Space Oddity"가 싱글로 발매되었을 때는 마침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시기였고, UK 차트 5위 및 빌보드 15위까지 올라간다. 포크음악에 기초한 이곡은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의 시각에서 본 꿈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위는 당대 음악계에 센세이션을 선사하고자 했는데, 그 일환으로 그는 붉은 머리, 번쩍거리는 장식을 달고 화장을 하였으며 심지어 드레스까지 입는등 파격적인 의상을 통해 영국 음악계에 도전장을 내민다. 기본적으로는 티렉스의 영향을 받았고, 여기에 미국 로커 이기 팝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그 결과 나온 앨범이 바로 1972년에 나온 불후의 명작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이다.
신비한 대중스타에 관한 연속적인 노래인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는 비평가로부터 대중음악 최초의 포스트모던 음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앨범은 티렉스의 [Electric Warrior]와 함께 글램 록을 대표하는 음반으로 남았는데 이듬해까지 보위는 자신을 'Ziggy Stardust'라고 부르면서 활동한다.
1973-4년에 연출한 무대 공연에서 그는 물감을 칠한 얼굴에 화려하고 도발적인 의상을 입고 자신의 양성(兩性)성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어 물의를 일으켰다. 뒤이어 임박한 핵전쟁을 암시한 앨범 [Aladdin Sane](1974)를 발표하였다. 이듬해에는 실업, 파업, 인플레가 고조되면서 조지 오웰의 악몽 같은 미래를 그린 앨범 [Diamond Dogs](1975)를 발표하였다.
베를린 3부작이라고 불리우는 77년작 [Low], [Heroes], 79년작 [Lodger]에서는 독일의 크라우트록, 신디사이저, 일렉트로닉, 아트 록을 적절히 조합하면서 그의 음악적 능력을 모두 보여줬다고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보위의 음악적 전성기는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베를린 3부작이 예술적 성과를 이뤄냈다면 보위의 상업적 최전성기는 80년대에 찾아온다.

미국에서는 영국과 달리 두드러진 글램 록 아티스트는 많지 않았는데, 그 중에서 루 리드(Rou Reed)만이 미국 시장에서 글램 록을 성공시켰다. 루 리드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리더로 유명하다. 그는 미국 인디 음악의 대부이자, 20세기의 가장 독창적이고 영향력있는 록 뮤지션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데이빗 보위의 설득과 도움에 힘입어 72년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 첫 앨범의 실패후 두번째 앨범인 [Transformer]를 발포한다. 두왑과 로큰롤을 기조로 벨벳에서 선보였던 퇴폐적이면서 쓸쓸한 멜로디 감각을 되살려낸데다가, 이 앨범에서 프로듀서와 편곡, 백킹 보컬 등을 맡으며 큰 영향력을 행사한 데이빗 보위의 글램 록적인 세련미까지 어우러져서 뛰어난 명반으로 호평을 받게된다. 특히 나른하면서 감미로운 발라드인 "Perfect Day"와 도회적인 퇴폐미가 느껴지는 "Walk On The Wild Side"가 큰 사랑을 받았고, 이 두 곡은 오늘날까지도 루 리드의 대표곡으로 남아있다.
이 앨범은 차트 성적과 판매고로 보자면 벨벳 언더그라운드보다 훨씬 좋았다. 특히 글램록이 큰 인기였던 당시 유럽에선 적지 않은 인기를 누렸고, 티렉스와 데이빗 보위에 이은 또 하나의 글램록 스타 탄생이라는 식으로 대접을 받기도 했다.
글램 록은 70년대 후반 인기를 잃었지만 앞서 말한 글램락의 비주얼적인 특징들은 록 음악이 퍼포먼스 중심으로 발전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장르적으로는 펑크와 글램 메탈, 고딕 락의 발전에 기여했고 록 뮤지컬적인 부분의 발전 역시 기여했다.

영국의 펑크 록 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창립멤버들은 리드싱어에 자니 로튼(1956년생), 기타에 스티브 존스(1955년생), 베이스에 글렌 매트록(1956년생), 드럼에 폴 쿡(1956년생)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가죽재킷, 찢어진 옷, 안전핀, 나치표장, 자크, 클립, 장식 단추, 쇠사슬, 밝게 염색한 스파이크 모양의 머리 등으로 독특하고 도발적이면서 동시에 괴벽과 도착증세를 암시하였다.
섹스 피스톨즈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보수적인 음반 라벨로 유명한 EMI와 최초의 음반계약을 맺고 곧 데뷔 싱글판[Anarchy in the UK]을 발표하였다. 요란하고 원시적이며 적개심이 가득 찬 이들의 음악은 단순한 기타 독주, 반복 코드, 묵직하게 왜곡된 사운드, 도전적이고 갑작스런 결말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욕설과 거부가 뒤섞인 런던사투리로 격렬하게 노래를 불렀다.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사회자에게 욕설을 퍼붓는 행동으로 EMI로부터 해고당하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시 당국에서는 지역주민의 보호 차원에서 이들의 공연을 취소하였다.
섹스 피스톨즈의 싱글판[God Save the Queen]은 1977년 엘리자베스2세의 즉위 25주년에 대한 풍자곡이다. 팬들의 관심을 극대화하기 위해 코를 안전핀으로 뚫은 여왕의 모습을 광고에 이용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에 이들은 반사회적 행동과 폭력에 연루되어 다시 해고를 당하였다. 섹스 피스톨즈는 영국에서 5개의 싱글판과 1개의 앨범에 25곡만을 수록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반사회적 행동으로 인해 여러 앨범에서 약 50여 곡이 금지 곡으로 판정을 받았다.
이들이 등장하기 전 까지는 펑크 록은 그저 "별로 연주능력이 신통치 못한 뮤지션들의 개러지 음악"이라는 인식만 있었고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컬트적인 장르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들의 음반이 인기차트 정상에 오르고 온갖 화제를 몰고 다니면서 펑크록은 일반대중들에게도 정형화된 하나의 음악장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갈수록 장황한 허세와 기교 중심으로 흐르던 당시 70년대 록 음악계에 록의 단순하고 원초적인 근원을 다시 생각해 볼 자극을 준 충격파로서의 역할도 했다.
이들이 있었기에 펑크록이 더욱 널리 퍼질 수 있었고, 이들을 비롯한 펑크록은 심지어 이후의 헤비메탈에게도 영향을 줘서 NWOBHM과 스래쉬 메탈로 진화할 수 있었다. 훗날 주류 록 음악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그런지로 대표되는 얼터너티브 록이란 카테고리에도 펑크록은 롤모델같은 위상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들을 보면 록의 큰 흐름에서 이들의 영향력을 빼놓을 수는 없다.

1976년에 댐드, 더 클래쉬, 잼, 스트랭글러즈, 버즈콕스 등은 빠르고 생동감이 넘치는 소박한 사운드로 연주를 하였다. 대부분의 그룹들은 모두 남성이었으나, 수지, 밴쉬스, 엑스레이 스펙스를 포함한 몇몇 그룹들은 여성 가수들을 두었다. 슬리츠의 경우에는 멤버 전원이 여성이었다. 이를 계기로 남성 리드싱어를 위해 무대 뒤에서 노래를 부르는 여성의 역할에 변화가 일기 시작하였다.
상업적 성격이 강해지면서 펑크족이 추구하는 공동체정신이 희박해졌다. 1980년대 초반 ‘뉴웨이브’ 밴드들은 사실상 자신들만의 독창성을 상실하였다.
펑크음악에 대한 관심이 쇠퇴하면서 레게음악에 관심이 높아졌다. 초기의 펑크와 같이 레게음악은 보수당정부에 대한 상징적 도전이었으며, 국민전선의 극우적 인종주의에 대해서도거부감을 나타냈다. 여러 다인종 밴드들이 결성되어 팝과 레게의 대중적인 혼합곡(일명, 스카)을 연주하였다. 이 음악은 반인종주의를 주요 메시지로 삼았던 정치적 팝음악인 투톤(Two-Tone) 템포로 알려지게 되었다.

1979년에서 1982년의 기간에 설렉터, 스페셜, 비트, UB40과 같은 다인종으로 구성된 밴드들은 반대처리즘(anti-Thatcherism)의 도전적인 성명서를 발표하고 반인종주의 록(Rock Against Racism) 운동을 지지하기 위하여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의 무료공연을 가졌다. 이러한 시위운동은 흑인음악이 영국에 뿌리를 내리도록 도움을 주었다.
1976년에는 극우파 조직인 국민전선이 사용하는 전술의 실체를 대중들에게 똑바로 알리기 위하여 반인종주의 록이 사회주의 노동자당(Socialist Worker's Party)과 함께 결성되었다. 1985년 7월에 이와 유사한 성격의 아프리카를 위한 공연인 라이브 에이드(Live Aid) 쇼가 미국의 필라델피아와 영국의 런던에서 동시에 열렸다. 이 공연들은 기근구제기금을 모으기 위해 가수 밥 겔도프가 기획하였다.
To Be Continued....
'팝 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970년대 팝음악에 대하여 5부 (0) | 2025.09.06 |
|---|---|
| 1970년대 팝음악에 대하여 4부 (0) | 2025.09.05 |
| 1970년대 팝음악에 대하여 2부 (0) | 2025.09.03 |
| 1970년대 팝음악에 대하여 1부 (6) | 2025.08.29 |
| 1960년대 팝음악에 대하여 4부 (6) | 2025.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