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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대중가요의 역사 5부

1970년대 vol.1

 


1970년대는 한국 가요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한 시기로 사회적, 문화적 변화와 함께 다양한 음악 장르가 융합되며 한국 가요의 폭을 넓힌 시기이기도 하다. 록, 재즈, 블루스, 포크 등 다양한 외국 음악의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들이 등장하면서, 이들은 기존의 트로트나 발라드와는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였다.


특히 1960년대 중반이후부터 미국의 영향을 받아 인기를 얻고 있었던 포크송과 록음악이 주류음악으로 크게 부상했다. 1970, 71년 은희의 「꽃반지 끼고」, 라나에로스포 「사랑해」등의 포크사운드와 키보이스 「해변으로 가요」, 히식스 「초원의 빛」 등의 락음악이 음반 뿐만 아니라  급격히 보급된 TV 매체를 통해 크게 히트하면서, 대중가요계의 인기 판도를 뒤집으며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HE6


대중매체 뿐만아니라 명동과 종로(혹은 무교동)을 중심으로 한 가수들의 왕성한 라이브 무대 활동이 이루어졌으며 다운타운 문화로 일컬어지는 음악전문 다방 또한 새로운 문화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번안곡의 의존도가 높았던 60년대의 포크 음악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포크 음악이 추구 하는 사회성과 서정성을 담아내며 청년 문화의 선두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트로트 음악과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며 한국 대중가요를 질적 양적으로 성장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다.

 

 

꿈과 낭만, 희망과 자유를 노래했던 통기타음악은 광복 전후 태어난 세대들이 만들어낸 음악으로 이들은 기존과는 다른 문화를 갈구하고 있었다. 세대 간 경계를 가르며 대중음악사의 새로운 흐름을 이끈 통기타 음악은 싱어송라이터 시대를 열면서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대한 모순과 사회 부조리에 대항, 자신들의 의지를 노래에 담아냈다.

광복 이후 태어난 세대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우리나라 통기타음악, 즉 포크송은 ‘음악감상실 쎄시봉’에서 결성된 트윈폴리오가 그 출발점으로 보고있으며 1968년 2월, 송창식 윤형주에 의해 결성된 이 포크 듀오의 등장은 우리 대중음악계에 10~20대들만의 음악이 새롭게 탄생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대 간 경계를 그은 포크송 붐은 젊은이들 사이에 통기타가 유행하게 된 기폭제로 작용했다.

음악다방


1960년대 중반 서울시내 곳곳에는 음악 감상실이 성업했다. 당시 음악 감상실은 입장권을 사서 입장하면 안내 아가씨가 자리를 정해 주고 신청곡 용지와 차 한 잔을 제공했다. 틀어주는 음악을 감상하거나 음악을 신청하다 보면 중간에 가수들이 무대에 나와 노래를 하기도 했다.
서울 무교동의 쎄시봉은 통기타 음악의 전당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시낭송회와 전위적인 누드공연까지 벌어졌던 복합 문화공간이었다. . 조영남, 최영희, 트윈폴리오를 비롯해 시를 즐겨 낭송했던 이장희, 미국에서 귀국한 한대수, 김도향, 조동진 그리고 코믹한 노래를 주로 불렀던 박상규, 장우의 ‘코코브라더스’, 정광태 등이 쎄시봉 무대를 거친 인물들이다. 무교동 재개발로 인해 1969년 5월, 쎄시봉이 사라지기까지 이곳을 다녀간 젊은이들은 연인원 20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트윈폴리오


트윈폴리오는 처음 듀오가 아닌 트리오로 시작됐다. 음악감상실 ‘쎄시봉’에서 만나 ‘트리오 쎄시봉’이란 이름으로 결성된 이들 멤버는 송창식(멜로디), 윤형주(테너), 이익균(베이스). 47년생 동갑내기인 이들은 67년 9월, ‘트리오 세시봉’을 결성한 뒤 TBC-TV ‘한밤의 멜로디(임성기 PD)’에 출연, <하얀 손수건>과 <안개>를 부르며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트윈 폴리오 - 하얀 손수건

 


이후 방송가에서 ‘하얀 손수건’이 제법 히트할 무렵인 68년 1월31일, 멤버 이익균이 군에 입대하자 남은 둘은 듀오로 활동하며 이름을 트윈폴리오로 바꾼다.
1968년 12월 22일~23일, 양일간 드라마센터에서 ‘트윈폴리오 첫 리사이틀’이 진행되었는데 조영남, 최영희, 한대수 등이 찬조 출연해 민요와 동요, 캐럴등을 불렀다. 매회 관객석 6백석 매진에 2백여 명이 더 몰려들었다. 그러나 1년 뒤인 69년 12월, 트윈폴리오는 해체 선언과 함께 같은 장소에서 가진 고별리사이틀을 갖는다. 해체를 아쉬워하는 팬들에 의해 앙코르 공연까지 치러야 했을 정도였다. 

 

 

트윈 폴리오 - 웨딩케잌

 

 트윈폴리오가 해체한 이후 트윈폴리오 첫 독집음반이 나온다. 이 음반을 기획한 DJ 겸 작사가 지명길씨의 말을 들어보자.
“트윈폴리오 독집 음반은 69년도에 해체 되고 나서 발매됐죠. 물론 레코드회사에서도 처음엔 팀이 해체되었는데 음반을 만들어서 효과가 있겠느냐며 반대를 했죠. 하지만 옴니버스 음반에 한, 두 곡씩 들어갔던 곡 중에서 <하얀 손수건>이 매우 인기가 있었고 또한 이 팀은 앞으로도 전망이 있다고 설득해 결국 제작 동의를 받았어요. 팀이 해체된 후 음반이 나왔으니까 어떻게 보면 기념음반에 지나지 않지만 이 음반이 70년대 포크음악의 기폭제가 될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몰고 옵니다. 통기타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은 들어봐야 될 정도로.”
이 트윈폴리오 독집음반은 기존 옴니버스 음반에 수록된 <하얀 손수건> <에델바이스> <Let It Be Me> 등과 새롭게 레코딩한 <축제의 노래>, <웨딩케익> 등을 함께 수록해 발표했다. 송창식, 윤형주, 이들은 각각 솔로로 독립하며 싱어송라이터로 변신, 포크송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김민기와 양희은의 「아침이슬」과 송창식의 창작곡 「창밖에는 비오고요」, 윤형주의 신작 「라라라」로 인기를 얻으며, 「그리운 사람끼리」의 뚜아에무아, 「토요일 밤에」의 김세환, 「그건 너」의 이장희, 「아름다운 사람」의 서유석, 「새색시 시집가네」의 이연실, 「옛 사랑」의 4월과5월 등 주요 가수들이 1970년, 71년에 음반으로 첫 선을 보이면서 청년문화 바람을 탄 포크송은 대중가요계의 주류로 진입했고, 급기야 1974, 75년에는 어니언스의 「편지」, 송창식의 「한번쯤」, 이장희의 「한 잔의 추억」 등의 큰 히트가 보여주듯 트로트와 스탠더드팝을 밀어내고 대중가요계의 주도적 양식의 위상을 굳혔다.

 



뚜아에모아 -약속

 

박인희가 작사하고 이필원이 작곡한 뚜아에무아의 창작곡 '약속'은 음반으로 발표된 최초의 창작 포크송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1969년 기사에 발표한 노래 곡명이 확인되는 한대수와는 달리 이들은 1970년에야 기사가 나오고 음반도 1970년에 발매되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혼성 듀엣 전성시대를 열며 포크의 대중화에 기여했던 뚜아에무아의 이필원, 박인희는 한국 포크의 태동기에 창작곡을 발표한 중요 뮤지션이라고 할수 있다.

 

 

한대수 - 물좀주소

 

 

최초 포크송 논쟁의 마지막 주자는 1968년 장발을 휘날리며 귀국해 1969년 남산 드라마 센터 공연에서 창작 포크송 '행복의 나라'를 발표했던 한대수이다. 이 곡은 그 동안 녹음된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으나 1969년 녹음된 데모 마스터 테이프가 발견되면서 논란의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그의 첫 독집 음반은 군대에 다녀온 후인 1974년에야 발표됐다. 음반 발표 시기로는 가장 늦은 셈이다. 하지만 한대수는 가장 먼저 창작곡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한국 모던 포크의 창시자로 평가받아 온다.

 

 

한대수 -행복의 나라

 

 

김민기와 한대수는 주로 남녀 간의 사랑에 치우쳐있던 다른 자작곡가수들과는 차별적으로, 비판적 포크라고 불릴 수 있는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 김민기는 이성적이면서도 섬세한 태도로 세상의 어두운 면과 내면의 고통까지 포착하고 이를 단정하게 잘 정돈된 음악과 절제된 감정의 언어로 형상화했고, 한대수는 비문명적이고 자연친화적 태도, 자유에 대한 열망과 욕망에 대한 긍정 등 미국적인 자유주의의 태도를 포크록이라 할 수 있는 음악과 함께 보여주었다.

 

 

 

 

이장희는 뮤지션이자 방송인, 음반 제작자, 그리고 사업가로 다방면에 걸쳐 멀티플레이어로써의 재능을 과시한 1970년대 한국대중음악계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1973년 이장희와 강근식은 4인조 락밴드 동방의 빛을 결성했지만 음반 발표도 못해보고 해체의 위기에 직면했다. '그건 너', '촛불을 켜세요', '자정이 훨씬 넘었네' 등 그들이 만든 1970년대 명곡들에 대한 음반사들의 반응이 시큰둥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가운데 성음제작소 기술부장으로 근무하던 나현구의 지원으로 발표된 이장희 3집은 1973년 '가요음반 판매 베스트5'를 기록하며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1970년대 도시 젊은이의 생활을 속삭이듯 솔직하고 정감 어리게 표현했던 수록곡들의 가사와 음악적 스타일은 파격이었다. 특히 대화체의 직설적 어법의 가사를 담은 '그건 너'는 1970년대 젊은 세대의 마음을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솔로 독집으로 발표된  이 음반은 대중적으로 가장 각광받았던 포크락의 명반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장희는 가장 성공한 1세대 포크 싱어송라이터 중 한 명으로 가사에 언문일치를 도입한 최초의 토크 송인 데뷔곡 <겨울이야기>와 당시 도시 젊은이들의 일상을 정감 어리고 솔직하게 표현했던 <그건 너>와 같은 그의 포크송들은 당대 젊은이들의 연가였다.

 

 

 

 

이 시기 송창식은 여전히 많은 노래를 발표했지만 「한 번쯤」, 「피리 부는 사나이」 같은 부류만 텔레비전의 인기를 모았고, 서유석은 「가는 세월」 같은 중장년 감수성의 노래를 내놓았다. 반면 「여고졸업반」의 김인순, 「푸른 시절」의 김만수, 「긴 머리 소녀」의 둘다섯 등, 초기 포크에 비해 현격히 취향이 어려지고 속류화된 부류가 인기를 모았다. 초기 포크와 같은 깊이와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 생산되기는 했지만, 「섬소년」의 이정선이나 「시인의 마을」의 정태춘, 「작은 배」의 조동진처럼 텔레비전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언더그라운드 활동으로 내려앉는 양상을 보였다. 

 

 

 

 

초기 포크음악을 대표하는 가수인 송창식은 한국적 정서를 살린 음악과 개성 있는 가창력으로 인기를 모았다. 시대를 앞서간 수많은 곡들을 작사 작곡했다. 대중에게 어필하는 호소력이나 심미성과 작품성 모두를 만족시키고, 시적인 감수성을 담아낸 품격있는 가사와 가락의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작곡가이며, 더불어 빼어난 가창력을 가진 가수다. 

 

 

 


1971년에는 '창밖에는 비 오고요'를 발표하며 솔로 가수로 전향했다. 그러다가 1974년에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곡으로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다음 해인 1975년에도 '한 번쯤', '고래사냥', '왜 불러'라는 곡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어 가요 부문의 여러 가지 상을 받으면서 한동안 가요계를 장악했다. 1978년 한일 문화교류협회 초청으로 일본 공연을 갖기도 했으며 또 같은 해부터 연속 3년 동안 계속해서 MBC 10대 가수상을 받았다. 이때 발표된 곡으로는 '사랑이야', '토함산', '나의 기타 이야기' 등이 있다. 1980년에는 '가나다라'로 가요에 국악을 접목하는 시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며, 1986년 발표된 '참새의 하루'와 '담배가게 아가씨'를 더블 타이틀로 한 앨범 이후에는 신곡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송창식 - 상아의 노래

 

 

이외에도 '상아의 노래', '내 나라 내 겨레', '밤눈', '맨 처음 고백', '딩동댕 지난 여름', '우리는' 등의 히트곡이 있으며, '가위 바위 보', '병사의 향수', '새는', '푸르른 날' 등 명곡들이 즐비하다. 2015년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6부에 이어집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중음악의 이해』(김창남 외,한울,2012)
『아이돌』(이동연 외,이매진,2011)
『한국대중가요사』(이영미,민속원,2006)
『한국 팝의 고고학』 1·2(신현준 외,한길사,2005)

『식민지시대 대중가요 연구의 쟁점과 그 의미』(이영미,김시업 외)

『 근대의 노래와 아리랑』(소명출판,2009)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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