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mel (카멜)은 1971년 서리주 길퍼드에서 결성된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이다. 기타리스트 Andrew Latimer (앤드루 래티머)가 이끌었으며 14개의 스튜디오 음반과 14개의 싱글을 발매했고, 수많은 라이브 음반과 DVD를 발매했다. 국내에서도 꾸준한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는 영국 출신의 아트 록 밴드로. 동시대의 예스(Yes)나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만큼의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그들만의 독특한 음악성과 사운드를 바탕으로 확고한 존재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들은 대중적으로는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이들은 1970년대에 <Mirage>와 <The Snow Goose>와 같은 초기 콘셉트 앨범으로 서서히 인기를 얻어갔으며 1980년대 초에 음악적인 방향을 더 재즈적이고 상업적인 방향으로 선회했다.

앤드루 래티머 (기타), 앤디 워드(드럼), 더그 퍼거슨(베이스) 세명은 브루(The Brew) 라는 이름으로 처음 밴드를 만들어 서리주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했다. 브루는 필립 굿핸드-테이트의 백밴드 오디션에 지원해 그의 1971년도 앨범을 녹음하게 된다. 그들은 1971년에 피터 바든스(키보드)와 함께하기로 하고 벨파스트에서 피터 바든스 명의로 공연을 가졌다. 이후 밴드명을 카멜로 바꾸게 된다. 카멜의 첫 공연은 1971년 12월 4일 가졌던 위시본 애쉬의 오프닝이었다.

1972년 8월 카멜은 MCA 레코드와 계약하고 1973년 1집 <Camel>을 발매한다. 앨범은 별로 성공적이지 못해 그들은 데카 레코드로 이적하게 된다. 1974년에 2집 <Mirage>를 발매했으나 평가는 좋았지만 당시 영국에서는 차트 진입에 실패했지만 해외에서 먼저 호평을 받아 빌보드 챠트 149위에 올랐으며 3개월간의 투어를 가졌다. '신기루'라는 뜻의 <Mirage>는 데뷔 앨범 이후 밴드가 진정한 자신들의 언어를 찾아낸 결정적인 앨범이었다. 당시 제네시스(Genesis)와 캐러밴(Caravan), 커브드 에어(Curved Air), 르네상스(Renaissance) 등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데이비드 히치콕(David Hitchcock)을 영입했고, 녹음은 아일랜드 스튜디오와 에어 스튜디오 등 런던의 주요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졌다. 표지를 장식한 담배 브랜드 '카멜(Camel)'의 패러디 커버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미국의 R.J. 레이놀즈(R.J. Reynolds)사가 자사 제품과 지나치게 닮았다며 문제를 제기했고, 일부 금연 단체의 보이콧까지 이어지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러나 이 앨범표지는 오히려 앨범과 밴드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 앨범에 수록된 대곡인 'Nimrodel / The Procession / The White Rider'는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모티브로 한 서사적 구성이며, 복잡한 박자 변주와 오케스트레이션적 전개로, 많은 평론가들이 "카멜이 창조한 가장 웅장한 순간"이라 평했다. 사운즈(Sounds)지는 "정밀하게 조율된 엔진 같은 밴드"라 표현했고, 이후 수많은 평론가들이 이 앨범을 '필청(必聽) 프로그 명반'으로 꼽았다.

1975년엔 연주곡으로만 채워진 콘셉트 앨범 <The Snow Goose>를 발매한다. 폴 갈리코(Paul Gallico)의 단편소설 Snow Goose을 주제로 삼은 앨범으로 카멜의 명성을 높여주었지만 갈리코 측과의 소송을 겪었다. 여러 곳에서 갈리코가 담배를 싫어했는데 카멜을 담배 브랜드라고 생각해서 소송을 걸었다고 잘못된 정보를 전하지만 갈리코는 그저 저작권 침해를 언급했을 뿐이다. 카멜은 앨범 타이틀을 조금 고쳐서 <Music Inspired by The Snow Goose>로 발매하였다. 이후 소송을 회피한 뒤 런던 교향악단과 함께 로열 앨버트 홀에서 공연을 가졌다. 영국에서 챠트 22위에 올랐으며 미국에서도 162위에 올랐다.
이앨범에서 Peter Bardens의 서정적이면서도 몽환적인 키보드 연주로 시작되는 'Great Marsh'를 이어 경쾌한 Andrew Latimer 의 플룻연주로 사랑받았던 'Rhayader' 싱글로도 컷트되었던 'Flight of The Snow Goose'는 현란한 키보드 연주와 기타의 호흡은 단연 압권이라 할 수 있다.
1976년에 4집 <Moonmadness>도 성공을 이어갔다. 영국에서는 15위에 올랐으며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앨범으로 챠트성적은 116위정도 였다. 공연을 위해 킹크림슨 출신의 색소폰과 퓰륫주자 Mel Collins (멜 콜린스)가 보강되었으며 그는 이후 정식 멤버가 된다. 드러머인 Andy Ward (앤디 워드)가 재즈에 심취해 앨범 작업을 하면서 음악적인 분위기를 그 쪽으로 몰아가는 것에 불만을 품은 베이시스트 Doug Perguson (더그 퍼거슨)은 1977년 탈퇴한다. <Snow Goose>와 <Moonmadness>는 모두 BPI로부터 실버 레코드를 받았다.
카라반(Caravan)에 있던 Richard Sinclair (리처드 싱클레어)가 퍼거슨의 자리를 이어 밴드에 가입했다. 이 멤버로 1977년 <Rain Dances>와 1978년 <Breathless>을 발매한다. 이후 피터 바든스가 탈퇴하여 그 자리는 카라반 출신의 데이브 싱클레어와 얀 스첼하스가 대체한다. 카라반 출신의 멤버들이 대거 가입해서 팬들은 이들을 카라멜(Caravan + Camel)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후 킷 왓킨스가 건반을, 콜린 배스가 베이스를 맡아 1979년 7집 앨범 <I Can See Your House from Here>를 발매한다. 이 앨범은 십자가에 박힌 우주인이 지구를 내려보는 자켓으로 챠트 45위까지 올랐으며 다양한 스타일을 반영한 앨범이었다. 앤디 레이티머의 감성적 기타가 돋보이는 10분짜리 대곡 'Ice'까지 담고있는 이 앨범은 기존의 Camel 스타일에서 벗어나는 음악적 전환점 중 하나로 평가되며, 기존의 심포닉 프로그레시브 록 스타일에서 보다 세련된 프로덕션과 상업적인 요소가 가미된 사운드로 변화한 것이 특징인데 일부 팬들은 이 앨범의 변화된 사운드가 Camel 특유의 서정적인 심포닉 록 스타일에서 벗어났다고 느껴 다소 아쉬워하기도 했다. 수록곡 'Hymn To Her'은 아름다운 피아노와 기타 연주가 어우러진 서정적인 곡이다.
카멜은 1981년 2차대전이 끝난지도 모른채 29년간 무인도에 숨어있었던 일본 군인 오노다 히로를 주제로 한 컨셉트 앨범이자 8집인 <Nude>로 80년대를 시작했다. 건반은 던컨 맥케이가 도와주었으며 이후 레이티머의 부인이 될 수잔 후버가 처음으로 가사를 써준 앨범이었다. 앨범의 제목은 오노다 히로의 성인 '오노다'에서 유래되었으며 앨범의 수록곡인 'Drafted'은 피아노와 첼로 시작하는 장엄하면서도 매우 서정적인 곡이다. 이후 앤디 워드가 손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후 알콜중독과 약물남용으로 연주하기 어려워져서 카멜은 사실상 해산상태가 되었다.
밴드가 사실상 와해되었지만 데카 레이블은 계약을 들이대며 히트곡을 내놓으라 했기 때문에 레이티머는 세션맨들을 모아 새 앨범을 내는데 그것이 <Single Factor>였다. 이전 Camel 앨범들과 달리, <The Single Factor>는 약 3분에서 5분 정도의 짧은 곡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밴드의 초기 하드록/프로그 사운드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미미한 성공을 거두었으며 결성 10주년 공연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이전 매니저와의 소송문제로 그들은 5년을 보내야 했다.
KAYAK(카약)의 키보디스트 톤 셰르펜제엘과 10cc출신의 드러머 폴 버지스가 카멜에 새로 가입해 밴드는 1984년 10집 앨범 <Stationary Traveller>를 낸다. 콜린 베스도 돌아왔고 이전에 같이 하던 크리스 레인보우 같은 보컬도 있었기 때문에 다시 투어를 돌았으며 피터 바든스와 멜 콜린스도 게스트로 참여해주었다. 해머스미스 오데온 공연은 영상으로도 제작했고 음반 <Pressure Points>로도 나왔다. 이것으로 데카와의 계약이 종료되어 레이티머는 미국으로 이주하고 음악계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Stationary Traveller> 앨범에는 Alan parson's project의 키보드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로 잘 알려진 Chris rainbow, 새로 참여한 네델란드의 CAMEL이라고 불리우는 KAYAK(카약)의 리더 톤 세르펜질(Tom scherpenzeel)이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키보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앨범의 동명 타이틀곡이자 연주곡인 'Stationary traveller'와 앨범의 마지막 곡 'Long goodbyes'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팝송을 즐겨듣지 않는 사람이라도 라디오에서 간간히 흘러나오는 이 두 곡은 설령 제목을 모르더라도 마냥 좋아할 정도로 익숙한 레퍼토리가 되었다. 이곡 외에도 국내에서는 'West Berlin', 'Fingertips' 등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Long Goodbyes'는 이별의 감정을 다루고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작별을 아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사는 이별의 슬픔과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앨범은 독일 통일 이전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어 있을 때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이 곡의 가사도 동독에서 고향을 버리고 서독으로 떠나온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보인다. 이곡은 빌보드 차트 82위까지 올랐으며 서정적인 멜로디와 함께, 긴장감 있는 전개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앤디 레이티머는 7년간의 공백 이후 1991년 11집 앨범 <Dust and Dream>을 발매한다. 존 스타인벡의 <The Grapes of Wrath(분노의 포도)>를 소재로 한 컨셉트 앨범이었다. 분노의 포도는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시절에 가뭄까지 닥쳐 흙먼지가 휘날리는 오클라호마 농장에서 더이상 생계를 유지하기 곤란해진 톰 조드 일가가 새로운 이상향적인 터전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떠나면서 일어난 이야기인데 이 내용을 콘셉트 앨범으로 그려냈다. 더스트 볼로 황폐해진 오클라호마의 풍경을 묘사한 첫 곡 'Dust Bowl'로 시작해, 폭우로 인한 홍수를 그려낸 마지막 곡 'Whispers in the Rain'까지 소설의 주요 장면을 서정적으로 묘사했다. 이 앨범은 자신의 레이블 카멜 프로덕션을 통해 배급했으며 초기의 프로그레시브 사운드로 어느정도 돌아간, 비교적 성공적인 앨범이었다.

톤 셰르펜제엘이 비행 공포증이 있어 투어가 힘들었기 때문에 믹키 시몬즈가 합류했고 라이브 앨범 <Never Let Go>가 발매되었다. 그동안 피터 바든스와 몇몇 멤버들은 미라지라는 밴드를 만들었고 카멜의 곡 상당수를 연주했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레이티머와 수잔 후버는1996년 12집 앨범 <Harbour of Tears>을 발표했다. 아일랜드 대기근을 소재로 한 컨셉트 앨범으로 어린 아이들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면서 고통스럽게 헤어진 아일랜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앨범의 제목은 앤드루 래티머가 그의 할머니 가족이 마지막으로 보았을 아일랜드가 코브 하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제목을 항구의 공통 별칭인 '눈물의 항구(Harbour of Tears)'로 정했다고한다. 이 앨범 이후 <Coming of Age>라는 라이브 앨범을 공개한다.
1999년 카멜은 13집 앨범 <Rajaz>를 발표한다. 낙타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여행이라는 테마에 레이티머는 빠져들었고 좀 더 초기 프로그레시브 뮤직에 가까워진 앨범이 되었다. 드러머 스튜어트는 스코틀랜드의 드럼가게 주인이 되기 위해 밴드를 떠났고 톤 셰르펜제엘도 떠나서 새로운 밴드로 2001년 투어를 시작했으며 이 멤버로 2002년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이자 14집 앨범 <A Nod and a Wink>를 발표한다. 그 해에 죽은 피터 바든스에게 헌정되었다.
이런저런 투어로 피로감을 느끼던 레이티머는 기 르블랑도 집안일로 투어를 할 수 없게 되자 2003년 투어를 마지막 투어라고 선언했다. 미국 투어중에 니어페스트의 헤드라이너를 맡기도 했다. 레이티머는 카멜의 옛 곡들을 어쿠스틱으로 연주할까 했지만 곧 중단되었다. 로저 워터스가 기타리스트 자리를 제안했지만 결국은 하지 못했다. 2006년 그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초기 카멜 멤버들과 함께 할 계획이었다.

2007년 5월 수잔 후버는 레이티머가 92년부터 진성다혈구증을 앓아왔으며 골수섬유종으로 악화된 상태라고 밝혔다. 이것은 카멜 투어가 오래 지속되지 못한 이유중 하나였으며 레이티머는 화학요법과 골수 이식을 받아왔다. 이후 레이티머는 조금씩 회복되는 중이고 소규모 공연이나 스튜디오 앨범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레이티머가 회복되면서 다른 뮤지션에 기타 솔로도 도와주는 등 활동을 시작했다. 카멜 프로덕션은 레이티머가 새 앨범을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레이티머의 새 투어는 '은퇴 엿먹어'(Retirement Sucks Tour)라는 이름을 가질 수도 있다고 했으며 75년 이후 처음으로 Snow Goose의 전곡을 연주하는 공연이 될거라고도 했다. 확정된 유럽 공연은 대부분 매진되었다. 2013년에는 <Snow Goose>의 재녹음반이 발매되었다. 공연 도중 기 르블랑은 건강문제로 밴드를 탈퇴했으며 2015년 4월에 운명을 달리했다.

카멜은 2015년에도 14일간의 유럽투어를 돌며 여러 공연의 헤드라이너로 섰다. 카멜은 2016년과 2017년까지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2002년 이후 새로운 스튜디오 발매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밴드는 2018년 투어에서 공연을 했다. 그들의 음악은 마릴리온, 오페스와 스티븐 윌슨을 포함한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음악 저널리스트 마크 블레이크는 카멜을 "70년대 프로그 록의 위대한 노래 없는 영웅들"이라고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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