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스로 툴(Jethro Tull) 은 1967년 랭커셔주 블랙 풀에서 결성된 영국의 록 밴드이다. 초기에는 블루스 록과 재즈 퓨전을 연주했지만, 영국의 포크 음악과 하드 록, 클래식 음악의 요소를 접목하여 독특한 프로그레시브 록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하드 록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러시와 더불어서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원형이 된 밴드로도 불리고 있다.
그룹의 창립멥버이자 밴드의 리더인 이안 앤더슨 (Ian Anderson)은 밴드의 주요 작곡가이자 리드 보컬리스트이며 유일한 고정 멤버로 플루트와 어쿠스틱 기타를 주로 연주하고있다.
전현직 멤버들을 다 합치면 40명이 넘을 정도로 심한 멤버 교체를 겪었지만 상업적으로는 크게 성공하여, 총 6천만장의 앨범을 판매했는데 이는 핑크 플로이드와 제네시스에 이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역대 3위의 기록이다. 롤링 스톤에서 독자들이 뽑은 "최고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순위에서도 러시, 핑크 플로이드, 제네시스에 이은 4위를 기록하는 등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모두 성공한 밴드다.

Ian Anderson(기타,보컬), Jeffrey Hammond(베이스) , John Evan(드럼)은 Blackpool 의 Grammar School에 함께 다녔었는데 존 에반(이후에 에반스로 이름을 바꾸었다)은 비틀즈가 'Love Me Do' 를 연주하는 것을 보고 비틀즈 의 팬이 되었다고한다. 이미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그는 비틀즈의 영향을 받아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안 앤더슨은 스페인 기타를 구해 독학으로 연주법을 익혔고, 에반과 함께 밴드를 결성하기로 했으며 해먼드를 베이스 연주자로 영입했다.

이 그룹은 처음에는 지역 클럽과 공연장에서 3인조로 연주했다. 조지 페임 과 애니멀스의 영향을 받은 에반스가 오르간으로 전향하면서 드러머 배리 발로우와 기타리스트 마이크 스티븐스가 영입되었고, 기타리스트 크리스 라일리가 합류하면서 밴드는 존 에반 밴드라는 6인조 블루 아이드 소울 그룹으로 발전했다. 에반스는 해먼드의 권유로 성을 "에반"으로 줄였는데, 해먼드는 그 이름이 더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한다. 그들은 조니 테일러를 부킹 에이전트로 영입하고 영국 북서부 지역에서 공연을 하며 주로 블루스와 모타운 커버곡을 섞어 연주했다. 해먼드는 미술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밴드를 떠났고, 잠시 데릭 워드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가 글렌 코닉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라일리도 탈퇴하고 닐 스미스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들은 1967년 4월 런던에서 세 곡을 녹음했고 1967년 6월 런던의 마퀴 클럽 에 출연했다. 당시 출연때마다 바뀌었던 밴드 이름은 예약 대행사 직원들이 지어주었는데, 그중 역사 애호가였던 한 직원이 18세기 농업 전문가의 이름을 따서 Jethro Tull이라는 팀명을 지어주었다. Marquee Club의 매니저가 그들의 공연을 마음에 들어해 매주 공연을 허락하면서 그 이름이 굳어졌다. 2006년 인터뷰에서 이안 앤더슨은 "그 이름이 파종기를 발명한 고인의 이름인 줄 몰랐어요. 우리 에이전트가 지어낸 이름인 줄 알았죠."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자신의 삶에서 한 가지를 바꿀 수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밴드 이름을 덜 역사적인 것으로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밴드 초기 자신의 기타 연주 실력이 뛰어나지 않다는 사실에 절망했던 앤더슨은 자신만이 표출할 수 있는 독창적인 모습을 원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악기 포지션을 플루트로 전향했고 외다리로 서서 연주하는 특유의 새된 플루트 사운드와 아버지로부터 받은 낡은 외투는 이언 앤더슨, 더 나아가 제스로 털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자리하게 된다.
1968년 8월 Sunbury-on-Thames 에서 열린 National Jazz and Blues Festival 에서 첫 번째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곳에서 관객들의 열광적인 환호와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곳에서의 성공은 밴드의 지속적인 투어의 결과이며, 이를 통해 축제에 온 관객들을 통해서 풀뿌리 팬층이 형성되었다고 말했다. 코닉은 "그 순간부터 우리는 빅 밴드가 되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1968년 10월에 발매된 첫 번째 앨범인 <This Was>은 영국 차트에서 10위를 기록했다. 이 앨범에는 오리지널 곡 외에도 블루스 록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1961년 Doctor Ross의 블루스 곡 'Cat's Squirrel'과 Rahsaan Roland Kirk가 작곡한 재즈 곡 'Serenade to a Cuckoo'가 포함되어 있으며, 앤더슨은 이 시기 그룹의 사운드를 "약간의 재즈가 가미된 프로그레시브 블루스"라고 설명했다.
앨범 발매 후, 아브라함스는 12월에 밴드를 떠났으며 밴드는 아브라함스를 대신할 여러 사람을 접촉했다. 그중 믹 테일러(Mick Taylor)가 있었지만, 그는 존 메이올의 블루스브레이커스(John Mayall's Bluesbreakers) 에서의 활동이 더 나은 조건이라고 생각하여 거절했다. 그 후, 그들은 어스(Earth, 블랙 사베스의 전신)의 기타리스트 토니 아이오미 (Tony Iommi)에게 접근했다. 아이오미는 버밍엄에서 열린 제스로 툴(Jethro Tull) 공연에서 어스가 오프닝 밴드로 출연했을 때 제스로 툴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잠시 밴드에 합류했지만 몇 주 만에 탈퇴하고 버밍엄으로 돌아가 어스에 다시 합류했다.
다음으로 선택된 사람은 토니 아이오미와 동시에 기타리스트 오디션을 봤던 Martin Barre 였다. Barre는 두 번째 오디션을 준비했고 앤더슨은 그에게 그들이 녹음했던 블루스와는 다른 스타일의 새로운 곡들을 들려주었다. 앤더슨은 Barre의 연주에 감명을 받아 그를 영입했다.
Barre가 합류한 후, 밴드는 스칸디나비아에서 Jimi Hendrix를 서포트하는 몇 차례 공연을 했고 그 후 Led Zeppelin 과 Vanilla Fudge를 서포트하는 미국 투어를 시작했다. 투어 이후 발표한 싱글 'Living in the Past'는 1969년 5월 미국에서는 챠트 11위를 기록했고, 영국 싱글 차트에서 3위를 차지하며 BBC의 Top of the Pops 에도 출연하게 되었다 .
1969년 9월에 발매된 두번째 앨범 <Stand Up> 앨범은 영국에서 빠르게 1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밴드의 앨범 중 유일한 기록이다. 앤더슨은 이제 리더이자 작곡가로서 자리를 잡았고, JS 바흐의 'Bourrée in E minor BWV 996 (5악장)'을 재즈풍으로 편곡한 것을 제외하고는 앨범의 모든 곡을 작곡했다.
<Stand Up>을 발매한 직후, 이들은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 출연을 포함한 첫 번째 미국 헤드라이닝 투어를 시작했다. Barre는 "그것은 Jethro Tull에게 있어서 진정한 전환점이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떤 존재가 될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감을 줄지를 결정짓는 전환점이었다."라고 회상했다. 밴드는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 공연해 달라는 초대를 받았지만, 앤더슨은 히피 운동 과 연관되어 한 가지 유형의 사운드에 영구적으로 갇히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아 거절했다.
1970년 1월 29일, Jethro Tull은 BBC의 Top of the Pops 에 다시 출연하여 'Witch's Promise'를 연주했다. Evan은 1970년 초에 밴드에 재합류했다. Jethro Tull의 다음 앨범이자 1970년 발매작 <Benefit>은 영국에서 4위, 미국에서 11위를 기록했고 그룹은 20,000석 규모의 아레나를 매진시키며 최고의 라이브 공연팀으로 자리매김했다. 8월에는 1970년 아일 오브 와이트 페스티벌 에서 가장 많은 관객 앞에서 공연했다.

아일 오브 와이트 공연 이후 또 다른 미국 투어가 이어졌고, 이 투어에서 제스로 툴은 비틀즈에 이어 뉴욕 카네기 홀 에서 공연한 두 번째 록 밴드가 되었다. 코닉은 투어가 끝날 무렵 밴드를 떠났다. 앤더슨은 코닉을 대신할 멤버로 제프리 해먼드를 초빙했다. 이들은 1971년 발매한 네번째 앨범 <Aqualung>은 콘셉트 앨범 형태로 제작된 밴드의 출세작이자, 첫 메가히트 음반. 미국 내에서 3x 플래티넘 인증을 획득할 정도로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현재까지 700만장이 판매됐다고한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명반에 꼭들어가는 앨범으로 1972년 2월 조사한 "1971년 최고의 앨범"에서 총합 22위, 전문가 20위에 들기도 했다. 이들의 앨범 중 처음으로 미국 톱 10에 진입하여 7위를 기록했다. 신과 종교의 사이에 대한 내용을 다양하게 표현해 냈다고 알려져 있으며 국내에서는 타이틀곡 'Aqualung', 존 에번의 피아노 연주가 뛰어난 'Locomotive Breath'가 잘알려 있다.
앤더슨은 음악 평론가들이 자신의 앨범 <Aqualung>을 콘셉트 앨범 이라고 묘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이 앨범을 콘셉트 앨범으로 의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는 당시에도 이 앨범은 콘셉트 앨범이 아니라고 항상 말했다. 다양한 곡들로 구성된 앨범일 뿐이고, 그중 서너 곡이 앨범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콘셉트 앨범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그는 "진정으로 모든 콘셉트 앨범의 어머니 격인 무언가를 만들어내겠다"고 결심했다.
앤더슨은 복잡한 음악적 아이디어와 독특한 유머를 결합하여 밴드, 관객, 그리고 평론가들을 풍자하는 모음곡을 작곡했다. 1972년 발매한 다섯번째 앨범 <Thick as a Brick>은 43분 동안 이어지는 하나의 연속적인 음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당시 영국에서 열린 청소년 백일장에서 제랄드 보스톡(Gerald Bostock)이라는 8세 소년이 "Thick as a Brick"이라는 서사시로 대상을 수상했으나, 그 내용이 지나치게 난해하고 불건전하다는 이유로 얼마 안가 상을 박탈당하게 된다. 그러나 이 서사시에 크게 감명받은 제쓰로 툴은 보스톡의 허락 하에 "Thick as a Brick"을 가사로 만들었다는 콘셉으로 만든 콘셉트 앨범이다. 앨범 커버가 신문 기사처럼 되어있는 것도 그러한 컨셉의 일환이다. 이앨범의 가사는 앤더슨 작사한것으로 실제 일어난 일은 아닌 가상의 이야기이다. 내용 자체는 영국 황색언론을 풍자하는 쪽에 가깝다.
<Thick as a Brick>은 (미국) 빌보드 팝 앨범 차트 에서 1위를 차지한 최초의 제스로 툴 앨범이 되었다. Aqualung과 함께 제쓰로 툴의 최고작이자 프로그레시브 록 최고의 명반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1972년에 발매된 <Living in the Past>는 리믹스 싱글, B면 곡, 미발표곡을 모아놓은 더블 앨범 컴필레이션으로,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Life Is a Long Song> EP 전체가 수록되어 있다. 세 번째 면은 1970년 11월 4일뉴욕 카네기 홀 에서 라이브로 녹음되었다. 이 앨범은 성공을 거두었고, 특히 미국에서 초기 발매 당시에는 인기를 얻지 못했던 밴드의 초기 싱글들을 새로운 팬들이 접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다음 해인 1973년 발매된 여섯번째 앨범 <A Passion Play>역시 컨셉 앨범으로 사후세계라는 철학적인 주제가 들어가 있다. 로니 필그림(Ronnie Pilgrim)이라는 남자가 죽은 뒤, 사후세계를 여행하며 도덕, 종교, 선과 악에 대해 탐구하는 내용을 다룬다. 이 앨범역시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여 빌보드 팝 앨범 차트 에서 1위를 또한번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평론가들의 평가는 좋지 않았는데, 특히 멜로디 메이커의 크리스 웰치가 라이브 공연에 대해 혹평을 남겼다. 앨범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 이후, 앤더슨은 분노하여 언론과의 모든 소통을 차단하기도 했다.
음반 구매 대중들 사이에서의 인기는 여전히 강세를 보였으며, 이는 후속 앨범인 1974년작 <War Child>의 높은 판매량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원래 영화 사운드트랙으로 제작되었던 <War Child>는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2위를 기록했고 , 평단의 호평을 받았으며, 'Bungle in the Jungle'(미국 빌보드 핫 100 차트 12위 ) 과 'Skating Away on the Thin Ice of the New Day' 두 개의 싱글을 배출했다. 또한 풍자적인 가사를 담은 짧은 어쿠스틱 곡 'Only Solitaire'도 수록되었는데, 이 곡은 산타모니카 시빅 오디토리움 에서 열린 A Passion Play 콘서트 에 대해 혹평을 쓴 LA 타임스 록 음악 평론가 로버트 힐번을 겨냥한 것으로 여겨졌다.
1975년 밴드는 <Aqualung> 과 비슷한 스타일의 앨범 <Minstrel in the Gallery> 를 발매했는데, 이 앨범 은 부드러운 어쿠스틱 기타 기반의 곡들과 배어의 일렉트릭 기타로 강화된 길고 웅장한 곡들을 대조적으로 보여주었다. 앤더슨이 첫 번째 부인 제니 프랭크스와 이혼하는 동안 작곡 및 녹음된 이 앨범은 더욱 내성적인 분위기를 특징으로 했으며, 평가는 엇갈렸다.
이 시점에서 Jethro Tull은 <Stand Up> 부터 <Minstrel in the Gallery>까지 6장 모두 골드 레코드를 수상했다.
1976년에 발매된 콘셉트 앨범 <Too Old to Rock 'n' Roll: Too Young to Die!>는 나이 들어가는 로커의 삶을 다룬다. ( 2년 후 발매된 라이브 앨범 <Bursting Out>의 'Too Old to Rock 'n' Roll' 버전에서 앤더슨은 이 노래가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글래스콕은 이 앨범에서 툴의 베이시스트로 처음 참여했으며, 하모니와 세컨드 보컬도 담당했다. 1976년 투어에서 제스로 툴은 대형 스타디움 공연에 대형 프로젝션 스크린을 사용한 최초의 밴드 중 하나가 되었다. <Too Old to Rock 'n' Roll: Too Young to Die!>는 역대 앨범 중에서 처음으로 골드 인증을 받지 못했을 만큼 상업적으로는 실패한 앨범으로 평가도 썩 좋지는 않다. 1976년 컴필레이션 <MU – The Best of Jethro Tull> 은 미국에서 플래티넘 앨범, 영국에서 골드 레코드를 달성했다.
1970년대 후반, 제스로 툴은 포크 록으로 앨범 세 장, <Songs from the Wood> (1977), <Heavy Horses> (1978), 그리고 <Stormwatch> (1979)를 발표했다. 이 앨범들은 통상 포크 3부작으로 불린다. <Songs from the Wood>는 <Living in the Past> (1972) 이후 처음으로 전반적으로 호평을 받은 앨범이었다. 'Ring Out, Solstice Bells'는 <Songs from the Wood> 발매에 앞서 1976년 겨울에 싱글로 발매되어 영국 차트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이 곡은 영국에서 인기 있는 크리스마스 노래가 되었다.
1979년에 발매된 세 번째 포크풍 앨범인 <Stormwatch>에는 국내에서는 80~90년대 KBS FM의 음악 방송 ‘전영혁의 음악세계’의 엔딩곡으로 잘알려진 앨범의 수록곡인 아름다운 연주곡 ‘Elegy’가 수록되어 있으며 가장 잘알려진 곡이다. 이곡은 베이시스트 존 글래스콕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기리기위해 헌정된 곡으로도 알려져 있다.
1980년 중반에 발매된 앨범 <A>는 원래 앤더슨의 첫 솔로 앨범으로 기획되었지만, 크리살리스 레코드 의 압력으로 제스로 툴 앨범으로 발매하기로 합의했다. 키보디스트이자 바이올리니스트 에디 좁슨 (전 록시 뮤직, 프랭크 자파, 커브드 에어, UK 출신)을 영입하여 발매된 이 앨범은 신시사이저를 두드러지게 사용했으며, 기존 제스로 툴의 사운드와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앨범 제목은 폐기된 솔로 앨범의 마스터 테이프 라벨에 "앤더슨"을 뜻하는 "A"라고 적혀 있던 것에서 따온 <A> 였다. 앨범을 둘러싼 혁신적인 분위기에 맞춰 제스로 툴은 Slipstream 이라는 제목의 뮤직 비디오를 제작하기도 했다.
좁슨과 크래니는 <A> 투어 이후 밴드를 떠났고, 밴드는 여러 명의 임시 드러머를 고용했는데 필 콜린스는 1982년 첫 번째 프린스 트러스트 콘서트에서 밴드와 함께 연주했고, 폴 버지스는 브로드소드 앤 더 비스트 투어의 미국 공연에서 드럼을 맡았다. 도안 페리는 1984년부터 밴드의 드러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밴드는 1981년에 앨범을 발매하지 않았는데, 이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앤더슨, 바레, 페그, 콘웨이가 참여하여 녹음 세션을 진행했고, 앤더슨은 키보드를 연주했다. 녹음된 일부 트랙은 1993년 컴필레이션 앨범 <Nightcap> 에 수록되었다. 1982년에는 피터-존 베테세가 키보드 연주자로 합류했고, 밴드는 신시사이저를 사용하면서도 좀 더 포크적인 사운드로 돌아와 1982년 앨범 <The Broadsword and the Beast> 를 발표했다. 이후 이어진 콘서트 투어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무대는 바이킹 롱십 처럼 꾸며지고 밴드는 중세 의상을 입고 공연하는 등 밴드의 마지막 연극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앤더슨의 솔로 앨범(실제로는 앤더슨과 베테세의 공동 작업)은 1983년에 강렬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Walk into Light> 로 발매되었다. 앤더슨과 바레의 후기 솔로 작업과 마찬가지로, 'Fly by Night', 'Made in England', 'Different Germany'와 같은 <Walk into Light> 의 일부 곡들은 이후 제스로 툴의 라이브 세트리스트에 포함되었다.
1984년, Jethro Tull은 <Walk into Light> 와 마찬가지로 라이브 드러머 대신 드럼 머신을 사용한 또 다른 전자 음악 앨범인 <Under Wraps>를 발매했으나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AOR적인 요소가 많은 'Lap of Luxury' 뮤직비디오는 새롭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MTV 뮤직비디오 채널에서 중간 정도의 방송 횟수정도 밖에는 기록하지 못했다. Vettese는 <The Broadsword and the Beast> (1982), <Walk into Light>(1983), <Under Wraps> (1984) 에 대한 비평가들의 혹평에 화가 나서 투어 후 밴드를 탈퇴했다. 또한 앤더슨이 <Under Wraps> 의 까다로운 곡들을 투어하는 동안 성대 문제를 겪게 되어 밴드는 3년간 활동을 중단했다.
제스로 툴은 1987년 앨범 <Crest of a Knave> 로 돌아왔다. 베테세가 불참한 가운데 앤더슨이 신시사이저 프로그래밍을 맡았고, 마틴 바레는 1970년대 초창기 툴 스타일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선보였다. 앨범 수록곡 중 세 곡은 드럼 머신을 사용했고, 나머지 곡들은 도안 페리와 게리 콘웨이가 번갈아 드럼을 연주했다. 이 앨범은 평단과 대중 모두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키보드 연주자 돈 에어리 (전 레인보우 , 오지 오스본 , 마이클 쉥커 그룹, 게리 무어, 콜로세움 II )는 <Crest of a Knave> 투어에 합류했다.
1989년, 제스로 툴은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하드록/메탈 퍼포먼스 보컬 또는 기악 부문을 수상하며 유력한 수상 후보였던 메탈리카와 그들의 앨범 <...And Justice for All> 을 제치고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이 수상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많은 사람들이 툴을 하드록 밴드, 더 나아가 헤비메탈 밴드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니저의 조언에 따라 수상 가능성이 없다는 말을 듣고 밴드 멤버 중 누구도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래미 수상 이후 메탈리카는 자신들의 음반에 “그래미 어워드 패배자들”이라는 스티커를 붙여 판매했고 제스로 털의 레이블 크리설리스는 영국 음악 잡지에 철 더미 위에 놓인 플루트 사진과 함께 "플루트는 (무거운) 금속 악기입니다(The flute is a (heavy) metal instrument)”라는 재치 있는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앤더슨은 인터뷰에서 "우리는 가끔 만돌린을 아주 크게 연주하기도 합니다"라고 농담했다. 2007년, 이 수상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Entertainment Weekly) 에서 그래미 역사상 가장 큰 이변 10가지 중 하나로 선정되었고, EW의 2017년 그래미 이변 목록에서 1위를 차지했다. 1992년 메탈리카가 하드록/메탈 부문에서 그래미상을 수상했을 때, 드러머 라스 울리히 는 "우리가 제일 먼저 할 일은 제스로 툴이 올해 앨범을 내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하는 것입니다."라고 농담했다. (이는 몇 년 전 폴 사이먼이 스티비 원더 에게 같은 이유로 감사 를 표했던 그래미 관련 발언을 패러디한 것이다.)

<Crest of a Knave>의 스타일은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 와 비교되곤 하는데 앤더슨은 이전과 같은 음역대를 구사하지 못하고 저음을 주로 사용했으며, 바레의 기타 사운드는 마크 노플러(Mark Knopfler )의 스타일로 변화했다. 특히 'Farm on the Freeway'와 'Steel Monkey'는 라디오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앨범에는 라이브 공연에서 자주 연주된 인기곡 'Budapest'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곡은 10분이 넘는 길이로 앨범에서 가장 긴 곡이다. 밴드는 The Not Quite the World, More the Here and There Tour를 통해 앤더슨은 간간이 리듬 기타를 연주했다. 이는 제스로 툴 역사상 두 명의 일렉트릭 기타리스트가 함께 무대에 오른 첫 번째 사례였다.
1989년에는 <Rock Island>가 발매되었지만, <Crest of a Knave> 만큼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첫 번째 트랙인 'Kissing Willie'는 외설적이고 이중적인 의미의 가사와 과장된 헤비메탈 리프가 특징인데, 이는 밴드의 그래미 수상을 조롱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뮤직비디오는 선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방송에서 많이 방영되지 않았다. 이 앨범에서는 몇몇 명곡들이 탄생했는데, 그중 하나는 열광적인 팬이 배어의 소중한 만돌린을 훔쳐간 이야기를 재치 있게 풀어낸 'Big Riff and Mando'이고, 또 하나는 경쾌한 'Another Christmas Song'으로, 2003년 발매된 제스로 툴의 크리스마스 앨범에 재녹음되기도 했다. 1991년작 <Catfish Rising>은 만돌린과 어쿠스틱 기타를 다시 풍부하게 사용했으며,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도시 생활에 대한 가사가 돋보이는 'Rocks on the Road'와 블루스풍의 잔잔한 발라드 'Still Loving You Tonight'이 수록되었다.
15년 동안 제스로 툴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던 데이브 페그는 1995년 앨범 <Roots to Branches> 녹음 도중 페어포트 컨벤션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밴드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앤더슨은 월드 뮤직의 영향을 받은 곡들을 쓰기 시작했고, 페그는 밴드의 음악적 방향에 불만을 품었다. 그는 앨범 수록곡 중 단 세 곡에만 참여했으며, 1995년 9월 영국에서 열린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제스로 툴과 함께 무대에 섰다.
1995년 발매된 <Roots to Branches> 와 1999년 발매된 <J-Tull Dot Com>은 1987년 발매된 <Crest of a Knave> 나 1991년 발매된 <Catfish Rising> 보다 록적인 색채가 덜했다. 이 앨범들의 수록곡들은 수십 년간 전 세계를 돌며 공연해 온 음악적 영향을 반영하고 있는데 'Out of the Noise'나 'Hot Mango Flush' 같은 곡에서 앤더슨은 제3세계의 거리 풍경을 묘사한다. 또한 이 두 앨범은 사색적인 'Another Harry's Bar', 돋보기에 대한 명상적인 곡 'Wicked Windows', 그리고 'Wounded, Old and Treacherous'와 같은 곡들을 통해 앤더슨이 나이 든 로커로서의 삶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담고 있다.
2021년 3월 제스로 툴의 새 스튜디오 앨범 <The Zealot Gene> 을 발표했는데, 이는 <The Jethro Tull Christmas Album> (2003) 이후 제스로 툴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되는 첫 번째 앨범 이자, <J-Tull Dot Com> (1999) 이후 모든 곡이 오리지널 곡으로 구성된 첫 번째 앨범 이며, <This Was> (1968) 이후 Barre가 참여하지 않은 첫 번째 앨범이다.

2023년 4월 앨범 <RökFlöte> 발매되었으며 2025년 3월 제스로 툴의 24번째 앨범인 <Curious Ruminant>이 발매되었다.

로고의 피리 부는 사내는 리더 이언 앤더슨을 형상화 한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이언 앤더슨은 30명도 넘는 멤버가 갈려나갈동안 혼자서만 59년 가까이 밴드를 홀로 지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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