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파이브(He5)
1967년 겨울, 미8군쇼 대행업체 화양흥업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던 다섯명의 젊은 뮤지션들이 의기투합하여 결성한 그룹사운드가 히파이브(He 5) 이다. 당시 주한미군 위문 공연차 내한했던 미국의 5인조 여성 밴드 쉬파이브(She 5)의 이름에서 힌트를 얻어 팀명을 만들었다. 첫 결성 멤버들로는 신중현과 조커스 출신의 조용남(베이스)과 여가수 장세정의 아들이자 포가이스 출신인 한웅(키보드), 실버코인스 출신의 유영춘(보컬), 김용호(드럼), 한광수(기타) 등 다섯 명 이었다. 그러나 곧 한광수가 입대하게 되면서 키보이스에서 활동했던 김홍탁이 들어와 그 자리를 메운다.

히파이브는 1969년 제1회 플레이보이배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서 키보이스에 이어 은상을 차지하며 인기 절정의 록 밴드로 급부상했다. 이후 1970년대를 대표하는 음악 방송 TBC <쇼쇼쇼>의 오프닝과 엔딩 담당 밴드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히파이브의 첫번째 공식 앨범은 1969년 발매한 작곡가 정민섭의 곡을 양미란과 히파이브가 부른 스플릿 음반이다. 양미란 부른 곡의 연주는 히파이브가 담당했다. 양미란이 부른 수록곡 '달콤하고 상냥하게'가 히트하면서 양미란은 1969년 12월 월간 <야담과 실화>에서 주최한 신인 10대가수상을 수상했으며 이곡은 같은 해 개봉된 심우섭 감독의 영화 <내 팔자가 상팔자>에 삽입되기도 했다. 또한 1969년 10월 23일자 매일경제 ‘가요베스트텐’ 차트에서 6위를 기록할 만큼 크게 히트했다.
히파이브는 앨범 수록곡 중 '초원'이 크게 히트했으며 이후 히식스의 '초원의 사랑', '초원의 빛'으로 이어지는 소위 ‘초원 시리즈’ 연작 히트의 시작을 알리는 곡이 되었다.
히파이브는 진한 허스키 보이스로 강한 흡인력을 보인 보컬리스트이자 키보디스트 한웅, 사이키델릭과 하드록에서 영향을 받은 기타리스트 김홍탁, 소울 취향의 베이시스트 조용남 등 당시 미8군 무대의 최고 실력자들만 뽑아 만든 "슈퍼 밴드"이었다. 조용남이 김홍탁을 스카우트하고자 당시 구하기 어려웠던 깁슨 기타를 선물로 줬다는 일화도 있을 만큼 당시 히파이브에게 밴드의 간판 스타를 빼앗긴 다른 밴드들은 존속 자체가 어려워졌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이 앨범에는 영화 주제가를 다수 수록했는데 수록곡 중 '흑점'은 최무룡 감독의 1969년 개봉 영화 <흑점(속 제3지대)>의 주제가를 원곡과는 다르게 히파이브가 다시 연주한 곡이다. 이 외에도 히파이브가 부른 영화 <태양은 외로워>의 주제곡 '외로운 태양', 양미란이 부른 영화 <가방을 든 여인>의 주제곡이 함께 실렸다. 이는 작곡자 정민섭이 당시 영화음악계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음악감독이였기 때문이다 .
같은해인 1969년 겨울 전설적인 음반 <사이키데릭사운드 / Merry Christmas>을 발매하게 된다.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캐럴에 접목하는 음악 실험을 시도한 특별한 음반으로 캐럴송을 연주곡으로만 녹음한 점이 특징이다. 이앨범에서 주목해야할 곡은 12분이 넘는 '징글벨' 로 평범하게 시작하지만 중반부에서부터 자연스럽게 미국의 유명 록 밴드 아이언 버터플라이(Iron Butterfly)의 사이키델릭 명곡 'In-A-Gadda-Da-Vida'가 흘러나오는 즉흥 연주로 이어지며 김용호가 장시간 들려주는 드럼 솔로 또한 압권이다.
1970년 발매한 가수 이승재와 같이 낸 스플릿 앨범 <He5의 정주고 내가 우네 / 이승재의 눈동자>에서 히파이브가 부른 '정주고 내가 우네'가 큰 인기를 얻었다. 이곡은 어쿠스틱 기타반주로 담백하게 부른 트로트 곡으로 이후 데블스와 트리퍼스가 리메이크하였다.
1970년 12월 발표한 컴필레션 앨범 <HEY JUDE / COME BACK>은 히파이브가 비틀즈 커버곡을 담은 마지막 앨범이다. ‘김인배 편곡집’이란 부제가 붙은 이 앨범은 수록곡 10곡 모두 외국 팝송 번안곡인 음반으로 동시대에 인기가 많았던 팝송 번안곡으로 만든 기획앨범이라는 점에서 희귀하다. 히파이브와 쥰시스터즈의 스플릿 앨범인 이 앨범의 타이틀곡은 히파이브가 부른 비틀즈 커버곡 'Hey Jude'와 쥰시스터즈의 번안곡 'Come Back'이다.
이 앨범의 백미는 흑인 여성 트리오 슈프림즈의 히트곡 'You Keep Me Hanging On' 으로 이 곡은 김홍탁이 거칠면서도 현란한 기타 연주를 들려주고있다. 특히 2분 40초의 전주는 히파이브가 지향했던 음악적 노선의 진수를 들려준다.
1960년대 후반 종로와 명동에는 그룹사운드가 공연할 수 있는 생음악살롱이라는 공간이 생기기 시작한다. LP판을 통해 팝송을 재생하고 감상하는 음악감상실도 전국적으로 우후죽숙처럼 생겨났는데 이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중요한 변화였다. 생음악살롱은 그룹사운드가 미8군쇼를 떠나 내국인을 상대할 수 있는 첫 공간으로, 특히 명동에 자리한 오비스캐빈은 지하부터 지상 3층까지 층별로 연주 음악별로 세분되어 있었다. 그 중 가장 인기 있던 곳은 그룹사운드의 연주 공간인 3층과 재즈나 포크가 주를 이루던 2층이었고 1층에서는 스탠더드 음악을 연주했다.

히파이브는 오비스캐빈에 전속이 되어 명성을 떨친다. 그러나 1970년 보컬리스트이자 키보디스트 한웅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어 오비스캐빈에서 히파이브 고별공연을 하게 된다. 그런데 오비스캐빈 측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해체를 만류하자 히파이브는 멤버를 다시 추가영입해 6명으로 만들어 그룹 이름을 히식스로 바꾼다.

히식스(He6)
히파이브는 밴드 멤버가 5명일 때의 이름이고, 히식스는 6명일 때 사용했던 밴드 이름이다. 1970년 4월 한웅이 미국으로 가고, 리드 보컬 유영춘이 영사운드를 결성하며 독립해 히파이브는 사실상 활동을 중단했지만 남은 멤버 3명(리드 기타 김홍탁, 베이스 조용남, 드럼 김용호)은 한웅과 유영춘의 빈자리를 새 얼굴로 채우고자 했다. 그래서 영입한 멤버가 미키즈의 리드 보컬 이영덕, 같은 그룹의 세컨드 기타 김용중, 그리고 송민영 악단의 플루트 및 색소폰 연주자 유상윤이었다. 이렇게 구축한 6인조 라인업이 히식스의 오리지널 멤버로 팀명을 He 6로 변경했다.
1970년 1집 <Vol.1>타이틀곡 '초원의 사랑'을 히트시켰고, 1970년 7월 제2회 플레이보이컵 보컬그룹 경연대회에서 키보이스를 누르고 최고상을 수상하며 우승했다.
이 앨범은 흥행과 작품성을 동시에 추구했던 히식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음반이다. A면에 수록된 창작곡으로 '초원의 사랑'과 '말하라 사랑이 어떻게 왔는가를' 이 있으며 B면에 수록된 5개의 커버곡은 그들이 즐겨 연주했던 곡들이다. 외국 곡의 카피를 고집한 초창기 국내 록 밴드와 달리, 히트 창작곡을 발표한 히식스의 존재 가치는 빛을 발한다.
앨범의 타이틀곡 '초원의 사랑'은 히파이브 시절의 '초원'과 히식스 2집의 '초원의 빛'을 연결하는 "초원 시리즈" 중 하나로 당대의 히트곡이다. 또 다른 수록곡이자 창작곡인 '말하라 사랑이 어떻게 왔는가를'는 록 음악이 당대 청년층에 어떻게 수용되었는지 보여준다. '울릉도 타령'과 '황성옛터' 같은 민요와 고전가요를 새롭게 편곡한 노래들은, 가요와 록을 접목하려 했던 세련된 시도를 보여준다.
이후 김용중 대신 명지대학생이었던 보컬 최헌을 영입했다. 최헌 영입 이후 '물새의 노래' '당신은 몰라' '사랑의 상처'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1971년 발매된 히식스의 두 번째 정규 앨범<Vol.2>는 재즈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김용중 대신 최헌이 보컬을 맡은 첫 번째 앨범이다. 하모니 보컬에서 솔로 보컬 체제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특징을 나타내며, ‘초원’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초원의 빛'이 크게 히트했다. 김용중이 빠지고, 흑인 음악을 잘 소화했던 허스키한 보이스의 보컬리스트 최헌이 가입하면서 이전보다 소울 음악의 비중이 높아졌다.
이 음반까지는 국내 초기 록 밴드 스타일 중 하나였던 하모니 보컬의 스타일이 계속 이어졌다. 한 명의 리드 보컬이 음반 모든 수록곡을 책임지지 않고, 곡마다 다른 멤버가 노래를 부르거나 한 곡에서도 여러 멤버가 함께 화음을 맞췄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헌의 등장은 솔로 보컬리스트 체제 밴드의 출발을 가능하게 했다. 한 마디로 이 음반은 하모니 보컬과 솔로 보컬 스타일의 과도기적 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음반에는 데뷔 앨범에서와 마찬가지로 재킷 앞면 상단에 ‘Cosmos Series’라는 문구를 적었다. 이는 히식스의 주 활동 무대였던 코스모스 살롱의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신문에는 히식스의 배경에 ‘코스모스 사단’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코스모스 사단은 당시 80여 명을 거느린 큰 집단이었다. 이들은 코스모스 살롱의 쇼 프로듀서 이종묵을 중심으로 하고, MBC 쇼 PD 김정호, TBC 쇼 PD 조용호, 쇼 프로모터 박영태가 각각 파트를 하나씩 나눠 맡았다. 무대와 방송 고정 출연, 대규모 무대 공연의 밑그림까지 모두 소속사에서 책임진 것이다. 이처럼 체계적인 움직임은 당시 신문의 표현대로 “히트곡 창출과 가요 팝송의 붐을 좌우하는 영향력”을 발휘했다. 실력 있는 밴드와 탄탄한 배경이 만난 셈이다.
수록곡 중 오티스 레딩(Otis Redding) 원곡의 'I've Been Loving You Too Long'은 최헌의 소울풀한 매력을 잘 살린 곡이다. 이 곡에서 선보인 스타일은 히파이브나 히식스가 그때까지 음반으로 들려준 어떤 곡과도 다른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라이브 무대의 느낌을 고스란히 옮긴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Sly & the Family Stone)의 커버 버전 'Dance To The Music', 'Sing A Simple Song', 감미로운 알앤비 넘버 'I'll Be There'은 이 음반의 색깔이 흑인음악에 가깝다는 점을 입증한다.
두곡의 창작곡 중에서는 히파이브 시절부터 단골 메뉴였던 ‘초원’ 시리즈의 마지막 편 '초원의 빛'이 크게 히트했다. '스카브로우의 추억'과 같은 포크, '케사라' 같은 칸초네 번안곡도 수록했지만, 이는 음악적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다양한 음악적 표현 욕구를 표현한 데 가깝다.
1971년에는 총 3장의 앨범을 발표했는데 그중 2장이 <HE6와 함께 고고를> 1집과 2집이다. 이앨범들은 홍보용 시험판으로 각500장씩만 발매된 히식스 2기 멤버들의 실험적인 연주곡을 수록한 희귀 연주 앨범이다.
1집 연주 앨범은 잼 형식의 즉흥 연주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만큼 곡 구성이 치밀하다. 창작 연주곡으로 구성한 이 앨범의 백미는 9분 15초의 대곡 '인트로 닥숀 뮤직(Introduction Music)'이다. 장르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파워풀한 연주는 황홀하다. 제스로툴의 이안 앤더슨을 연상케하는 유상윤의 퓰륫연주도 일품이다.
'달리는 인간'은 드럼브레이크를 표현한 사이키델릭 연주로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트랙이다. 재즈적인 감성이 귀에 착착 감기는 'percusion 테마'도 탁월한 트랙이다. 전체적으로 그루브한 연주도 압권이지만, 작렬하는 드럼 솔로 연주를 수록한 이 음반은 전 세계 유명 턴테이블리즘 DJ들의 수집 표적이 되었다.
오아시스로 음반사를 옮긴 히식스의 공식 세 번째 앨범 <사랑의 상처 / 아름다운 인형>를 발표했다. 대표곡 '당신은 몰라'가 히트했으며, 본격적인 록 넘버들을 번안곡으로 수록했다. 이 음반 이후 김홍탁의 도미로 실질적인 밴드의 전성기는 막을 내렸다.
이 음반에는 히식스의 최고 히트곡중에 하나인 '당신은 몰라'가 수록되어 있다. 이 노래는 임성훈이 먼저 녹음했고, 히식스 이후에는 김추자, 검은나비의 음반에도 수록했다. 대중적으로는 검은나비가 부른 버전이 가장 크게 히트했다.
김홍탁은 한 인터뷰에서 “록 밴드의 자존심 때문에 이 곡은 음반에 수록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방송을 위해서는 대중적인 곡이 하나쯤 꼭 필요하다는 지명길의 권유 때문에 결국 마지막에 음반에 수록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전작들과 또 다른 점은 본격적인 록 스타일의 번안곡을 수록했다는 점이다. 레어 어스(Rare Earth)의 'Get Ready'를 번안해 15분간의 장쾌한 호연을 펼친 '아름다운 인형', 시카고(Chicago)의 'Color My World'를 번안한 '사랑의 약속'이 대표적이다.
이 2곡은 <He 6와 함께 고고를! GoGo Sound 71>을 분기점으로 변모한 히식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트랙이다. 이 음반은 잼 형식의 스테이지 라이브를 음반으로 옮긴 형식이 아니라, 애초에 확실한 구성을 밑그림으로 그려두고 녹음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앨범 이후 1972년 김홍탁이 갑작스럽게 미국으로 떠나면서 히식스의 화려한 시대는 막을 내렸다. 김홍탁을 대신해 정희택이 가입해 1년 정도 활동했지만, 이후 라이더스 멤버였던 이진동이 기타를 맡고, 권용남은 신중현과 엽전들로, 최헌은 검은나비로 이적하며 히식스는 점차 잊혀갔다. 이후 1980년 유상윤이 멤버들을 새로 모아 밴드를 다시 결성하여 <가을에 떠난 사람, 로라 디스코>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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