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수일은 1955년 2월 6일, 주한미군 공군 비행조종사였던 백인계 미국인 대위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친부는 윤수일이 아직 태어나기 전에 윤수일의 어머니에게 미국으로 데려갈 것을 약속하고 귀국을 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시험비행 도중 사고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윤수일을 해외로 입양보내라는 주위의 권유에도 그를 포기하지 않았고 이후 울산 시골 출신의 윤성환과 재혼, 울산 장생포에서 살았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새아버지는 윤수일을 친자식처럼 아꼈고 윤수일은 그런 새아버지에 대해 “어머니와 잠깐 연애하고 떠나버린 사람은 아버지로서 의미가 없다. 날 친아들처럼 키워준 아버지가 진짜 내 아버지다”라며 고마워하였다. 윤수일은 백인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이국적인 외모를 갖고 있었으며 당시 혼혈아가 시골 지역에서는 드물었기 때문에 윤수일은 원하지 않는 큰 관심을 온 동네로부터 받으며 성장해야 했다. 중학교때 부터 라디오에 나오는 음악이 좋아서 듣다가 공업도시 울산이라 공사하는곳이 많아 큰키라 모자 하나 쓰고 나가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기타도 사고 시내 악기상에서 기타도 배우고 하면서 음악에 빠져 들었지만 농사 지으시는 어머니도 음악을 전공하는걸 반대해서 취미라고 둘려대고 학교를 다녔다. 울산 학성고등학교를 거쳐 펄벅 재단의 도움으로 울산대학교에 진학했다.

혼혈에 배타적인 당시 사회 모습 때문에 군 입대도, 공무원을 하는 것도 불가능했던 그는 자신이 일반적인 경로로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판단, 예체능에 투신하기로 하고, 학성고등학교 시절에는 야구부에 입단하지만 불과 1년 후에 야구부가 해체하게 되어 그만둔다. 그런 그에게 음악 선생님이 재능을 알아보고는 가수의 길을 권하고 윤수일은 2학년 때부터 '엔젤스'라는 밴드를 꾸려 지역에서 공연을 하며 알음알음 활동을 해나가기 시작한다.
당시는 그룹 사운드의 전성시대였는데 윤수일 역시 1976년 신중현 사단의 "골든 그레이프스"라는 혼혈아 중심의밴드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골든 그레이프스는 함정필(건반), 함중아(기타, 보컬) 형제만이 혼혈아가 아니었지만 이들 형제를 주축으로한 싸이키델릭 록 밴드였는데 함중아가 탈퇴하며 그 자리에 윤수일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러다 1977년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그룹 사운드 경연대회에서 발탁되었고 당시 안타프로덕션의 사장이자 작곡가인 안치행의 눈에 띄어 음반 제작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원래 밴드명 대신 가장 스타성이 돋보였던 윤수일을 전면에 내세운 '윤수일과 솜사탕'이라는 이름을 썼다. 앨범의 수록곡 9곡 중 8곡이 밴드의 리더인 건반주자 함정필의 곡들이었는데 나머지 한곡이 바로 안치행이 작곡한 트로트곡 '사랑만은 않겠어요'였고 이 곡이 대히트를 친다. 윤수일은 이 곡으로 MBC <인기가요>와 TBC <베스트 세븐>에서 연속 7주 이상 정상의 자리에 머물렀다. 또 이듬해 KBS TV와 TBC TV에서는 최고 인기 신인상을 수상했다.
사실 이들의 앨범은 전체적으로 골든 그레이프스 시절의 싸이키델릭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윤수일의 보컬이 전면에 나선 가요 앨범으로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밴드는 트로트 풍이 좀 가미되더라도 대중적이고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하고자 했던 윤수일과 정통 록 사운드를 지키고자 했던 나머지 멤버들 사이에 내분이 생겨 해산되고 말았고 결국 그는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1978년부터 1980년까지 안치행의 제작하에 3년간 공식적으로 5장의 트로트 풍의 가요 앨범을 더 내면서 인기 가수 대열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의 매력적인 보이스와 잘생긴 얼굴로 가요 프로그램은 물론 공개 코미디 등 TV 예능에도 자주 모습을 비추면서 큰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1978년 윤수일은 솔로로 나서 그 해에만 무려 3장의 앨범을 발표하는 등 바쁜 행보를 이어갔다. '잊지 마세요'와 '갈대' 등을 수록한 솔로 데뷔 앨범과 리메이크 앨범인 <추억의 노래>, 그리고 '추억'을 타이틀곡으로 연말에 발표한 3집이 이에 해당한다.
1979년 발표한 윤수일의 솔로 4집은 작곡가 안치행의 영향 아래 있던 윤수일의 솔로 시기 성향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타이틀곡 '나나'가 많은 사랑을 받았고, 앨범은 전반적으로 트로트 고고 스타일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트로트 고고란 록과 트로트가 결합한 장르로 당시 유행한 고고장에서 밴드의 연주에 맞춰 춤출 수 있었던 음악을 말한다. 당시 이 스타일의 음악을 구사한 가수 중에는 록 밴드 출신이 많았다. 조용필과 최헌, 조경수, 윤수일이 대표적이다.
트로트 고고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작곡가 안치행이다. 그는 밴드 영사운드 리더로도 활동했는데, 이후 트로트 고고 음악의 산실인 안타기획 대표이자 작곡가로도 활동했다. '오동잎', '앵두' 등 최헌의 히트곡과 '사랑만은 않겠어요', '갈대' 등 윤수일의 대표적인 히트곡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안치행의 음악적 영향력 아래에서 발표된 윤수일 4집은 히트한 타이틀곡 '나나'를 비롯해 수록곡 대부분을 그가 작곡했다. 안치행의 곡이 아닌 것은 최주호 작사 작곡의 '석양의 여인'과 윤수일이 작사 작곡한 '한마리 새' 2곡뿐이다. 당연히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트로트 고고가 지배했으며, '칸나의 뜰'은 아예 정통 트로트였다.
이 앨범 이후 1980년 '유랑자'를 히트시킨 5집을 마지막으로 윤수일은 짧았던 솔로 시절을 마감하고 윤수일밴드 시대를 열었다. 이에 따라 음악 스타일도 트로트 고고를 버리고 록으로 전향했다.
1981년 윤수일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윤수일밴드를 만들어 록적인 성향이 강한 윤수일밴드 1집을 발표한다. ‘고독한 도시 남자의 음악’이라는 그의 음악 스타일을 그대로 담은 이 음반은 이후 '아파트', '아름다워' 등으로 이어진 본격 밴드 음악의 시작점이었다.
당시 윤수일의 인터뷰를 보면 “솔로로 활약하다 보니 노래가 자꾸 트로트 형식으로 흐르는 것 같아 노래 자체에 대한 재미를 찾을 수가 없었고, 밴드가 함께 연구하고 조언함으로써 스스로 음악적인 발전을 꾀한다는 점에서는 그룹의 매력을 떨칠 수 없다.”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는 자신의 이름을 밴드 이름으로 내세웠지만 멤버들과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데 비중을 뒀다는 뜻이다.
이때부터 그의 음악인생에 있어 정점을 달리는 최고의 시기가 시작되는데, 1집 앨범에서 번안곡 2곡을 제외한 나머지 곡들은 모두 윤수일의 자작곡이었다. 하지만 수록곡들을 들어보면 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아닌 밴드 구성원 모두의 합이 곡에 반영됐다는 점을 알수 있다. 즉 윤수일 개인이 아닌 밴드가 중심이 되어 만든 곡 위주로 활동했다는 점이다. 뛰어난 기타리프를 선보였던 '떠나지마' 이 곡 후반부에서는 목소리에 스크래치를 잔뜩 넣은 로킹한 보컬을 구사하며 ‘솔로 가수 윤수일’과 확실한 다른 점을 보여주었다.
이 앨범을 대표하는 곡은 '제2의 고향'으로 KBS <가요톱10>에서 1981년 11월 10일과 17일 2주 연속 1위를 차지한 빅 히트곡이다. 이곡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은 그의 음악에 흐르는 ‘고독’으로 수록곡인 '비'에서 빗소리와 천둥소리 효과음에 트윈 기타와 오르간의 블루지한 진행을 보이지만, 가사에 등장하는 것처럼 메마른 고독함이 묻어난다. 윤수일의 음악은 말 그대로 고독한 도시 남자의 음악이라고 할수 있으며 윤수일밴드의 데뷔 앨범은 윤수일의 이러한 음악성을 규정짓는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제2의 고향' 의 메인 리프는 1967년 미국에서 인기를 끈 "TV" 락 밴드 몽키즈의 'Pleasant Valley Sunday'와 흡사하기도 하다.
당시 윤수일의 별명을 로드 스튜어트로 소개했다. 로드 스튜어트의 1980년 앨범 <Foolish Behaviour>에 수록된 'Passion'은 빌보드 차트에서도 맹위를 떨쳤고 국내에서도 커다란 사랑을 받았다. 윤수일밴드 1집 마지막을 장식하는 '침묵'은 바로 로드 스튜어트의 'Passion'에 우리말 가사를 붙인 번안곡이다.
이 음반은 현재도 윤수일 최고의 명반으로 꼽힌다.
이듬해 1982년 '아파트'가 담겨있는 윤수일밴드 2집이 발매되었고 이앨범에서 '아파트'가 전국적인 대히트를 치면서 시대를 넘어선 최고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당시는 막 잠실에 우후죽순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이 노래의 가사 중 나오는 한강의 다리(대교)는 '잠실대교'라고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힘. 이 노래 역시 윤수일 본인이 작사 작곡한 노래이며 친구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다. 군대에 갔던 친구가 돌아와 보니 여자친구 가족은 그에게 연락도 없이 외국으로 이민 간 상태였고 아파트 초인종만 누르다 결국 돌아와야 했다고 한다.
1982년 발표되었지만, 한동안은 방송에 잘 나오지 않아 뜨질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윤수일과 매니저는 대학가를 돌며 이 곡을 응원가로 사용하도록 설득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2년 후인 1984년 뒤늦게 엄청난 히트를 치게 되었다. 1984년 KBS 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1위(골든컵)을 수상했을 정도로 1980년대를 강타했던 히트곡이며, 노래가 히트했던 당시인 80년대에 대중문화를 접했던 세대뿐만 아니라 전 세대가 알고 있는 국민가요가 되었다.
가요 차트를 점령한 최고 인기가요 '아파트'는 느닷없는 외설 시비를 겪었다. 가사 중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라는 부분이 문제였다. 가사에 등장하는 “다리”와 “갈대숲”이란 단어가 여성의 신체를 의미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는 대중가요를 폄하했던 시절, 대중이 가요에 대해 품었던 몰이해와 저급한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윤수일이 MBC의 어느 PD와의 불화로 1985년까지 출연이 정지된 것도, MBC 10대 가수에 선정되지 못한 요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집은 윤수일의 음악적 지향점이 빛을 발하며 대중과 소통했던 대표앨범이다. 타이틀곡 '아파트'는 경쾌한 리듬과 당시의 시대 상황을 반영한 소재의 신선함으로 인기를 끌었고, 이후에도 수없이 리메이크된 시대의 명곡이다.
현재까지도 애창되는 '아파트'와 '토요일 밤', '돌아와'가 인기 행진을 이었다. 윤수일은 이 앨범부터 안타기획에서 벗어나 독자적 행보를 시작한다.
1984년에 서울음반에서 발매한 윤수일밴드 3집은 타이틀곡 '아름다워'가 크게 히트했다. 하지만 밴드시절의 종막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 아쉬움을 남긴 앨범이기도 하다.
윤수일밴드 3집은 8곡(건전가요 제외)을 수록한 비교적 단출한 앨범이다. 김희갑이 작사 작곡한 '긴 긴 날', 박성호가 작사 작곡한 '내님 나의 사랑' 2곡을 제외하고, 히트곡 '아름다워'를 비롯한 6곡은 윤수일이 직접 작사 작곡했다.
'아름다워'는 갈매기 소리와 파도 소리의 음향 효과가 깔린 가운데 오토바이 굉음이 지나가고, 다시 리드미컬한 기타 백킹 위에 매력적인 키보드 연주가 흐르며 시작한다. 흑인 음악풍의 펑키한 리듬감이 일품이며, 깔끔하고 세련된 편곡이 돋보인 곡이었다.
이곡으로 1984년 9월부터 10월 사이 KBS <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해 골든컵을 수상했다. 이로써 윤수일은 그해 연초에 전작의 '아파트'로 골든컵을 수상한 데 이어 한 해에 2개의 골든컵을 수상하며 인기 절정을 달렸다.
이 앨범은 윤수일밴드가 남긴 마지막 불꽃으로 '아름다워'는 그 심지 역할을 충실히 해낸 곡이었다. 하지만 이 앨범에서부터 이미 록 성향은 뚜렷이 줄어들었다. '아름다워'외에 트로트풍의 '긴 긴 날'은 솔로 시절부터 시도한 트로트 고고 스타일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곡이다. 간주부의 키보드 솔로가 인상적인 록 넘버 '외로운 밤'과 '사랑의 빛', '안녕', '내님 나의 사랑', '행복을 찾아서', '불빛' 등 발라드풍 곡이 다수 수록되었다.
1985년 서울음반에서 발매한 윤수일밴드의 정규 4집 음반은 총 10곡(건전가요 포함)을 수록했으며 이 앨범의 타이틀곡 '환상의 섬'은 중첩되는 여성 코러스와 원숙미를 품은 윤수일의 매끄러운 보컬 멜로디가 아름다운 곡이다.
문명의 발전에 따라 파괴되어 환상 속에서나 접할 수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가사에서 시대를 앞서간 윤수일의 예술성을 확인할 수 있다. 전작인 3집의 히트로 자신감을 얻은 그는 당시 서구에서 유행했던 뉴웨이브 사운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며 대중성을 의식한 성인 취향의 트로트풍 발라드를 전면에 배치했다.
히트곡 '환상의 섬'은 당시 방송용으로 최적화된 3분 정도의 러닝타임이 일반적이었던 관행을 정면으로 부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4분 30초에 이르는 방송에는 다소 긴곡이었지만, 이곡은 음반 발매 후 꾸준히 라디오 전파를 타면서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타이틀곡 외에 '믿었어요'는 유리드믹스(Eurythmics)의 히트곡 'Sweet Dreams'를 연상시키는 인상적인 신시사이저 인트로로 시작한다. 이 곡은 기타 중심의 일반적인 밴드 사운드 구성에서 벗어나, 베이스의 슬랩 연주와 다채로운 신시사이저를 중심에 뒀다. 오늘날 들어도 시대의 간극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세련된 편곡이 돋보인다. 또한 '믿었어요', '흠뻑' 등 여러 곡에서는 뉴웨이브 사운드를 대표하는 전자 드럼을 과감하게 사용했다. 자칫 가볍게 느껴질 수 있는 전자 드럼의 스네어 사운드를, 일렉트릭 기타의 싱글 픽업이 만들어낸 하이 톤과 댄서블한 베이스의 슬랩 연주로 맞춘 균형감은 도시적인 느낌을 한껏 강조했다.
서정적인 멜로디가 돋보이는 '사랑의 빛'은 트로트풍의 '잊을 수 없는 이름', '외로워요'와는 달리 소프트 록에 가까운 발라드다. 사랑하는 이를 찾아가겠다는 아가페적인 사랑을 그린 가사는 특정 개인을 향한 연가를 넘어 종교적인 신념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윤수일이 1986년 발표한 5집은 모두 8곡을 수록했으며 모두 자작곡이다. 윤수일 5집은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이 음반은 1986년 발표한 윤수일의 5집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1980년 같은 음반사에서 <유랑자> 등을 수록해 발매한 앨범도 5집으로 표기돼 혼란을 준다. 이 앨범에서 1986년 KBS <가요톱10> 10월 첫째 주 1위를 기록한 '황홀한 고백'으로 윤수일은 MBC 10대가수로 선정됐다. 당시 윤수일이 노래를 부르며 백댄서와 함께 두 팔을 벌리고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춤이 크게 유행했다. 이 노래는 2015년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배우 라미란이 윤수일의 춤을 따라하며 재조명됐다.
윤수일은 이국적이고 수려한 외모로 1980년대 당시 큰 인기를 끌었고 '떠나지마', '제2의 고향', '유랑자', '아파트', '황홀한 고백', '아름다워', '환상의 섬' 등등 수많은 히트곡 및 명곡들을 남겼다. 초기엔 윤수일 본인이 언급하기도 했던 '락뽕'(락+뽕짝) 장르에 충실한 사운드로, 록에 트로트가 가미되었지만 결코 저급하거나 촌스럽지 않은 한국적인 록사운드를 선보였고, '아름다워'는 소프트 록에 R&B 색채를 가미한 세련된 곡으로 일각에서 한국 시티 팝의 대표적인 예(사실 일본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에 잘못된 분류이다.)로 언급하면서 재조명되기도 했다. 80년대 중반 이후로 황홀한 고백부터는 댄스까지 가미된 조금 더 가요에 가까운 사운드를 선보였다.
이후 2008년 다시 본격적인 활동을 재기한 그는 싱글 '터미널'이 나름대로 히트를 치면서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갔으며 이후 데뷔 35년을 결산하는 의미가 담긴 윤수일의 23번째 앨범<앵무새>가 2011년 발매되었다.
앨범 타이틀인 '앵무새'를 포함하여 총 7곡의 자작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는 그의 음악성과 더불어,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 될 수밖에 없다는 평소의 그의 소신처럼 대중가요의 새로운 변신과 실험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앨범이다.
2024년에는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콜라보 싱글인 'APT'가 전세계적으로 신드롬에 가까운 초대박 히트를 치면서 이에 윤수일의 아파트 또한 크게 영향을 받아 역주행을 하면서 다시금 그 노래가 2024년 말 대중들에게 재소환 됨으로써 또 다시 큰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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