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헌은 함경북도 성진군에서 1남 3녀(4남매) 중 둘째 및 외동아들로 출생하였으며, 그는 생후 3개월 시절이던 1948년 6월 당시에 일가족을 모두 따라서 경기도 파주군에 이주하여, 경기 파주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고 그 이후 1953년 11월 당시부터 서울에서 성장하였다.
학창 시절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아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였다. 명지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1967년, 밴드 ‘차밍가이스(Charming Guys)’를 결성, 기타리스트 겸 보컬리스트로 미8군 클럽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멤버는 보컬 최헌을 비롯해 윤원형(기타), 이성(드럼), 이남이(베이스 기타)로 구성된 4인조 그룹이였다.

1971년 '히식스(He.6)'의 멤버로 스카우트되어 보컬과 기타리스트로 팬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6인조 그룹 ‘히식스(He6)’는 처음 5인조 '히파이브(He5)'로 출발해 ‘초원’, ‘초원의 사랑’, ‘물새의 노래’ 등을 히트시켰던 실력파 록밴드이다. 당시 국내 그룹사운드의 붐을 촉진 시켰던 우리나라 그룹사운드 최대 축제인 "플레이보이컵 쟁탈 그룹사운드 경연대회" 2회(1970년)와 3회(1971년) 대회 연속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최정상의 그룹으로 군림했다. 최헌이 히식스에 합류한 건 1971년, 3회 대회를 앞둔 시점이었다.
“멤버 중 김용중(기타)씨가 재즈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 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멤버를 찾는데, 가능하면 노래 잘 부르는 사람으로 뽑고 싶었죠. 평소 멤버들이 눈여겨 보았던 여러 그룹 중에서 다섯 명이 물망에 올랐는데, 멤버들과 상의한 끝에 두 명으로 압축시켰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최헌, 그리고 조용필씨였어요. 둘 다 무명 신인이던 시절이었죠. 최종적으로 최헌씨가 선정되었는데 아주 독특한 허스키에 높은음도 잘 올라가고, 상당히 매력적이었죠.” He6의 리더 김홍탁씨의 말이다.
최헌의 합류 이후 발표한 ‘He6 vol.2’ 음반에서 ‘초원의 빛’이 크게 히트한다. ‘초원의 빛’은 이른바 초원시리즈로 불리던 히식스의 빅 히트 넘버로 ‘초원’, ‘초원의 사랑’에 이어지는 노래다.
“당시 초원시리즈의 인기가 대단했죠. 이 노래들이 히트할 무렵 전국에 ‘초원’이라는 이름의 다방이 엄청 많이 생겨날 정도였으니까...” 김홍탁씨의 말이다.
히식스가 해산하고 리더였던 김홍탁이 미국으로 떠나게돠자 He6 멤버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이 무렵 최헌은 솔로로 독립,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음반을 발표한다. 1973년에 발표한 이 음반은 조동진 작곡의 ‘가로등 불빛 아래’를 타이틀곡으로 한, 이연실과의 스플릿 음반으로 ‘가로등 불빛 아래’ 외에 조동진 작사, 작곡의 ‘해 떨어지기 전에’와 ‘들리지 않네’ 그리고 이장희 작사, 작곡의 ‘바람’ 등이 수록되어있다. 당시 포크 음악이 추구하던 서정성이 짙게 깔린 노래들이다.
비록 포크송으로 첫 솔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그는 늘 그룹사운드 음악을 추구했다. 1984년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최헌은, “통기타로 솔로 첫 활동을 시작했지만 이후부터는 나름대로 그룹사운드의 진면목을 찾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왔다”며 “그룹의 활동이 단순히 춤추는 사람들의 발 박자를 맞춰주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 특유의 사운드로 개성을 보여줘야 하고, 현 가요계 또한 그러한 추세”라며 “이러한 그룹사운드의 경향에 맞춰 나 자신도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1974년, 최헌은 7인조 그룹 "검은나비"를 결성한다. 검은 나비는 신중현이 이끌던 그룹 더 멘(The Men)과 히식스(He6) 출신들이 모여 만든 그룹으로 ‘더 멘’의 손학래(색소폰, 오보에), 김기표(기타), 이태현(베이스), 문영배(드럼) 그리고 ‘히식스’의 최헌(리드 보컬), 김영균(보컬, 키보드), 김인섭(트럼펫)이 가세했다.
이들이 발표한 첫 음반 ‘검은나비 1집(1974년)’에서 ‘당신은 몰라’가 크게 히트한다. 이 노래는 1971년에 임성훈이 첫 발표한 이후 히식스의 5집 음반 <당신은 몰라/아름다운 인형>(1972년)에 수록되었던 곡이다. 하지만 밴드 음악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던 오리지널 작품은 기타리스트 김기표의 편곡을 거쳐 보다 밴드 지향적인 음악으로 바뀌었다. 그로 인해 어쩌면 잊힐 수 있었던 이 곡은 다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다. 검은나비가 리메이크하여 발표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주며 동시에 목소리의 주인공 최헌도 함께 주목받았다.
1975년 12월에 발표된 <세월/오동잎> 앨범에서 수록곡 ‘오동잎’은 최헌을 가요계 정상으로 올려놓은 노래이다.
이 노래가 발표되던 1975년은 우리나라 가요계에서는 이른바 ‘대마초 파동’으로 가요정화조치가 시작되고 그때까지 트로트와 함께 가요계를 양분했던 포크와 그룹사운드 그룹들이 급격히 위축되었다. 대마초가 초토화 시킨 자리에 그룹사운드 출신 리드싱어들이 대거 솔로로 등장해 그 공백을 메웠다. 이들이 들고나온 장르는 하나같이 당시 유행하던 록이나 고고 리듬에 트로트를 접목한 노래들이었다.
‘오동잎’의 최헌을 시작으로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조용필, ‘사랑만은 않겠어요’의 윤수일, ‘난 정말 몰랐었네’의 최병걸, ‘나를 두고 아리랑’의 김훈, ‘돌려줄 수 없나요’의 조경수... 등등. 당시 10대 가수상과 가수왕 상을 휩쓸며 돌풍을 일으켰다. 이른바 ‘트로트 고고’의 시대였다.
대마초 가수들이 하나둘 규제에서 풀려나 활동을 재개하던 1970년대 말, 가요계는 또 한 번의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대부분 예측했지만, 이 예상은 빗나갔다. 가요계는 이미 트로트 고고 시대였다. 이 트로트 고고 붐은 더욱 가속화되었고 대마초의 공백을 함께 메웠던 대학가요제 인기 역시 더욱 거세어져만 갔다.
1970년대 우리나라 가요계에 트로트고고 시대의 문을 연 ‘오동잎’은 당시 기사에 의하면 이 음반은 20만 장 이상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최헌 노래가 크게 히트한 이유를 당시 경음악평론가 최경식은 한 일간지를 통해 이렇게 분석했다.
‘우선 30~40년대의 복고풍 선율을 현대판 고고 리듬으로 편곡해 현대 감각에 맞춘 점, 그리고 가수의 창법, 이른바 그룹사운드에서 익힌 젊은 감각과 실력으로 감정을 잘 억제하며 노래해 효과를 거둔 점...’이라며 ‘한국적 멜로디에 현대적인 리듬, 그리고 대중적인 창법을 성공 원인’으로 보았다. 이어서 ‘누구나 쉽게 흥얼거리며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라는 점도 히트의 주요 요소’로 꼽았다.
매니저 이태현씨는, “오동잎은 빠르고 경쾌한 멜로디로 더욱 사랑을 받았는데, 실제로 당시 자전거로 배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짐을 가득 싣고 출발할 때 ‘오, 동잎~’ 하고 페달을 밟으면 힘들이지 않고 자전거가 잘 달렸다는 재미있는 얘기가 전국에 나돌기도 했다”고 전한다.
이 무렵 안치행씨는 안타프로덕션을 설립한다. 이때 만난 사람이 검은나비를 해체하고 쉬고 있던 최헌. 이들이 손잡고 발표한 노래 ‘오동잎’이 결과적으로 한 시대의 트렌드를 바꾼 것. 이후 1977년에 독립, 직접 레코드 제작을 시작했다. ‘오동잎’의 반주는 검은나비 이후에 결성된 그룹 호랑나비가 맡았다.
당시 ‘세미 트로트’라 불리던 이 트로트고고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던 1976년, 2집 <세월/어찌합니까>를 발매한 최헌은 여세를 몰아 TBC 동양라디오 드라마 주제가 ‘어찌합니까'를 발표한다. 이 노래 반주는 당시 최헌이 몸담고 있던 그룹 호랑나비가 맡았다. 허스키한 음성에서 끓어오르는 애절함이 듣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이 노래 역시 지금까지도 마니아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노래 중 하나다.
이 음반에서 주제가로 주목받은 또 다른 노래가 ‘첫사랑을 닮은 여인' 이다. 당시 TBC 동양라디오의 인기수사극 <형사>의 "1천회 특집/첫사랑을 닮은 여인" 편의 주제가다.
1977년에 방송된 수사극 <형사/첫사랑을 닮은 여인> 편에는 최헌이 직접 극중 가수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사건의 주인공인 가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마약밀매단의 음모, 교묘한 살인, 그리고 노래 가사를 이용한 암호 교환의 트릭 등을 엮은 미스터리 가요드라마로 최헌은 극중 가수, 송수남 역을 맡았다.
1977년에 솔로 가수로 본격 전향하여 1978년에 벌표한 3집에 수록된 '앵두'는 안치행의 작품으로 역시 전통가요와 락 음악이 접목된 트로트고고 스타일의 곡이다. 날카로운 기타 인트로와 낮게 깔리는 오르간의 화음이 인상적인데 정작 기본적인 멜로디는 트로트에 가깝다. 실제로 1970년대 우리 밴드를 비롯해서 솔로 가수로 나선 최헌의 노래 상당수는 전통가요를 밴드 음악이나 락음악과 접목시킨 형태가 많았다. 연인의 입술을 앵두에 비유하면서 그녀의 약속이 떨어지는 앵두처럼 무의미한 것이 아닌지 걱정하는 화자의 마음을 담고 있다. 같은 앨범에 수록된 '구름 나그네'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78년 말에 발표된 4집 앨범의 최대 히트곡은 '가을비 우산속' 이다. 백태기가 곡을 쓰고 이두형이 가사를 지은 이 노래는 전형적인 발라드다. 그래서 기존 안치행의 곡들과는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최헌의 노래 중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특히 최헌의 가창력을 가장 극대화한 노래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웬만한 가창력이 없으면 따라 부르기 힘든 난이도의 노래이기도 하다. 이 노래의 작곡가 백태기씨는 그룹 ‘검은나비’에서 한때 멤버로 활동했던 경희대 음대 출신의 재즈 피아니스트. 그가 홍콩에서 활동할 무렵 받아놓은 시인 이두형의 시에 곡을 붙여 발표한 노래로, 제15회 TBC 방송가요대상(1979년)에서 작곡상을 수상했다.

이 노래가 인기를 얻으면서 동명의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만해도 인기 가요를 기반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는 사례가 꽤 있었다.
석래명 감독이 1979년 개봉한 영화로, ‘김자옥과 정윤희, 두 라이벌 간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로 화제를 모은 이 영화는 ‘가을비 우산 속에’라는 노래의 큰 인기가 제작 계기였다. 서정성 짙은 가사와 애잔한 멜로디를 최헌이 특유의 풍부하고 허스키한 음색으로 표현한, 가을 명곡 중의 하나다.
4집 수록곡 중 ‘순아’ 는 시인 장만영(張萬榮, 1914년~1975년)이 1950년에 발표한 시, ‘사랑’을 차용해 만든 노래다. ‘주소조차 없는 서울의 한 단칸방을 깊은 산 속에 있는 산비둘기 둥지에 비유, 햇빛과 달빛을 벗 삼아 둘만이 의지하며 살겠다’는, 젊은 남녀의 사랑을 그린 이 아름다운 시를 모티브로 했다. ‘비록 보잘 것 없을 지라도 둘이 함께라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는 진실한 사랑을 그린 노래다.
'오동잎' 부터 이어진 ‘세월’, ‘어찌합니까’, ‘앵두’, ‘구름 나그네’, ‘가을비 우산 속’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1978년 제13회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 가수(가수왕)상, TBC 방송가요대상 최고가수상을 시작으로 이후 1980년대 초까지 KBS와 MBC 10대가수상, 그리고 TBC 방송가요대상 등, 당시 방송 3사의 연말 가요상을 모조리 휩쓴다.

큰인기를 누리고 있던 그는 당시 연예잡지 명랑 79년 2월호의 가십 기사로 ‘모 여성과의 동거설’을 허위보도하면서 느닷없이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속칭 ‘아니면 말고’ 식의 이 ‘카더라 통신’으로 어이없게도 곤혹을 치르게 된 그는 결국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법정 싸움까지 벌여야 했다. 물론 뒤늦게 정정되긴 했지만 이미 이때 받아야 했던 이미지 타격은 어느 정도 불가피했다.
이러저러한 황당한 유명세를 치러야 했지만, 그는 폭발적인 인기에 힘 입어 전국 리사이틀 순회공연에 돌입한다. 1979년 5월 30일, 부산 공연을 시작으로 대전, 수원, 광주, 전주를 거쳐 마지막으로 서울 단성사에서 리사이틀 대장정의 막을 내리는 두 달간의 일정이었다. 특히 서울공연은 근 20여 년간 영화만 상영해오던 극장, 단성사가 6. 25 이후 최초로 리사이틀할수 있게 일반 가수에게 쇼무대를 제공했다고 해서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최헌 첫 리사이틀에는 가수 김추자, 조경수, 양희은, 최백호, 허참 등이 찬조 출연했고 또 5일 동안 펼쳐진 서울 단성사 피날레 공연은 재미 가수 한웅(He6 보컬)의 스테이지를 별도로 마련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무대 연출은 TBC-TV의 조용호, 이영식씨가 맡았다.
1981년 2월에는 군 위문공연을 3백 회 이상 펼친 공로로 군 사령부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고 3월에는 결혼을 했으며 이어 미국 로스엔젤레스를 시작으로 뉴욕, 워싱턴 등 3개 도시를 순회하는 교포 위문공연을 펼쳤다.
1983년에는 다시 5인조 그룹 ‘불나비’를 결성한다. 멤버는 최헌(리드 보컬), 김기표(기타), 조용남(베이스기타), 이근수(키보드), 문영배(드럼). 이들이 1983년에 발표한 음반 <불나비 1984>에 수록된 번안가요 ‘카사블랑카’가 크게 사랑받는다. 이곡은 2차대전을 배경으로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을 맡은 로맨스 스릴러 영화 ‘카사블랑카’를 감명 깊게 본 버티 히긴스(Bertie Higgins)가 영화에서 받은 영감으로 작곡한 노래다. 투박한 듯 애잔하면서도 애수에 젖은 목소리가 노래의 감성을 자극하는, 때문에 이 노래는 현재 또 하나의 번안가요 명곡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 음반에서 주목받은 또 한 곡이 ‘도시의 밤’이다. 신나는 로큰롤과 허스키 보이스가 어우러진 이 노래는 한때 연세대 응원가로도 쓰였다.
1984년에 발표한 7집 <가수의 어느 날>은 구수하고도 텁텁한 허스키 보이스가 주는 훈훈함을 잘 살린 음반이다.
이 노래를 작사한 이는 당시 매니저 일을 보고 있던 이태현씨로 그는 “그 무렵은 제가 최헌씨 매니저 일을 볼 때였는데 최헌씨 음색이 유독 케니 로저스(Kenny Rogers)와 흡사하다고 느꼈어요. 남성적 매력을 지닌 깊이 있는 음색..., 그래서 케니 로저스의 노래가 잘 어울리겠다는 판단에 당시 그의 최대 히트곡이었던 ‘스윗 매직 맨(Sweet Music Man)’과 ‘레이디(Lady)’를 번안해 음반에 수록했죠.”
‘스윗 매직 맨’은 ‘가수의 어느 날’로, ‘레이디’는 ‘헌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발표되었다.
1986년, 디스코, 트로트, 슬로 발라드 등 다양한 리듬을 담은 독집앨범 <잎새의 노래/소나기는 왜 내리나요>를 발표 했으며 1990년 ‘아쉬운 이별’, ‘세월이 가면’ 등을 발표했으며 1996년에는 테크노 리듬의 경쾌한 트로트 ‘남자의 마음’을 발표한다. 마흔을 훌쩍 넘긴 중년의 나이에 발표한 노래로 사랑이 이미 식어버린 여자를 떠나보내며 이젠 외로움에 익숙해져 괜찮다는, 한 남자의 심정을 담았다. 이 음반에서 월드컵 유치를 기원하는 노래 ‘Korea Korea Korea!’를 발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실제로 최헌은 연예계에서 손꼽히는 축구광이다.
2000년대 들어서 ‘돈아 돈아(2003년)’, ‘이별 뒤에 남겨진 나(2006년)’ 등을 발표한다. 이어 2009년 1월에 발표한 싱글, ‘울다 웃는 인생’이 결국 그의 유작 앨범이 되었다.
2011년 5월에 식도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가, 2012년 9월 10일에 향년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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