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동진은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나 1966년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하였지만 1968년 중퇴를 하였고 그 전년도인 1967년 미8군 무대에서 재즈 록 밴드 "쉐그린"의 기타리스트 겸 보컬리스트로 첫 데뷔했다. 이후 친구들과 같이 주로 동두천등 미8군 록 밴드에서 활동하였다. 록밴드에서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했던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통기타는 기타로 치지 않았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다가 밥 딜런과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음악을 알게 되면서 통기타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한다. 그러다가 이장희가 레너드 코헨 1집 음반을 선물로 줬는데 이 음반을 듣고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캐나다 출신 레너드 코헨은 포크가수로서 음유시인으로 불리울 만큼 싱어송라이터, 시인, 소설가로 인정을 받고 있는 가수인데 이후 그의 음악은 완전히 포크음악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김세환, 양희은, 서유석, 송창식 등 쟁쟁한 1970년대 포크록 가수들의 세션을 담당했다.
대학을 휴학하던 시기 중학교 동창인 윤형주와의 인연으로 본격적인 음악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20대 초반에 시인 고은을 만나면서 고은의 시로 '작은배'를 작곡하였다. 이곡은 1973년 발매된 양희은의 <고운노래 모음 3집>에 수록되면서 본격적인 작곡가로서의 길을 걸었다, 이후 현경과 영애의 ‘다시 부르는 노래’(1974년), 최헌의 ‘들리지 않네’(1975)를 비롯해 김세환의 ‘그림자 따라’, 서유석의 ‘긴 다리 위에 석양이 걸릴 때’, 송창식의 ‘바람 부는 길’, 이수만의 ‘마지막 노래’ 등을 만들었다.
조동진은 소설가, 작곡자이자 영화감독이었던 아버지 조긍하의 영향으로 음악적 소양이 깊었던것으로 알려져있다. 포크 그룹 '어떤날'의 멤버 조동익은 조동진의 친동생이며 여동생은 싱어송라이터이자 작사가, 영화음악 감독인 조동희이다. 또한 장필순은 조동익의 아내이기도 하다.
1980년대 음반제작사인 "동아기획"에서 조동진의 영향을 받은 후배가수들이 앨범을 발매함으로써 "조동진 사단"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한동준·이병우·장필순·김광석·고찬용·조규찬·유희열·이규호 등이 모두 그의 영향을 받았다. 그가 가수 활동을 하는 동안 언더그라운드 음악에 큰 발자취를 남겼고, 한국 포크계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79년 발매된 조동진의 1집 앨범은 데뷔하고 계속 음악활동을 하며 13년이 지난뒤 늦게 발매한 앨범이니만큼 굉장한 완성도를 자랑하는데, 그 기간이 그의 음악적 내공을 쌓아온 시간이었다고 평가한다. 그의 노래들은 삶을 관조하는 서정적인 노랫말에 단순한 멜로디인 듯하지만 미세한 감정까지 정교하게 풀어내며 깊은 감동을 준다.
이 앨범은 특히 80년대에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을 본격적으로 대중음악계의 전면에 등장시키기 시작한, 1970년대와 1980년대 음악의 분기점으로 평가 받는다. 세션에 1970년대 한국 포크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세션 그룹 "동방의 빛" 이 참여해 조동진이 이끄는 하나음악과의 교두보를 마련한 앨범이다. 프로그레시브 록 성향과 더불어 단순하면서도 쓸쓸한 조동진의 가창 실력이 돋보이며, 음악적 완숙이 극에 달한 3집과 함께 조동진의 걸작으로 꼽힌다.
'행복한 사람'은 원래 김세환을 위해 만든 노래였다고 한다. 김세환은 녹음까지 마쳤는데 대마초 파동에 휘말려 활동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나중에 조동진이 직접 1집에서 불러 그의 대표곡이 되었다.
'겨울비' 는 조동진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추모와 위로의 마음을 담아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불꽃’은 어머니 유품을 태울 때 심정을 담았다는 곡이며 '작은배'와 '내가 좋아하는 너는 언제나' 등이 수록되었다. 1986년 재녹음반에는 보너스 트랙으로 '언제나 그 자리에'와 '그림자 따라” 두 곡이 추가되었다.
조동진의 세션 팀으로 알려진 "동방의 빛"은 그가 잠시 기타리스트로 활동 했던 팀으로 기타리스트 강근식, 베이시스트 조원익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으며 이장희, 조동진, 송창식, 김민기 등 그당시 유명한 포크 아티스트들의 세션 연주를 했던 쟁쟁한 실력의 팀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관계자 발언에 따르면, 오랜시간뒤에 앨범을 발매한 이유는 딱히 거창한 계획이 있기 보다는 경제적인 문제가 생겨 전세 자금이라도 마련하기 위해서 낸 앨범이라고 한다. 실제로 수록곡으로 보면 앨범 구성을 고민했다기 보다는 조동진이 남에게 준 곡을 모아서 부른 송북에 가까운 앨범이다. 상업적인 면에서 성공했는데, 타이틀곡 '행복한 사람' 이 인기를 끌면서 그 당시엔 엄청난 판매량인 30만 장이 판매되었다. 이로인해 언더그라운드 애서 활동 했던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성공할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며 80년대 언더그라운드음악이 성공할수있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후 1집 앨범은 경향신문과 가슴네트워크가 선정한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되었다. 조동진은 1집 발표 후 방송 출연은 거의 하지 않았고 소극장 공연 등 언더그라운드 활동만 했다.
1980년 발매된 조동진 2집에서는 대표적인 히트곡 '나뭇잎 사이로'가 수록되어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으며 조동진을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개척한 선구자로 평가받게 해 준 명반이다. 이 앨범에서 대부분의 곡은 조동진이 작곡했는데 '어떤 날'은 동생 조동익이 작곡했다. 가사는 허영자 시인의 시 '어떤 날'이다. 2집은 오랫동안 함께한 세션 팀 '동방의 빛'과 녹음을 했고 이후 이 앨범이 크게 성공하자 2차 녹음을 했는데 이때 기타리스트 이병우와 피아니스트 김광민이 참여했다. 이 앨범을 계기로 훗날 조동익과 이병우는 듀오 '어떤 날'을 결성한다.
1981년에는 숭의음악당에서 훗날 소극장 라이브 콘서트의 효시라 불리는 팝콘서트를 열었다. 음반 외에 라이브 콘서트를 통해 대중과 만나려 했다는 점에서 그는 이후 언더그라운드의 선구자로 불리게 된다.
5년이 지난 1985년 3집앨범이 동아기획을 통해 발매되었으며 수록곡 '제비꽃'이 크게 히트하였다. 이 앨범에서 조동진은 특유의 삶을 관조하는 듯 슬픔과 위로를 담았는데 그때까지의 한국 포크 음악 역사에서 가장 내적이고 사색적인 노랫말과 섬세한 음악적 표현이 결합된 사례로 평가받는다. 3집 수록곡 대부분은 '제비꽃'처럼 느린 템포의 어쿠스틱한 곡이다.
소극장 공연 위주로 활동을 하던 조동진은 1987년 12월 26일과 27일 조동진 겨울 콘서트를 호암아트홀에서 했다. 그때까지 클래식과 순수 예술 공연만 하던 호암 아트홀이 국내 대중음악인 중 최초로 조동진의 공연을 허가했다. 이 공연에는 50명 규모의 합창단과 스트링 앙상블이 함께 공연했고, 당시 미국 이민을 앞둔 양희은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역시 5년이 지난 1990년에 4집을 발매 했다. ‘일요일 아침’을 타이틀곡으로 한 이 앨범은 동생 조동익이 베이스기타 및 편곡에 참여하여 조동진의 개성이 드러나는 작품이며 키보드가 많이 사용되어 몽환적인 연주가 담겨있다. 전반적으로 기존 스타일을 크게 벗어나지않으며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 처럼 시대에 흐름에 어울리게 편곡되어있는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수록곡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는 이듬해 발표한 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1991년 시집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를 발간했다. 시집에는 그동안 앨범에 수록된 '작은배' ,'제비꽃', '흰눈이 하얗게'등의 가사와 그 가사를 쓰게된 계기등에 대해 쓰여있다. 그는 후배들에게 “잔잔한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긴 위해선 호수가 잔잔해야 하듯이 때론 아무것도 하지 말고 마음속에 평점심을 가져라”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에겐 침묵조차도 음악의 일부였다. 그런 태도와 사유로 쓴 노랫말은 깊을 수밖에 없었다. 조동진의 노래엔 시가 말하는 비유와 상징, 반어와 역설이 모두 담겨 있었다.
1996년에 5집 앨범을 발표했다. '새벽안개'라는 타이틀의 이 앨범은 불멸의 명반이라고 평가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이전 작품들과 다른 새로운 경지에 이르렀다고 평가받는다. 노랫말은 더 심오하고 철학적이며 조동진의 노랫소리는 더 울림이 강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음악적 완성도 또한 전작들에 비해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한다. '넌 어디서 와' 장필순이 피쳐링한 곡이며 '우리 헤어져 멀리 있어도' 역시 장필순의 코러스가 돋보이는 곡으로 비트가 있는 미들템포의 곡이다. 그러나 5집 앨범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 크지 않아 조동진은 아주 실망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후 무려 20년 후인 2016년에 오랜 공백을 깨고 6집 앨범 <나무가 되어>를 발표하며 활동을 재개했다. 당시 칠순이었던 그는 “어둡고 가려진 곳에서 고단한 하루를 이어가고 있는 우리의 이웃들에게, 그리고 아직도 하루가 끝나지 않은, 내 오랜 노래 벗들에게 이 나직한 마음을 전해봅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나이 칠십에 이런 노래들을 만들었다니 놀랍다. 이 앨범은 2017년 2월 한국 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최고 영예인 올해의 음반상을 받았다. 그는 암 투병 중에도 2017년 9월에 열릴 13년 만의 무대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암이 악화되어 집에서 갑자기 쓰러져 끝내 세상을 떠났다.
4집부터 6집까지 그의 노래들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추구하며 작가주의 정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의 음악은 예술성은 더 깊어지고 음악적 완성도 또한 높아졌지만 대중성은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은 듯 점점 잊혀 갔다. 그래도 그의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그의 음악을 좋아했다. 자주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공연은 늘 객석이 가득 찼다. 2004년 LG 아트센터 공연을 비롯해 모든 공연이 매진이었고 2018년 암 투병 중이면서도 준비했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스스로는 하지 못한 공연 티켓도 사전 예매에서 이미 매진되었다.
조동진은 1980년대 중후반 음반 제작사 동아기획에서 많은 후배들과 음악 활동을 했는데 이때 이들을 '조동진 사단'이라고 불렀다. 동아기획에서 그와 함께 음악을 했던 후배들은 전인권과 최성원 등 들국화 멤버와 김현철, 동생 조동익, 장필순, 김창기와 동물원, 함춘호, 한동준, 조규찬 등이었다. 1985년 들국화 앨범이 대박을 터뜨리고 이후 김현식, 한영애, 신촌블루스, 봄여름가을겨울, 푸른 하늘까지 합류하면서 동아기획은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본산이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동아기획은 인기 있는 가수들을 배출하면서 초기의 작가주의 정신이 약화되자 조동진은 동생 조동익과 1992년 하나음악이라는 새로운 음악 공동체를 만들게 된다. 여기에는 김창기, 한동준, 함춘호, 김영석, 장필순, 이병우, 조규찬, 유희열, 조동희, 이규호 등 실력파 뮤지션들이 참여했다.
조동진은 하나음악을 통해 발매된 거의 모든 앨범을 프로듀서로 제작했고 조동익을 비롯해 함춘호, 윤영배, 김영석, 박용준으로 구성된 조동익 밴드의 탄탄한 세션이 하나음악의 앨범을 더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탄생하게 했다.
작가주의를 표방한 하나음악에서 발표한 앨범들은 대중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 가운데 유희열과 윤정오의 프로젝트 앨범인 토이의 <내 마음속에>와 여행 스케치의 <남준봉>, 조동진 5집 <새벽안개>, 장필순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등이 비교적 알려진 앨범들이다.
하나음악은 실력 있는 젊은 싱어송라이터들을 지원하는데 많은 투자를 했다. '유재하 음악 경연 대회'에서 입상한 유희열, 조규찬, 오소영, 윤영배 등이 하나음악을 통해 성공적으로 데뷔를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방송에 의존하지 않는 음악인들의 설 땅은 넓지 않았고, 시간이 가면서 하나음악은 재정적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이런 탓에 하나음악은 2003년부터 활동을 못하다가 2011년 푸른 곰팡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그 정신을 살려가고 있다. 푸른 곰팡이는 대중음악 기획사 또는 음반사가 아닌 소속 아티스트들에게 인디 음악, 포크 음악, 노래하는 시인, 작가라는 정체성을 부여하고 순수 창작 정신을 지켜나가기 위한 공동체라고 한다. 소속 아티스트는 조동익, 조동희, 장필순, 한동준, 박용준 (더 클래식), 윤영배, 이규호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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