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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가시나무'의 음유시인 시인과 촌장(市人과 村長)

 

 

1981년 하덕규와 오종수가 듀오를 결성한 후, 서영은의 1980년 중편소설인 <시인과 촌장(詩人과 村長)>을 따와서 팀명을 짓고 1집 <시인과 촌장>을 발표한다. 오종수는 결혼과 취업 등의 이유로 팀을 떠나게 되었고, 그 후 1985년 하덕규는 기타리스트 함춘호를 만나 시인과 촌장 2기를 결성하게 되었다. 1986년 2집 <푸른 돛>을 발표하고 함춘호의 부재 중에 1988년에 조동익, 이병우(어떤날) 등의 도움을 받아 3집 <숲>을 발매했다. 개인활동 후에 1997년 재작업을 선언한 후 다시 함춘호와 함께 2000년 4집 <The Bridge>를 발표했다. \

 



하덕규는 1958년 7월 21일생으로 실향민 부모 아래 태어나 어린 시절을 속초 인근에서 보냈고, 열 살 무렵 서울로 이주해 도시 생활을 시작했다. 아버지가 양조장을 운영하던 덕에 유년기에는 비교적 풍족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12세 무렵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정서적으로 큰 혼란을 겪으며 서울 생활에 어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원래 화가를 꿈꾸며 미대에 진학했던 하덕규는 동양화를 전공하다가 우연히 나간 아마추어 노래 경연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 음악에 눈을 뜨게 된다. 미술을 전공했지만 순수의 영혼을 담아 노래를 부르기를 원했던 그는1980년 포크음악의 산실이었던 명동 "셸부르"에서 바람개비라는 이름의 트리오에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 오종수와 함께 방송 출연 기회를 얻게 되었고, 당시 팀명을 묻는 질문에 즉흥적으로 ‘시인과 촌장’이라 답한 것이 팀 결성의 시작이 되었다고한다. 

 

 

시인과촌장 - 꽃을 주고 간 사람

 


1981년, 고등학교 동창인 오종수와 함께 유니버설레코드에서 발매한 <시인과 촌장 1집>으로 정식 데뷔했다.
이 앨범에는 총 11곡이 수록됐는데, '남몰래 흘리는 눈물'만 오종수의 곡이고, 나머지는 모두 하덕규의 곡이었으나 그의 본래 의도는 사라지고 상업적 결과만이 남은 앨범이 되었다. 삶을 반영하는 깊이 있는 음악의 정립은 부족했지만 장르의 탐색이 치열했던 데뷔 음반은 포크와 록을 넘나들며 독특한 사운드를 이끌어낸 ‘짝사랑’, ‘꽃을 주고 간 사람’, ‘님 타령’등이 대중에게 강하게 어필 되었다. 몇 차례의 방송 출연 후 아티스트를 소모품으로 여기는 방송 관계자들에게 심한 모멸감을 느끼고 가요계의 병폐적 속성에 영합하기 않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고한다. 오종수가 결혼 후 사업을 하기 위해 도중 하차를 하는 바람에 음악적 모색기를 맞이했던 때이기도 했다. 

 

 

 

하덕규 - 진달래

 


1집 이후 1983년 솔로 데뷔 음반인 <하덕규 신곡집>을 발매한다. 전 곡을 자신이 작사작곡하였던 이 음반에서는 '진달래'와 나중에 남궁옥분 음반에 수록되는 '슬픈 재회'가 유명하다. 이곡은 남궁옥분의 앨범에 '재회'로 곡명이 변경되어 수록되었다. 이듬해인 1984년에는  절망의 끝에 이르러 오른 산에서 만난 노인을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은 경험을 담은 '한계령'을 양희은에게 주었다.  

하덕규가 기타리스트 함춘호를 만난 것은 1985년 발표된 '동아기획'의 <우리 노래 전시회 1집>에 솔로곡 '비둘기에게' 를 수록하면서였다. 이어진 순회 공연 도중 그를 만났고 이듬해인 1986년에는 시인과 촌장이라는 이름으로 의기투합해 ‘시인과 촌장’ 2기로 재편, 1986년 발표한 정규 2집 <푸른 돛>을 통해 큰 주목을 받으며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만들어갔다. 

 

 

 

 


이 음반에서는 '사랑일기'가 라디오를 중심으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시인과촌장의 존재를 비로소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음반이다. 이 음반에는 10곡이 수록됐다. 수록곡 '푸른 돛'부터 '비둘기 안녕'까지 모든 곡은 하덕규의 곡이다. 이 음반은 시인과촌장이 함께 편곡했고, 동아기획의 제작으로 진행됐다.  
이 앨범은 어른들을 위한 동요다. 고민과 그리움이 함께 하며 섬세한 파장을 만들어낸다.  사회와 직접적으로 맞닿으며 부대끼던 그 이전의 모던 포크와는 달리, 맞닿되 피하지 못하는 괴로움을 이 앨범은 담고 있다. 

크레용으로 그린 연두빛 언덕과 푸른 하늘, 고양이와 비둘기가 등장하는 음반 표지 그림은 하덕규가 직접 그렸다. 시인과촌장이라는 글씨 또한 그의 솜씨다. 음반 표지에는 “이 음반을 위해 수고해 주신 친구들께 감사하고, 지켜봐주신 조동진 선배님께 감사드립니다”라는 멘트가 적혀있다.  

 

 

풍경

 

2집 음반 수록곡들은 비둘기, 고양이, 매 등 동물을 제목으로 사용한 곡이 많다는 점이 이채롭다.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한 곡이 대다수였던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이 같은 시도는 그 자체로 시인과촌장을 돋보이게 했다. 
이 음반에는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담은 '푸른 돛', '사랑일기', '풍경' 같은 곡, 그리고 고뇌하는 젊음의 상처와 아픔을 담은 '비둘기에게', '진달래', '떠나가지마 비둘기', '비둘기 안녕'이 함께 수록됐다. '고양이'와 '얼음무지개'에서는 음반 표지에서 느껴지는 동화적인 상상력이 돋보였다. 
하덕규의 여린 보컬과 섬세한 감성을 돋보이게 한 함춘호의 연주력은 시인과촌장의 음악을 높은 완성도로 끌어올렸다. 예컨대 '고양이'의 간주와 '매' 등에서 선보인 기타 연주는 기존의 한국 대중음악에는 유례가 없는 스타일이었다.

 

그의 노래 가운데는 생활 속의 작은 관찰로부터 시작된 경우가 많다. 어느 날 밤새워 술을 마시고 새벽녘에 버스 종점 부근의 작업실에 들어왔는데 창밖을 보니 새벽에 일나가는 사람들, 학교 가는 학생들의 모습이 숭고하고 사랑스럽게 보여서 그 자리에서 가사를 쓰고 만든 노래가 '사랑일기'이다. 하덕규에게서 가장 인간적인 향기가 느껴지는 노래다.  
하덕규의 아름다운 노랫말과 따스한 멜로디는 힘들고 지친 이들에게 늘 '인간미 넘치는 편안한 위로'를 선물해 주고 있다. 

 

 

비둘기에게

 


이처럼 기존의 포크 음악과 달리 세련되고 모던한 편곡과 사운드를 보여준 시인과촌장 2집은 결국 2007년 음악 전문가들이 뽑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가운데 14위를 차지할 정도로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2집 음반을 발표한 1986년 시인과촌장은 조동진, 들국화, 따로또같이, 해바라기 등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2집 발표 후 시인과촌장은 조동진, 들국화, 어떤날 등과 함께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인의 산실이 된 동아기획의 주축으로 자리 잡으며 활동을 이어갔다.

 

 

 

 


1988년 동아기획에서 발매한 시인과촌장의 세 번째 음반 <숲>은 2집과 함께 이들을 대표하는 음반으로, 타이틀곡 '가시나무'가 히트했고, 그 외에도 여러 수록곡이 사랑받았다. 또한 2007년 음악 전문가들이 뽑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가운데 31위로 뽑힌 1980년대의 명반이다. 

이 앨범은 단순한 포크를 넘어선 포크록, 재즈, 클래식의 색채를 담아내며, 한층 더 깊어진 음악 세계를 보여준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삶과 신앙, 존재와 위로’이다. 대중적인 멜로디를 지양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품은 서정적인 구성은 앨범 전체를 하나의 시집처럼 감상하게 한다. 
앨범에 수록된 총 10곡의 수록곡은 모두 하덕규의 자작곡이다. 수많은 세션맨이 참여한 녹음은 1988년 2월 29일부터 3월 30일까지 서울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프로듀싱과 편곡은 조동익과 하덕규가 담당했다. 

앨범의 재킷 표지를 장식한 숲 그림과 글씨는 그림을 전공한 하덕규의 솜씨다. 참여 뮤지션 중 다수는 당시 동아기획을 주축으로 활동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었다. 2집에 참여했던 기타리스트 함춘호는 이 음반에는 함께하지 않았다. 훗날 함춘호는 시인과촌장 시절을 회상하며 “하덕규를 만나서 음악을 하며 또 다른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 만나기 전엔 하덕규의 너무 세련된 느낌을 질투하기도 했어요. 저는 투박한 질그릇이었으니까요”라고 고백했다. 그는 “그 진척이 마감된 건 너무 아쉽습니다. 당시 전 ‘연주’에 초점을 맞췄기에 상호 지향이 균형을 맞추지 못했던 거지요”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결국 2집에서 함춘호가 맡았던 역할은 조동익의 몫이 되었다. 하덕규는 음반 속지에 “프로듀스와 편곡 등 많은 일들을 도맡아 해준 내 사랑하는 친구 동익에게, 그의 인내에 경의를 표한다”고 각별히 언급했다. 

 

 

새날

 

 

'가시나무'과 '새날'은 깊은 울림을 주는 서정적인 슬픔을 담은 고통과 성찰의 명곡이며'새털구름', '새봄나라에서 살던 시원한 바람'은 하덕규의 동화적인 세계관이 마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곡이다.  

하덕규는 이 음반의 성취를 종교에 대한 감사로 돌렸다. “마지막 녹음 직전에 ‘가시나무’와 ‘나무’를 만들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내 다급했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이 판에 대한 칭찬을 그에게 돌린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그의 사랑에 깊이 감사드리며 그 사랑의 통로로서의 노래가 되지 못했던 부끄러운 지난날들에 대해 반성하는 마음이다”라고 앨범의 속지에 적어놓았다. 
이 음반에서 드러난 정서는 '가시나무', '새날', '푸른 애벌레의 꿈', '숲' 등에서 보이듯 기독교적 세계관이 지배적이며 하덕규는 이 음반을 발표한 후 음악적 방향을 기독교 음악(CCM) 쪽으로 선회했다. 

 

 

푸른 애벌레의 꿈

 


2집의 대중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하덕규는 내면의 공허함과 우울증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대마초 흡연 등으로 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했으며,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절망에 빠졌다. 그러던 중 누나의 권유로 교회를 찾아가 회심하게 되었고, 그때의 고백을 담아 만든 곡이 바로 가시나무이다.  
하덕규가 쓴 가사들을 들여다보면, 인간 내면의 아주 깊고 어두운 고독부터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을 마치 수채화처럼 그려내고 있는데 특히 '가시나무'의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라는 가사는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자아의 혼란과 아픔을 더없이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곡에서 신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없지만, '사랑하는 하나님 앞에서 아직도 죄를 짓고 원하는 것만 쫓아가는 나 자신을 하나님께 미안하다고 고백하는 내용'이라며 강의에서 하덕규 본인이 직접 설명한 적이 있다. 

정덕수’ 시인의 시를 바탕으로 하덕규가 작사 작곡 한 ‘한계령’, 조성모의 리메이크로 더욱 유명해진 ‘가시나무’, 남궁옥분의 ‘재회’ 등 수많은 명곡으로 사랑받은 작곡가인 그는 시적인 노랫말과 깊이 있는 멜로디로 많은 이들의 감성을 울리며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시인과 촌장 3집 이후 그는 다시 솔로로 CCM 앨범인 <쉼>(1990년), <광야>(1992년) 등의 음반을 발매했으며 1995년 CBS FM에서 하덕규의 ‘CCM 캠프’진행을 맡고 1997년에는 15년 음악생활을 정리한 기념앨범<15years, 15songs>과 함께 독집 <집1 - 누구도 외딴섬이 아니다>를 발매하면서 CCM 가수로 활동했다. 

2000년 조성모는 '가시나무'를 리메이크한 앨범 <클래식>을 발표, 130만장이 넘는 판매를 기록했다. 가시나무의 리메이크는 조성모가 발표하기 이전인 1997년 남성 듀오 유리상자가, 1999년엔 신세대 발라드가수 이정봉이 리메이크해 불렀지만 조성모를 넘지는 못했다.  ‘가시나무 신드롬’이라 부를 정도의 큰 인기를 얻었다. 

4집 <The Bridge>



2000년 함춘호와 재결성하여 발표한 4집 <The Bridge>은 사람과 사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The Bridge)를 놓아 단절된 인간관계를 연결하고 싶다는 바람의 앨범이었다. 함춘호와 재작업을 선언한 후 4년 만이었고 시인과 촌장으로서는 12년 만에 발표한 앨범이었다. 

 

 

가시나무 두번째 이야기

 


새앨범의 타이틀인 'The Bridge'는 20세기와 21세기,현대인들의 단절된 관계들을 이어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위태로운 관계를 사랑과 신뢰라는 튼튼한 다리로 잇고 싶다는 얘기다. 인간다움을 연호하는 '가시나무,두번째 이야기',존재의 근원을 모든 사람들이 찾고자 한다는 '뿌리',평소와 달리 허스키보이스를 이용해 낮은 톤으로 노래하는 '별' '미스터 딜런' 등이 귀에 들어온다. 서정적이면서도 깔끔한 어쿠스틱 포크 음악과 얼터너티브와 프로그래시브 성격이 강한 포크록 성향의 음악이었다. '가시나무Ⅱ'를 통해 조성모의 '가시나무'에 열광했던 젊은 음악팬들이 세월이 흐르면 동감할 것이라며 신세대에 대한 믿음도 내비쳤다. 인디밴드 델리 스파이스와 함께 부른 '출구없는 극장'은 모던록의 사운드와 하덕규의 보컬이 잘 녹아든 곡이다.  

이후 암 진단을 받는 큰 시련을 겪게 된 하덕규는 이 사건이 그의 삶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암을 이겨낸 뒤, 하덕규는 미국에서 선교학을 전공하며 신학 공부에 더욱 더 매진했고, 2010년에는 워싱턴 D.C.에서 정식으로 침례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에는 목회자이자 교수로 활동하며 음악과 신앙을 함께 전하는 삶을 살고 있다. 



함춘호는 1961년 8월 5일생으로 유년 시절, 부모님의 이혼과 아버지의 재혼을 겪으며 정서적으로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웠던 그 시절, 음악은 상처를 달래주는 유일한 통로가 되어주었다. 아버지가 동네 경연대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음악에 매료된 함춘호는, 중학교 1학년 때 예원학교 성악과에 다니며 성악을 시작했다. 하지만 우연히 듣게 된 기타 반주 소리에 강하게 끌렸고, 이내 기타 연주에 몰입, 형에게 G코드 하나를 배운 뒤 밤새도록 연습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그는, 레슨비를 아껴 기타를 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심지어 무기정학까지 받을 정도로 연습에 몰두했고, 어려운 F코드 앞에서는 좌절도 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연주 실력을 키워나갔다. 

고3 때 (1979) 친형의 친구였던 이문세에게 노래를 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고, 그의 소개를 받아 레스토랑에서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이후 입소문이 나서 전인권이 노래를 들으러 왔고 이후 인연을 맺게 되어 한동안 둘이서 함께 공연을 했다. 이 시기 전인권의 노래와 본인의 노래를 비교하게 되면서 서서히 노래에 대한 꿈을 접고 기타에 집중하게 되며, 1980년대 초반에 전인권과 다른 멤버들과 함께 팀을 이뤄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후 1981년 이광조의 앨범에 연주를 하게 되면서 첫 세션 연주를 했고 대구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 그때 소문을 듣고 찾아온 하덕규의 제안으로 1986년 시인과 촌장의 2집 멤버가 되었다. 

 

 

푸른 돛

 


‘시인과 촌장’의 2집 앨범 수록곡 ‘푸른 돛’에서 들려준 감성적이고 세련된 기타 연주는 함춘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션 기타리스트로 자리매김했다. 80~90년대 수많은 가요 명곡의 기타 연주를 도맡았으며, "함춘호가 없으면 한국 대중음악계에 차질이 생긴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신승훈의 ‘미소 속에 비친 그대’, SG워너비의 ‘바람만 바람만’, 트와이스의 ‘Alcohol-Free’ 등 수많은 히트곡에서 함춘호의 섬세한 기타는 노래에 깊이를 더해주었으며, 시대를 대표하는 감성의 배경이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