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궁옥분은 맑고 청량한 목소리로 1980년대 초반을 풍미한 가수로 1958년 10월 2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2남2녀 중 맨 막내인 남궁옥분은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와 집안일만하는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보통 아이들보다 키가 크고 남달리 달리기가 빨랐던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육상선수로 뽑혀 운동을 시작했고 평소에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성악에 취미를 가져서 무종교자임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교회에서 성가를 불렀고, 고등학교 재학 시절 구 손에 이끌려 찾았던 포크음악 동아리 "참새를 태운 잠수함"에서 공연하였다. 성균관대 재학시절 쉘부르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면서 이종환 사단에 들어갔다. 이후 오아시스레코드의 첫번째 포크가수가 되어 앨범을 발매하게 되었다.
1979년 첫 앨범 <알게 될거야/ 보고픈 내 친구>를 발표했다. 데뷔앨범에 수록된 '보고픈 내 친구'는 이종환의 나레이션과 불안정하게 떨리는 남궁옥분의 목소리가 조화를 이루는 곡이며 어울리지않는 '황성옛터'나 '목포의 눈물'도 수록되어 있다. 데뷔 초에는 CBS <세븐틴>이라는 프로그램에서 DJ를 맡기도 하였다.
2집앨범은 따로 또 같이의 멤버이기도한 나동민의 작품집이며 타이틀 곡인 '꽃분이'와 두 대의 어쿠스틱 기타가 매력적인 '내가 찾는 아이' 가 수록되어 있는데 '내가 찾는 아이'는 1980년대중반 밴드 들국화가 리메이커해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이다.
그녀는 쉘부르에서 활동하며 3장의 앨범을 냈으나 별다른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방송활동은 꾸준히하게 되었고 송창식 김세화 등이 소속된 오리엔트 프로덕션의 나현구 사장에게 발탁되었다.
1981년에 발매한 4집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에헤라 친구야> 에서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라는 곡으로 KBS방송가요대상 신인가수상을 수상하면서 대중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가 청춘들의 사랑을 대변해주는 가사에 남궁옥분 특유의 독보적으로 청아한 음색이 어우러져 당시 중고교생~대학생 등 젊은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어 KBS 2TV 가요톱10에 4주간 1위에 오르는 등 큰 히트를 기록하면서 스타덤에 올랐고, 1981년 KBS 방송음악대상 여자신인상까지 수상했다.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는 원래 박동률의 순수한 포크 음악이었지만, 고음역대에 강한 남궁옥분의 창법에 흥을 불어넣은 편곡으로 가요 차트 1위에 오르며 인기를 얻어 그녀의 대표곡이 됐다. 맑고 깨끗한 목소리와 높은 음역대에 강한 남궁옥분의 창법, 그리고 흥을 자극하는 편곡이 돋보이는 노래다. 하지만 그 어떤 노랫말보다도 슬픈 정서를 담고 있다. 이 노래는 그해 겨울부터 모든 가요 순위 프로그램 1위에 오르며 남궁옥분의 대표곡이 됐다.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는 선배 포크 가수 김세환이 부르기로 했다가 남궁옥분에게 간 노래였다. 4트랙으로 녹음된 이 노래는 1970년대에 비해 한국 음반 시장의 녹음 환경이 나아졌음을 증명했다.
앨범에 담긴 총 11곡(건전가요 제외)의 수록곡 중 신곡은 '사랑의 계절'과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넘치는 님의 사랑', '우리처럼' 등 4곡이었다. 신곡을 뺀 나머지 7곡은 이미 발표된 노래를 남궁옥분이 다시 불렀다. 정태춘이 작사 작곡한 '에헤라 친구야'는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에 연이어 히트한 노래였다. 이 노래는 1975년 발매된 <골든 포크 앨범 Vol. 13>에서 양병집이 처음 불렀다. 이 곡은 1978년 장영희의 <가버린 계절>에서 정태춘이 다시 노래했다. 양병집이 노래한 '에헤라 친구야'는 정태춘, 남궁옥분 버전과는 가사가 달랐다.
수록곡 중 '시집살이'와 '가버린 계절'도 장영희가 이미 발표했던 노래인데, 특히 '가버린 계절'은 장경수와 권보영이 1977년 발표한 스플릿 앨범에서 김상배가 처음 취입했던 노래였다. 이장희의 히트곡 '휘파람을 부세요'와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1979년 조동진 1집에 수록된 '다시 부르는 노래'와 '행복한 사람' 도 이 앨범에서 리메이크됐다.
수록곡 중 '사랑의 계절',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두 곡은 남궁옥분이 처음 발표한 곡이며 이후 1985년 원작자인 엄인호의 솔로 앨범과 1982년 엄인호가 참여한 밴드 장끼들의 앨범에도 다시 수록됐지만, 남궁옥분이 부른 버전이 가장 널리 알려졌다.
1982년 발매한 남궁옥분의 5집 음반 <꿈을 먹는 젊은이 / 호박꽃>에서는 '꿈을 먹는 젊은이'와 '호박꽃'이 히트했다. 특히 '꿈을 먹는 젊은이'는 희망을 주는 가사와 경쾌한 리듬으로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얻었고 프로야구 개막(1982년)과 맞물려 야구장의 응원가, 에어로빅 율동 음악 등으로 자주 사용됐다. 각종 야유회, 단체 모임 등에서 이 곡이 자주 불리면서 남궁옥분은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인기 가수가 되었다.
이 앨범을 발매한 1982년은 한국 프로야구의 개막 원년이다. 이는 당시 제5공화국이 국민의 관심을 스포츠로 돌리기 위해 추진한 결과였다. 구단마다 고유의 응원가가 있어야 한다는 개념조차 없었던 시기에, 경쾌한 '꿈을 먹는 젊은이'는 프로야구팀 응원가로 안성맞춤이었다.
또한 주부들 사이에 에어로빅이 유행했던 당시, 이 곡은 율동 음악으로도 자주 쓰였다. 남궁옥분은 이 노래의 인기에 대해 “편곡 쪽으로 완성도는 다소 떨어지는 노래였지만 노래 가사가 주는 희망적인 내용들이 거부감 없이 젊은이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요소가 되었던 것 같다”고 자신의 공식 사이트에 밝혔다.
이 음반에서는 송명복 작사, 작곡의 '호박꽃'도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또한 송창식, 엄인호, 이정선의 기존 발표곡을 다시 불러 좋은 반응을 얻었다. 남궁옥분은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의 <호박꽃>을 부를 당시 “포크 가수 시절의 초심을 가지고 활동 구상을 했지만 의외로 '꿈을 먹는 젊은이'가 연속 히트해 생각을 접고 말았다”고 한다.
청량한 목소리와 뛰어난 말솜씨를 내세워 남궁옥분은 여러 가요 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했다. 1982년 진행된 TV 탤런트 및 가수 인기조사에서 여자가수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1983년 발매된 6집 <남궁옥분'83>에서 '나의 사랑 그대 곁으로'가 큰 인기를 얻었다. 이곡은 애틋한 사모의 정이 짙게 묘사된 곡으로 편곡자 이정선이 포크기타 특유의 쓰리휭거 주법을 반주패턴으로 연주하여 곡 전체의 인상적인 분위기를 이끌어주는 곡이다.
수록곡인 '똑바로 쳐다 볼 수 없어요'는 '82 방송음악대상 가요부문에서 작사상을 수상한 박건호와 작곡상을 수상한 최종혁의 작품으로 '남궁옥분이라는 가수는 빠른 노래를 불러야만 잘어울린다' 라는 일반적인 생각을 파괴하기 위하여 과감하게 발표한 곡이다.
1984년 발매한 7집 <남궁옥분'84>은 '설악산'과 '작은 동산'이 수록된 앨범이다. 두 곡 모두 그룹 딕훼밀리 출신의 작곡가 오세은의 작품으로 남궁옥분이 리메이크한 '설악산'이 사랑을 받았다.
방송활동을 활발히하던 남궁옥분을 시기 질투하던 동료 때문에 슬럼프에 빠져 무대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이후 한 2년 동안 볼링과 윈드 서핑에 빠져 지내면서 제1회 윈드서핑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1985년 지구레코드 전속 1집으로 발표한 8번째 앨범 <남궁옥분 VOL.1>에서는 타이틀곡 '재회'가 크게 히트하면서 각종 가요 차트 1위를 장악했다. 통기타 가수 앨범으로는 이례적으로 10만 장이 넘게 팔린 이 앨범의 히트로 남궁옥분은 성공적인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앨범은 남궁옥분에게 터닝 포인트를 마련했다. 앨범에 수록된 총 9곡 중 8곡은 시인과촌장의 하덕규가 창작했고, 나머지 1곡은 참새를 태운 잠수함의 총무 구자형의 창작곡이었다.
하덕규 외에 이호준, 김명곤이 편곡에 참여했으며, 최이철, 함춘호, 이호준, 배수연 등 당대 최고의 세션이 참여해 앨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가수 김학래의 매니저 안정대는 방황하던 남궁옥분에게 하덕규를 찾아가보라고 권했다. 하덕규와 남궁옥분은 명동 라이브 클럽 쉘부르에서 함께 노래한 사이였다. 당시 가요계에서는 인기 가수라도 작곡가를 직접 선택할 권한이 없었지만, 남궁옥분은 하덕규를 찾아갔다.
경복궁 앞 화실에서 작업하던 하덕규는 세상에 나오기를 꺼렸다. 그런 그를 설득해 만들어지기 시작한 남궁옥분 8집은 하덕규의 작품집 형식이 됐다. 지구레코드에서는 무명 작곡가 하덕규에 대해 반신반의했지만 남궁옥분의 인지도를 생각해 앨범 제작을 결정했다. 건전가요 같던 남궁옥분 특유의 밝고 경쾌한 노래를 사색적이고 독특한 하덕규의 감각을 반영한 곡이 대신했다.
타이틀곡 '재회'는 떠난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담담하지만 짙은 여운으로 그려낸 명곡이다. 남궁옥분은 가슴속에 묻은 사랑의 열병을 관조하는 순간을 탁월한 가창력으로 표현했고, 이호준은 탁월한 편곡으로 이를 잘 살려내 1980년대 대중의 심금을 울렸다. 이 음반의 유일한 히트곡인 '재회'는 원래 1984년 대성음반에서 발매한 <하덕규 신곡집>에 '슬픈 재회'란 제목으로 하덕규가 1년 먼저 발표했지만, 당시에는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다른 수록곡 중 '불새', '파랑새', '헤어진 그 슬픔을' 등은 록, 레게, 포크,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울렀다. 특히 하덕규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또 다른 곡 '꽃을 주고 간 사람'은 남궁옥분의 독특한 고음역대 보컬이 압권이다.
이 음반은 당시 소모적인 음악 활동에 회의를 느꼈던 남궁옥분의 고민을 풀어주고 그녀에게 성공적인 재기의 발판을 만들어줬다. 또한 당시 칩거 중이던 하덕규는 이 음반의 성공을 계기로 기타리스트 함춘호와 함께 시인과촌장 2기 활동을 시작하며 주옥같은 명곡을 발표했다.
하지만 '재회'의 영광도 잠시 가수에겐 사형선고와도 같은 성대결절을 겪었다. 결국 수술없이 그 아픔을 이겨낸 건 노래를 통해서였다. 남궁옥분은 19988년 7월 자신의 운명을 노래하듯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 담긴 9집 앨범을 힘겹게 완성하며 뮤지션으로서의 사명을 다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앨범을 발표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남궁옥분은 DJ와 MC로 활동을 꾸준히 했는데 1979년 CBS <우리들>을 시작으로, 1982년 MBC <세월따라노래따라>와, 1983년 MBC <가요 하이웨이> 및 KBS <6시의 팝송>등의 프로그램 DJ로 활약하며, 최근까지 EBS-FM <남궁옥분의 일요 음악여행>과 KBS월드 라디오 <남궁옥분의 음악풍경>등에서 DJ를 맡았으며, 불교방송 <우리들의 찬불가>MC도 했다.
또한 수십편의 CM송과 만화영화 주제가와 영화 주제가도 불렀다.
현재 국제교육개발NGO온해피 친선대사,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홍보대사이고 2009년 대한노인요양병원 홍보대사, 서울의료원 홍보대사, 명지대학교 홍보대사, 을지병원 홍보대사 등을 지내었고 2013년에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홍보대사 등을 지냈다.
1979년 1집 《알게 될거야/ 보고픈 내 친구》
1979년 2집 《꽃분이/ 잠 못 이루는 이밤을》
1980년 3집 《넘치는 님의 사랑/ 별 이야기》
1981년 4집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에헤라 친구야》
1982년 5집 《꿈을 먹는 젊은이/ 호박꽃》
1983년 6집 《남궁옥분'83》
1984년 7집 《남궁옥분'84》
1985년 8집 《남궁옥분 VOL.1》
1988년 9집 《남 몰래 흘리는 눈물》
1989년 10집 《남은 날을 위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말아요》
1995년 11집 《연민》
2001년 12집 《Inspi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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