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라드의 황제'라는 별명으로 불리웠던 싱어송라이터로 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 변진섭, 김건모 등과 함께 대중가요 붐을 일으킨 특히 발라드계를 대표하는 가수 중 한명이다
신승훈은 1966년 3월 21일 대한민국 충청남도 대전시에서 태어났다. 신승훈은 중학교 2학년 때 당시 친구들과 Poets (시인들)이라는 그룹사운드를 만들어 학교 내에서 후원을 받으며 활동을 하려고 했으나, 친구의 전학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겹쳐 결국엔 흐지부지되었다. 하지만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이 더욱 커져만 갔고 그러던 중 같은 해 겨울방학 때 스케이트를 타지 못해 속상해서 펑펑 울던 신승훈을 달래기 위해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기타를 선물하였는데 이것이 결국엔 신승훈이 가수로 데뷔하게끔 해 준 기폭제가 되었다.
대전대신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음악관련 학과에 지원하고 싶었으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재수 끝에 충남대학교 경영학과 86학번으로 입학했다. 그는 통기타 동아리인 "팝스우리"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훗날 1집에 실린 '두 번째의 사랑'과 '그대의 마음은'의 작사, 작곡 그리고 '그대여 안녕'을 작곡했던 백병교를 여기서 만난다. 그렇게 한창 대학생활을 즐기던 신승훈은 노래를 부르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당시 유명했던 대전의 PJ카페에서 오디션을 보았다. 당시 돈 맥클린의 'Vincent'와 앨버트 하몬드의 'For The Peace Of All Mankind'라는 노래를 불렀다. 합격한 신승훈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으며, 1986년 8월 대전의 PJ카페에서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서는 그만의 무대를 가졌다. 첫 무대 후 꾸준히 인기를 얻던 신승훈은 3개월 뒤에 피크타임으로 옮기며 그의 재능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이후로 신승훈은 다양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인지도를 높였고, 지속적으로 꾸준히 인기몰이를 하며 수많은 팬레터를 받으며 어느새 연예인 같은 인기를 누렸다. 그의 고향인 대전에서 신승훈은 TV에 나오지 않자만 이미 유명한 가수가 되었다.
또한 그는 데뷔하기 전, 대전의 유명세에 힘입어 당시 성현기가 진행하는 대전 MBC <별이 빛나는 밤에>의 보조 MC와 고정 게스트로도 출연하여 음악적 재능과 말솜씨를 뽐내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본인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을 무렵, 신승훈은 본인이 직접 작곡한 노래를 부르고 싶다며 작곡을 시작했다. 데뷔곡인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포함한 1집에 수록된 7곡이 바로 이 때 작곡한 곡들이다. 이 외에도 신승훈은 꾸준히 이문세 대전 콘서트, 양수경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등의 코러스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조금씩 보여주던 신승훈은 가수가 되겠다며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로 상경하였다. 자기 이름을 새긴 앨범 하나를 소원하던 신승훈은 객지인 서울에서 가수로서 활동이 쉽지 않았다. 가리봉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긴 병 때문에 다시 대전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다시 대전 엘브즈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작사가 신재각에게 보낸 데모 테이프를 당시 서울 강남 일대에서 10년 동안 DJ로 활동하던 김창환이 우연히 신승훈의 데모 테이프을 들었다. 그는 신승훈을 스카웃하기로 결정하였고, 신숭훈은 다시 한 번 가수 데뷔 기회를 얻었다. 그렇게 다시 서울로 올라간 뒤, 본인의 자작곡인 '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데뷔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신승훈은 1990년 11월 1일에 데뷔하였다. 1집은 1990년 10월에 발매했으나, 첫 방송을 앞두고 신승훈이 결막염에 걸려 이튿날 스케줄까지 취소했다. 그 이후로 MBC의 <여러분의 인기가요>에서 '미소 속에 비친 그대'가 처음으로 20위권에 진입해서 1월 18일 방송에 출연하려고 했으나 사담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일어난 걸프 전쟁과,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제주도 방문으로 연이어 프로그램이 결방되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11월 1일 방송 데뷔를 하였다. 이는 신승훈이 존경하는 故 유재하, 故 김현식이 작고한 날이기도 하다. 신승훈은 훗날 자신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음악은 자신이 데뷔한 날짜에 작고한 유재하, 김현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1991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 <미소 속에 비친 그대>는 사상 최대의 활황기로 기록된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에 성장 동력을 마련한 기념비적 앨범이다. 특히 '미소 속에 비친 그대'는 KBS <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1위로 골든컵을 차지했으며, '날 울리지 마' 는 뒤를 이어 통산 4주 1위를 차지하는 등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한 앨범에서 대형 히트곡을 2곡이나 배출한 신승훈의 데뷔 앨범은 140만 장의 놀라운 판매 기록까지 세웠다. 무명 가수의 데뷔 앨범이 100만 장 넘게 팔린 것은 당시 전례가 없던 일이다.
이 앨범은 발매 1년 만에 신인 가수 신승훈을 1991년 MBC 10대가수로 만들었으며 제2회 서울가요대상 신인상, 제5회 대한민국 노랫말 대상, 아름다운 노랫말상 '미소 속에 비친 그대', 골든디스크 본상 수상의 영예를 안겼다.
신승훈은 '미소 속에 비친 그대'가 타이틀 곡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고, 그 전에 본인이 작곡한 노래가 타이틀 곡이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고 한다. 당연히 다른 사람의 노래를 받아 데뷔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본인의 노래가 타이틀 곡에 선정되자 굉장히 놀랐다고 한다.
간주에는 발라드임에도 불구하고 스캣을 사용했는데, 이는 당시 편곡을 맡았던 김명곤에게 색소폰으로 편곡을 해달라며 직접 노래를 부르면서 시범을 보인 거였다. 하지만 당시 녹음된 것을 들은 김명곤은 그대로 음반에 싣는 것을 추천하여 스캣이 포함된 채 수록되었다.
또한 이곡은 헤어진 전 여자친구를 생각하면서 만든 노래라고 하며, 작곡 당시 여러 가지 상황과 감정들이 섞여서 나온 노래라고 한다.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곡인 ‘오늘같이 이런 창밖이 좋아’ 등의 수록곡들도 사랑을 받았다.
1999년 All-4-One 이라는 미국 R&B 그룹이 리메이크하여 부른 적이 있는데 제목은 'I don't wanna cry' 로 흑인 R&B 가수들의 스웨그로 가득차있는 곡이다. 2015년 12월 5일, 이 그룹의 멤버인 제이미 존스가 임세준과 함께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여 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All-4-One 은 'I Swear'이라는 곡으로 1994년 빌보드차트 11주간 1위를 한 레전드 R&B 그룹으로 놀랍게도 샤이니의 데뷔곡 누난 너무 예뻐 (Replay) 의 작곡가이기도 하다
이별 노래가 대다수인 신승훈 1집은 한국 대중가요의 오랜 전통인 슬픈 정조를 극복한 따뜻한 정서를 담았다. 여기엔 1990년대 초반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낙관주의가 빚은 낭만적 분위기의 영향도 컸다.
신승훈의 정규 앨범들 중 유일하게 뮤직비디오가 없는 음반이다. 2집 '오늘만은' 은 뮤직비디오가 있었으나 자료가 유실되었고 3집 '처음 그 느낌처럼' 뮤직비디오가 여전히 남아있는 신승훈 가요 뮤직비디오 중 가장 오래되었고, 3집부터 11집까지 모든 앨범의 뮤직비디오 역시 여전히 남아 있다.
정규 1집의 대성공을 발판 삼아 신승훈은 이듬해인 1991년 정규 2집 <보이지 않는 사랑>을 발표했다. 이 앨범의 수록곡 '보이지 않는 사랑'은 무려 14주에 걸쳐 가요 차트 정상에 군림했다. 이후 20년간 그가 이룩한 1,700만 장의 경이로운 앨범 판매고는 한국 대중음악계가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앨범은 신승훈에게 발라드의 황제란 수식어를 붙여준 앨범이었다. 도입부에 베토벤의 가곡 'Ich Liebe Dich'(그대를 사랑해)을 삽입하여 대한민국 최초로 대중가요에 클래식을 접목한 '보이지 않는 사랑'은 발매 직후 파죽지세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SBS<인기가요>에서 14주 연속 1위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웠고, 신승훈은 이 기록으로 한국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뿐만 아니라 '가을빛 추억', '우연히', '영원히 사랑할거야'등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명실상부 톱가수로 인정받게 되고, 마침내 골든디스크 대상의 영예까지 얻으며 1992년을 당당히 신승훈의 해로 장식했다.
'보이지 않는 사랑' 은 1990년대 최고의 메가히트곡 중 하나로 당시 16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특히 노래의 마지막 "그리움 때문일.. 꺼야~" 부분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후속곡인 '우연히'를 통해 처음 댄스를 선보였는데 이 곡도 골든컵을 타면서 한 앨범에서 두 곡의 골든컵을 배출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이 곡까지 포함하면 한 앨범에서 30번 이상 1위를 한 셈이다. 또한 또 다른 활동곡인 '가을빛 추억'까지 10위 권안에 랭크시키면서 2000년대까지 롱런한 신승훈 커리어에서도 최전성기를 누렸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보이지 않는 사랑'의 편곡은 영화 <겨울나그네>(1986, 감독 곽지균)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신승훈은 이 앨범에서 타이틀곡 '보이지 않는 사랑'과 '쉬운 이별'만 직접 만들고, 나머지는 외부 작곡가의 노래를 불렀는데 세련된 팝 발라드를 잘 만드는 신재홍은 '영원히 사랑할거야', 유정연은 우수에 찬 선율과 미디엄 템포가 매력적인 '가을빛 추억'을 작곡했다.
신승훈의 인기가 얼마나 많았는지 신승훈의 노래를 이탈리아 가수가 번안해서 부르기도 했다. 그것도 한류라는 게 전무하던 시절에. 그 외에도 미국, 벨기에에서도 그의 노래를 번안하기까지 했을 정도다.
92년 12월에는 지난 6월 콘서트의 실황을 담은 비정규앨범 Live를 발표했다.
1993년 4월 발매된 정규 3잡 <Shin Seung Hun Vol.3>은 신승훈이 애초에 감상용 앨범이 아닌 콘서트용 앨범으로 기획한 앨범이다. 3집은 1, 2집의 성공을 발판으로 공중파 활동은 대폭 줄이고 전국 투어 라이브 콘서트를 열어 일반 대중들과 더 가깝게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앨범이다. 특이점은 라이브 콘서트 위주의 활동에 전념하느라 TV출연을 거의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KBS 가요톱텐에서 '널 사랑하니까' 라는 곡이 상대 곡을 바꿔가며 11주 연속이나 2위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로미오 & 줄리엣', '소녀에게 (Hey Girl)', '처음 그 느낌처럼'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가요계에 신승훈의 위상을 더욱 확고히 하는 앨범이 되었다. 또한 여세를 몰아 2집의 <보이지 않는 사랑>에 이어 2년 연속 골든 디스크 대상을 수상하였다. 1993년 5월에는 홍콩 최고 스타 유덕화와의 조인트 콘서트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널 사랑하니까'를 타이틀로 한 3집이 170만 장 넘는 판매고를 올리면서, 발라드 황제의 건재함을 보여주며 2년 연속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했다. 타이틀곡 외에도 2집의 후속곡이던 '우연히'처럼, 3집에서도 마찬가지로 빠른 비트의 흥겨운 댄스곡 '처음 그 느낌처럼'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후속곡으로 활동하며 해당 곡들도 큰 인기를 끌었다.
프로듀서 김창환은 저서 「나와 함께한 천재들」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온이후 “신승훈은 처음으로 패배감을 느껴 3집부터 자신이 직접 프로듀싱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라고 언급했다. 이후 신승훈은 1992년 잠실 체조경기장에서 연 첫 콘서트를 시작으로 라이브 공연에 주력하며 팬들을 만났다. 2집의 인기를 넘어야 한다는 생각에 몰두했던 신승훈은, 작곡가 김창환과 천성일이 콘서트에 적합하게 편곡해준 음악을 모아 새 음반을 준비했다.
발라드와 댄스로 구성한 총 8곡을 수록한 3집 앨범에 대해 신승훈은 1994년 4월 14일 자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번 앨범의 주제는 이별이며, 과거 히트곡 '미소 속에 비친 그대', '보이지 않는 사랑'은 다소 추상적이지만 3집에서는 수록곡 '널 사랑하니까', '로미오와 줄리엣' 등에서 보듯 구체적인 것이 특징”이라고 밝혔다.
수록곡의 고른 완성도는 대중에게 “신승훈의 음반은 들을 만하다”는 신뢰감을 줬다. 당시 신승훈은 방송보다 라이브 무대에 집중하며 고향인 대전을 비롯해 전국 투어를 다녔다. 일련의 노력으로 이 앨범은 서태지와 아이들 2집 <하여가>, 김수희의 '애모'를 수록한 <겨울여자>보다 많은 135만 장이 판매되었고, 신승훈은 전작에 이어 골든디스크상 대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국민가수이자 ‘발라드의 황제’라는 칭호를 얻은 신승훈은 이후에도 방송보다 콘서트와 음반 판매 위주의 활동을 지속했다.
1994년 9월에 발표한 정규 4집 <Shin Seung hun IV>는 신승훈표 발라드의 저력을 대중들에게 확고히 각인시킨 앨범이다. 신승훈이 직접 프로듀싱 작업에도 참여를 하는 등 앨범에 큰 노력을 기울였고 R&B, 하우스, 댄스 등 다양한 장르를 담아내어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면서 지난 3집 앨범보다 더 성장한 면모를 보였다. 이전까지 음반을 3장 이상 연속으로 히트한 가수가 없었기 때문에 신승훈 역시 한물 간 가수일 것이라는 주위의 편견을 비웃듯이 그 당시 댄스 음악 붐이 불어닥치던 상황에서도 타이틀곡인 '그 후로 오랫동안'은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신승훈 발라드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신승훈 스스로도 자신의 자작곡들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곡으로 꼽기도 했다. 그 후에도 '오랜 이별 뒤에', '사랑 느낌','어긋난 오해'등을 히트시키면서 골든컵을 연이어 차지하였으며 그 해 4번째 골든디스크 본상을 수상했다.
타이틀곡 '그 후로 오랫동안’이 KBS 가요 톱텐에서 5주 연속 1위로 골든컵을 수상하고, 후속곡 '오랜 이별 뒤에'도 1위에 올라 인기를 얻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은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 김건모 등 댄스가수들의 강세 속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다. 4집 앨범 역시 160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밀리언셀러 성공 신화를 이어갔다. 이로서 4회 연속 100만 장이 넘는 음반 판매를 기록하였다.
'그 후로 오랫동안'의 뮤직비디오에는 당시 방송국 리포터였던 김지호가 여자주인공으로 캐스팅 됐는데, 당시 신인이었던 김지호는 이 뮤직비디오로 인해 큰 인기를 얻게 된다.
1996년 5월 오랜 고심 끝에 발표한 정규 5집 <Shin Seung HunⅤ>은 이미 데뷔 앨범때부터 싱어송라이터로서 능력을 인정받아온 그가 처음으로 전곡을 작사, 작곡했을뿐만 아니라 앨범 전체의 프로듀싱까지 맡은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4집 앨범에서부터 여러 장르를 선보이기 시작한 그는 5집 앨범에 재즈부터 모던 락, R&B, 맘보등을 수록하여 발라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장르를 작곡, 소화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에 대중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고 음반 발매 6일만에 백만장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타이틀곡인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네가 있을 뿐'은 사별을 주제로 한 곡으로, 14인조 오케스트라 선율의 웅장한 스케일에 신승훈 특유의 애절한 목소리가 잘 어우러져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이 타이틀곡으로 댄스곡 일색이었던 가요계 속에서 5집 앨범으로 활동한지 불과 1주만에 가요 톱텐 1위 후보로 올라 세간을 놀라게 하였으며, 3주만에 <가요 톱텐> 1위를 차지했다. 또한 '내 방식대로의 사랑'으로 그해 여름에 맘보 열풍을 일으켰으며, '운명'역시 잇따라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마침내 그의 단일 앨범 최다 기록인 247만장의 판매고를 올리게 된다. 신승훈은 이 음반으로 최단 기간에 누적 음반 판매량 1천만 장을 넘어섰다. 이 음반을 통해 신승훈은 아시아권 가수 중 최단 기간에 누적 음반 판매량 1천만 장을 넘어서면서 빌보드지 인터내셔널 코너 표지를 장식했다.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Your Song'이란 곡은 미국 R&B계의 샛별이었던 존비(Jon B)가 한국 방문길에 올랐다가 우연히 기내에서 <KBS 빅쇼>에 나오는 신승훈을 보고 그의 목소리에 반해 직접 작사, 작곡하여 신승훈에게 선물하고 같이 듀엣까지 한 곡이다. 국내 최초로 세계적인 스타와 한국가수가 직접 듀엣을 불러 그 당시 많은 화제가 되었다.
이 시기에 신승훈은 한 연예주간지로부터 최초로 '국민 가수'란 칭호를 선사 받게 되었으며, 대중가수로서는 최초로 3일 연속 세종문화회관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또한 신승훈은 대관 심사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미국 카네기홀 대강당에서 1996년 10월 12~13일 양일간 라이브 콘서트를 개최하게 되어 열정을 가지고 세심하게 준비를 했으나 현지 기획사 주최측이 공연 전 날 지불해야 할 대관료를 완불하지 않은 만행을 저질러 공연을 하루 앞두고 콘서트가 무산되는 가슴아픈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5집의 후속곡인 '내 방식대로의 사랑'의 뮤직비디오는 명세빈을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해준 작품으로, 당시 신승훈은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연예활동 경험이 전혀 없는 생짜 신인 명세빈을 캐스팅해 화제가 된 바가 있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은 R&B 드럼 패턴에 바이올린과 첼로, 피아노 선율과 신승훈의 애절한 목소리가 조화를 이뤘다. '고개 숙인 너에게'는 마이클 잭슨과 스티비 원더 등 세계적인 뮤지션의 음반에서 코러스를 담당했던 흑인 여성 4인조 팀의 하모니가 곡의 후반부를 장식했다.
벨기에 출신의 팝 재즈 그룹 시티즌 제인(Citizen Jane)은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을 리메이크해 'Martian Puppies'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1998년 약 18개월만에 발표한 6집 <Shin Seung HunⅥ>은 IMF의 광풍 속에 발표된 앨범이다. 신승훈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 편곡, 디렉팅, 프로듀싱까지 도맡아하며 앨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6집 앨범은 IMF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면서 밀리언 셀러와 스테디 셀러를 둘다 만족시키는 결과를 이뤄냈다.
타이틀곡 '지킬 수 없는 약속' 은 R&B 드럼 패턴에 바이올린과 첼로, 피아노 선율이 그의 목소리와 조화를 이루면서 절제된 감정으로 인한 애절함을 잘 표현하여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고개 숙인 너에게' 는 마이클잭슨, 스티비원더 등 세계적인 팝스타의 코러스를 맡은 흑인 여성 4인조팀의 하모니로 곡의 후반부를 장식해 주목을 끌었으며, IMF라는 경제위기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노래가 되었다. 이 곡은 미국에서 녹음할 당시 현지의 정평난 음악관계자들에게 호평을 받았으며, 그들로부터 자신들의 가수에게 이 곡을 부르게 하고 싶다는 제의를 받아 화제가 되었다.
한편 신승훈은 1998년 7월 탈세혐의 관련 뉴스가 보도되면서 검찰조사를 받았으나, 그 당시 소속사였던 '라인음향(現 미디어라인)'의 엉터리 회계 처리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데뷔시절부터 함께해 왔던 소속사 '라인음향'과 결별 수순을 밟았다. 이 억울한 사건은 그와 그의 팬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안겨 주었으나, 동시에 신승훈과 그의 팬들 사이를 믿음으로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 예로, 당시 사건이 Feel 콘서트 전국투어의 마지막인 서울 앵콜 콘서트를 남겨둔 시점에서 터지는 바람에 콘서트 개최 여부를 두고 말이 많았으나,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신승훈의 확고한 의지로 콘서트 명을 <'98 Faith 콘서트>로 바꾸어 강행하였다. 3일동안 진행된 이 Faith 콘서트에서 팬들은 신승훈에 대한 믿음 하나로 취소표 하나없이 객석을 가득 채웠고, 신승훈과 그의 팬들이 서로에게 큰 감동을 받으면서 공연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6집 <Shin Seung HunⅥ>을 발표해 당시 시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130만장이라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로서 아시아 최단 시간 1,000만 장 판매 달성을 기록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H.O.T. 등으로 대표되는 댄스가수의 등장으로 발라드 가수들이 큰 타격을 입은 것에 비해, 신승훈은 6집까지의 앨범이 모두 밀리언셀러를 달성하는 등 발라드 황제의 자리를 지키며 정상권의 인기를 지켰다. 그 이후에 그는 소속사 라인음향을 떠나게 되었다. 이전 소속사와의 저작권 문제로 인해, 1집부터 6집까지 대부분의 노래를 본인이 작사, 작곡 했음에도 불구하고 원곡 그대로 발매할 수도 없게 되었다. 심지어 신승훈의 동의 없이 1집부터 6집까지의 수록곡을 묶어 신승훈 이름으로 몇 차례 베스트 앨범을 내기도 했다.
6집의 타이틀곡인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의 애절한 선율이 흐르는 감성적인 발라드 곡으로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는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송수영이 출연했다. 당시 그녀는 광고회사의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였다.
6집 앨범의 분위기는 복고풍으로 전작과 마찬가지로 작사·작곡·편곡·앨범 제작을 신승훈이 도맡아 제작을 해 공들인 흔적들이 보인다. '오래된 사랑의 끝'은 다시 유행하고 있는 70년대 디스코를 끌어 왔고, '우연한 만남'은 40~50년대 미국에서 유행 했던 두왑 (연주 도중 입으로 의미 없는 소리를 반복해 반주를 넣는 노래)형식이다. 경제 위기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메시지가 담긴 ‘고개 숙인 너에게’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보사노바를 빠르게 연주한 댄스 넘버였으며 '꿈속의 그대'는 기타리스트 김세황이 참여한 록 발라드이고, 재즈 넘버 '나의 하루'에서는 피아니스트 김광민이 서정적이면서도 스윙감 넘치는 반주를 들려준다.
여러 장르를 도입하다 보니 음반 전체가 약간 복잡하다는 느낌이 있지만 신승훈 특유의 창법으로 매끄럽게 곡들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빠른 댄스 리듬 위에 발라드의 멜로디와 창법을 입혀 부담스럽지 않고 친숙하게 만들고 있다.
앨범에 수록한 총 11곡은 그가 직접 전곡을 작곡했으며 심현보와 한경혜가 각 2곡씩 작사했다. 신승훈은 앨범 발매 직후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한 곡 한 곡 공부하는 자세로 앨범을 만들었다면, 이번 앨범에는 8년 동안 배우고 터득한 음악의 결정을 담았다”고 밝혔다.
이 앨범으로 신승훈은 연말 MBC TV <가요대제전>에서 30대 미만이 국민이 뽑은 인기 가수에 선정되었다. 또한 1998년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본상을 수상하면서 1991년 1집부터 이후 6집까지 모든 앨범으로 이 상을 받은 것은 물론, 2006년까지 총 10회나 이 상을 수상하는 금자탑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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