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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음악

본격적인 팝 음악 시대를 연 로큰롤(Rock'n Roll), 엘비스 프레슬리, 척 베리 part.2

3. 로큰롤의 전성기

버디 홀리

로큰롤이 미국을 강타하고 전 세계로 퍼저나가게 되자, 다양한 뮤지션들이 뒤를 이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등장한 뮤지션들은 로이 오비슨, 버디 홀리, 진 빈센트, 에디 코크런, 리치 발렌스, 빅 바퍼등이 있다. 또한 완다 잭슨, 재니스 마틴같은 여성 로커빌리 뮤지션도 등장하기에 이른다.

영국에서는 미국을 흉내낸 뮤지션들이 출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빈스 테일러, 빌리 퓨리, 조 브라운, 위 윌리 해리스, 클리프 리처드등이 훗날 영국 록의 토양에 밑거름이 되는 뮤지션이 된다.

로이 오비슨

대개 1955년부터 1958년까지를 로큰롤의 전성기로 친다. 후반부로 갈수록 로커빌리 방식의 그루브한 셔플 리듬의 로큰롤에서 스트레이트한 로큰롤로 변화하는 것도 주목할만한 양상이다(척 베리의 Johnny B. Goode이 1958년 발매된 것은 기념비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로큰롤은 미국에서 그리서라는 서브컬쳐를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그리서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로큰롤 패션인, 리젠트머리에 가죽 쟈켓과 청바지를 입은 젊은이들을 말한다(머리에 기름을 잔뜩 발랐기 때문에 그리서). 뮤지컬 "그리스"의 이야기가 바로 이 그리서들 이야기다. 이 서브컬쳐는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면서 이름과 모양을 약간씩 달리 하면서 전세계를 휩쓸게 된다. 예를들면 영국에서는 로커스로 불렸고, 북유럽에서는 Raggare라고 불렸다.


빌 헤일리, 로커 빌리 스타일로 대중을 흔들어 놓다.

빌 헤일리(Bill Haley, 1925-1981)는 로큰롤의 대중적인 호응을 이끌어내고 미국 이외의 나라에 로큰롤을 전파한 인물로 평가된다.

빌 헤일리

이마 앞으로 내린 꼬부랑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빌 헤일리는 원래 1950년대 초반부터 컨트리 가수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의 음악은 굴러가는 듯한 컨트리 비트에 박력 있는 블루스가 가미된 모습이었는데, 당시 음악 평론가들은 이런 독특한 스타일을 ‘로커빌리’라고 칭했다. 로커빌리는 후에도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sley), 칼 퍼킨스(Carl Perkins)의 주무기가 되면서, 음악의 성격을 특징짓는 하나의 용어로 자리 잡았다.

1952년부터 그는 빌 헤일리 앤 히즈 코메츠(Bill Haley And His Comets)라는 밴드를 만들어 활동하였는데, 멤버들의 역동적이고 요란한 무대 매너는 항상 많은 화제를 낳았다. 이들은 로큰롤의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온 영화 [폭력 교실(Blackboard Jungle)] OST로 수록된 곡 <Rock Around The Clock>을 1955년 7월 9일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올려놓으면서 이후 로큰롤을 전세계로 인기를 얻게하는 시초가 되기도 하였다.

 

 

이들의 음악은 평소 쾌활했던 빌 헤일리의 성격이 많이 반영되면서, 이들이 연주하는 밝고 단순한 로큰롤 음악들은 대중들로 하여금 쉽게 로큰롤을 접할 수 있게 해줬다. 이러한 스타일은 <Rock A Beatin’ Boogie>, <Crazy Man Crazy> 같은 곡들에서 밝고 경쾌한 기타사운드와 박력 있는 드럼 비트로 잘 나타난다.

 

이듬해, 엘비스 프레슬리의 등장으로 미국 시장에서 빌 헤일리의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지만, 평소 대중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항상 관찰하고, 자신의 음악이 어떤 시장에서 통할 지 잘 알았던 빌 헤일리는 이후 영국을 포함한 유럽 각지에서 로큰롤을 전파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로큰롤의 선구자, ‘척 베리(Chuck Berry)’

“로큰롤 음악을 들어봐요. 낡은 방식을 골라도 괜찮아요

백 비트가 있어서 놓칠 수 없지요. 어떤 낡은 박자를 사용해도 돼요

당신이 나와 춤추길 원한다면, 그게 바로 로큰롤이죠”

(Just let me hear some of that rock and roll music. Any old way you choose it.

It’s got a back Beat, You can’t lose it. Any old time you use it.

It’s gotta be rock and roll music, If you wanna dance with me.)

- 척 베리의 곡 [Rock’n Roll Music] 中에서

1950년대를 흔들었던 척 베리의 노래 <Rock And Roll Music>의 첫 소절이다. 이 노래는 1957년에 공개된 싱글로, 그 해 빌보드 싱글 차트 ‘Billboard Hot 100’에서 8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후에, 비틀즈(The Beatles)가 척 베리의 38세 생일을 기념하여 녹음한 후, 자신들의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 [Beatles For Sale]에 수록했다. 그들은 앨범에서 <It’s got a backbeat>를 <It’s got a black beat>로 바꿔 불렀는데, 록 음악이 흑인에게서 나왔음을 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바꾼 것이다.

 

 

로큰롤의 기초를 형성한 척 베리는 독특하게 연주하는 걸로도 유명한데 오리처럼 엉덩이를 쭉 빼고 한 쪽 발을 든 채 유쾌한 웃음을 지으면서 기타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이다. 그는 1950년대 클럽에서 여러 밴드들과 공연을 하면서, 블루스 아티스트 머디 워터스(Muddy Waters)에게 발굴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척 베리는 블루스와 재즈에 컨트리의 요소도 포함하면서, 그만의 독창적 연주 스타일을 완성했으며, 이는 로큰롤 기타 스타일의 표본이 되었다.

척 베리는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가사, 공연 도중 관객과 대화하듯 툭툭 뱉는 추임새, 그리고 역동적인 무대 매너와 연주로 당시 로큰롤의 주 관객층이었던 십 대들에게 큰 환호를 받았다.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같이 1960년대에 등장한 록 밴드들은 척 베리의 음악을 좋은 교본으로 삼아 기반을 다지기도 하였다. 또 파도 타듯 흘러가는 고유의 기타 주법은 향후 록 음악과 서핑 음악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55년 빅 히트를 기록한 <Maybellene>을 포함하여, 비치보이스가 가사만 바꿔서 발매한 <Surfing USA>의 원곡으로 잘 알려진 <Sweet Little Sixteen>, 그리고 초창기 비틀즈가 함부르크에서 자주 연주했던 <Roll Over Beethoven> 등 혁신가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로큰롤 음악들을 많이 남겼다.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

1954년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1935 – 1977)는 극장 안내원과 트럭 운전사로 생계를 유지해나가던 멤피스의 시골 청년이었다. 그가 어머니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4달러를 들여 녹음한 <That's All The Time (Mama)>는 프로듀서 샘 필립스의 마음을 사로잡고, 엘비스는 RCA 레코드 사와 정식 계약을 하게 된다. 사실, 엘비스 프레슬리가 3만 5천 달러의 거금을 받고, RCA와 계약한 직후에는 그의 잠재된 끼와 탤런트가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1956년 <Heartbreak Hotel>이 싱글 히트 1위를 차지하면서, 드디어 그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1956년 한 해 동안 <Don’t Be Cruel>, <Hound Dog>, <Love Me Tender> 등을 포함하여 총 5곡의 싱글을 1위에 올려놓는다. 1958년에 군 입대 이후에도 그가 발표했던 곡들과 녹음해두었던 곡들은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시대의 아이콘으로 각광받는다.

 

훤칠하게 생긴 외모와 함께 묵직한 목소리로 끈적한 흑인의 느낌을 잘 살려냈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폭발적인 쇼맨십과 수많은 히트곡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또 그는 영화나 TV 프로그램 등 각종 매체를 종횡무진 하면서, 로큰롤 시대 최고의 슈퍼스타로 활약하였다.

 


버디 홀리(Buddy Holly)

점잖은 이미지에 천재 작곡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버디 홀리(Buddy Holly). 대공황 중 텍사스의 음악적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자연스레 어렸을 때부터 기타를 배우고 형제 자매들과 노래를 따라불렀다. 컨트리와 리듬 앤 블루스의 영향을 받았으며 고등학생 때부터 친구들과 공연하기 시작했다. 1952년 지역 텔레비전 쇼에 등장했고, 1955년 엘비스 프레슬리의 오프닝 공연 이후 본격적으로 가수가 되기로 결심한다. 1957년 9월 발표한 싱글 "That'll Be the Day"는 미국 과 영국 에서 1위를 차지했다.그 성공은 10월에 발매되어 히트한 " Peggy Sue "로 이어졌다. 1957년 11월에 발매된 The "Chirping" Crickets 앨범 은 영국 앨범 차트 에서 5위에 오르는등 인기가도를 달렸다.

 

 
 

밥 딜런, 비틀즈, 롤링 스톤즈, 에릭 클랩튼, 엘튼 존 등 상당히 많은 가수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특히 자신이 쓴 곡을 직접 노래하며 연주하는 솔로 가수라는 점은 폴 매카트니에게 큰 영감을 주어 곧 그의 우상이 되었고, 비틀즈가 쿼리멘이라는 이름으로 있을 당시 처음으로 레코딩한 곡도 버디 홀리의 곡 That'll Be The Day[7]이다. 또한 비틀즈 (딱정벌레) 라는 이름 역시 버디 홀리의 밴드명 크리켓츠 (귀뚜라미) 에 영향을 받았다.

그의 위대한 점은 현대적인 "록밴드"의 포메이션을 확립했다는 것이다. 버디 홀리는 리드 기타, 리듬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된 자신의 밴드 크리켓츠(Crickets)를 출범시키면서 이후 비틀즈 등 수많은 록밴드로 이어지는 포메이션을 정립한다. 그래서 불과 3년이라는 짧은 활동기간 동안 음악에 혁명을 일으켰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1959년 2월 3일 경비행기가 추락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떠오르는 로큰롤 스타였다. 비록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등져야 했지만, 버디 홀리가 세상에 남긴 음악들은 현재까지도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면서 로큰롤 역사의 보고로 남아있다.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

리틀 리처드는 미국에서 태어난 로큰롤 가수 겸 피아니스트. 폭발적인 샤우트 창법과 격렬한 피아노 연주를 통해 많은 가수에게 영향을 끼쳤다.

빌보드는 예전에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를 ‘가장 폭발적이고 유쾌한 로큰롤 아티스트’라고 평가했다. 리듬과 필이 충만했던 리틀 리처드는 [Tutti Frutti], [Ready Teddy] 등을 포함하여, 로큰롤의 또 다른 레시피를 창조해낸 아티스트다.

 

 


4. 록큰롤의 쇠퇴

로큰롤의 쇠퇴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그것도 불현듯이 찾아오게 되었다. 1950년대 후반이 되자 상당히 보수적이었던 미국 사회와 언론은 무언가 그들을 제어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반항과 자유의 상징이었던 로큰롤은 기성세대의 눈엣가시였고 그들은 무언가 사고가 터지길 바라고 있었다.

 

 

1958년이 되자 로큰롤 뮤지션들 주변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게 된다. 제리 리 루이스는 13살짜리 미성년자 사촌 동생과 결혼한 것이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게 되고, 쟈니 캐쉬는 마약에 빠져 헤롱대고 있었다. 리틀 리처드는 갑자기 목사가 되겠다며(...) 은퇴를 했고, 척 베리는 미성년자 여자아이를 데리고 주 경계선을 넘다가 걸려서 법적, 도덕적인 치명타를 입고 수감된다. 앨런 프리드는 1958년 관객들에게 "경찰은 여러분이 즐기길 원하지 않을겁니다"라고 이야기 했다가 폭동을 선동했다는 죄로 수감되고, 이후 뇌물을 받고 특정 곡들을 틀어준 사실이 밝혀지면서 방송에서 하차하고 벌금형을 선고받는다.

이러한 스캔들에 로큰롤이 지속적으로 시달리게 되자, 엘비스의 매니저 '대령' 톰 파커는 기가막힌 전략을 생각해 내는데, 바로 입대하는 것이다. 미국은 당시 전시가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군대에 갈 필요가 없었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10여년밖에 안 되었고, 한국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착실한 젊은이"의 이미지를 얻기 위해 자진입대를 결정한 것이다. 엘비스가 나이가 들면 반항적인 느낌의 로큰롤 청춘스타라는 이미지만으로는 한계가 있을테니, 자진 입대를 통해 기성세대의 반감을 누그러뜨리고, 이후 보다 폭넓은 팬층에게 사랑을 받는 '국민가수'로 전환시키는게 장기적인 안목에서 꼭 필요하다는게 톰 파커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엘비스는 전역 후 60년대 내내 로큰롤 음악활동보다는 삼류 영화들에 자주 출연하며 배우 활동에 더욱 주력했고, 60년대 후반에 점프슈트를 입고 라스베가스에서 공연을 시작하면서 음악계에 컴백한다.

 

 

1959년 버디 홀리와 리치 발렌스, 빅 바퍼를 태운 비행기가 악천후로 인해 추락사고를 일으키게 되고, 이 세명의 젊은 로큰롤 뮤지션들 또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날 신문을 읽고 한 소년이 충격을 받게 되는데, 이 소년은 훗날 뮤지션이 되어 이날의 충격을 곡으로 남긴다. 그 소년은 바로 돈 맥클린이었고 그 곡은 아메리칸 파이였다. 가사 자체에도 "그날, 음악이 죽은 날"이라는 부분이 들어가 있다. 음악이 죽은 날이란 표현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향년 22세였던 버디 홀리는 단 18개월의 활동만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정도로 로큰롤과 락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단적으로 록밴드 표준 구성에서 색소폰과 건반을 치워버린 것도 버디 홀리의 더 크리켓츠가 최초이다. 그리고 영화 라 밤바로 잘 알려진 리치 발렌스의 향년은 만 18세였고, Chantilly Lace를 빅 히트 시킨 '빅 바퍼' J.P.리처드슨이 최연장자였는데 이 때 나이가 만 28세였다.

 

 

1960년, 진 빈센트와 에디 코크란은 영국에서 투어를 돌고 있었다. 그들은 공항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그만 택시의 타이어가 터지는 바람에 교통사고를 일으키게 되고, 에디 코크란은 사망하고 진 빈센트는 평생 다리에 심각한 장애를 가지게 되고 다리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다량의 술과 약물을 복용하게 된다. 결국 이는 그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결과, 1960년쯤엔 기존의 로큰롤 음악과 뮤지션들은 하나도 남은게 없게 된다. 이때부터 로큰롤은 몇년간 깊은 잠에 빠진다. 대신 빌보드 차트에서는 로큰롤에게서 파생되긴 했지만 아예 가사가 없는 기교 중심의 서프 음악이 대중들을 사로잡기 위해 여러 사운드를 발전시켰고, 후에 나올 신세대 록 뮤지션들이 이에 영향을 받아 사이키델릭을 비롯한 여러 시도를 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또한, 60년대 초에 처비 체커의 The twist가 역사에 한획을 그으면서 트위스트 열풍이 불었다. 이 두가지가 로큰롤을 몇년간 붙들어 놓으며 완전히 한물간 장르가 되버리는 상황은 피할수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로큰롤은 그 본래의 정신과 활력을 잃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된다.

이렇게 로큰롤이 시들해지게 된 건, 위의 교통사고처럼 뜻하지 않은 사고의 탓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로큰롤 1세대인 기존 로큰롤 뮤지션들의 창작력이 고갈되고 더이상 새로운 음악적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아서 음악적으로 정체되어버린 상태였다는 점도 큰 원인이었다. 음악적으로 더이상 딱히 새로운게 안나오니 음악팬들도 차차 질려하며 흥미를 잃기 시작했고, 로큰롤 뮤지션들 스스로도 이젠 나올만 한건 다 나왔나 보다라며 로큰롤의 미래에 대한 확신과 열정을 잃어갔기 때문이었다.

 


5. 로큰롤, 1950년대 문화를 이끌다.

1950년대 중, 후반에 로큰롤이 대중 장르로 자리 잡은 것은 팝 음악 역사에 있어서 의미가 크다. 앞서 언급한 척 베리, 빌 헤일리, 엘비스 프레슬리 외에도, 천재적인 작곡 실력을 보여주었지만 불의의 사고로 요절한 아티스트 버디 홀리(Buddy Holly), 열정적인 무대 매너로 관중을 사로잡은 리틀 리처드, 그리고 거친 로큰롤을 들려준 에디 코크런(Eddie Cochran)에 이르기까지 많은 아티스트들은 로큰롤의 다채로운 느낌을 창조해냈다.

 

 

억압의 틀을 깨듯,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기타를 치며 노래 불렀던 아티스트들은 젊은 세대들의 심정을 대변해주었다. 또한 다양한 매체의 등장과 정치, 경제적으로 안정된 분위기는 로큰롤 음악이 세대를 넘어 대중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데 큰 몫을 했다.

블루스, 재즈, 스윙, 컨트리를 자연스럽게 수용했던 로큰롤은 팝 음악의 본질적인 특성인 개방성, 대중성을 추구하면서도, 시대의 유행을 이끈 장르였다. 이후 록, 포크, 펑크, 디스코 등의 다양한 장르가 형성되고, 대중들에게 자연스럽게 유입될 수 있도록 물꼬를 튼 음악이 로큰롤이라는 점도 팝 음악 역사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로큰롤은 단순한 음악양식을 넘어 영화나 텔레비전 등을 통해 라이프스타일과 패션, 사고방식, 언어 등에도 영향을 주었다.

대서양 건너편에서 로큰롤의 음악적 유산을 간직한 비틀즈가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전개하면서 로큰롤 열풍이 부활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새로운 록 음악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브리티시 인베이전 이후 수 십년 간 미국 음악계에서는 록 음악이 주류 장르로 자리메김 하게 되었고, 그 이후 파생되고 탄생한 수 많은 대중음악 장르의 음악적 기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