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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음악

1980년대 팝음악에 대하여 1부

휴먼리그

 

레드제플린, 딥퍼플, 레인보우등 수많은 밴드들을 내세워 70년대까지 승승장구하던 영국의 음악은 80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위력이 많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흑인 음악과 백인 음악의 크로스오버를 실현한 마이클 잭슨의 등장으로 대중음악의 중심이 다시 미국으로 기울어졌으며, 미국 메탈 밴드들이 떠오르면서 음악의 주도권을 미국 쪽이 가지고 가게 되었다.

 

이미 영국에서 70년대 후반 NWOBHM(New Wave Of British Heavy Metal)라는 메탈 무브먼트가 먼저 시작되어 아이언 메이든, 주다스 프리스트, 데프레파드등을 앞세워 미국 시장에서 인기를 얻었으나 미국에서도 머틀리 크루, 본조비, 건스앤 로지스 등을 필두로 메탈, 글램 메탈 독자적인 조류가 주류가 되어버리면서 영국의 록밴드들은 자연스레 밀려나게 된것이다.

 

 

The Police - Message In A Bottle 

 

물론 시기의 영국에서도 조이 디비전, 스미스, 큐어, 스톤 로지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같이 모던락 계열에서 족적을 남긴 밴드들이 활약했지만, 미국에선 전혀 인기와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런데 좁은 의미의 ' 음악' 국한하지 않고 팝음악계 전체로 보자면 80년대 중후반, 뉴웨이브 계열의 영국 뮤지션들이 미국시장에 진출 하면서 상당한 위세를 떨치며 인기를 끌었다. 조지 마이클 같은 블루 아이드 소울 계열부터 애슬리, 듀란 듀란, 폴리스, 컬쳐 클럽 등이 대표적인 인기 뮤지션이었다. 무엇보다 마이클 잭슨이라는 끝판왕의 위세에는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The Human League - Don't You Want Me

 

 

80년대초 미국에서 뉴웨이브 음악들이 서서히 인기를 얻기 시작하였는데 시발은 82 휴먼 리그의 ‘Don’t You Want Me’였다. 경쾌한 신스팝 사운드로 시작하는 노래는 차트 1위에 오르며 영국 밴드의 재상륙을 알렸다. 이듬해에는 덱스 미드나이트 러너스, 유리스믹스가 각각 빌보드 1위에 올랐고 84 컬쳐 클럽, 듀란 듀란, 등이 잇따라 히트했다. 85 심플 마인즈, 티어스 피어스, 영에 이어 86 보이즈, 심플리 레드까지 흐름은 5년간 계속되었다. 60년대 비틀스 시절 못지 않은 위세였다. 미국 언론들은 이를 ‘2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 불렀다.

 

WHAM - Wake Me Up Before You Go Go

2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선봉장은 왬(WHAM)이었다. 조지 마이클과 앤드류 리즐리의 듀오로 이루어진 왬은 밝고 경쾌하면서도 에너지 넘치는 음악으로 미국과 영국의 대중을 동시에 사로잡았다. 왬의 음악은 미국의 모타운 사운드와 , 그리고 영국의 엘튼 스타일 발라드 등을 적절히 혼합한 스타일로 다른 영국 밴드들과는 달리 조지 마이클이 뛰어난 가창력과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왬은 데뷔곡 ‘Wake Me Up Before You Go Go’ ‘Careless Whisper’(84), ‘Everything She Wants’(85) 잇따라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리며 대서양을 오가는 수퍼수타로 군림했다.

 

Culture Club - Karma Chameleon

 

 

반면 보이 조지가 이끄는 컬쳐 클럽(Culture Club)과 왕립음악원 출신 혼성 듀오 유리스믹스(Eurythmics)는 빌보드 1위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는 큰 호감을 얻지 못했다. 컬쳐 클럽은 ‘Karma Chameleon’으로 큰 인기를 얻었지만 흑인, 백인, 유태인 등 다문화의 만남이라는 그들의 모토보다는 보이 조지의 양성애만이 집중 부각되어 청교도적인 미국 대중의 거부감을 샀다. ‘Sweet Dreams’로 1위에 오른 유리스믹스는 미국 시장의 기준으로 범주화할 수 없는 다소 어려운 음악이 장애였다. MTV는 삭발한 애니 레녹스가 긴 가발을 벗어 던지는 ‘Who’s That Girl’이 이성복장도착증 환자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방송을 내보내지 않았다.

 

Eurythmics - Sweet Dreams 

이들 영국 밴드는 펑크와 뉴웨이브가 양산한 수많은 밴드 중의 하나였다. 펑크의 스타일과 정신, 뉴 웨이브의 감성과 아이디어를 고루 받아들였던 이들 밴드는 공통적으로 전자악기 신서사이저가 중심이 되는 팝 사운드를 지향했다. 이들의 음악은 신스팝이라 불렸다.

 

신스팝의 선구자들 중에서 맨체스터 출신의 뉴 오더는 신서사이저와 전자 드럼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접근으로 신스팝의 경계를 넓힌 밴드이며 셰필드에서 결성된 휴먼 리그는 보컬이 중심이 되는 주류 팝과 조지오 모로더 스타일의 유로 디스코 사운드를 접목했고 이들의 81년작 ‘Dare’는 신스팝의 전범으로 꼽힌다. 독일 출신 크라프트베르크는 과학적이고 비감성적인 방식으로 전자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81년작 ‘Computer World’는 일종의 하이 테크놀로지에 대한 찬가였다.

 

Kraftwerk -  Computer World

신스팝은 이후 신인 밴드 스팬도우 발레의 인기를 타고 더욱 확산되었다. 말끔한 용모를 하고 유로 디스코 비트에 신서사이저를 가미한 가벼운 댄스 리듬에 좋았던 옛 시절을 추억하는 듯한 낭만적 노랫말을 담은 스팬도 발레 같은 밴드는 뉴 로맨틱스로 불렸다. 이들은 자신들의 외모를 앞세워 스스로 주인공이 되는 짧은 영상물을 뮤직 비디오로 만들어 음반과 동시에 홍보했다. MTV는 또한 휴먼 리그 같은 일렉트로 팝 밴드를 미국에 소개했으며, 그들의 뮤직비디오를 반복해서 틀어줌으로써 그들의 노래를 미국 차트에 입성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덕에 런던 출신 5인조 스팬다우 발레의 ‘True’(1983)는 빌보드 차트 톱 텐에 진입했으며, 소프트 셀의 리메이크 넘버 ‘Trained Love’, 어 플록 오브 시걸스(A Flock Of Seagulls)의 ‘I Ran (So Far Away)’, 디페시 모드(Depeche Mode)의 ‘Just Can’t Get Enough’, 톰슨 트윈스(Thompson Twins)의 ‘In The Name Of Love’ 등도 마찬가지로 미국시장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Depeche Mode - Just Can't Get Enough

 

뮤직 비디오의 위력은 생각보다 컸다. 특히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 밴드들에게는 최고였다. 곧 다섯명의 꽃미남으로 이루어진 듀란 듀란이 다소 선정적인 영상의 ‘Girls on Film’(81)으로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듀란 듀란은 1981년 5인조로 라인업을 갖춘 뒤 신시사이저와 디스코 드럼비트, 그리고 키보드 주자 닉 로즈의 뛰어난 팝 감각으로 무장하고 시장을 장악해갔다.

그룹은 [Duran Duran], [Rio], [Arena] 등의 앨범을 잇달아 MTV에 링크시키며 거대한 성공을 거둔다. “비디오는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하다. 그것은 시각적으로 하나의 노래를 표현하는 방식이며 또 다른 차원을 선사한다. [MTV]는 미국의 길을 터준 악기나 다름 없었다.” 닉 로즈의 말이다. 신스팝과 뉴 로맨틱스는 메이저 음반사의 막대한 자금력과 신생 음악잡지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대번에 영국 내 음악 시장의 주류로 떠올랐다.

 

Duran Duran - Hungry like the Wolf

 

이 같은 신스팝의 성공 뒤에는 신인 밴드로부터 상업적 매력을 최대한 끌어 내는 프로듀서들이 있었다. 이 시절 가장이름을 날린 프로듀서 중 한 명이 트레버 혼이다. ‘Video Killed the Radio Star’(79)를 남긴 반짝 스타 버글스를 시작으로, ABC의 데뷔 앨범 ‘The Lexicon of Love’ (82), 그리고 리버풀 출신의 백인 소울 그룹 프랭키 고우즈 투 할리우드 등이 그의 작품이다. 특히 ‘Relax’ ’Two Tribes’ 등 경쾌한 디스코 리듬, 논란을 불러 일으킬만한 뮤직 비디오, 동성애 뉘앙스를 담은 노랫말, 그리고 멤버들의 거리 스타일 패션까지 모든 것이 철저하게 계산되었던 프랭키 고우즈 투 할리우드는 한마디로 음악 프로듀서가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Frankie Goes To Hollywood - Two Tribes

 

 

이들 밴드에 의해 이루어진 2차 브리티시 인베이전은 이미 미국에서 검증받은 유로 디스코 리듬과 화려한 이미지, 그리고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자국 밴드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낯선 매력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82년 MTV 개국 이후 잘 만들어진 신인 밴드들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급증했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 영국 일렉트로 팝 밴드들의 뮤직 비디오야말로 24시간 방송으로 콘텐츠가 절실한 MTV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것이었다. 영국 밴드로서도 투어라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도 미국 시장을 두드려볼 수 있었으니 손해 볼 것 없는 장사였다.

2차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성공 이후 영국 음악계는 메이저 음반사들을 중심으로 양국의 기호를 고루 만족시킬 수 있는 신인 발굴에 주력했다.

To be continu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