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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음악

1980년대 팝음악에 대하여 2부

 

뉴 로맨틱스의 댄스 넘버로 톡톡히 재미를 본 MTV는 개국 초기 흑인 음악은 전혀 방영하지 않았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은 스팬다우 발레, 소프트 셀 같은 뉴 로맨틱스 밴드들의 신스팝이 실은 흑인 모타운(Motown) 사운드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스팬다우 발레의 멤버 게리 켐프는 “우리의 방향성 록은 소울/디스코/댄스에게서 왔다”고 밝혔으며, 그 밴드는 1983년 더욱 모타운 사운드를 위해 신시사이저의 사용을 그만 두기까지 했다. 또한 소프트 셀의 첫 차트 히트곡은 소울 발라드 ‘Trained Love’였고 또 1982년에는 슈프림스의 고전 ‘Where Did Our Love Go?’를 리메이크했다.

 

신스 팝 열풍은 1982년부터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MTV도 자신들의 노선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그들은 바로 그 모타운에 새로운 관심을 나타냈고, 모타운 출신으로 당시 최고의 슈퍼스타로 각광 받던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을 낙점했다. 미국 역사상 최고의 춤꾼이었던 프레드 애스테어(Fred Astaire)도 극찬해 마지 않은 춤 실력과 빼어난 가창력, 그리고 인종에 구애 받지 않는 음악을 선보인다는 메리트를 갖고 있었던 마이클 잭슨은 MTV로선 가장 매력 있는 상품이었다.

 

마이클 잭슨

 

마이클 잭슨은 1963년 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티토, 저메인, 재키, 말론 등 4명의 형과 함께 잭슨 파이브(Jackson 5)를 결성,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마이클과 잭슨 파이브는 1969년 베리 고디의 눈에 띄어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했고, 그들은 이후 첫 히트곡 'I Want You Back'을 시작으로 'ABC' 'The Love You Save' 'I'll Be There' 등 13곡의 톱 20 싱글을 배출했다. 흑인 보컬 그룹이었던 잭슨 파이브는 인종과 성별, 세대 차이를 떠나 모든 이들에게 어필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어리면서도 리드 보컬을 맡았던 마이클 잭슨의 인기는 각별했다.

 

마이클 잭슨은 1979년 퀸스 존스가 프로듀스한 걸작 [Off The Wall]을 발표하면서 성인 뮤지션으로 거듭났다. 그런데 마이클 잭슨은 MTV 개국 이전인 1979년에 이미 'Don't Stop Till You Get Enough', ‘Rock With You’ 같은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왔으며 이후에도 꾸준하게 뮤직비디오에 주력했다. 그는 MTV보다 뮤직비디오의 파급효과를 먼저 간파한 셈이다. 1982년 이후 뉴 로맨틱스 같은 백인 가수들의 음악만을 틀었던 MTV의 노선 수정에 의해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이 흑인 아티스트의 뮤직비디오로선 처음으로 MTV의 전파를 탔다. 이때부터 마이클과 MTV의 밀월관계가 시작된다.

 

Michael Jackson - Billie Jean

 

그의 뮤직비디오는 단순한 뮤직비디오가 아니었다. 쇼트 필름(short film)이라 칭할 정도로 방대한 스케일의 '작은 영화'였다. 할리우드의 쟁쟁한 영화 감독들을 초빙하고 엄청난 제작비를 투입해 웬만한 영화 못지 않은 매머드급 뮤직비디오를 탄생시켰다. 그 신호탄이 1982년도 히트 곡 'Thriller'다. 13분이 넘는 대작이었던 그 ‘쇼트 필름’은 공포영화의 대가인 할리우드 감독 존 랜디스에게 맡겨 성공을 거뒀다. 그 제작비는 무려 80만 달러였다.

 

영구보존작으로 선정돼 현재 미국 의회도서관에 보관 중인 유일한 뮤직 비디오이자 MTV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뮤직 비디오 1위, 또 제작 과정 등을 담은 필름 영상만 900만 부 이상 팔려 역사상 가장 성공한 뮤직 비디오로 기네스 북에 등재된 것이 바로 마이클 잭슨의 <Thriller>이다. 빌보드는 <Thriller> 뮤비에 대해 "획기적인 시각 효과와, 스토리라인, 그리고 복잡한 춤 동작들로 뮤직비디오를 예술 형식으로 바꿔 놓았으며 이러한 독창적인 쇼트 필름의 충격은 뮤직 비디오의 예술성을 대중문화 속에 집어넣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이는 뮤직 비디오를 음반 산업 깊이 효과적인 홍보 수단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평가했다. 마이클의 이와 같은 대성공을 보고 다른 뮤지션들도 뮤직 비디오와 보는음악의 위력을 실감하게 됐고 대중음악의 패러다임이 바뀌게 된 것이다.

Michael Jackson - Thriller

 

 

뮤직비디오의 성공은 음반 판매량에도 이어졌다. [Thriller]는 37주간이나 앨범차트 정상을 지켰으며 현재까지 6천6백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여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또한 무려 7곡이 싱글로 발매되어 모두 차트 10위 내에 올랐고 그 중 2곡이 정상을 차지했다. 그 앨범으로 마이클 잭슨은 1984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역대 최다인 7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1984년 3월 [타임]지는 “마이클 잭슨은 비틀스 이래로 가장 중요한 뮤지션이며 싱글 히트에 있어서도 엘비스 프레슬리 이후 가장 강력한 현상이다.”라고 말했다. 담배도 안 피웠고 술도 안 마셨으며 약물도 복용하지 않았던 마이클 잭슨은 누가 뭐래도 80년대 가장 중요한 스타였다.

 

Prince

 

80년대 내내 주류 팝계의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마이클 잭슨에게 집중되었지만 그 제도권 속에서도 나 홀로 음악 실력을 자랑하던 ‘무관의 제왕’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프린스(Prince)였다. 소울과 펑크(funk)를 일렉트릭 기타에 대입시킨 프린스는 겨우 18살 때 자신이 작곡한 에로틱 댄스 음악을 담은 첫 앨범을 제작했다. 재즈 뮤지션 아버지를 둔 덕에 어릴 적부터 음악과 악기에 관심이 많았던 프린스는 곧 피아노, 기타, 드럼 등 여러 악기를 배웠다. 프린스의 스타일은 기본적으로 펑크를 록과 섞는 것이며 당시의 뉴 웨이브와 디스코, 랩 등의 영향도 반영했다.

 

 

Prince - When Doves Cry

 

 

그의 노래들은 1980년도 앨범 [Dirty Mind]까지는 단지 에로티시즘을 재미있게 다루는 정도였다. [Dirty Mind]의 가사는 너무 야해서 방송을 타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라디오 전파를 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퍼즈 톤의 기타와 함께 펑크와 팝 음악을 섞은 그의 사운드는 거대한 청중들을 매료시켰다. 1982년도 앨범 [1999]은 그의 첫 톱 텐 히트 앨범이 되었고 ‘Little Red Corvette’라는 톱 텐 싱글을 배출했다.

 

이후 프린스는 백업 밴드 레볼루션을 조직해 1984년 걸작이 된 앨범 [Purple Rain]을 발표했다. [Purple Rain]에서는 차트 넘버원에 오른 2곡 ‘When Doves Cry’(4주간), ‘Let’s Go Crazy’(2주간)를 비롯해 ‘Purple Rain’, ‘I Would Die 4 U’ 등 모두 5곡의 톱 40 히트곡이 배출되었다. 영화와 투어까지 동반했던 그 음반으로 프린스는 일약 메이저 스타가 되었고, 그 앨범은 물론 후속작인 1987년도의 [Sign O’ The Times]도 비평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Prince - Purple Rain

 

마이클 잭슨, 프린스와 마찬가지로 1958년에 태어난 마돈나(Madonna)는 이 시대 여자 가수 중에서 상업적으로, 또 이미지적으로 가장 성공한 뮤지션였다. 역대 여자 가수 음반 판매량 1위이며, 남녀 전체로 넓히더라도 5위 안에 들며 미국에서만 6,500만 장의 음반 판매량을 올렸다.

 

Madonna

 

 

1983년에 발표한 그녀의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은 영국과 미국 차트를 동시에 석권했고 1984년에 2집의 첫번째 싱글 “Like A Virgin”으로 처음으로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랐다. 2집 [Like A Virgin]은 세계적으로 2,1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면서 단숨에 마돈나를 월드스타로 올라서게 만들었다. 특히 1984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Boy Toy라고 새겨진 벨트와 웨딩 드레스, 그리고 머리를 헝클며 바닥에 몸을 문대는 Like A Virgin 공연은 당시 엄청난 파격이었으며, 마돈나의 베스트 퍼포먼스 중 하나로 꼽히곤 한다. 이 공연의 여파로 노래와 마돈나의 인기는 폭발적으로 치솟게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마돈나를 상징하는 히트곡을 꼽자면 단연 "Like A Virgin"이 꼽힌다.

 

Madonna - Like A Virgin

1986년 3집 [True Blue]의 싱글 "Live To Tell"이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 동시에 평단은 지금까지 공개된 그녀의 발라드 중 최고라고 호평했다. 두 번째 싱글 "Papa Don't Preach" 역시 1위에 올랐다. 10대 낙태에 관한 내용으로 다시 한번 화제를 집중시켰고, 이 노래가 당시 미국 소녀들의 낙태율에 영향을 줬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마돈나 신드롬'은 대단했다.

 

3집 [True Blue]는 총 2,200~2,300만장이 팔린 것으로 추산되며, 그 해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자 가장 많은 국가에서 1위를 차지한 앨범, 80년대 가장 많이 팔린 여가수의 앨범이라는 타이틀까지 따내었다. 후속 싱글 "True Blue"가 3위, "Open Your Heart" 1위, "La Isla Bonita"까지 4위를 차지하며 전작에 이어 싱글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1987년엔 마돈나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Who's That Girl>의 개봉과 함께 영화의 사운드트랙 앨범이 발매되었다. OST 싱글 Who's That Girl과 Causing A Commotion이 각각 1위, 2위를 달성하는 등 쾌거를 이루었다.

Madonna - La Isla Bonita

 

 

마돈나는 데뷔 4년만에 투어 Who's That Girl World Tour로 스타디움 투어를 돌기 시작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당시 여자 가수로는 독보적이었으며, 일본에서는 마이클잭슨보다 먼저 스타디움 투어를 하며 가공할만한 인기와 파급력을 나타냈다. 프랑스 파리 공연에선 한번에 13만명의 관객이 운집함에 따라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여가수의 단일 공연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1989년 4집 []Like A Prayer]에서 커트된 싱글 "Like A Prayer"로 컴백한다. 이곡은 마돈나의 7번째 빌보드 1위곡이자 대표적인 히트곡이 된다. 앨범 판매량은 1500만장 정도로 절반 가까이 떨어졌지만 빌보드 2위를 차지한 "Express Yourself"와 "Cherish", 8위를 차지한 "Keep It Together", 영국 차트 5위권에 진입한 "Dear Jessie" 등 히트 싱글은 꾸준히 나왔고 1980년대 끝자락에 접어들면서 그녀는 80년대 가장 성공한 연예인 반열에 들어있었다.

 

Cyndi Lauper

 

마돈나 이전에 큰 기대를 모았던 여가수로 신디 로퍼(Cyndi Lauper)가 있었다. 록 밴드 블루 엔젤 출신인 신디 로퍼는 1983년 솔로 데뷔 앨범 [She’s So Unusual]을 발표하면서 신드롬을 일으켰으며, 이듬해인 1984년 그래미 신인상을 수상했다.

데뷔곡 "Girls Just Want to Have Fun"이 싱글차트 2위까지 오르며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Time After Time"(싱글차트 1위), "She Bop"(3위), "All Through the Night"(5위) 등 첫 앨범에서만 무려 4곡의 싱글차트 Top 5 히트곡을 쏟아냈고, 데뷔앨범은 미국 내에서만 무려 6백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당시 바야흐로 MTV가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열었던 시점이라 이에 발맞추어 재기발랄한 뮤직비디오를 선보이며 특히 젊은 세대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1985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영화 구니스의 주제곡인 "The Goonies 'R' Good Enough"를 불렀다. 댄스 넘버와 발라드를 적절히 소화했던 신디 로퍼는 1984년 USA For Africa의 이디오피아 자선 프로젝트 ‘We Are The World’에도 참여하기도 했다.

 

Cyndi Lauper - Girls Just Want to Have Fun

 

1986년 2집 앨범 "True Colors"와 동명의 싱글을 발표, 싱글차트 1위에 오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당시 앨범명이 타블로이드에 의해 '라이벌 구도'로 선전되었던 마돈나가 같은 해에 발표한 'True' Blue 앨범과 공교롭게 겹쳐 일각에서는 'True war'라는 표현을 쓰며 자극적인 기사 몰이에 나서기도 했지만, 마돈나가 True Blue에서 음악적으로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며 전작 Like A Virgin을 뛰어넘는 괴물같은 성적을 거두자 대중적 성공 측면에서는 둘 사이의 격차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1989년 발표한 3집 "A Night to Remember"가 상업적으로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두며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리드 싱글 <I Drove All Night>가 빌보드 싱글 6위에 올랐지만, 두 번째 싱글 <My First Night Without You>는 겨우 62위에 그쳤으며 이후 나온 두 장의 싱글은 100위권 진입에 실패하였다. 앨범도 빌보드 앨범 차트 37위라는 그녀로서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Sheena Easton

 

1980년대 당시 마돈나와 신디로퍼에 견줄만한 신데렐라 같은 인기를 얻었던 시나 이스턴(Sheena Easton)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가수이자 배우이다. 인형처럼 예쁜 외모 때문에 1980년대에 한국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사실 그녀는 외모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재능을 갖춘 아티스트이다.

 

시나 이스턴은 영국 최초의 음악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빅 타임>을 통해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1981년 데뷔 앨범인 [Take My Time]에 실린 “Modern Girl”과 “9 to 5”를 히트시켰을 뿐만 아니라 영화 <007 포 유어 아이즈 온리>의 주제가인 “For Your Eyes Only”를 불러 세계적인 스타가 됐기 때문이다. 그녀는 모두 16장의 정규 앨범을 내놓으면서 45곡의 싱글을 발표했으며 이중에서 14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의 톱 40에 진입했다. 그래미상 후보로는 6번 이름을 올렸는데, 신인상 등 2번에 걸쳐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히트곡으로는 “Telefone”, “Strut”, “Sugar Walls”, “So Far So Good”, “The Lover in Me”, “What Comes Naturally” 등이 있다.

 

 

Sheena Easton - For Your Eyes Only

 

브루스 스프링스틴, 잭슨 브라운, 존 쿠거 멜렌캠프, 트레이시 채프먼 등은 개인적이고 정치적으로 의식 있는 포크 송을 노래했다. 그들의 활약은 포크 음악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 일으켰다. 조지아 출신의 R.E.M.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결성된 유투(U2)는 탄탄한 마니아를 구축하며 80년대를 대표하는 밴드로 커나간다. 역시 아일랜드 가수인 시네드 오코너와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 등 뒷골목의 흑인 랩 가수들도 정치적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시대에는 미국과 영국 외에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밴드들이 부각되었다. 우선 콜린 헤이(Colin Hay)가 프론트맨으로 있던 5인조 그룹 맨 앳 워크(Men At Work). 1982년 결성된 맨 앳 워크는 폴리스를 연상시키는 리듬 연주와 유쾌한 색소폰 연주, 그리고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이들의 재치는 MTV의 감각과 딱 맞아 떨어졌고 그래서 MTV는 이들의 뮤직비디오를 적극 밀어주었다. 유머러스한 장면이 돋보였던 ‘Who Can It Be Now’ 같은 히트 곡이 바로 그러한 곡. 계속해서 명반 [Business As Usual]에 수록된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겼던 후속 싱글 ‘Down Under’가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등 맨 앳 워크는 한동안 전성기를 누리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Men At Work - Down Under

 

또 다른 걸출했던 호주 밴드로는 인엑시스(INXS)가 있었다. 인엑시스는 초창기에 음악 스타일과 공연 매너 등에서 60년대 롤링 스톤스를 빼다 박았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게다가 밴드의 싱어 마이클 허친스(Michael Hutchence)는 믹 재거의 포즈와 독특한 버릇까지도 차용했다. 그러한 롤링 스톤스의 영향과 함께 밴드는 50년대 로큰롤의 강력한 백비트와 80년대의 부드럽고 서정적인 댄스 스타일을 가미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시드니의 선술집과 대학가에서 오랜 무명생활을 했던 그룹은 1985년 6번째 앨범 [Listen Like Thieves]을 발표한 뒤에야 비로소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1987년도의 [Kick]에서는 'Need You Tonight'이라는 빌보드 넘버원 싱글을 배출하기도 했다.

 

INXS - Need You Tonight

 

AC/DC나 미드나이트 오일 같은 밴드들도 호주 출신으로 80년대를 풍미한 밴드들이었다. 또한 호주 여성 팝 가수 올리비아 뉴튼 존은 1974년작 "I Honestly Love You"로 그래미 올해의 레코드상을 받고 미국, 캐나다, 호주, 스웨덴 싱글차트에서 1위에 오르는 등 세계적인 호응을 받았다.

1978년 존 트래볼타와 함께 출연한 뮤지컬 영화 《그리스》의 음악은 할리우드 사상 가장 성공한 영화음악으로 꼽힌다. 대표곡은 존 트래볼타와 부른 "You're the One That I Want"와 "Summer Night". 1980년에는 《제나두(Xanadu)》에서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1981년 발표한 "Physical"은 빌보드 10주 1위를 달성하며 큰 인기를 끌며 70년대의 인기를 80년대에도 쭉 이어갔다. 몸에 꽉 끼는 '레오타드(Leotard)' 복장으로 '헬스로빅(Heathrobic)' 장면을 연출한 뮤직 비디오는 사람들의 엄청난 관심을 불러 모았고 노래의 엄청난 히트와 뮤직 비디오의 성공은 에어로빅 비디오 제작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여 대중화로 바로 이어졌으며 많은 배우들이 에어로빅 비디오 제작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Olivia Newton-John - Physical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