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후반 때 아닌 틴팝의 전성기가 찾아왔다. 데니즈 팝과 맥스 마틴이라는 명프로듀서들이 전성기를 주조해 냈고 그들의 조련 속에 수많은 보이밴드와 틴팝 스타들이 속속 등장했다. 90년대 초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후예들이었다. 당시 인기를 얻었던 보이밴드로는 백스트리트 보이스와 엔싱크를 필두로 98˚, 바다 건너 영국의 보이존, 웨스트라이프, 파이브 등이 있었다.
백스트리트 보이즈(Backstreet Boys)는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전세계적으로 유행했던 틴팝 음악의 효시 격인 그룹이다. 90년대 초반 갱스터 랩과 그런지 락에 밀려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으나, 이들이 전세계적인 인기몰이를 시작한 이후 팝 음악계는 10, 20대 취향의 틴팝음악이 대세가 되었다.
1992년도에 결성하여 1996년도에 그룹 이름과 동일한 명칭의 앨범 [백스트리트 보이즈]로 데뷔했으며 현재까지 멤버 교체없이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는 흔치않은 케이스이기도하다.
1995년 미국에서 데뷔싱글 "We've Got it Goin' On"을 발매하였으나 모두의 예상대로 판매는 극히 부진했했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유럽으로 싱글을 발매하였는데 유럽 5개국 나라 차트 톱5 안에 드는 쾌거를 달성했다. 이를 기반으로 유럽에서 활동이 시작되고, 유럽 투어를 돌면서 1996년 미국을 제외한 나라에 1집 앨범 [Backstreet Boys]를 발매하였다. 이 데뷔 앨범은 유럽 각종 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면서 3백만 장을 팔았다. 이렇게 유럽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으면서 1997년 2집 [Backstreet's Back]을 발매했다. BSB의 초창기 히트곡 "As Long As You Love Me, Everybody"는 유럽 차트를 석권하다시피 하였다.
유럽에서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면서 드디어 미국으로 돌아가서 활동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을 제외한 캐나다, 유럽,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국가 등에서 인기를 휩쓸고 있었다.
BSB는 유럽에서 발매하였던 1집, 2집의 히트곡을 묶어서 미국판 1집 [Backstreet Boys]를 발매하였고, 그리고 미국에서만 14 x플래티넘(당시 플래티넘, 다이아몬드 인증은 각각 100만장, 1000만장이었다)이라는 어마어마한 판매량을 기록, 다이아몬드 음반으로 등극했다. 총 판매량은 전세계 도합 2200만장추정.
이 시기에 "Quit Playing Games (With My Heart)"는 BSB가 미국에서 낸 역대 싱글 중 가장 높은 2위를 기록하였다. BSB는 TV 활동보다는 콘서트와 같은 공연 수입에 많이 의존하는 방식을 택했고, 이에 따라 앨범 판매량은 굉장히 높았으나 싱글 판매량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1999년 3집 [Millennium] 이 발매되었으며 이앨범은 BSB 인기의 최정점을 찍은 앨범으로 BSB 최고의 히트곡 "I Want it That Way"가 수록된 앨범이다. 미국에서는 6위를 기록했고 유럽차트 1, 2위를 석권했다. 미국 판매량 13x플래티넘(실질 판매량은 1220만장추정) 전세계 도합 3000만장이상(추정)라는 어마어마한 판매고를 올렸다.
2000년 4집 앨범 [Black & Blue]이 밞매되었으며 이앨범은 BSB의 마지막 히트 앨범이다. 대표곡으로는 "Shape Of My Heart"가 차트 9위에 오르며 앨범에서 낸 싱글 중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미국에서의 판매량은 8x플래티넘(실질 판매량 540만추정). 높은 판매량이지만, 그 전 두 앨범이 천만 장을 넘었던 BSB로써는 상당히 아쉬운 성적이었다. 전세계 도합 판매량은 1600만 장을 기록했다.

스파이스 걸스(Spice Girls)는 1996년에 데뷔하고 2001년에 해체한 영국의 걸그룹이다. 멜라니 B, 멜라니 C, 엠마 번튼, 제리 할리웰, 빅토리아 베컴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인기를 누렸던 음악 역사상 가장 성공한 걸그룹이다. 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아이돌 걸그룹계의 조상격 되는 그룹이다.
1994년 하트 매니지먼트 사는 당시 인기를 얻던 테이크 댓이나 이스트 17 같은 보이그룹과 맞설 걸그룹을 만들기로하면서 걸그룹을 위한 오디션 공고를 냈다. 약 400명 가까이 되는 여성들이 오디션에 참가했고, 빅토리아, 멜라니 B, 멜라니 C, 제리, 그리고 미셸까지 5명이 합격하여 모두 함께 합숙하며 연말까지 연습생 신분으로 훈련에 돌입했다. 처음에는 아주 틴팝스러운 노래들을 녹음하고, 이 노래들 중 하나의 제목이었던 "Sugar and Spice"에서 그들의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다 몇 달 후 미셸 스테픈슨이 방출되고 엠마 번튼이 영입되었고, 제리가 이 당시 밴드 이름을 Spice로 결정했다고 한다.
제대로된 계약서도 없이 무기한 연습만 하고 있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 멤버들은 어린 노래만 부르게 하는 기획사도 점점 마음에 들지 않게 되었고, 결국 19 엔터테인먼트와 1995년 3월 계약을 맺게 된다. 1995년 9월에는 음반사 투어를 한 후에 버진 레코즈와도 계약을 맺게 된다. 'Spice'라는 이름의 래퍼가 벌써 있어서 그룹 이름을 Spice Girls로 최종 결정되었고, 1996년까지 이들은 1집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1996년 7월 스파이스 걸스는 영국에서 데뷔 싱글 "Wannabe"를 발표한다. 싱글 발표 몇 주 후에 뮤직비디오도 공개했다. 뮤직비디오는 공개되자 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으며, 가장 잘 나갈 때는 일주일에 73번 방송되기도 했었다. 이 곡으로 스파이스 걸스는 열심히 공개방송을 뛰고 온갖 인터뷰에 참여하게 되었다. '뮤직 위크' 잡지사의 한 기자는 '기타로 무장한 남자들이 팝 시장을 지배하던 와중에, 여성들의 시대의 서막을 여는 걸그룹이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Wannabe"는 영국 싱글 차트에서 3위로 데뷔해 1위로 치고 올라가 7주동안이 머물게 된다. 심지어는 37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역사상 가장 히트한 걸그룹 데뷔 싱글일 뿐 아니라 역사상 가장 히트한 걸그룹 싱글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앨범이 11월에 발매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해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 2위를 기록했다.
이런 엄청난 반응을 타고 두번째 싱글 "Say You'll Be There"이 10월에 공개되었고, 2주 간 1위를 차지하게 된다. 12월에는 "2 Become 1"이 공개되어 크리스마스에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1996년 영국 연간 차트의 5위 안에 스파이스 걸스는"Wannabe", "Say You'll be there", "2 Become 1" 총 세 곡을 올리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게 된다. 1996년 1월에 발표한 데뷔 앨범 [Spice]는 2,500만 장 이상이 팔려나가고 15주간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면서 비틀즈 이후 최고의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 당시 스파이스 걸스는 주로 비틀즈와 비교되었고, 그들의 팬클럽 스파이스매니아도 세간의 집중을 받게 됐다. 실제로도 비틀즈 이후로 영국에서 가장 히트한 가수가 되었다.
1997년 1월에는 미국에서 "Wannabe"를 발표했고, 빌보드 차트에서 최초로 11위로 데뷔하는 기염을 토한다. 이는 과거 비틀즈가 미국에서 데뷔할 때도 이루지 못한 성과였다. "Wannabe"는 싱글 차트를 쭉쭉 올라가 결국 미국에서도 4주 간 1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데뷔 앨범 [Spice]는 미국에서도 1997년 연간 앨범 차트 1위를 찍게 된다. 1997년 3월에는 1집의 마지막 활동으로서 "Mama / Who Do You Think You are"로 A, B side의 두 싱글을 발표했고 역시나 1위를 차지하게 된다. 잭슨 파이브 이후로 최초로 4개의 연속된 싱글로 1위를 먹었다. 1집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걸 파워'를 강조한 책과 비디오를 발표했고 50만 장 이상이 팔려나가며 계속해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한다. 심지어는 칸 영화제에서 'Spice World'라는 제목의 영화도 공개하게 된다.
싱글로만 성공한 게 아니라 당시 모든 언론도 스파이스 걸스에 주목했다. 스파이스걸스는 1997년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신인상, 싱글 대상 그룹 부문, 음반 대상 그룹 부문, 올해의 음반 상을 모두 꿰차며 4관왕을 차지한다.
1997년 10월, 스파이스걸스는 2집 [Spiceworld]의 첫 싱글인 "Spice Up Your Life"를 발표한다. 라틴풍의 이곡으로 또 영국 차트 1위를 찍으며 5연속 1위를 하게 된다. 11월에는 2집 [Spicworld] 음반을 발표하고, 세계적으로 1,500만 장을 팔아치우면서 미국에서는 1998년 가장 히트한 팝 그룹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1997년 12월에는 2집 두번째 싱글인 "Too Much"를 발표했는데,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발라드곡으로 스파이스 걸스의 두번째 크리스마스 1위 싱글이자, 여섯번째 1위 싱글이 된다. 1998년 AMA에서도 3관왕을 하고, 승승장구를 이어나간다. 그리고 1998년 2월에 발표한 2집 세 번째 싱글인 "Stop"'는 처음으로 스파이스 걸스의 싱글 중 1위를 차지하지 못하면서, 7연속 1위는 벽에 부딪히고 만다. 하지만 싱글 차트에서 2위를 차지했던 곡이다.
1998년 3월, 리더였던 제리 할리웰이 스파이스 걸스를 떠나게 된다. 이유는 다른 멤버들과의 의견 차이, 그리고 계속된 활동으로 인한 피로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게 스파이스 걸스가 내부적으로, 외부적으로 힘든 기간을 겪고 있을 때 2집의 마지막 싱글인 "Viva Forever"가 발표된다. 이곡은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스파이스 걸스의 곡 중 가장 훌륭한 것으로 지금까지 회자된다. 아쉽게도 뮤직비디오는 급하게 스톱모션으로 제작되었다.
1998년부터 4인조로 북미 투어를 시작했으며 크리스마스 직전에 제리에게 바치는 헌정곡 'Goodbye'를 발매했다.
12000년 11월 3집 앨범 [Forever]가 발매되었다. 미국에서는 앨범 차트 39위를 찍었고, 영국에서는 2위를 찍었다. 같은 주에 웨스트라이프의 앨범도 발표되어 영국 언론은 두 그룹의 정면충돌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웨스트라이프의 승리. 3집의 첫번째 싱글인 "Holler / Let Love Lead the Way"는 영국에서 스파이스 걸스의 아홉번째 1위곡이 되었다. 하지만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는 107위에 머물렀다. 이 노래는 단 한 번, MTV 유럽 뮤직 어워드에서만 라이브로 공연했고, 결론적으로 3집은 500만 장이 팔리며 1집과 2집의 성공에는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2000년 12월에는 스파이스 걸스의 무기한 활동 중단을 선언했고, 솔로 활동에 집중하기로 한다.

90년대 초·중반 이후 얼터너티브의 폭풍이 한 바탕 세차게 몰아치고 간 뒤의 록씬에서는 더욱 더 복잡하고 다양한 음악적 코드의 변화가 일어난다. 프로디지(Prodigy),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 팻보이 슬림(Fatboy Slim), 크리스털 메소드(The Crystal Method) 등과 같은 팀들이 빅비트(big beat)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의 선두주자로 등장했다.
프로디지(Prodigy) 같은 밴드는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기반으로 얼터너티브 록, 인더스트리얼, 힙합 등의 다양한 음악과의 교감으로 이루어진 하드코어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내세웠고, 이들이 전세계적 열풍을 일으킨 것은 1997년 3집 [The Fat of the Land] 특히 싱글로 96년에 먼저 공개된 “firestarter”와 ”breathe”는 앨범의 백미이다. 이 앨범은 일렉트로니카 역사상 최다 음반판매량인 1600만장을 기록하기도 할 정도로 평단에서도 만점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은 영국출신의 듀오로 총 6번의 그래미 어워드 수상과 15번의 후보 지명[3], BRIT 어워드 수상, 그리고 UK 차트에서 2번의 1위와 13개의 싱글의 5위권 기록 또한 가지고 있다.
1995년 6월 5일에 리드 싱글격 EP 'Leave Home' 을 먼저 발표한 후 6월 26일에 그동안 발매 혹은 클럽에서 틀어왔던 곡들을 묶어서 데뷔 앨범 'Exit Planet Dust' 를 발표한다. 이앨범은 반응이 좋아 오피셜 앨범 차트 9위를 차지하면서 점차 성장해 나갔다. 1997년 4월 7일에 2집 'Dig Your Own Hole' 을 발표한다. 이 앨범으로 오피셜 차트 1위에 올랐다. 이들은 2007년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 첫째날 헤드라이너로 출연한 이 후 여러번 록 페스티벌을 통해 국내팬들과 만났다.
나인 인치 네일스는 첫번째 앨범인 [Pretty Hate Machine]으로 화려하게 데뷔를 하였으며, 인더스트리얼의 대부라는 별명을 얻고 미국 록계의 주목을 받는다. 인터스코프 사로 이적후에 발표한 두번째 앨범 [Broken] 발매되었다. 이 음반부터 헤비메탈을 대폭 수용했으며, 굉장히 폭력적이고 분노에 차 있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1994년 두번째 앨범인 NIN 최고의 걸작 [The Downward Spiral]은 빌보드 차트 2위 까지 올라갔으며, 프로그레시브 록적인 구성과 헤비메탈, 인더스트리얼을 한데 뭉쳐서 굉장히 꽉 짜인 훌륭한 컨셉트 음반이다.
1999년 발매된 [The Fragile] 앨범은 더블 CD로 발매되었음에도 빌보드 1위까지 올라가는데 성공하고, 발매 첫 주만에 228,000장을 팔아치웠다.
나인 인치 네일스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바로 인더스트리얼 음악을 메인스트림으로 올려놨다는 것이다. 인더스트리얼 음악의 창조자는 아니었지만 이것이 이 밴드가 인더스트리얼 음악을 상징하는 이유다. 1990년대 나인 인치 네일스의 성공은 인더스트리얼 음악을 주요 장르 중 하나로 만들게 됐고 많은 신인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미쳤다.
나인 인치 네일스는 명실상부 1990년대를 대표하는 록 밴드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1997년 당시 타임지는 트렌트 레즈너를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타임지는 기사에서 "레즈너는 프랫보이 스웨거가 아니라 브로딩, 자기비하적인 지성으로 인더스트리얼 록의 근력을 발휘한다"며 "이 뮤지션이 'Y세대 하위문화'에 목소리를 높였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레즈너가 팬들에게 끼친 영향은 앨범 판매량을 훨씬 뛰어넘었다. 나인 인치 네일스의 뮤직 비디오는 MTV에서 계속 틀어져 당시 신세대들에게 보여졌다. 그들의 어둡고 심지어 가학적인 주제는 그 당시 또한 인기가 많았던 스파이스 걸스와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같은 틴 아이돌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2020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데 성공했다.
마릴린 맨슨(Maliyn Manson) 같은 경우는 나인 인치 네일스(Nain Inch Neils), 미니스트리에게서 보여졌던 인더스트리얼 록(Industrial Rock)에다가 <섹스>와 <폭력>을 결합시켜 <안티-크리스티즘>을 표방하는 파워풀한 <인더스트리얼 쇼크 록>을 추구했으며, 유리스믹스(Eurythmics)의 히트곡 'Sweat Dreams'를 괴기스럽게 리메이크하여 수록한 2집 앨범 [Smells Like Children]을 발표하여 세계적인 밴드로 성장한다.
3집 [Antichrist Superstar] 앨범은 전형적인 인더스트리얼 메탈을 들려준 앨범으로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에 3위로 등장하여 음악계 내외를 놀라게 했으며 98년 발매된 네 번째 앨범 [Mechanical Animals]는 대형 소매점들의 판매 불가 정책과 기독교인들의 대대적인 불매운동에 아랑곳없이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는등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1999년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이후 마릴린 맨슨의 폭력적인 음악과 퍼포먼스가 많은 비판을 받았으며 그 결과 2000년에 발매한 정규 앨범 [Holy Wood (In the Shadow of the Valley of Death)]는 전작들처럼 흥행하지 못했다. 2003년 정규 앨범 [The Golden Age of Grotesque] 앨범을 발표하였고 이 앨범은 빌보드 200차트 1위에 오르며 밴드는 다시 흥행에 성공했다.
흑인 랩음악의 힙합과 극단적인 스래쉬 메탈의 교배로 보여지는 하드 코어(Hard Core)쪽으로는 콘(Korn), 림프 비즈킷(Limp Bizkit),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 같은 그룹들이 록씬의 주된 흐름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이외에도 여러 장르가 교배된 하이브리드 스타일의 음악들은 새로운 형식미를 표출하기도 하고 혹은 과거의 복고적 스타일이 새롭게 각광받기도 하는 등 오늘날까지도 록씬은 끊임없이 복잡하게 전개되어 나가고 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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