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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음악

1990년대 팝음악에 대하여 5부

(좌) 노토리어스 B.I.G. (우)투팍

 

 

랩(RAP)은 힙합 문화의 하나의 줄기로 볼수 있는데 반복되는 비트를 배경음으로 깔고 리듬에 맞춰 가사를 말하는 것을 말하며 보통 하나의 창법으로 보는경우가 많다

80년대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했던 랩음악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 시기는 90년대로 다양한 스타일의 랩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갱스터랩은 동부의 이스트코스트랩과 서부의 웨스트코스트랩이 함께 탄생한 쟝르로 조직폭력, 갱단 내 규율, 범죄, 마약을 다루는 가사가 주류지만, 의식 있는 갱스터 래퍼들은 빈민가의 잔인한 현실을 가사로 고발하거나 정부를 비판하기도 하며, 라이벌 갱단 간의 화해를 부르짖기도 한다.

닥터 드레를 비롯하여 스눕 도기 독, 워렌 쥐, 투팍등이 형성한 웨스트코스트랩은 90년대 중반까지 상업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동부의 이스트코스트랩은 우 탕 클랜, 노터리어스 BIG, 나스 등이 큰 히트를 치게 되었다.

Dr. Dre

 

 

닥터 드레(Dr. Dre)는 G-펑크의 선구자로 불리며 전형적인 웨스트 코스트 힙합의 스타일을 정립한 래퍼이자 힙합프로듀서이다.

데스로우 레코드(Death Row Records)를 설립하고 솔로로 데뷔해서 1992년 [The Chronic] 라는 앨범이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스눕 독의 데뷔 앨범의 전곡을 프로듀싱해서 스눕독을 슈퍼스타로 만드는 데 일조하였다. 그리고 데스로우 레코드에서 투팍 샤커와 스눕 독과 함께 90년대 중반 웨스트 코스트의 최전성기를 열어갔다. 다만 드레와 수많은 협업을 한 스눕 독과는 달리 투팍과 드레는 같은 소속사에 있었을 때 협업한 곡이 "California Love", "Can't C Me" 두 곡밖에 없다. 1996년 동업자 슈그와의 갈등으로 데스 로우 레코드를 탈퇴하고는 애프터매스 레코드를 설립하는데, 영입한 대표 아티스트가 바로 다름아닌 에미넴. 이 때를 기점으로 다시 떠오르기 시작하였고 2집인 [2001]으로 재기에 성공하였다. 뿐만 아니라 50 센트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는 등 힙합계의 마이더스의 손으로 떠오르게 된다.

 

 

Dr. Dre - Still D.R.E. ft. Snoop Dogg

 

노토리어스 B.I.G.는 투팍과 함께 1990년대 미국 힙합의 황금기를 양분했던 래퍼였다. 이를 두고 동부와 서부간의 전쟁이라고 언론에서는 부풀렸지만, 사실상 데스로우 레코드와 배드보이 레코드 간 싸움이었다.

생전에 제작한 2장의 정규 앨범 모두 힙합씬에서 손꼽히는 명반이며, 상단에 서술해놨듯이 동부를 대표하는 MC인만큼 미국 힙합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The Notorious B.I.G. - Juicy

 

 

1994년 8월 그의 첫 싱글인 "Juicy"가 빌보드 팝 차트 27위로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되고 9월 13일 그의 첫 정규 앨범 [Ready to Die]가 엄청난 히트를 치면서 순식간에 힙합계의 거물로 떠오르게 된다.

비기는 그 당시 나왔던 솔로 MC들 중에서 실력적인 면에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발성과 플로우를 포함한 랩스킬과 가사를 풀어가는 실력 모두 최정상급이며, 가사를 종이에 쓰지 않고 따로 외워둔 뒤 랩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플로우쪽에서 두껍고 허스키한 목소리를 바탕으로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묵직하고 리드미컬한 플로우를 보여준다. 그 당시 길거리 출신 래퍼들이 그러했듯 프리스타일 실력도 최상위권이었으며 발성 또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이렇게 플로우, 프리스타일, 발성 등등 실력적인 측면에서 모두 역대 최고로 평가받는 만큼 사후 2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비기의 랩 스킬을 넘어섰다고 평가받는 래퍼는 없으며, 역대 최고의 래퍼로 가장 많이 거론된다.

 

 

https://youtu.be/j-VUV9VcRAQ

2Pac - Trapped

 

 

투팍(2Pac)은 미국의 래퍼로 힙합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있는 아티스트다. 힙합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의 투팍만큼 영향력과 파급력과 인기를 대체할 아티스트들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커리어 내내 예술성과 상업적 성공 두 마리의 토끼를 전부 잡은 아티스트였으며 25살도 채 안된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2장의 다이아몬드 앨범을 달성할 정도의 앨범 판매량과 같은 기록은 2000년대의 에미넴을 제외하면 여전히 그와 견줄 래퍼가 없다. 한 마디로 1990년대의 본토 힙합씬을 대표하는 래퍼 한 명을 뽑으라면 노토리어스 B.I.G.와 함께 가장 첫 손가락에 뽑히는 인물이다.

1991년 앨범 [2Pacalypse Now]로 데뷔를 했을 때 투팍은 아직 19살 밖에 되지 않은 상당히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문제'를 폭넓고 깊게 다루는 천재 래퍼로서 순식간에 주목받기 시작했다. 앨범에서 싱글 "Trapped"와 "Brenda's Got A Baby."가 성공을 거두고, 또 디지털 언더그라운드의 멤버로서 부른 노래 "Same Song"이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하는 등 매우 성공적인 데뷔를 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역대 힙합 관련 영화들 중에서도 수작으로 손꼽히는 작품 <Juice>에 주인공으로 출연하여 배우로서도 큰 인기를 얻게되었다.

 

2Pac - Hit 'Em Up (Dirty)

 

 

 

Teddy Riley

 

 

뉴잭스윙(New Jack Swing)은 R&B와 힙합을 적절히 섞은 미국의 하이브리드 음악으로 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대표적인 가수로는 바비브라운, 테디라일리가 있다. 특히 테디 라일리는 뉴 잭 스윙을 논할 때 빠질 수가 없는 인물이며 마이클 잭슨이 함께 작업한 [Dangerous]앨범이 유명하다.

테디 라일리가 프로듀싱한 바비 브라운(Bobby Brown)의 앨범을 뉴 잭 스윙 스타일로 선보여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특유의 강렬한 비트는 바비 브라운의 [bobby] 앨범 이후 유순한 모양으로 바뀌어 컨템퍼러리 R&B의 접목이 가능하다는 걸 대중에게 어필했다. 태생부터 이것저것 섞여 잡종성을 띄는 뉴 잭 스윙은 R&B와 힙합의 접목이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뮤지션으로는 테디 라일리, 알 켈리, 키스 스웻 등이 있습니다.

 

 

Bobby Brown - Every Little Step

 

테디 라일리와 함께 힙합과 R&B를 융합한 뉴 잭 스윙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는 바비 브라운은 R&B/팝 보컬 그룹 뉴 에디션 의 창립 멤버로 명성을 얻었 으며 "Candy Girl", "Cool It Now", "Mr. Telephone Man"등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그는 1985년 솔로 활동을 위해 그룹을 떠났지만 빌보드 앨범챠트 1위에 올랐던 앨범 [Home Again] (1996)에 참여했다.

바비 브라운의 데뷔 앨범인 [King of Stage] (1986)에서는 챠트 1위를 차지한  R&B 싱글 "Girlfriend"이 인기를 끌었었다. 상업적, 비평적 성공을 가져다준 것은 그의 두 번째 앨범인 [Don't Be Cruel] (1988)로, 1위 히트곡인 "My Prerogative" 와 그래미상을 수상한 "Every Little Step"을 포함하여 빌보드 핫 100 톱 10 싱글 5곡이 올랐다. 1989년 브라운은 Ghostbusters II 사운드트랙에 두 곡을 제공했으며 다음 앨범인 [Bobby] (1992)는 RIAA 에서 3×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고 싱글 "Humpin' Around", "Get Away", "Good Enough"가 수록되었다. 
1992년 바비 브라운은 휘트니 휴스턴과 결혼하였으나 바비 브라운의 마약문제와 가정불화로 2007년 이혼했다.

 

 

 

Mary J. Blige - Family Affair

 

뉴 잭 스윙의 인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 했는데, 수없이 쏟아지던 뉴 잭 스윙 스타일의 음악에 대중이 슬슬 질려갈 때 즈음 또 다른 방식으로 힙합과 알앤비를 결합한 음악이 등장하여 주목받았으니 바로 힙합 소울(Hip Hop Soul)이었다.

 

뉴 잭 스윙보다 더욱 소울풀하고 로우(Raw)한 사운드, 샘플링과 루핑을 더욱 부각한 프로덕션이 특징인 힙합 소울은 가사적으로도 사랑과 이별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과 흑인 빈민가의 상황 등등, 여러 주제로 확장된 보컬이 얹힌 힙합 음악이나 다름없었다. 이 장르를 창조하고 발전시킨 건 오늘날 힙합계 최고의 거물이 된 퍼프 대디(Puff Daddy)다. 그는 당시 신인이던 메리 제이 블라이즈(Mary J. Blige)를 내세워서 힙합 소울을 선보였고 대성공을 이끌어내면서 프로듀서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메리 제이 블라이즈는 '힙합 소울의 여왕(Queen of Hip Hop Soul)'이 되어 이후, 이어질 오랜 전성기의 서막을 알렸다. 특히, 힙합 소울은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던 네오 소울(Neo Soul)이 탄생하는 데에도 영향을 끼친 장르로 유명하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