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로는 여성뮤지션들의 위상이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높아졌다는것을 꼽을 수 있을듯 한다. 셰릴 크로우, 알라니스 모리셋과 같은 여성락커들이 평단과 대중들에게 모두 큰 호평을 받게되었으며 흔히 디바라고 불리는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온, 재닛 잭슨 등이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셰릴 크로우(Sheryl Crow)는 1993년 데뷔작 [Tuesday Night Music Club]은 처음에 별 반응이 없다가 "All I Wanna Do"의 깜짝 히트로 그래미에서 올해의 레코드와 신인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스타로 뛰어올랐다. 이후, 그다지 음악적 성과를 거두진 못했지만, 상업적으로는 무척 성공한 뮤지션. 부드러운 포크와 컨트리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는 70년대 여성 싱어송라이터 계보를 충실하게 이었다고 평가받았다. 007 네버 다이의 동명 테마곡 "Tomorrow Never Dies"를 맡기도 했다.
앨라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은 마돈나의 Maverick Records와 계약을 맺고 1995년, 월드와이드 데뷔 앨범인 [Jagged Little Pill]을 발매한다. 이 앨범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여자가수의 데뷔앨범으로 기네스북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처음부터 인기를 얻은것은 아니었다. "You Oughta Know"를 첫 타이틀곡으로 하여 활동했으나 별 반응이 없어 묻혀가던 와중에 어느 라디오 DJ가 이 곡이 좋다며 자꾸 틀어댄 덕분에 인지도가 높아지게 된 것. 이후 이 앨범의 다른 곡들도 큰 인기를 얻었는데, 그중 특히 "Ironic"은 지금까지도 그녀의 대표곡으로서 인기가 높다.
[Jagged Little Pill] 앨범은 1995~96년 13개국에서 위클리 차트 1위를 기록했고, 2008년 기준으로 총 33,000,000장 가량 판매되었다. 또한 그래미 어워드에선 올해의 앨범, 최우수 락 앨범등 4개 부문 수상. 데뷔당시 이십대 초반이었지만 그래미에서 올해의 앨범 및 3개부문을 쓸어갔다. 또한 당시 MTV 어워드에서도 수상을 했는데, 이건 가장 보수적인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드와 가장 새롭고 참신한 시상식이던 MTV 어워드를 모두 아우르는, 폭넓은 인기를 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8년에는 월드와이드 두번째 앨범 [Supposed Former Infatuation Junkie]를 발매해, 전미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첫등장 1위를 기록한다. 이 앨범은 잡지 롤링 스톤즈를 시작으로 각 미디어계로부터 매우 높은 평가를 얻지만, 판매량에서는 전작에 이르지 않았고 260만장 판매에 머물렀다. 그러나 1999년 그래미 어어드에서 최우수 락 앨범, 최우수 여성 락 보컬 퍼포먼스 부문에서 수상. 일 년 후의 2000년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첫번째 싱글 "Thank U"가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에 노미네이트 된다.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은 미국 대중음악계에서 다이애나 로스, 아레사 프랭클린의 뒤를 이은 팝 시대 최초의 디바로 인정받은 흑인 여성 보컬리스트이다.
국내에서는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옹과 함께 1990년대 세계 3대 팝 디바로 꼽힌다.
1985년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인 1집 [Whitney Houston]을 발매한다. 이 앨범은 2년에 걸쳐 제작이 진행된 앨범으로 초반에는 부진했지만 싱글 "You Give Good Love" 3위, "Saving All My Love for You" 1위, "Greatest Love of All" 1위, "How Will I Know" 1위의 히트와 입소문으로 뒤늦게 빌보드 차트에서 14주동안이나 1위를 차지하고 미국 내 총판 1000만장 및 월드와이드 2500만장이 넘게 팔리면서 여자 가수 데뷔 음반 최고판매기록을 갱신했다.
1987년에 발매된 2집 [Whitney]로 소포모어 징크스를 떨치며 대성공을 거두면서 마이클 잭슨의 뒤를 이어 마돈나, 프린스와 함께 대표 가수로 자리매김한다. 2집 [Whitney] 앨범은 전작의 히트메이커였던 나라다 마이클 월던과 마이클 매서를 주축으로 전작의 히트 공식을 충실히 따라갔으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여성 최초로 빌보드 앨범차트 1위로 데뷔했고 총 11주간 정상에 머물렀으며 빌보드 1위곡 네 곡과 월드와이드 합산 2100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 앨범은 특히 유럽 쪽에서 전작보다 히트하여 휘트니를 확고부동한 월드스타로 만들어준다.
1990년 발매된 3집 [I'm Your Baby Tonight]에서는 기존 프로듀서진의 참여를 최소화시키고 베이비 페이스와 엘에이 레이드를 메인 프로듀서로 참여했으며 자신도 프로듀싱에 참여하여 본격적인 흑인 음악을 시도하게 된다. 그러나 결과는 전작들의 눈부신 성공에 비해 다소 초라한 성공으로 돌아왔다. 알앤비 소울에서 뉴잭스윙까지 당시 흑인 음악 트렌드를 충실히 반영했고 흑인 음악의 대부 스티비 원더와 R&B계의 신사 루서 밴드로스까지 참여한 이 앨범은 흑인 사회에 휘트니의 위상을 재정립한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상업적으로는 2곡의 1위 곡을 배출함에 그쳤고, 앨범 차트에서도 최고 3위에 판매량은 1,200만장의 판매량 에 그쳤다.
1992년, 휘트니는 바비 브라운과의 결혼과 보디가드라는 영화 출연을 통해 전환점을 맞이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영화 <보디가드>는 비평적으로 처참했지만 흥행은 대성공했고 삽입된 OST는 45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공전의 히트 및 전세계적으로 신드롬적인 인기를 누렸다. 빌보드 앨범차트에서 총 20주간 정상의 자리를 지켰으며 1곡의 1위 곡 “I Will Always Love You” 과 2곡의 Top 5곡을 배출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1994년 그래미 시상식에선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과 올해의 레코드, 그리고 최우수 여자가수상을 받으며 비평적으로 최고의 호평을 받는다.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에는 "Run to You"와 "I Have Nothing"이 노미네이트 되었다.
영화에서 휘트니 휴스턴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가수' 역으로 등장한 데서 알 수 있듯 OST 자체가 휘트니 휴스턴의 앨범과 다름없이 만들어졌으며 특히 OST 앨범의 싱글인 "I Will Always Love You" 가 엄청난 인기를 끌어서 여가수 싱글 중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라는 기록을 세운다. 이 곡은 원래 1974년 컨트리 가수인 돌리 파튼이 작곡하고 불렀던 곡이었는데 프로듀서 데이비드 포스터가 매끈한 알앤비 곡으로 변모시킨다.
해당 OST 앨범에서만 네 곡의 빌보드 5위권 싱글이 나왔으며 20위권 내에 네 곡이 동시에 머무르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특히 데이비드 포스터가 작곡에 참여한 "I Have Nothing"과 "Run to You", 샤카 칸의 원곡을 리메이크 한 "I'm Every Woman"은 이후 휘트니 휴스턴의 대표곡이 되기도 했다.
그 이후 정규앨범 없이 [사랑을 기다리며 (Waiting To Exhale, 1995)]와 [목사의 아내 (한국 개봉명: 프리쳐스 와이프, The Preacher's Wife, 1996)], [신데렐라 (Cinderella, 1997)] 같은 영화 출연을 병행하며 OST 정도만 발매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다 1998년 4집 [My love is your love]로 8년 만에 정규 앨범을 발매하며 컴백한다. 이 앨범은 비평적으로 본인의 앨범 중 최고의 찬사를 받는다. 성숙해진 목소리와 완연한 리듬감으로 R&B 가수로도 인정받으며 그래미 최우수 R&B 보컬까지 수상하게 된다. 또한 유럽 차트에서 굉장한 성공을 거두고 미국 내에서도 싱글로 발매한 3곡이 모두 싱글차트 Top 5에 오르며 식지 않은 인기를 증명한다. 와이클리프 장이 만든 이 앨범의 타이틀 싱글 "My Love Is Your Love"는 레게풍 팝으로 휘트니 휴스턴의 '마지막 히트곡'이다. 실제로 최후의 빌보드 싱글 10위 곡이다. 특히 레게로 된 원곡도 그렇지만 조나단 피터스가 한 댄스 버전 클럽 리믹스도 당시에 함께 풀려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수많은 루머에 시달리며 대중들과 점점 멀어졌다. 뉴 에디션 출신인 바비 브라운과 1992년에 결혼한 후로 휘트니의 이미지는 완전히 달라진다. 2007년 남편 바비 브라운과 이혼하고,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파산에 이르는 등 어려움을 겪어왔다. 재기를 위해 심기일전해서 2009년 정규 음반 6집 [I Look to You] 를 발표했으며 오프라 윈프리 쇼 Season Premier, 굿모닝 아메리카 Summer Concert Series 참여와 같은 대중과의 재회는 여전히 수많은 팬들이 휘트니 휴스턴을 기억하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이런 지지에 기반하여 빌보드 앨범차트 1위로 데뷔했다.
2012년 2월 11일(현지 시각)에 숨을 거두었다. 이 때가 향년 48세. 그래미 시상식 바로 전에 세상을 떠난 데다 시대를 풍미했던 디바의 씁쓸한 최후에 동료들은 물론 팬들도 큰 충격에 빠졌다. 흑인 최초의 '아메리칸 스윗하트'였던 그녀의 죽음에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는 슬픔으로 가득찼고, 그 해 구글 검색어 1위는 그녀의 이름이었다. 마이클 잭슨의 사망 때와 비슷하게, 인종 혐오가 느껴질 정도로 휘트니 휴스턴을 잔인하게 비난하던 타블로이드는 일제히 추모의 물결에 휩싸였다.

머라이어 캐리는 대중음악의 황금기인 1990년대를 휩쓴 싱어송라이터이며 침체기를 이겨내고 2000년대에 화려한 부활로 팝계를 재평정한 여가수이자 세계 최정상급의 가창력을 보유하고 있는 가수이다.
1990년, 셀프 타이틀 앨범 [Mariah Carey]로 데뷔한다. 앨범 수록곡 모두에 본인이 작사, 작곡에 참가했으며 평단의 환영을 받았다. 데뷔 싱글 〈Vision of Love〉는 본격적으로 차트를 치고 올라가서 1위를 해냈으며 이 앨범에서만 빌보드 Hot 100 1위 곡을 4개나 뽑아내면서 1위 곡을 가장 많이 배출한 데뷔 앨범 타이틀을 얻는다. 1위 곡들은 "Vision of Love", "Love Takes Time", "Someday", "I Don't Wanna Cry". 이에 그래미도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Best New Artist 상을 수여하게 된다. 데뷔 앨범은 그래미 수상 이후 빌보드 앨범차트 11주 연속 1위를 했고, 1991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다.
1991년 "Emotions"이 수록된 2집 앨범 [Emotions]을 발표하지만, 1집의 성공에 뒤따른 논란들이 따르게 된다. 초반엔 1집의 여파로 첫 싱글 "Emotions"가 1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뒀지만 2번째 싱글인 "Can't Let Go"가 표절 시비에 휘말리면서 차트 2위에서 멈춰 버린다. 3번째 싱글인 〈Make It Happen〉이 5위까지 가며 그럭저럭 체면치레를 하긴 했으나, 앨범의 부진을 면할 수는 없었다. 립싱크 의혹과 그녀의 라이브 실력에 대한 의문이 앨범의 부진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데뷔 당시 싱어송라이터 라기엔 모델이나 영화배우를 연상케 하는 외모도 이 논란에 한 몫을 했다.
그러자 머라이어 캐리는 다음 해 MTV를 통해 라이브 공연을 열어 이 공연을 앨범으로 발매한 라이브 앨범인 [MTV Unplugged]는 빌보드 앨범차트에서 3위를 찍었고 이날 공연에서 리메이크한 잭슨 파이브(Jackson 5)의 곡인 "I'll Be There"는 빌보드 Hot100 1위를 찍는 기염을 토하면서 머라이어의 6번째 1위 곡이 된다.
그 후 1993년 하반기, 머라이어 캐리 최고 흥행작이자 3,2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앨범 [Music Box] 를 내놓는다. 첫 싱글 “Dreamlover”는 6주만에 차트 정상을 탈환하고 8주 1위를 거머쥐었고, 두번째 싱글인 ‘Hero”도 덩달아 1위를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머라이어의 세계적 인기를 한층 더 높인 “Without You”가 초대박을 쳤다. 비록 빌보드에선 더블 싱글 발매로 인해 3위에서 6주씩이나 머물렀지만, 유럽과 아시아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 후 가스펠 곡인 “Anytime You Need A Friend” 등 싱글들이 연달아 히트를 치면서 미국 내에서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아낸다.
이렇게 [Music Box]가 대박을 치고 1994년 가을, 루서 밴드로스 와 함께 부른 “Endless Love”가 빌보드 2위까지 치고 올라가면서 성공을 이어간다. 그리고 1994년 겨울, 크리스마스 앨범계의 전설로 평가받는 [Merry Christmas]를 공개한다. 수록곡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는 국내외 많은 가수들이 따라불러 매년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캐럴 음원 차트를 점령해버려 빌보드 지에서도 역대 크리스마스 송 No.1으로 선정했다. 이 전설적인 캐럴 앨범은 총 1500만장이 팔려나가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캐럴 앨범이 되었다. 이 앨범은 발매된지 25년만에 다시 역주행에 성공하여 처음으로 빌보드 싱글챠트 1위를 찍었다. 이전 최고 순위는 3위였다. 아울러 크리스마스 관련 곡이 핫100 1위에 오른 것은 60년 만에 처음이다.
4집 앨범 [Daydream] 발매 1달 전 발매한 첫 싱글 “Fantasy”는 빌보드 역사상 두번째이자 여가수 사상 최초로 핫샷 데뷔곡이 되었다. 이 곡은 핫샷 데뷔 후 8주 동안이나 정상을 지켰다. 그렇게 첫싱글의 대성공을 바탕으로 1995년 10월, [Daydream]이 발매되었다. 이 앨범도 역시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으며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머라이어 캐리와 보이즈 투 멘이 함께 부른 “One Sweet Day”가 빌보드 정상을 16주 동안이나 차지하며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빌보드 차트 최장기 1위 곡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다음 앨범인 5집 [Butterfly]에서 첫 싱글 “Honey” 는 핫샷 데뷔를 해 머라이어 캐리는 독보적인 핫샷 1위 데뷔곡 최다보유 가수가 되었다. 두번째 싱글 “My All” 은 아쉽지만 2위로 데뷔하는 기염을 토했고 다음 주에 바로 1위를 차지하지만 1주만 1위를 한 곡이 되고 만다.
베이비 페이스의 제작 아래, 휘트니 휴스턴과 함께 《이집트 왕자》의 삽입곡인 “When You Believe”를 내놓아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999년, 음악의 다양성을 앞세운[Rainbow] 앨범을 내놓으나 첫싱글인”Heartbreaker”에서 보인 소녀 취향과, 과도한 노출로 인해 언론에서는 연일 그녀를 향한 비판을 쏟아냈다. “Heartbreaker”와 “Thank God I Found You” 두 곡의 1위곡을 만들어내며 15곡의 1위 곡을 보유한 가수가 되었다. 동시에 1990년대에 한 해도 빠짐 없이 싱글을 1위에 올려놓은 가수로 기록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해 빌보드에서 선정한 1990년대를 빛낸 아티스트 1위에 랭크되었다.

셀린 디온(Céline Dion)은 캐나다 퀘벡 출신으로 최고의 디바 중 한 명이다.
1990년 영어로 된 데뷔앨범 [Unison]을 발표했으며 첫 싱글 "(If There Was) Any Other Way"는 빌보드 싱글차트 35위에 올랐지만 셀린의 이름을 제대로 알린 것은 다른 발라드 곡 "Where Does My Heart Beat Now" 였다. 빌보드 싱글차트 4위까지 오른 곡으로 빌보드 연말차트 37위에 랭크되었다. 이곡은 폭발적으로 터져나가는 발성의 락발라드로 그녀는 가창력을 인정받으며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와 함께 3대 디바로 꼽는다.
이후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장편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의 주제가 "Beauty and the Beast"를 피보 브라이슨과 듀엣으로 부르고 걸프 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을 격려하는 곡인 "Voices That Care"에서도 여성 솔로파트를 맡는 등 인기가 날로 더욱 높아져 갔다. 여세를 몰아 발표한 2집에서도 "If You Asked Me To", "Nothing Broken But My Heart", "Love Can Move Mountains" 등의 히트곡이 터져나왔다. 이곡들은 셀린과 많은 작업을 한 여성 히트메이커 다이안 워렌의 곡들로 모두 빌보드 40위권에 안착했다. 또한 프린스가 작곡해준 "with this tear"는 그녀의 가창력이 폭발력 뿐 아니라 섬세함이 더해짐을 증명해준다. 이 앨범은 1집보다 훨씬 감성적인 멜로디를 선사했으며 "Beauty and the Beast"가 아카데미에서 주제가상을 받은 것이 셀린 디온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데에 큰 공을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셀린을 세계적인 슈퍼 스타이자 디바로 만들어 준 앨범은 3집 [The Colour Of My Love]였다. 1집에 참여했던 보디가드를 통해 한창 주가를 올리던 히트맨 데이비드 포스터를 주축으로 한 앨범으로 첫 싱글 "The Power Of Love"는 그녀의 첫 빌보드 싱글차트 1위 곡이 되었고, 그 밖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주제가 "When I Fall In Love"을 통해 다시 영화 듀엣곡으로 사랑을 받았으며 "misled" 같은 곡으로 댄스에도 도전했다.
4집 [Falling Into You]는 미국에서만 1천만 장 이상이 팔렸으며 전세계적으로는 3,2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Because You Loved Me", "It's All Coming Back To Me Now", "All By Myself" 등이 히트했다. "Because You Loved Me"는 영화 '업클로스 앤 퍼스널 (Up Close And Personal)'에 삽입되어 메가 히트를 쳤고 빌보드에서 6주간 1위를 했으며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에서 거의 1년 동안 랭크되어 있음은 물론, 그래미 어워드에서 'Album Of The Year'를 수상했다. 당연히 투어도 대박을 쳤으며 첫 내한 공연도 이때 이루어졌다.
다음 해 발표한 5집 [Let's Talk About Love]도 무려 천만장 이상이 팔렸으며 전세계적으로 3,100만 장이 넘게 팔렸다. 특히,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인 "My Heart Will Go On"은 셀린 히트곡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이 무렵 그녀의 앨범이 1초당 1장씩 팔려나간다는 통계자료까지 나왔으니 말 다한 것이다. 게다가 타이타닉의 OST 역시 3천만장이 넘게 팔렸는데, 이 앨범은 "My Heart Will Go On" 이외의 트랙이 전부 클래식 음악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사실상 한 곡의 힘이 컸다.
그 해에는 "My Heart Will Go On"이 수록된 5집과 타이타닉 OST 양 쪽 모두 3천만장이 넘게 판매된 것이다. 그야말로 메가 히트를 시켜버렸으니 그야말로 리즈 시절을 제대로 달렸다고 할수 있다.
처음에 셀린 디온은 영화주제가인 "My heart will go on"을 부르고 싶어하지 않았다고한다. 이미 전작 "Because you loved me"에서 영화 OST로 큰히트를 친 상황에서 또 다른 영화 OST를 만들고 싶어하지 않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My heart will go on"을 듣고 대박을 예상했던 남편 르네 앙젤릴과 작곡가 제임스 호너가 강력하게 밀어붙여서 "반드시 노래를 불러야 된다!"라고 셀린 디온을 설득시켰지만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면서 "정 그러면 데모 녹음이나 한 번 해보자."싶어서 정말로 단 한 번에 녹음을 한 노래가 바로 "My heart will go on'이었다. 보컬이 들어간 곡을 원하지 않았던 감독 제임스 카메론은 노래를 듣고 반해버려서 바로 승낙을 했다고 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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