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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듀서 밴드 015B (空一烏飛)

 

 

1989년에 결성되어 2026년 현재까지도 활동하고 있는 한국 최초의 프로듀서 그룹이다.

1988년 MBC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 그룹 무한궤도의 멤버였던 조형곤, 조현찬, 정석원이 무한궤도의 해체 이후 정석원의 친형인 장호일과 함께 1989년에 결성한 그룹이다. 015B의 결성은 무한궤도가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보컬이었던 신해철은 밴드 활동 종료 이후 솔로 앨범을 준비하게 되었는데 이는 당시 기획사였던 대영AV와의 계약 때문이었다. 밴드로 데뷔하는 대신 밴드가 해체하면 남은 계약 기간을 솔로로 활동한다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 때문에 신해철은 밴드를 하고 싶었음에도 솔로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계약 기간을 다 채우고 나서야 N.EX.T를 만들 수 있었다. 무한궤도에 있던 다른 멤버들은 학업을 이유로 탈퇴하고, 무한궤도 활동 멤버 중 음악에 뜻이 있었던 정석원, 조형곤, 조현찬이 정석원의 형 장호일(본명은 정기원이다)과 함께 1989년에 결성하고 그룹명을 015B로 명명했다. 무한궤도의 활동이 종료되었을 당시 소속사인 대영기획에서 남은 멤버들끼리 앨범 1장 내보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남은 멤버들은 우리는 연주자들만 있으니 보컬은 객원 멤버로 쓰겠다고 하여 한국 최초의 객원가수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처음으로 객원 가수 시스템을 도입해 가수의 목소리를 하나의 악기로 간주하고 각 곡의 특성마다 어울린 다른 가수들을 기용하는 시스템으로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많은 그룹들이 객원가수를 기용하는 것이 활발해졌지만, 이는 015B의 객원가수 시스템이 성공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던 것이다. 015B의 객원보컬을 통해 이름을 알리게 된 가수로는 윤종신, 김태우, 김돈규, 조성민, 이장우, 정연욱, 버벌진트, 조유진 등이 있다. 그리고 신해철, 이승환, EOS, 박정현 등의 기존 가수들도 015B의 앨범에 객원가수로 참여하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으로서는 파격적인 하우스 뮤직, 복고, 리메이크 등을 처음 음반에 도입하였고 소녀 취향의 가사와 감성적인 멜로디를 앞세운 발라드, 한 편의 동화책을 읽는 듯한 서정적인 현악 연주곡 혹은 사회 비판적인 가사를 필두로 하며 발라드에서 메탈사운드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선보인 그룹이었다. 

 

 

텅 빈 거리에서

 

015B의 정규 1집 앨범 <015B>는 1990년 대영기획 / 지구레코드에서 발매되었으며 정석원, 장호일, 윤종신 등이 참여했다. 히트곡 '텅 빈 거리에서' 같은 경우 장호일이 카투사 시절 젊은 미군이 공중전화 박스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앨범을 기획할 때쯤 정석원에게 긴 설득 끝에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노래는 공일오비의 데뷔곡이자 윤종신의 출세곡이며, 가장 순수했던 시절대 만들었던 곡이라고 정석원이 얘기했다. 

당시 음악 팬들은 그들의 그룹명  015B를 무한궤도의 또 다른 표현법(무=0, 한=1, 궤도=5B(Orbit))으로 해석했다. 정석원은 음악 서적 <90년대를 빛낸 명반 50>에 실은 인터뷰에서 이 해석에 대해 “그 이름 자체가 무한궤도를 장난삼아 바꾼 것은 맞다. 그래서 그룹 활동 초기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무한궤도를 음악적으로 잇는 그룹이 아니었기에 그런 해석을 하지 않고 다른 해석을 붙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2집 커버에는 그룹명을 ‘空一嗚飛(공중에 한 마리 까마귀가 날아간다)’로 표기했다. 

정석원은 인터뷰에서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The Alan Parsons Project)처럼 프로듀서가 중심이 되는 팀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밴드는 작곡, 연주에 중점을 두고, 노래를 직접 부르기보다 객원 가수를 활용하는 전략을 택했다. 

정석원은 1990년대에 한 매체에 직접 써서 연재한 회고 글에서도 “자신들이 만든 음악에 따라 어울리는 목소리와 개성을 가진 가수를 초빙하면 더 자유로운 음악적 실험이 가능할 것”이라며 멤버들과 리드 보컬이 없는 밴드 운영에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정석원은 먼저 고교 시절과 대학 동창인 최기식, 역시 대학 친구였던 박진성을 섭외했다. 그 후 박진성의 여자 친구 부탁으로 오디션을 본 연세대 국문과 재학생 윤종신이 박진성 대신 앨범에 참여하게 되었다. 박진성은 앨범 속지에 담긴 멤버들의 사진을 담당했다. 

무한궤도 때의 계약으로 이들은 신해철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매니저 유재학(대영기획)의 지원 속에 1989년 12월부터 2개월간 지구레코드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난 그대만

 

1집 앨범은 총 10곡을 수록했고, 무한궤도 시절 동료였던 신해철도 '난 그대만을'을 작곡하고 이 곡과 '슬픈 이별'에서 보컬을 담당했다. 이 앨범은 발매 초기에는 전혀 대중의 반응이 없었다. 
결성 당시 이들은 프로 밴드라기보다 멤버 각자 다른 직업을 가지고 동호인 밴드 성격으로 운영하자는 지향을 가졌다. 그래서 TV 출연은 계획하지도 않았지만, 막상 음반이 아무 반응이 없자 멤버들은 당시 상황에 꽤 실망했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 비슷한 시기 발매한 신해철의 솔로 2집이 크게 히트하면서 소속사 내에서도 비교당할 수밖에 없었다. 

1990년 11월부터 타이틀곡 '텅빈 거리에서'가 음악 팬들의 리퀘스트로 FM 방송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앨범도 함께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원래 '텅빈 거리에서'는 정석원이 앨범 녹음 작업 때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 수록한 곡이었다. 
정확하게는 장호일이 흥얼거리던 멜로디를 정석원이 듣고 이를 기반으로 나머지 부분을 완성한 노래이다. 장호일이 카투사 복무 시절 알게 된, 아내를 잃고 슬퍼하며 술을 마시던 어느 미군의 이야기를 정석원에게 들려준 것이 모티프가 되어 가사를 완성했다. 특히 곡의 엔딩 부분에 등장하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는 정석원이 신시사이저로 만들어 추가했다. 녹음 당시 유재학 사장은 노래가 길어지면 방송에 부적합하다며 이 부분을 잘라내자고 했지만, 정석원이 고집을 부려 그대로 앨범에 수록했다. 

1집은 신해철의 참여빈도가 비교적 높았던 앨범이지만, 이후 2집의 '이젠 안녕'을 끝으로 015B 앨범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았다. 3집 콘서트에서 신해철의 밴드 넥스트가 게스트로 한 번 등장하기도 했으나 그 이후 여러 가지 사정으로(음악적 견해차 및 성격상의 지대한 차이) '정석원'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2014년 정석원이 신해철의 빈소에 조문을 한 것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인연이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친구와 연인

 

1991년 발매된 2번째 앨범<Second Episode>는  대영기획/현대음향에서 발매했다. 1집의 히트로 자신감을 얻은 정석원과 멤버들은 1집보다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했다. '4210301'과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친구와 연인'의 히트로 대중적 지지 기반을 탄탄하게 구축했다.

1집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전혀 없다가 이 음반이 뒤늦게 히트하자 대영기획에서는 밴드 멤버들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처음엔 멤버들이 부탁해도 들어주지 않던 후속 앨범 녹음 스케줄을 기획사가 먼저 잡고 음악 작업을 시작할 것을 요구했다. 
달라진 밴드의 위상을 바탕으로 015B는 1990년 12월 말부터 1991년 2월 말까지 1차 레코딩에서 10곡을 녹음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1990년 5월부터 6월 사이 2차로 몇 곡을 더 녹음했다. 리더 정석원은 “1집은 녹음 전에 노래가 모두 완성되어 있었지만, 2집은 멜로디가 이미 완성된 몇 곡도 있었지만 나머지 곡들은 작곡과 녹음을 병행하는 상황에서 만들어야 했다”고 회고했다. 

앨범에 참여한 객원 가수의 면면을 보면, 총 5곡에 참여해 전작의 히트에 기여한 윤종신의 보컬 참여가 늘어났다. 그리고 이후 015B 3집부터 6집까지 대표적인 객원 보컬로 자리매김한 이장우가 '떠나간 후에'의 보컬로 처음 참여했다. 
합창곡 '이젠 안녕'에는 멤버들과 윤종신 외에도 최기식, 성지훈, 신해철, 황재혁이 참여했다. 또한 이 앨범에는 무한궤도 드러머였던 조현찬도 음반 속지에 나온 멤버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 일시적으로 밴드의 공식 멤버였음을 보여준다.  

 

 

4210301

 

정석원의 회고에 의하면 앨범 타이틀곡 선정에 대한 정석원과 유재학 사장의 견해 차이가 컸다고 한다. 유 사장은 '이젠 안녕'을 밀었지만 정석원이 반대했다. 결국 타이틀곡은 정석원이 직접 리드 보컬을 맡은 '4210301'로 결정되었다.
최기식의 여동생 최리라가 작사하고 정석원이 작곡한 이 노래는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다. 곡 제목에 나온 숫자는 당시 정부 환경처의 대표 전화번호였다. 노래를 들은 팬들이 이 번호로 전화를 하는 상황이 속출했다. 이에 환경처에서 해당 번호를 없애고 대영기획에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게다가 가사 중 영어 전화 내레이션과 장호일이 담당한 랩 부분에서 ‘노래 속 외국어 과다 사용’을 이유로 일부 방송국에서 이 곡을 금지하는 웃지 못 할 상황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해프닝은 역설적으로 대중이 이 곡에 더 관심을 갖게 한 이유가 됐다. 

정석원의 회고에 따르면 '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녹음 전에 “요즘 랩이 유행할 조짐인데 너희들도 랩을 해봐라”고 한 유재학 사장의 주문에서 비롯됐다. 정석원은 해외 힙합에서 볼 수 있는 빠른 속도의 랩이 아닌, 느린 랩을 담은 곡을 만들 결심을 했다. 

당시 해외에서는 밀리 바닐리(Milli Vanilli)의 'Girl, I'm Gonna Miss You'나 MC 해머(MC Hammer)의 'Have You Seen Her?' 등 발라드에 가까운 리듬에 랩을 얹은 히트곡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나 친구들이 여자들에게 차인 경험담을 바탕으로, 사랑에 이기적인 여성에게 보내는 충고 같은 메시지를 가사로 완성했다. 랩은 장호일이 담당했고, 녹음 후 맨 마지막에 이정식의 색소폰 솔로를 추가했다. 
정석원은 이 곡을 타이틀곡으로 밀고 싶었지만 유재학 사장의 반대로 결국 B면 첫 곡으로 수록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결국 이 곡은 후속곡으로 방송에서 자주 리퀘스트되며 여러 음악 차트(DJ 친목회 차트, 뮤직마케팅 리서치 파트 등)에서 10위권에 진입하는 히트를 기록했다. 

윤종신이 부른 신스 팝 트랙 '친구와 연인'도 연이어 히트했다. 한편, 015B 팬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던 'H에게'는 앨범 제작 당시 윤종신이 짝사랑한 여성에 대한 구애를 돕기 위해 함께 가사를 쓰고 만들어준 곡이었다고 한다. 
1집에 있던 노래인 '이층의 작은 방'에서 전주를 따온 '이젠 안녕'은, 원래 이 앨범이 015B의 마지막 앨범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수록한 노래이다. 그리고 클라이맥스인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부분 덕분에 이별, 작별, 졸업식 축가곡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원래 14곡을 녹음했으나, 앨범 전체 분위기와 맞지 않는 건지 객원멤버인 '황재혁'의 노래 두 곡을 빼고, 발매를 하였다. 

 

 

아주 오래된 연인들

 

1992년 8월 발매한 3집 <The Third Wave>은 타이틀곡 '아주 오래된 연인들'은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최고 히트작이 되었다. 이 앨범은 하우스 뮤직, 팝 발라드, 아카펠라 등 다양한 장르적 시도를 담은 작품이다.

TV 활동 없이 음반 발매와 라디오 출연, 콘서트만으로 1, 2집이 성공하자 정석원의 고민은 깊어졌다. 그는 에세이집 <공일오비>에서 “앞선 앨범들보다 더 좋은 음악을 만들지 않고서는 팬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는 부담감이 내 마음을 짓눌렀다”고 회고했다. 
게다가 장호일은 아직 회사 일을 병행 중이었고, 정석원은 학생인 데다 조형곤은 군복무 중이었다. 1992년 1월 첫 콘서트가 끝난 후 바로 새 앨범 녹음에 들어가야 했지만 써둔 신곡도 없었다. 그래서 정석원은 해외 팝 음악 트렌드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새로운 형식의 비트나 리듬, 녹음과 연주 테크닉 등을 분석·연구했다.

특히 그는 1990년대 초 서구 팝 시장에서 유행했던 ‘하우스(House)’ 계열 댄스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단순한 드럼 비트에 기반을 둔 이 장르를 구현하기 위해 구형 드럼머신을 구입하기까지 했다. 타이틀곡 '아주 오래된 연인들', 그리고 장호일의 랩과 이장우의 보컬로 구성한 '다음 세상을 기약하며'가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한 곡이다. 

수록곡 '아주 오래된 연인들'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건 물론이고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까지 하면서, 그야말로 젊은 층으로부터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단순히 인기만 얻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앞서가는 실험적인 곡들을 발표하는 아주 감각적이고 스마트한 그룹이라는 이미지를 쌓았다. 또한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의 평가대로 정석원과 장호일이 서울대학교 출신이라는 점, 또 함께 참여하는 객원 가수들 또한 고학력자가 많다는 점에서 풍기는 엘리트적인 이미지와 객원 보컬이라는 당시로선 새로운 운영 방식이 크게 작용했다. '아주 오래된 연인들'은 전주 길이만 1분 30초 정도 되는 파격적인 구성의 하우스 테크노 뮤직인데, 이러한 사운드에 젊은 세대의 연애풍토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현실적인 가사로 큰 인기를 끌었다. 같은 앨범 수록곡인 '수필과 자동차'도 동반 히트를 기록했다. 

이들의 인기의 정점을 상징하듯 롯데제과의 아몬드 빼빼로 CF 모델로도 출연해서 당시에 1억 원이 넘는 개런티를 받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1분짜리 뮤직비디오 스타일의 CF도 제작하는 등 꽤나 공을 들였다. 거기다 장호일과 아역 배우 시절 김희선이 찍었던 여드름 치료제 아젤리아의 개런티가 8,000만 원이었다고 한다. 

 

 

수필과 자동차

 

총 10곡을 담은 이 앨범에는 하우스 뮤직 외에도 이전 앨범에서 다루지 않은 새로운 장르에 많이 도전했다. '아주 오래된 연인들' 못지않은 대중적 인기를 얻었던 '수필과 자동차'에서는 당시 해외에서 유행하던 레게 리듬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앨범의 대표 히트곡인 하우스 비트 댄스 록 트랙 '아주 오래된 연인들'은 객원 보컬 김태우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 곡은 사귄 지 오래된 연인이 연애하며 느끼는 권태감을 젊은 세대가 공감할 가사로 풀어냈다. 이 곡은 방송 출연이 거의 없이 각종 음악 매체 차트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 곡의 히트에 힘입어 이 앨범은 1992년 가을 음반 차트에서 오랫동안 1위를 이어가며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이 와중에도 이들의 TV 출연 횟수는 단 2번이었다. 대신 홍보용 뮤직비디오를 제작해 방송국에 배포했다. 뮤직비디오는 인천에 있는 ‘아트 스태프’의 세트장에서 촬영했는데, 전문 기획사 대신 장호일이 마음에 맞는 젊은 스태프들을 직접 섭외해 영상을 만들었다.  

유일한 연주곡 'Santa Fe'는 색소폰 연주를 전면에 내세운 곡이다. 정석원의 에세이집 <공일오비>에 따르면 “이 곡의 색소폰 연주자로 케니 지(Kenny G)를 섭외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스케줄과 비용 문제로 무산되었다. 
에이전시 측은 데이빗 샌본(David Sanborn)을 제안했지만, 재즈가 아니라 팝에 가까운 연주곡이라 포기하고 2집에 참여했던 색소폰 주자 이정식에게 연주를 맡겨 녹음을 마무리했다. 

이 앨범에는 기존 객원 보컬인 윤종신, 이장우 외에 김태우, 이 앨범 참여 이후 강현민과 함께 그룹 일기예보를 결성한 박영렬(나들), 박재완 등이 새로운 객원 보컬로 참여했다. 
멤버들과 객원 보컬들이 총출동하여 완성한 '敵 녹색인생'은 반주 없이 오직 멤버들의 보컬과 사람의 몸을 사용해 만든 소리로만 구성한 아카펠라 트랙이다. 여성 싱어송라이터 박선주는 '이렇게 우리 스쳐 보내면'에서 윤종신과 듀엣으로 노래했다. 

 

 

신(新) 인류의 사랑

 

1993년 대영기획에서 발매한 4집 <The Fourth Movement>에서는 타이틀곡 '신(新) 인류의 사랑'이 각종 음악 차트에서 크게 히트하면서 전작의 대중적 인기를 이어갔다. 샘플러 사용과 복고적인 녹음 방식을 병행했고, 오케스트레이션이 참여한 대곡 등 음악적 실험이 이어졌다. 

1992년 발표한 3집이 공일오비에게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안겨주면서 이들은 1992년 8월과 10월, 2번의 콘서트를 모두 성공적으로 치른 직후인 11월부터 후속 앨범 제작을 위해 이 돈을 아낌없이 쏟아 붓기 시작했다. 

에세이집 <공일오비>(1994)에 따르면, 그들이 4집을 위해 준비한 장비는 샘플러였다. 3집까지 모노 샘플러를 사용한 이들은 이때부터 아카이(Akai) 브랜드의 새 스테레오 샘플러를 구입해 활용했다. 샘플러는 세션을 위한 공간 확보와 자금 절약에 큰 도움이 됐다. 그래서 이들은 한 동안 이 장비로 음악을 만드는 데 빠져들었다. 

그렇게 앨범 수록곡의 절반을 완성한 후, 사운드에 대한 실험은 더욱 깊어졌다. 이들은 흘러간 댄스 음악의 녹음 방식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장호일은 에세이집에서 “여덟 달 동안의 노력 끝에 선보인 것은 댄스 뮤직의 복고였다. 이 기간 동안 우리들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모든 댄스곡들을 섭렵했다. 그리고 녹음 역시 1960년대의 방식을 더듬어 시도했다.  우리들은 에코사운드도 구식대로 표현했다”라고 밝했다. 

 

 

어디선가 나의 노랠 듣고 있을 너에게

 

1993년 8월 발매한 공일오비 4집은 대영기획과 서라벌레코드에서 LP와 카세트테이프를, SK에서 CD 버전을 냈다. 수록곡 총 10곡 중 A면 첫 트랙은 6분이 넘는 연주곡 '푸른 바다의 전설'이다. 서울대 · 연세대 음대 재학생 30여 명을 섭외해 현악단을 결성, 녹음한 곡이었다. 

앨범의 최대 히트곡 '新인류의 사랑'은 1960년대 해외 팝 음악의 여러 스타일에서 영향을 받아 완성했다. 특히 1960년대식 두왑 보컬 팝과 하와이언, 로커빌리 · 로큰롤 리듬을 활용한 ‘댄스용 음악의 복고주의’는 당시 20대는 물론 30~40대에게도 큰 환영을 받았다.
'신인류의 사랑'은 그 해 최고의 인기곡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가요톱텐에서 골든컵을 수상했고 연말 가요대상 시상식까지 휩쓸 정도였다. 하지만 공일오비 멤버들은 TV에 출연하지 않는 기본 원칙을 고수했다. 대신 객원 보컬인 김돈규가 방송에 출연해 MR에 맞춰 노래했다. 이러한 홍보 전략 덕분에 널리 알려진 '신(新) 인류의 사랑'은 KBS TV <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1위에 오르며 큰 인기를 누렸다. 

이 앨범부터 공일오비의 객원 보컬 라인업에 합류한 김돈규는 공일오비 5집에서 나미의 '슬픈 인연'을 커버하며 더욱 인기를 얻어 이후 솔로로 독립했다. 객원 가수를 방송에 출연시켜 대중과의 거리를 좁힌 이 앨범도 밀리언셀러에 근접하는 판매고를 올리며 전작 못지 않은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이 앨범은 당시 국내 최대 도매상이었던 신나라레코드의 연말 음반 판매 순위에서 신승훈, 서태지와 아이들에 이어 3위에 올랐다. 또한 그 해 연말 공일오비는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에 선정되었다. 

공일오비는 2집 부터 꾸준히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곡을 발표했다. 이들은 이 앨범에서도 '第四府(제4부)', LP와 카세트테이프 버전엔 없고 CD에만 실은 '교통코리아'를 통해 더 강한 어조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표출했다. 
먼저 '第四府(제4부)'는 멤버들의 표현에 따르면 “고급 저널리즘의 포장 아래 무책임과 상업적 비판주의에 찌든 옐로 저널리즘에 보내는 015B의 메시지”를 가사에 담았다. 에세이집 <공일오비>에서는 이 앨범에 대해 “1993년 초 언론 보도를 통해 겪었던, 그들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경험들에서 곡의 모티프를 얻었다”고 밝혔다. 
한편 '교통코리아>는 가사 문제로 재심의 과정을 거쳤다. 당시 정석원의 인터뷰에 따르면 “원래 제목은 '교통천국코리아'인데, 비판적인 가사 내용과 ‘교통천국’이라는 후렴 가사 부분이 내용상 맞지 않아 심의가 반려됐다”고 한다. 결국 이들은 ‘교통전쟁코리아’라고 가사를 바꿔서 심의를 통과했다. 

'신(新) 인류의 사랑'은 2004년 아이돌 그룹 신화가 자신들의 앨범에 커버했고, 2007년에는 일렉트로닉 팝 밴드 더블유W도 리메이크했다. 속지엔 가사지와 함께 연주곡 '푸른 바다의 전설'의 배경 스토리를 담은 부클릿(글: 김은선)이 함께 들어 있다. 이 곡은 2013년 인기리에 방영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배경 음악으로 다시 삽입되어 주목받았다. 2015년에는 공일오비 1~4집을 CD로 재발매하며 시대를 뛰어넘어 사랑받았다. 

 

 

슬픈 인연

 

1994년 발매한 5집 앨범 <Big 5>는 부록으로 정석원이 남긴 앨범 제작 후기 노트가 수록되어 있는데, 앨범에 수록된 곡을 만드는 데에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굉장히 상세하게 적어놓았다. 
원래는 수록곡 전체를 옛날의 명곡들을 리메이크한 곡들로 구성할 계획이었다고 하나, 리메이크 곡은 '슬픈 인연'과 '단발머리' 두 곡을 수록하는 선에서 끝냈다. 정석원에 따르면 이 앨범의 콘셉트는 '투박함의 미학'이었다고 하며, 그에 따라 악기들의 음색과 색깔도 최대한 투박하게 표현했다고 한다. 또한 앨범 전체적으로 복고적인 분위기를 담으려고 했다고 하며, 이 앨범이 리메이크 앨범으로 기획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 였다고. 이후 한국 가요계에 리메이크 열풍이 불어오는데 일조하였다. 

3집과 4집의 흥행의 기세를 타서 이 앨범 또한 밀리언셀러를 달성하며 흥행을 거두는데 성공하나, 이후 실험적인 성향이 강해진 6집이 밀리언셀러 달성에 실패하면서 015B의 밀리언셀러 달성 기록은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끊기게 된다.
준비기간 부터 녹음완성까지의 1년반이라는 기간이 걸린 <Big5>앨범의 음악적 concept은 투박함의 미학이라고한다 . 그래서 이번 앨범전체의 방향도 Remake와 복고로 설정했고, 앨범전체에 걸쳐 그러한 색깔들을 나타내고자 했으며 가사에 있어서도 015B가 2집때부터 해왔던 015B 류의 가사는 어느정도 배제하려고 노력했고, 가능한한 평이한 문장들을 쓸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21세기 모노리스

 

1996년 발매한 6집 앨범 <The Sixth Sense>은 세기말을 주제로 잡은 콘셉트 앨범으로 소속사를 대영AV에서 LG미디어로 옮긴 후 발매 된 음반이다.
발매를 앞두고 015B 본인들의 입을 통해 이번이 마지막 음반이 될 것이라 밝힌 바 있었다. 부제인 Farewell to the World (세계에 작별)는 세기말 디스토피아적인 관점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음악 활동을 마무리 지으려는 015B가 팬들에게 건네는 작별 인사로 볼 수도 있다.  

6집 수록곡 중 '21세기 모노리스', '독재자', '콩깍지' 등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6집에선 대중음악치곤 꽤나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들을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21세기로 향하는 세기말이라는 특수성 때문이었는지 준수한 흥행을 했다. 015B는 이후 7집이 나온 2006년까지 활동을 중단했다. 참고로 타이틀곡 뮤직비디오에 억대의 제작비를 들였는데 그 노래가 바로 '21세기 모노리스'다.  

 

 

물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6년 이를 번복하고 정규 7집인 <Lucky 7>을 내놓긴 했지만, 적어도 그 이전까지 015B는 해체된 상태였으며 장호일은 <서세원쇼>, <일요일은 즐거워> 등으로 방송 활동을 시작했고, 정석원은 캐나다로 유학갔다.  
공일오비 음반 중 가장 실험적인 음악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더스트리얼 록을 시도한 앨범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결국 판매 저조(총 24만 장 판매)로 이어지지만 매니아층은 물론 평론가들에게는 극찬을 받은 앨범이다.

그 뒤 활동을 거의 안 하다가 2001년에 장호일과 정석원은 이가희라는 신인 가수를 발굴하여 <powered by 015B>라는 타이틀로 이가희 1집을 발매했다. 단순 참여나 프로듀싱 수준이 아니라 이가희라는 신인 객원보컬을 오디션으로 발굴하고 앨범 전체를 기획했기 때문에 팬들은 이 앨범을 6.5집으로 보기도 한다. 이 시기의 타 음반들과 비교하자면 편집증에 가까울 만큼 편곡에 공들인 앨범이었고 음악적 호평이 뒤따랐음에도, 10대 청소년들의 정서를 적나라할 정도로 솔직히 드러낸 가사와 비속어의 사용으로 많은 곡들이 방송금지곡으로 지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방송 출연조차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묻혀버렸다. 

2006년 <Final Fantasy>라는 이름으로 1만 장 한정발매된 후배들의 헌정 앨범 격 스페셜 리메이크 앨범 속에 신곡 2곡을 실으면서 활동을 재개했다. 이 앨범은 원래 다른 회사에서 015B 헌정앨범으로 준비하고 있다가, 당시 장호일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던 비마인 엔터테인먼트에서 이 앨범을 제작을 맡게 되면서 정석원을 설득하여 015B의 곡들을 몇곡만 수록하려 했으나, 이 앨범 작업을 계기로 015B의 정규 앨범 작업과 컴백이 진행되게 되었다. 이 앨범을 발매 하며 015B는 2006년 5월 20일 올림픽공원 체조 경기장에서 컴백 콘서트인 'Final Fantasy'콘서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같은 해 8월에 정규 7집 앨범 <Lucky 7>을 발매하며 가요계 귀환했다.  

 

 

그녀에게 전화오게 하는 방법

 

2006년 발매한  7집 앨범<Lucky 7>는 6집 발매 이후 해체되었던 015B가 10년만에 재결성하여 나온 음반이다.
힙합을 전면에 내세운 타이틀곡 '그녀에게 전화오게 하는 방법'이 반응이 좋았으며 함께 수록된 '잠시 길을 잃다'는 타이틀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랑을 받았고, 너무 많은 가수 지망생들이 이 노래를 불러 오디션 금지곡이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그 이후로는 비정기적으로 싱글, 미니 앨범 등을 가끔씩 발표하면서 음악 활동을 지속해왔다. 

2007년에는 첫 싱글 'Cluster Vol.1' 을 발표했는데, 이 앨범에는 김형중, 황치열 등이 참여했다. 기존 7집에서 주목받았던 '너 말이야', '잠시 길을 잃다'가 다른 버전으로 수록되었으며, 소량으로 제작된 홍보용 앨범에는 황치열 버전의 '받은 만큼만 해 주기'가 보너스 트랙으로 들어있다. 

 

 

1월부터 6월까지

 

2011년 미니앨범 <20세기 소년> 발표했다. 포미닛, 윤종신 등이 참여, 발매 직후에는 이전 활동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수록곡인 '1월부터 6월까지'가 널리 알려져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스테디 셀러가 되었다. 사실상 2000년 이후 015B의 노래 중에서 지금까지는 가장 히트한 노래로 남았다. 이 곡이 수록된 <20세기 소년> 미니앨범은 멤버와 주요 참여스탭들을 캐리커쳐로 표현함과 동시에, 독특한 쟈켓디자인으로 '20세기'와 '21세기'의 조합을 보여주고자 했다. 

2012년에는 싱글 '짝', 'Let me go', '80' 등을 연이어 발표하기도 했으나 큰 이목을 끌지 못 했다. 'Let me go'는 오랜만에 객원보컬 류다희를 발굴해 방송활동에 유명 DJ와 합심한 리믹스 앨범까지 야심차게 준비했으나 기대 이하의 반응을 얻었다. 

이후 잠시 긱스, Crucial Star, Rimi 등이 소속되어 있던 흑인음악 레이블 그랜드라인 엔터테인먼트로 옮겨 활동하기도 했으나, 얼마 안 가 정석원은 윤종신의 미스틱89에 프로듀서로 들어가 활동하게 되고, 장호일은 EZEN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SM엔터테인먼트가 후원하는 인디레이블 발전소에 속하게 되면서 잠시 활동 방향이 달라졌었다. 

2015년 7월 미스틱 엔터테인먼트에서 장호일의 영입을 알리면서 장호일의 연기 활동도 지원해주고 015B의 앨범도 계획 단계에 들어갔다는 사실도 함께 밝혔으나, 두 형제는 소리소문없이 미스틱 엔터테인먼트를 나왔다. 

 

 


2017년 015B Anthology 프로젝트로 활동을 재개했다. 셀프 리메이크곡 4곡과 함께 초대 객원가수인 윤종신과의 신곡 '엄마가 많이 아파요'를 발표했다. Anthology 프로젝트는 이 앨범 하나로 끝을 내고, 이후 새로운 레이블에서 새 형태로 음원을 발표한다. 

2018년부터는 다시 본격적인 음악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자체 레이블인 더공일오비(the015B)를 만들고 신곡 시리즈 'New Edition'과 셀프 리메이크 시리즈 'The Legacy'를 론칭하였다. 매달 싱글을 발표하며, 015B는 1년 동안 발표한 싱글들을 모아 매년 <Yearbook>이라는 앨범을 발표하고 있다. 

대표 프로듀서 정석원이 거의 모든 곡을 작사, 작곡, 편곡하고, 프로듀서 겸 기타리스트 장호일은 기타와 가끔 베이스를 연주하기도 한다. 크레딧의 비중으로 봤을 때 공일오비는 정석원 원맨팀 아니냐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곡 작업의 많은 부분에서 장호일의 프로듀서 역할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있고, 015B로 활동하는 모든 외부활동, 방송, 인터뷰, 공연 등은 장호일이 전담하고 있다. 정석원은 음악작업 위주, 장호일은 외부활동 위주로 각자의 역할이 분명히 나뉘어 있다. 

데뷔한 지 30년이 넘은 그룹이지만, 중간 중간 공백기가 있어서 실제 활동기간은 그리 많지 않은데, 1990년부터 1996년까지를 1기, 2006년부터 2007년까지가 2기, 2011년에서 2012년까지가 2.5기, 2017년에서 현재까지를 3기 정도로 볼 수 있겠다. 015B가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최전성기는 90년대 1기 시절이었으나, 다른 활동 시기에도 꾸준히 히트곡을 내고 있다. 


1990년 1집 공·일·오·비
1991년 2집 Second Episode
1992년 3집 The Third Wave (제3의 물결)
1993년 4집 The Fourth Movement (제4악장)
1994년 5집 Big 5
1996년 6집 The Sixth Sense(제 6의 감각)
2006년 7집 Lucky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