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요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1983년 11월 30일에 결성된 대한민국의 혼성 그룹이자 민중가요 노래패로 줄여서 '노찾사'라고 한다. 1980년대에는 군부독재로 인해 민주화 투쟁이 많이 벌어졌는데, 그시기인 1983년 가을 즈음에 서울 시내 여러 대학의 노래패들이 자연스럽게 모여서 만들어진 노래패가 노찾사이다. 그래서 초창기 멤버는 무려 23명이였다. 

1984년 4월 애오개소극장에서 "노래모임 새벽"(서울대 노래패 메아리, 이화여대 노래패 한소리 등으로 구성)이 노래이야기 <가지꽃> 공연을 진행하였다. 이후 첫 공식 앨범을 내기 위해 임시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1984년 12월에 첫 번째 음반을 발표하고, 1987년 10월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 첫 번째 정기 공연을 진행하면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 활동을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이들의 활동은 민중가요를 널리 알렸다. 권진원, 김광석, 안치환 등 개인 뮤지션을 다수 배출했다. 

아침 이슬로 유명한 김민기가 1984년 프로젝트 음반을 기획, 제작했으나 정권의 탄압으로 여러 우여곡절을 겪게되었다. 그가 제작에 참여한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 음반은 공윤의 사전심의를 뚫고 정식발매를 목표로 하면서 여러 가지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고, 애초에 기획자 김민기와 노찾사 멤버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음반이 되어버린 채 1987년 재발매하였다. 이는 당시의 엄혹한 시대상황 때문이었으며 그때문에 판매량도 많지 않았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 분위기가 도래하면서 노찾사는 자신들의 음악을 온전하게 발표할 수 있게 된다. 이미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면서 노찾사는 수많은 집회, 시위 현장과 대학내에서 수많은 현장공연을 하면서 자신들의 자작곡과 당대의 인기 민중가요들을 부르고 있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은 1980년대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첫 정규 앨범으로 1970년대 말 한국 포크 음악과 초기 대학 노래패의 정서를 잘 보여주고있다. 이 앨범은 1984년 서라벌레코드에서 제작했으나 당시의 시대적 상황 때문에 음반사가 창고에 묻어두면서 사실상 사장되어 유통되진 못했고, 1987년 서울음반이 재출시했다. 

이 앨범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1984년 발표되었지만, 사실 당시에는 그런 이름의 노래패가 없었다. 앨범 참여자들이 실제 활동하던 모임은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결성된 진보적 음악운동 집단인 "노래모임 새벽"이었다. 모임 구성원은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 이화여대 노래패 한소리 등에서 활동하던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 학번 재학생과 졸업생 등이었다. 이들은 사적 감정의 표현이나 상업적 성공에는 무심했으며, 삶과 현실을 반영한 정직한 노래로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려 했다. 

노래모임 새벽은 대학가, 공단, 교회 등에서 불리던 가곡, 가요, 복음성가, 외국 곡 중 사회적 메타포가 담긴 곡을 주로 불렀다. 직접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도 했다. 이들은 직접 만든 창작곡과 기존 곡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고 복사하면서 공식 심의를 피해 대학가와 노동계, 종교계 등을 통해 배포했다. 또한 자신들의 창작곡과 주장을 담은 창작공연을 통해 현실 문제를 비판하고 저항하려 했다. 

노래모임 새벽은 1984년 당시 노래극 <개똥이>를 만들던 김민기와 만난다. 노래극 <개똥이> 작업을 위해 많은 가수가 필요했던 김민기는 이들과 함께 <개똥이> 작업을 진행했다. 노래모임 새벽 구성원 중 다수는 대학 노래패로 활동할 때 김민기의 노래들을 부르며 그에게 큰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 실제로 1970년대 후반 메아리, 한소리 등에서 자체 제작한 노래 책자와 카세트테이프 등에는 김민기의 노래가 다수 포함됐다. 1980년에 메아리가 자체적으로 두 번째 노래 테이프를 만들 때 김민기가 연출을 맡아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박정희 정부로부터 수차례 검열을 당했던 김민기는 결국 <개똥이> 작업을 마치지 못하게 된다. 이미 음반사로부터 계약금을 받은 김민기는 <개똥이> 대신 이 음반에 참여했던 노래모임 새벽의 음악으로 새로운 음반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이다. 
음반 제작을 위해 노래모임 새벽에서 주로 부르던 노래들로 심의를 신청했으나 일부 곡은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수록곡 9곡은 주로 대학가의 애창곡이었는데, 심의를 통과한 곡이어서인지 비판적인 메시지가 도드라지지는 않는다. 
특히 '바람 씽씽',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기도', '그루터기' 는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가 1979년과 1980년 자체 제작한 카세트테이프에도 이미 발표된 곡이었다. 이 앨범은 1970년대 말 한국 포크 음악과 초기 대학 노래패의 정서를 담은 음반이기에 가치가 있다. 

 

 

갈 수 없는 고향

 


노찾사 1집에서는 의외로 이후 노찾사의 대표곡이라 불리게 되는 클래식한 민중가요 명곡들을 발견하기 어렵다. 
‘갈 수 없는 고향’에서는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의 도시 노동자의 아픔을 슬쩍 보여주고, ‘바람 씽씽’ ‘그루터기’ 등에서 아스라이 보이는 희망의 기운과 역동적 의지를 얼핏 읽어낼 수 있기는 하지만 모든 메시지는 상징과 은유 속에 꽁꽁 감춰져 있다. 1집 앨범은 정식발매를 목표로 하면서 건전가요를 넣는 등 여러 가지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노래들의 비판적인 메시지가 도드라지지 않는다.  

앨범 녹음은 서울 광화문의 스튜디오에서 진행했다. 김민기와 친분 있던 베이시스트 조원익, 드러머 안기승, 키보디스트 김광민 등이 연주에 참여했고, 노래모임 새벽 대표 문승현이 어쿠스틱 기타를 맡았다. 편곡과 연출은 김민기의 뜻을 따랐는데 문승현의 취향과는 달랐다. 

한편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에서도 재활용된 1집 표지 이미지가 화제를 모았다. 이는 김민기와 절친한 연극연출가 이상우의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 중에 일부 학생의 모습을 지워서 만든 것이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라는 이름도 이상우가 제안한 것이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서울음반에서 재출시해 본격적으로 유통됐다. 1989년 발표된 2집의 대중적 성공으로 1집도 주목받았다. 

 

 

솔아 푸르른 솔

 


1989년 발표된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은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사계', '그날이 오면' 등 1980년대를 대표하는 민중가요를 담은 음반이다. 거의 모든 수록곡이 대중적으로 히트했다. 심지어 '사계'는 TV와 라디오를 막론하고 단 한번의 방송출연도 없이 KBS 가요톱텐 3위까지 올랐다. 출시 후 초판이 빠르게 매진됐고 1년 사이 50만장을 돌파했으며 이후 90년대 초중반까지 약 80만장 이상이 팔려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민중가요를 대중에게 널리 알렸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모태인 노래모임 새벽은 1987년 6월 항쟁과 6·29 선언으로 금지곡이 해금되고 검열이 완화되자, 기존 모임을 유지하면서 공개 활동을 하기로 하고 멤버 중 일부를 뽑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결성했다. 1984년 발표한 음반에 쓴 이름 그대로였다. 

이들의 첫 번째 공식 활동은 1987년 10월 13일과 14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개최한 제1회 정기 공연이었다. 이 공연은 관객들이 몰려들어 성황리에 끝났다. 이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한국 사회 전반에 분출했던 민주화 열기 덕에 전국 각지에서 밀려드는 초청 공연을 소화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결성 당시 음반 발매 계획은 없었던 이들은 대중의 뜨거운 반응과 지속적인 활동으로 쌓은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음반을 계획한다. 1988년부터 새 음반 준비에 들어가 뮤지션 나동민을 음악감독으로 선정하고, 1989년 10월 2집 앨범을 녹음한다. 나동민은 따로또같이 등에서 활동하며 폭넓은 음악 경험을 보유한 뮤지션이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의 프로듀서가 된 그는 1991년 3월 발매된 노래를 찾는 사람들 3집에서도 음악감독을 맡았다. 

 

 

사계

 


2집 앨범에 수록된 곡은 노래모임 새벽과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활동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진 곡이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창작곡 중심의 창작 집단이 되기보다는, 노래모임 새벽 등의 활동으로 만든 곡을 대중에게 알리는 가교 역할을 자청했다. 

이들은 음반과 공연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곡을 중심으로 선곡했다. 대부분 음악적 완성도가 높고 대중적 호소력이 큰 노래였다. 2집 앨범 심의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백두에서 한라, 한라에서 백두로'를 비롯한 일부 곡이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이후 3, 4집에는 실렸다. 이들 곡을 제외한 다른 노래는 심의를 통과했으며 MBC 방송 심의도 무사히 통과했다. 
음악감독 나동민은 2집 수록곡에 대중적인 색채를 가미해 다시 편곡했다. 당시 노래모임 새벽 대표 문승현은 이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지만 받아들였다. 음반 세션 연주에는 안치환과 친분이 있었던 배영길, 조성오, 이형복이 참여했고, 1집에서 세션을 맡았던 박기영도 다시 참여했다. 서울스튜디오에서 녹음했으며, 곡당 가창자는 내부 회의를 거쳐 결정했다. 

2집 음반이 출시된 후 대중적인 반향은 뜨거웠다. 초판이 빠르게 매진됐고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사계' 는 당시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 동시에 랭크되기도 했다. 특히 '사계'는 MBC <퀴즈 아카데미> 프로그램 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 앨범의 수록곡은 지금까지도 대표적인 민중가요로 널리 불리고 있다. 당시의 민주화 열기와 음악적 완성도가 어우러져 이룬 성과였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2’는 진보적 노래운동의 성과가 상업적 대중가요 음반 시장 안에 의도적으로 진입해 성공한, 우리나라 대중가요사상 최초의 기념비적 음반이다. 이 음반이 나오기 5년 전 발매된 노찾사 1집에서 그 시작이 이뤄졌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이는 몇 가지 점에서 미흡하다. 우선 진보적 노래운동과 민중가요의 대중가요 시장 진입이 그리 의도적,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광야에서

 


이 음반의 수록곡은 9곡으로 모두 노래모임 ‘새벽’ 멤버들(문승현, 문대현, 안치환, 류형수)이 지은 작품으로 당시 상당한 인기를 모으고 있던 유명 민중가요였다. 음반은 노래 발표의 시작이 아니라 화려한 유통의 기록이었다. 수록곡들은 당시의 검열 기준에 비춰보면 과감한 표현들로 뒤덮여 있다. ‘민주의 넋’, ‘창살 아래 네가 묶인 곳’, ‘우리 노동자의 긍지와 눈물을 모아’ 등의 구절은 다른 대중가요였다면 엄두도 낼 수 없는 표현들이다. 이미 사람들의 입에 수없이 오르내렸던 이 작품들을 지켜보는 대중들의 눈이 무서워, 엄혹한 검열당국도 손을 대지 못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편곡을 비롯해 음악 전체를 관할한, 따로또같이 출신의 나동민은 키보드를 중심으로 한 매끈하고 윤기 있는 질감을 만들어내 노래모임 새벽의 비합법음반에서와는 다른 노찾사만의 대중적인 색깔을 만들었다. 노찾사 가수들은 개인의 색깔 대신 노찾사라는 집단의 색깔만을 보여줬다. 그래도 ‘광야에서’와 ‘잠들지 않은 남도’를 부른 안치환과 ‘저 평등의 땅에’ ‘사계’ 솔로 부분의 권진원의 목소리를 확인하는 것은, 90년대 언더그라운드 스타들의 전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들을 거리이기도 하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 이후 안치환은 솔로 활동을 시작했고 권진원은 3집 이후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2004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 창설 20주년을 기념해 2, 3집을 묶어 2장의 CD로 재발매했으며, 이 음반은 2007년 박스 CD 형태로 한 번 더 발매됐다. 

 

 

그리운 이름

 


1991년 4월  3집 <노래를 찾는 사람들 3>이 발매되었다. 1989년 2집에 이어 2년 만에 낸 음반이다. 민중가요 진영에서 불린 기존 곡의 재수록이 대부분인데 '그리운 이름', '사랑노래', '일어서는 사월'은 창작곡이다. 그러나 2집만큼 대중적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1987년 이후 실질적인 활동을 시작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당시 한국 사회의 민주화 열기를 기반으로 공연과 음반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민중가요의 대명사 같은 상징적 존재가 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독자적으로 활동했지만, 직접 창작곡을 만들고 발표하지는 않았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이미 발표된 기존 곡을 다시 부르며 아마추어리즘에 기반한 활동을 했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이 큰 호응을 얻으면서부터 팀 활동과 전문성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당시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함께 활동했던 문화평론가 김창남은 “아마추어리즘에서 벗어나 프로페셔널한 음악 집단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과 “노찾사만의 음악적 정체성을 분명하게 세워야 한다는 것이 고민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1991년 발매한 3집 앨범은 노찾사의 활동과 음악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이 앨범을 발매한 1991년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민주화 운동에 대한 관심이 줄고 민중가요도 합법적인 영역에 정착하는 시기였다. 민중가요 음악가나 노래 동아리는 늘었지만 과거의 민중가요와 같은 전투적인 모습만을 고집할 수는 없는 시기였다. 그래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새 음반에 과거의 노래와 함께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 담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총 10곡의 수록곡 중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귀례 이야기', '녹두꽃', '선언', '의연한 산하',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중가요권에서 1980년대에 널리 불렸다.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과 '의연한 산하'와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대 민중가요의 대표곡 중 하나였다. 

'녹두꽃'은 작곡가 조념이 1970년대에 발표한 곡이다. 이들 수록곡에는 기존에 발표한 곡을 재수록해 대중에게 널리 알리려는 노찾사의 활동 방식이 잘 드러나 있다. '귀례 이야기'와 '선언'은 노찾사의 모태인 노래모임 새벽의 곡이다. 특히 '선언'은 당시 러시아 혁명 가곡 스타일에 경도되었던 새벽의 음악 경향을 대표하는 곡이다. 
반면 '그리운 이름', '사랑노래', '일어서는 사월'은 모두 노찾사 멤버들이 만든 신곡으로 1980년대 민중가요의 정서와 어법으로 변화와 독자성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안혜경이 만든 기존 곡에서 가사를 바꾼 '만화경' 역시 같은 고민의 산물이다. 

노찾사 3집에 대한 당대 대중의 반응은 2집만큼 뜨겁지 않았다. 노찾사 공연에 대한 반응은 여전했지만, 합법적인 공간에서 활동하는 민중가요 음악가의 수가 급증했고 사회적 분위기도 민주화나 민중가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개인적인 욕망과 관심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었다. 
또한 노찾사 3집의 음악 스타일이 당시 1990년대와 잘 조응했는지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민중가요의 정신과 어법을 지키고 변화하려는 고민을 담은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80년대에서 출발한 민중가요 음악팀이 1990년대와 만났을 때의 모습을 보여주는 음반이기도 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1994년 4집 <노래를 찾는 사람들 4>를 전작 발매후 3년 만에 발매했다. 이들의 마지막 정규 음반으로 총 11곡을 수록했다. 기존 곡만으로는 1990년대 중반의 변화한 시대에 대응하지 못하고, 새로운 감성을 가진 세대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한다는 판단으로 4집에는 신곡을 다수 수록했다. 4집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설립한 큰빛기획에서 기획했고, 서울음반에서 발매했다. 

음반에는 함춘호, 김효국, 배수연 등 전문 연주자들이 참여했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 멤버들인 손방일, 이정석, 정영아 등이 적극적으로 앨범에 참여했다. 이 음반은 '대결', '시다의 꿈' 등을 만든 민중가요 창작자 김보성이 새로 대표를 맡아 제작한 것이기도 하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4집에는 총 11곡을 수록했다. 이 중에는 기존 음반 수록곡과 기존 민중가요들이 많았다. '동지를 위하여', '진달래', '사계', '노래', '백두에서 한라, 한라에서 백두로'는 이미 민중가요계 안팎에서 잘 알려진 노래였다.
여기에 더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동물의 왕국', '끝나지 않은 노래', '우리 큰 걸음으로' 등의 신곡을 함께 수록했다. 4집 발표 전까지 이들은 민중가요계에서 알려진 좋은 곡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방편으로 음반을 발표해왔다. 실제로 2집 수록곡은 모두 이미 알려진 곡이었으며, 3집 수록곡들도 대부분 기존 민중가요였다. 

하지만 4집에는 신곡을 다수 수록했다. 이제 기존 곡만으로는 1990년대 중반의 변화한 시대에 대응하지 못하고, 새로운 감성을 지닌 세대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할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앨범에 수록한 신곡은 멤버들이 직접 썼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공지영의 동명 소설을 모티브로 작가가 직접 쓴 노랫말에 멤버 정영아가 곡을 붙였다. '동물의 왕국'은 정영아의 가사에 신지아와 전지용이 곡을 붙였고, '끝나지 않은 노래'는 김보성의 곡이다. '우리 큰 걸음으로'는 신지아의 곡이며, '떠나와서'는 정영아의 곡이다. 이처럼 멤버들의 새 노래를 수록한 4집은 ‘보다 깊이 있는 노랫말과 다양하고 세련된 Voice Color와 편곡’을 사용했다. 

또한 이전 앨범까지는 대규모 합창 위주의 보컬로 곡을 구성했지만, 이번 음반에서는 노찾사 가수들 각각의 목소리를 솔로와 앙상블로 다양하게 들을 수 있도록 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이혜원이, '우리 큰 걸음으로'는 유연이가, '떠나는 그대를 위하여'는 김명식이, '진달래'는 김은희가, '노래'는 문진오가 보컬을 주도했다. 

 

 

끝나지 않은 노래

 

장르적으로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팝 발라드이고, '동물의 왕국'은 록을 가미했으며, '끝나지 않은 노래'는 노찾사 출신 솔로 가수들(김광석, 안치환, 권진원 등)이 함께 부른 포크 발라드 형식으로 만들었다. '사계'는 경쾌한 아카펠라 형식을 취하는 등 다채로운 음악적 변화를 추구했다. '백두에서 한라, 한라에서 백두로' 등의 노래는 ‘노찾사 특유의 감동적인 합창과 섬세한 서정’을 부각했다. 

음악적인 변화를 꾀했지만 이 음반은 전작들에 비해 히트곡을 내지도, 대중적 반응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지도 못했다. 일단 민주화 운동이 활발했던 1980년대와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라져 민중가요의 효용성이 예전 같지 않았다. 
하지만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대도시 위주로 진행했던 공연을 중소 도시로까지 확장해, 전국을 순회하며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애썼다. 전국 각지의 시민 사회 단체들과 연계해 지역 순회를 시작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공연은 1년에 300회에 육박할 정도로 늘었으며, 매 공연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공연에서 극, 슬라이드, 시노래 등의 다양한 방법을 병행하며 공연의 매력을 극대화했다. 이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더 이상의 정규 앨범을 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앨범은 그들의 마지막 정규 앨범이라는 의미가 있다. 


1995년에는 10주년 기념 앨범 <떠남과 만남을 위한 하모니-10년을 보내고>를 발매했다. 10년의 흐름을 담은 구성으로 9곡을 수록하였다. 

1990년대 내내 앨범 발매와 함께 투쟁현장을 찾아다니면서 꾸준히 활동했지만, 사회운동의 퇴조와 함께 노찾사의 대중적인 영향력도 시나브로 사그라들었다. 2000년 이후에는 새 노래보다는 간간히 모여서 공연을 하고 있다. 

2007년 6월항쟁 20주년을 맞아 대학로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에서 개최한 노찾사 공연에서 새로 발표한 노래들을 모아 발표한 5곡짜리 미니 음반 <노찾사의 새 노래 2007>을 발표했다. 

 

 

그날이 오면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광범위한 민주화운동의 열기와 맞물려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창작된 민중가요들을 널리 알리고 민주화 운동을 활성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사계', '그날이 오면' 등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노래들은 한국의 대표적인 민중가요로 자리매김해 현재까지도 자주 불리고 있다.  

이렇듯 시대를 뛰어넘는 노래들과 함께 일터와 거리, 대학을 오가며 수많은 공연과 음반으로 대중과 만났던 팀이었다. 2집(1989)과 3집(1991)은 당대 대중가수의 인기를 훨씬 뛰어넘는 사랑을 받으며 노래운동의 대중화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특히 2집의 놀라운 성공과 더불어 노찾사의 출발점이었던 1집도 다시금 조명받았다. 노찾사는 1997년까지 총 6장의 단독 음반을 제작∙출시했으며, 2004년에 활동을 재개했다. 재개 후에도 시대를 가로지르는 사회의 정의와 건강한 삶을 노래하며 많은 공연에 참여했다. 

 



노찾사는 대중음악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간 故 김광석, 안치환, 권진원의 요람이었다. 그들 외에도 노찾사 출신으로 적지 않은 이들이 창작∙연주∙음반 기획∙공연 기획 등 각종 음악 분야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아름답고 충만한 삶을 위한 노래,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행동으로서의 노래를 찾고 전파하는 노찾사의 작업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노찾사의 전성시대는 1990년대 중반에 끝이 났지만, 여전히 몇 명의 남녀가 모여앉아 어쿠스틱 기타와 키보드 정도의 간단한 편성으로 이 시대의 삶을 소박하게 노래하는 포크의 방식은 여행스케치 등 여러 팀에 의해 질긴 생명력을 증명했다. 그것은 노찾사의 선택도, 자본의 선택도 아닌, 이 시대 대중들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1984)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1989)
노래를 찾는 사람들  3집(1991)
노래를 찾는 사람들  4집(1994)
노래를 찾는 사람들  떠남과 만남을 위한 하모니-10년을 보내고 [10주년 기념 음반](1994)
노찾사의 새노래 2007(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