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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긴머리 소녀'를 부른 포크듀오 둘다섯

 

 

둘다섯'은 휘문 중학교,휘문 고등학교,동국대학교 선후배인 이두진과 오세복으로 구성된 통기타 남성 듀오이다. '둘다섯'이라는 이름은 두 멤버의 성(姓)인 '이'와 '오'에서 따온 것이었다. 
둘다섯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포크음악을 많이 불렀는데 이는 음악이 인간의 심성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해 서정적이고 감성적인,목가적인 노래를 많이 만들었다. 둘다섯은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고 1974~1976년 줄곧 가요차트 1위를 차지했다. 

 

 

긴머리 소녀

 

 

 1970년대 포크 듀오 전성기의 한 부분을 담당한 둘다섯의 데뷔 앨범 <둘다섯 새노래 모음>은 한국 포크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곡이자 국민 애창곡이 된 '긴머리 소녀'와 '밤배'를 수록했다. 이 한 장의 빼어난 앨범만으로 둘다섯은 당대의 한국 포크계에서 확고한 지분을 얻었다. 

오세복은 1954년 서울 장충동에서 4남 5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피복공장과 빵 공장을 하는 사업가 집안에서 자란 그는 고등학교 때 처음 기타를 잡으며 음악에 심취했다. 휘문중·고등학교를 거쳐 동국대에 재학 중일 당시 1년 선배인 이두진과 함께 1973년 듀엣 ‘둘다섯’을 결성했다. 둘다섯이라는 이름은 이두진과 오세복의 성인‘이’와 ‘오’에서 따온 것이다. 이들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이미 대학가 명물로 명성을 날렸다. 대학 시절 한 신문 기사(일간스포츠 1974년 6월 9일자)에 의하면 ‘이들은 악기를 무려 대여섯 개씩 다루며 이미 자작곡인 ‘긴 머리 소녀’와 ‘밤배’ 등을 레퍼토리로 갖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대학가 인기의 여세를 몰아 1974년 8월, 데뷔 음반 ‘둘다섯 새 노래 모음(지구레코드)’을 발표하며 정식 데뷔한다. 

 

 

밤배

 

 

그러나 앨범을 발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세복이 군에 입대하자, 이두진은 오영진을 새 멤버로 영입했다. 이후 활동은 이두진과 오영진이 이어갔다. 오영진의 본명은 이지민이었지만, 둘다섯이란 이름이 유효하려면 멤버가 반드시‘오’씨여야만 했으므로 이지민은 오영진이란 가명으로 활동했다. 이지민은 이후 4월과5월의 4기 멤버가 되어 히트곡 '장미'를 부르기도 했다. 

1974년 여름에 발표한 둘다섯 1집은 초기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1975년이 되자 이들은 부산을 시작으로 지방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여세를 몰아 서울에서도 인기 열풍을 이어갔다. A면과 B면 타이틀곡 '긴머리 소녀', '밤배'는 당시 국민 애창곡이었다. 

이들의 노래는 아름다운 가사도 매력적이지만, 쉬운 코드 진행 덕에 기타만 있으면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어서 더 큰 인기를 얻었다. 히트곡 '긴머리 소녀'와 '밤배' 외에 다른 수록곡들도 모두 상당한 수준을 자랑한 이 앨범은 사춘기 소년의 시각에서 본 풋사랑, 첫사랑을 소재로 구성된 콘셉트 앨범으로 봐도 손색이 없다. '긴머리 소녀'로 시작한 소녀와의 인연은 '지금 어디에'와 '저별은 빛나고', '종이인형' 등을 지나 결국 아쉬움과 그리움이 가득한 '밤배'와 '강변편지'의 앨범 뒷면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금 어디에


하지만 이 앨범은 둘다섯의 음악 세계를 완성한 결과물이라고 보기엔 후반부의 밀도가 다소 떨어진다. B면 후반부 곡 중 '서울구경'은 코미디언 서영춘의 노래로 유명한 코믹송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심지어 마지막 3곡은 이들의 노래가 아니다. 이현의 노래를 2곡 실었고, 에벌리 브라더스(The Everly Brothers)의 히트곡 'Crying in the Rain'을 번안한 트윈폴리오의 '비가 와도'를 마지막 곡으로 담았다. 

'긴머리 소녀'는 소녀와의 우연한 만남과 이별, 그리움과 추억을 담은 가사 내용이 황순원의 단편 소설 「소나기」를 떠올리게 한다. 이 노래는 오세복 작사, 이두진 작곡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작사자는 코미디언 손철이었다. 
당시 손철은 구로공단의 여공들을 생각하며 가사를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긴머리 소녀'는 당시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상경해 공장 노동자로 취직했던 여성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실제로 '긴머리 소녀'는 당시 구로공단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자주 열렸던 위문공연에서 가장 널리 불린 노래였고, 당연히 둘다섯은 이러한 공연의 단골 초청가수였다. 

‘긴 머리 소녀’는 정식 음반으로 나오기 전부터 이미 대학가와 다운타운가에서 ‘이제는’이라는 제목으로 널리 불리던 노래였는데 이 노래를 ‘긴 머리 소녀’로 바꿀 때 개그맨 손철이 도움을 주었다고한다. ‘이제는’은 대학가에서 불리던 노랫말 그대로 이후 이연실 음반에 수록, 발표된다. 이 멜로디에 가사를 바꿔 ‘긴 머리 소녀’로 발표된 것이다

'밤배'의 작사가와 작곡자에 관련해서는 약간의 논란이 있다. '밤배'는 원래 오세복 작사 작곡, 혹은 오세복 작사, 이두진 작곡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오세복은 대학교 1학년 때 목포에서 제주도로 여행을 가던 배 위에서 밤바다를 보며 지은 노래라고 얘기해 왔고, 이두진은 1973년 경남 남해를 여행하던 중 지은 곡이라고 서로 다른 주장을 했다.
경상남도 남해군은 이두진의 주장에 따라 2007년 상주은모래비치(옛 상주해수욕장)에‘밤배 노래비’를 세웠다. 그런데 이두진은 “이 곡의 실제 작사자는 따로 있다. 유의번이라는 무명의 음악 교사가 노랫말을 썼고 여기에 내가 곡을 붙였다”고 토로했다. 그렇다면 '밤배'는 유의번 작사, 이두진 작곡의 노래인 셈이다. '밤배'는 시적인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 그리고 이둘의 감미로운 화음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둘다섯의 '긴머리 소녀'와 '밤배'는 1975년을 대표하는 포크송이었다.  

 

 

일기

 

둘다섯의 데뷔 앨범이 뒤늦게 큰 인기를 얻자, 지구레코드에서는 1975년 1월 재반을 발매해 판매했다. 이듬해인 1976년에는  '긴머리 소녀', '밤배' 등 1집의 히트곡에 신곡 몇 곡을 더한 컴필레이션 앨범 <골든앨범 VOL. 1>앨범을 발매했다. 음반 타이틀곡 ‘일기(오세복 작사, 작곡)’. 그리고 ‘밤의 연가’를 제외한 나머지 곡들은 모두 둘다섯 데뷔 음반에 실린 노래를 재취입한 것이다. ‘밤의 연가’의 경우, 음반에는 이두진 작사, 작곡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실제로 이 곡은 1968년에 박연숙의 목소리로 발표된 ‘밤의 찬가(황우루 작사, 김인배 작곡)’로 가사만 약간 바뀌어 수록되었다. 

둘다섯의 또 다른 히트곡 '일기' 를 추가한 <둘다섯 골든앨범 Vol.1>은 이들의 인기 열풍에 불을 붙였다. '일기', 와 '먼훗날'이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여러 곡의 메가 히트곡을 앞세운 둘다섯은 그들보다 먼저 '편지' 를 히트시키며 남성 포크 듀오의 바람을 몰고 온 어니언스, '이름 모를 소녀'를 불러 포크송의 저변을 넓힌 김정호와 함께 1970년대 중반 한국 포크계의 대표 뮤지션으로 자리를 잡았다. 

 

 

얼룩 고무신

 

1974년 데뷔 앨범을 발표하자마자 입대한 오세복이 제대 후에 원년 멤버 이두진과 함께 1978년 발표한 정규 2집 <둘다섯 일대작 Vol.2 >앨범에서는 1집의 히트곡 '긴머리 소녀', '밤배' 와 함께 둘다섯의 대표적인 히트곡 '얼룩 고무신'과 '일기'가 수록됐다. 

둘다섯의 원년 멤버였던 이두진과 오세복은 중·고·대학교 선후배로 데뷔 앨범 발표 직후 오세복이 입대하면서 오세복의 자리를 오영진(본명 이지민)이 대체하게 되고 둘다섯은 이두진과 오영진 듀오로 활동했다. 
제대한 오세복은 이두진과 다시 뭉쳤다. 원년멤버로 1978년 발표한 이 앨범은 1974년 데뷔 앨범에 이은 둘다섯의 정규 2집이다. 둘다섯은 활동하고 있는 동안 몇 차례 멤버를 교체했지만, 전성기는 이두진과 오세복이 함께했던 1974년부터 1980년까지였다. 모든 히트곡이 이 시기에 집중되었으며, 히트곡의 대부분을 두 사람이 나눠 썼다. 

성악풍의 여성 코러스로 시작하는 타이틀곡 '얼룩 고무신'은 전작의 히트곡 '긴머리 소녀', '밤배' 와 함께 둘다섯의 대표적인 히트곡 중 하나다. 두 사람의 아름다운 화음에 실린 소박하고 토속적인 서정이 빛을 발한다. 
이어지는 '갈대숲에서'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운 포크 록으로, 피버스의 '그대로 그렇게', 라이너스의 '연' 처럼 당시 대학가를 중심으로 유행한 그룹사운드풍의 노래였다. <골든앨범 Vol.1>에 먼저 수록됐던 '일기'는 이 앨범에 다시 수록됐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던 아침의 정경을 한 폭의 그림처럼 담았다. 곡의 분위기나 노래에 담긴 정서로 보아 '긴머리 소녀'의 후속작이라 할 만한 히트곡이다. 

 

 

갈대숲에서

 

이밖에 '눈이 큰 아이'는 남성 듀오 버들피리의 히트곡으로, 둘다섯이 아름다운 화음으로 다시 불렀다. 마지막 곡 '그리워하지 말어'는 조지 베이커 셀렉션(George Baker Selection)의 'Paloma Blanca'를 번안한 곡이다. 'Paloma Blanca'는 이승연이 '비에 젖은 비둘기'로, 조영남이 '반가워요'로 번안해 부르기도 했다. 이외에도 1973년경 어린이방송극 주제가로 쓰였던 ‘빨간 풍선(서활 작사, 작곡)’도 수록되어 있다.

이 앨범은 둘다섯 전성기의 마지막 앨범이다. 1980년을 끝으로 이두진과 오세복의 둘다섯은 활동을 마감했다.

이두진·오세복 멤버의 두 번째 음반이 발매하는데 시간이 걸리게 된 것은 오세복의 군 복무 때문이었다. 그는 1975년 입대해 1978년에 제대했다. 
“세복이는 처음 소총수로 입대했어요. 그러다가 일병을 달면서 사진병으로 발탁되었죠. 문선대 등 공연에 참여하면서 참으로 적극적으로 근무했었죠.” 오세복 군대 동기인 강신군(사진작가)씨의 말이다. 가수 전영록이 뒤를 이어 후임 사진병으로 들어왔다고 덧붙인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둘다섯은 두 팀이다. 처음엔 원년 멤버 오세복과 이두진으로 출발했지만 곧 이들은 두 개 팀으로 나뉘며 각자 따로 활동했다. 
처음 멤버가 바뀐 것은 오세복이 군에 입대하면서. 그 기간에 이두진은 새로운 멤버 이지민과 둘다섯 활동을 이어간다.
이지민은 후에 김영진과 듀엣 ‘사월과오월’을 결성, ‘장미(1979년)’를 부른 가수이기도 하다. 그 이지민씨가 ‘둘다섯’에 합류하면서 팀 이름을 유지하기 위해 이름을 ‘이’씨에서 ‘오’씨로, 그러니까 이지민에서 오영진으로 바꾼다. 
둘다섯의 또 다른 팀은 바로 오세복씨가 주축이 된 듀오로 이때 파트너는 이철식, 그리고 우영철 등이었다. 우영철의 경우도 둘다섯에 합류하면서 성을 바꿔 이영철이란 이름으로 활동했다. 

이두진과 오세복은 오랜 공백 탓인지 팀웍이 예전 같지 않았다. 이들은 오랜만에 함께 음반을 발표했지만 이후 공연은 각각 따로 다니기 시작했다. 이 무렵 오세복과 함께 공연을 함께 다닌 파트너는 이철식씨였다. 
이 둘은 새 음반 작업도 시작했다. “새롭게 둘다섯을 결성하면서 신세계레코드사와 음반 계약도 했죠. 음반 타이틀 곡이 ‘그날'(이철식 작사, 작곡-후에 김연숙이 리메이크 히트)이었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전속 계약금 문제로 관계가 틀어지면서 음반은 불발되었죠.”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음반사 측에서 약속을 어겼다며 소송을 걸어왔고 그 과정에서 이철식과 오세복의 관계는 더욱 소원해졌다. 
“당시 계약금 문제로 감정이 상해 더 이상 둘이 화음을 맞춘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죠.”
결국 이듬해인 1980년, 이철식씨는 스스로 독립, 솔로로 데뷔한다. ‘사랑은 소리 없이’와 ‘기다리는 내 사랑(김연숙의 ‘초연’ 원곡)’이 수록된 데뷔 독집 <이제는 옛이야기>발매하여 이 음반에서 ‘사랑은 소리 없이’가 제법 방송을 탔다. 활동은 2집 <꽃>(1981년), 3집 <철이의 일기>(1983년)로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오세복과의 관계는 더욱 꼬여만 갔다. 오세복과 준비했던 음반이 문제가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 뒤의 일이다. 혼성듀엣 ‘미리내(방희인, 허은선)’가 '그날'이라는 노래로 대학가요제 대전지역 예선에 출전, 1등을 차지하며 전국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어요. 이 노래가 이미 발표된 기성곡이라는 거예요. 해서 발칵 뒤집혔죠. 알아보니 그 사이에 세복이가 이 노래를 음반으로 이미 발표했더라고요, 물론 저는 까맣게 몰랐죠. 심지어 작자 명도 자신의 이름, 오세복 작사, 작곡으로 표기했다는 사실은 더더욱...”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그는, 피해 다니는 오세복씨를 3개월 동안 수소문한 끝에 찾아내 거칠게 항의, 몸싸움까지 벌인 끝에 자인서를 받아냈다. 뒤늦게 방송국 측과는 오해가 풀렸지만 오세복과의 우정에는 이미 금이 간 상태였다. 

“처음 신세계레코드사에서 음반을 내기로 했다가 계약금 문제로 일이 틀어지면서 무산된 음반을 나중에 지구를 통해 발표한 것이었죠. 아마 위약금 등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신 지구에서 음반을 냈을 것...”이라는 게 이철식씨의 추측이다. 

 

 

그 바다 그 소녀

 

‘그날’은 <둘다섯 신곡 모음 3집>(지구, 1980년 6월)’을 통해 발표되었다. 이 음반에서 오세복과 호흡을 맞춘 파트너는 우영철이다.  얼마 뒤 이철식은 세 번째 음반 <철이의 일기>를 발표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못생긴 내 얼굴(한돌 작사, 작곡)’이 원곡이기도 한 이 노래 ‘철이의 일기’는 발표되자마자 운동권 가요로 분류, 낙인이 찍히면서 이로부터 5년간 활동이 금지된다. 
이후 이두진은 사업가로 변신했고, 오세복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둘다섯은 1985년 앨범 <달력속의 생일>를 발매하며 오랜 침묵을 깨고 돌아왔지만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둘다섯은 2005년에 이두진과 윤중선 듀오로 앨범을 발표했다. 이후 이들은 1991년 히트곡 모음집에 가까운 앨범 <어부>를 냈지만 별 반응을 얻지 못했다. 2000년대에 미국에서 돌아온 오세복과 하야로비 출신 우영철이 둘다섯으로 활동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1999년에는 ‘대한민국 포크송 30주년’을 맞아 ‘포크송이여 부활하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포크 싱어들이 모여 <한국 포크 상륙 30돌> 기념음반을 발표했다. 둘다섯은 원 멤버(이두진·오세복)로 블루스 색채가 짙은 신곡 ‘바다’로 참여했고 임창제는 20여 년만에 ‘세월 가는 소리’를, 하남석도 15년 만에 ‘세월의 창’이라는 노래를 음반을 통해 발표했다 

 



2021년 평소 지병인 신장염을 앓고 있던 오세복이 급성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2022년 오세복을 추모하는 헌정음악회에서는 미공개 유작도 발표되었다. 제목은 ‘인생길(오세복 작사, 작곡)’. 노래를 부른 멤버는 오세복과 이철식으로 이 노래가 만들어진 것은 2019년 오세복씨 별세 2년 전에 취입된 노래로 오세복이 신장 이식수술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둘다섯 새노래 모음 1975
둘다섯 골든앨범 VOL. 1  1977
둘다섯 일대작 Vol.2  1978
둘다섯 신곡 모음 VOL. 3  1980
둘다섯 Greatest Hits 14  1983.6  신세계
둘다섯 힛트전집  1983.10  지구 
둘다섯 달력속의 생일 1985
둘다섯 어부 1991
둘 다섯 골든 힛트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