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포크/블루스의 전설적인 거장으로, 1973년 CBS 라디오 음악발표회로 데뷔하여 솔로음반 13장, 신촌블루스 1,2집, 해바라기 3장, 이정선과 풍선 등의 음반을 낸 가수 겸 기타리스트이다.
1950년 대구에서 태어나 상무대 군악대장이던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여수시, 광주광역시를 전전하다 6세 때 서울로 상경해서도 용두동, 교동, 청계천, 충무로4가 등 수없이 이사를 다녔다.
예나 지금이나 미군기지가 있던 곳이라 영미권 문화를 상대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었고, 자주 음반가게에 가서 음악을 듣거나 레코드를 샀다고 한다. 그러나 자식들의 음악활동에 반대했던 아버지와 음악을 듣기조차 싫어했던 어머니 때문에 음악을 할 수 없는 분위기였고 학업이 시원치 않았던 이정선은 중학교는 3차로 동북중에 간신히 입학했다. 미술대회에 나가 입상을 여러 차례 했지만 공부가 시원치 않던 아들에게 육사 군악대장이 된 부친은 중2 때는 검정고시를 치게 하고 이화여대생 가정교사를 붙여주는 등 아들의 교육에 적극적이었다.
팝송을 좋아했던 여대생 가정교사는 음악 메신저였다. 어느 날 집에 음반이 있던 ‘Are you lonesome tonight’의 팝송 가사가 학교 영어신문에 실리자 신기함을 느끼며 팝송을 배웠다. 아이러니하게도 학업을 위해 붙여준 이화여대 가정교사는 팝송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정선의 음악 메신저가 되어주기도 했고 어느 날 집에 음반이 있던 'Are You Lonesome Tonight'의 가사가 학교 영어신문에 실리자 신기함을 느끼며 팝송을 배웠다.
당시 명문인 용산고에 진학하면서 전오승의 ‘기타교본’을 보고 기타 독학을 시작했지만 부친은 기타를 3대나 부셨을 만큼 음악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타고난 청개구리 성격의 이정선은 부친의 반대가 거세질수록 더욱 기타를 배우고 싶어 동네 만화가게에 기타를 숨겨놓고 배웠다.
또한 AFKN을 통해 다양한 팝송을 접하면서 당시 학교정문 앞에 있던 미군 상대의 해적판가게에서 음반을 구해 들었다. 기타 실력이 늘자 소풍 때는 거의 독무대를 이뤘을 만큼 인기가 대단했다. 이정선은 “내 짝과 전방 순회 공연을 가서 벤쳐스 흉내를 내기도 했다”고 회고한다.
고2때 진학 적성검사에서 평균 95점을 받았지만 상업부기와 미술은 80점도 나오지 않자 오기로 미술대학 진학을 결심하고 수험공부를 했다. 1968년 1순위로 지원했던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과에 떨어져 2 순위였던 조소과에 들어갔다.
대학 신입생 이정선은 벤쳐스 음악을 주로 연주했다. 2학년 때 쓰리 핑거 주법으로 기타를 잘치는 김민기가 신입생으로 들어오자 코드도 가르쳐 주고 함께 어울렸다. 1969년 2학년 1학기 마치고 부친의 도움으로 군악대로 입대를 해 수자폰, 베이스, 첼로 등을 배우고 편곡된 합주 악보를 맡으면서 편곡의 세계에 눈을 떴다.
그는 군악대 생활을 통해 작사, 작곡, 편곡, 연주, 노래 등의 음반제작 전 과정을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음악적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1969년 말 휴가를 나오자 김민기는 포크 듀오 ‘도비두’를 결성해 활동을 하고 있었다.
1970년 YMCA강당에서 최경식이 개최한 제1회 포크 페스티벌에 김민기의 도비두, 서울음대의 김광희와 함께 이정선은 베이스를 치며 참가해 ‘피터폴 앤 매리’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군에서 제대한 다음해인 1973년 2월에 명동 YWCA 대강당에서 '이정선 노래발표회'를 열어 공식적인 데뷔무대를 가졌다.
이정선은 "1971년 말 제대를 앞두고 외출을 나왔는데 김민기 독집이 음반가게에 있어 반가운 마음에 구입해 들었다. 1969년 남산 드라마 센터에서 본격적인 한국 포크의 탄생을 알리는 한대수의 아방가르드 공연을 보고 받은 충격을 다시 느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곡을 만들고 싶어졌다. 이때부터 습작처럼 많은 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군에 있는 동안 부친의 사업이 망해 버렸다. 제대 후 취직하려 했지만 힘들었다. 당시는 통기타 전성시대로 음악을 해볼까 하여 들린 방송국에서 우연히 김진성 PD를 만나게 되어 기타를 치게 되었다.
1973년 2학기에 복학을 한 이정선은 평론가 최경식, 김진성 PD가 주관한 포크 콘서트가 있을 때마다 보수를 받지 않고 거들어 주었다. 두 사람은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학비를 벌어야 하는 이정선을 위해 음반발표를 주선했다.
이때 평론가 최경식과 교류하면서 음악적 영향을 받았다. 이정선은 “나는 노래를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내 이야기를 내 목소리로 전달한다는 생각이다.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발음은 정확했다. 노래는 메시지 전달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자신의 음악관을 밝힌다.
그는 가수보다는 이용복, 영씨스터즈 등에게 가사를 번안해주고 편곡, 통기타를 연주하면서 음악생활을 시작했다.
김진성이 소개해준 김혜원이라는 친구와 함께 녹음한 노래를 들은 최경식이 1973년 2월 명동 YMCA에서 ‘이정선 노래 발표회’를 열어 주었다. 이정선은 “많은 포크 가수들을 섭외 했는데 어니언스만 왔다. 악보를 받고도 가수들은 악보를 언제 주었냐고 발뺌하는 등 아무도 내 곡을 불러주지 않아 오기가 솟아 열심히 노래연습을 했다”고 말한다. 이 무대는 가수 이정선의 공식적인 데뷔 무대였다.
1973년에 발매된 이정선의 비공식 데뷔 앨범 <이정선 노래모음 / 이리저리>는 발매 당시 한국 대중가요계에서 보기 드문 블루스 포크를 시도하며 시대를 선도한 앨범이다. 이 앨범의 재킷 사진은 서울 한강의 얼음 위에서 촬영했다. 당대 기타의 달인이었던 이정선과 오세은은 어쿠스틱 기타를 맡았고, 일렉트릭 기타는 김영배, 베이스 기타는 최영택, 키보드는 김영준, 이영림은 퍼큐션을 맡아 브라스 사운드까지 시도했다.
이들은 제법 탄탄한 밴드 시스템을 구축해 녹음을 마쳤다. 1973년 말경 유니버샬레코드는 이정선의 데뷔 앨범이자 첫 독집을 별다른 홍보도 없이 발매했다. 당시로서는 드문 창작곡으로 구성한 이 음반은 화려한 화성의 포크 록을 구사했다.
이정선의 앨범 재킷들은 가수의 사진을 크게 싣는 게 전부였던 당시의 획일적이고 촌스러운 음반들과 차이가 있다. 청소년기부터 음악을 들으면서 밤을 새워 그림을 그렸던 그는 시각적인 것을 청각적으로 만들어가는 훈련을 자연스럽게 습득했다.
미술을 전공했기에 그는 표현하고 싶은 꿈과 사회와의 부조화를 짧고 축약적인 가사로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서울대 미대 출신답게 음반에 수록한 음악들을 재킷 디자인으로 표출하며 ‘음악의 미술화’라는 새로운 지평을 일군 이 분야의 선구자였다. 재킷 디자인은 서울대 미대 친구가 맡았다. 재킷 사진은 밤색 배경에 서울 명동의 사보이호텔 근처 거리를 배경으로 멈춰선 청년 이정선의 모습과, 거리를 지나가는 여성을 교차시켜 운동감이 느껴지도록 슬로우 셔터로 촬영했다. 서로 대비되는 이미지를 배치한 재킷 사진은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정선은 노래를 ‘이야기’한 한국 블루스 음악의 개척자이다. 경쾌하게 시작한 타이틀곡 '이리저리'에서는 혼성 듀엣 원플러스원의 박헌룡이 이정선과 하모니를 구사했다. 이 노래는 그의 블루스 음악 여정이 시작부터 박헌룡과 함께했음을 보여준다.
소박한 기타 반주와 청년 이정선의 담백한 보컬로만 구성한 '내게 주는 노래', 잔잔한 키보드 반주에 맞춰 노래한 '가려는가', 건전가요풍인 '모두 다 함께' 등은 포크송이지만 대부분 밴드의 비트와 리듬감을 가미해 포크 록 음반에 가깝다. 또한 개그맨 고영수, 혼성 듀엣 원플러스원, 김성은, 김성희, 이애리 등 많은 음악 친구들이 코러스로 참여했다.
한데 발매를 앞두고 진행한 사전 심의에서 수록곡 11곡 중 '이리저리'와 '모두 다 함께'를 제외한 9곡이 심의 불가 통고를 받게되자 다급해진 서라벌레코드는 심의위원들을 설득해 어렵게 음반을 발매했다. 앨범은 발매 후 몇 개월간 약 5천 장이 판매되는 호조를 보였다.
그러나 결국 2면 첫 트랙 '거리'의 “말을 하는 사람은 많아도 말을 듣는 사람은 없으니 아무도 듣지 않는 말들만이 거리를 덮었네”라는 가사 내용이 “너무 비정적이어서 사회에 불신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음반 판매가 금지됐다. 특히 이정선의 초기 블루스 포크 명곡으로 평가받는 '거리'는 방송 금지 조치마저 내려졌다.
“금지된 노래가 들어있는 음반은 팔지 못한다”는 당시 지침 때문에 제작사는 자발적으로 배포된 음반을 수거했고 결국 음반은 사장됐다. 소박하게 시도했던 이정선의 첫 블루스 음악은 1980년대에 꽃을 피우기 전에 이처럼 고난을 겪어야만 했다. 신중현, 김민기에 이어 이 앨범은 또 하나의 저주받은 걸작이 되었고, 1집이 아닌 일명 ‘마이너스집’으로 불렸다.
이 앨범에서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기타, 피아노, 트럼펫 등 다양한 악기들을 활용하여 밴드 시스템을 구축하였으며 작사, 작곡부터 편곡 및 연주까지 전부 본인이 맡아 화려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곡들을 만들 수 있었다. 당시 한국 대중가요계에서는 존재조차 희박했던 블루스와 포크 록을 시도하여 시대를 선도한 음반으로 평가받고있다.
이정선은 자신의 첫 음반이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아 사장되었지만 음악성만큼은 인정받아 지구레코드와 60만원이라는 당시 상당한 거금으로 전속 계약을 맺어 1975년 발매된 이정선의 공식 데뷔 앨범 <이정선>을 만들게 된다. 과거의 음반으로 상당한 고초를 겪어서 사회 문제를 직설적으로 풀기보다, 자연과 관련된 노래로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곡 녹음을 하기 위해 당시 미국에서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던 김의철의 형에게 어쿠스틱 기타를 부탁하였지만 이정선이 자주 사용하는 어쿠스틱 기타가 아닌 클래식 기타를 받게 돼 앨범의 히트곡 중 하나인 '섬소년'의 몽환적인 느낌을 내는데 힘이 되었다.
이 앨범은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는데 관련된 일화가 있다. 1975년 6월에 처음으로 발매된 버전은 처음에는 어두운 배경과 장발의 이정선이 함께 찍힌 재킷으로 되어 있었으며, 수록곡 중에는 과거에 발표한 적이 있는 '거리'를 다시 수록했다. 하지만 심의 기관에서는 과거 금지 처분을 받은 전적이 있는 '거리'을 빌미로 판매 금지 처분을 내렸다. 결국 '거리'를 삭제시키고 재킷은 유지한 채 다시 발매하였지만, 재킷 사진의 장발이 불량해 보인다는 구실로 또다시 판매 금지 처분을 내려버렸다. 이정선은 이번에도 음반이 금지되면 영원히 음악을 못 할 거 같은 위기감을 느껴 머리를 자르고 복장을 단정하게 한 사진으로 재킷을 변경한다. 다행히 자켓을 변경한 음반은 다행히 심의가 통과되어 발매될 수 있었으며 1976년 9월에 발매된 삼판을 공식 1집으로 분류한다.
초판(장발 자켓/거리 포함) - 판매 금지
재판(장발 자켓/거리 미포함) - 판매 금지
삼판(단발 자켓/거리 미포함) - 판매 허용
데뷔 음반이 총 3번이나 검열을 당한 사례는 한국 대중가요사에서 찾아보기 매우 드물다. 이정선은 오히려 인생 경험에 도움이 되었다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이광조에 의해 훗날 인기를 모은 ‘오늘같은 밤’이 수록되었고, 정형화된 가요의 틀을 깨트린 ‘섬소년’의 뜻하지 않은 빅 히트는 지금까지 이어오는 활동을 예견하는 신호탄이었다. 아곡의 히트로 TBC 방송가요대상 신인가수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으나, 하필이면 그가 후보로 오른 해에는 이 부분 수상자가 없었다.
‘섬소년'에서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모습을 소년과 인어의 이야기를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금지의 멍에가 지워지자 비판적 정서를 담은 투쟁적인 음악활동을 펼치기보다 자연과 동심의 세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완성도 높은 음악적 양식에 더욱 몰두했다. 이정선은 “미술을 한 덕에 표현하고 싶은 꿈과 사회의 괴리 등을 짧고 간단한 가사로 함축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실제로 쓸쓸한 바닷가의 모습을 시각적인 효과음과 감각적인 기타연주로 형상화한 음악적 표현은 신선했다.
1976년 발표한 이정선의 정규 2집은 작사와 작곡, 편곡, 연주, 녹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를 그가 장악하고 통제함으로써 완성도 높은 창작 앨범을 만들어냈다. 포크 이상의 이상적인 중간지대를 지향했던 이정선 음악의 정수를 담은 명반이다.
1976년 발표한 이 앨범은 이정선 2집으로 불리지만, 세 번째로 발표한 앨범이다. 1973년 발매 즉시 시장에서 사라진 소위 ‘마이너스집’, 혹은 ‘0집’으로 불리는 앨범과 1975년의 1집에 이어 발표한 앨범이기 때문이다. 이정선의 초기 디스코그래피는 심의와 금지 등으로 앨범 자체가 사장된 경우, 곡이 바뀌거나 빠진 경우, 재킷 디자인이 바뀐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이 시기 발표한 앨범을 몇 집으로 표기해야 하는지 애매한 경우가 많다.
이정선은 한국 블루스 음악의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그의 음악적 출발점이자 뿌리는 포크 음악이었다. 이 앨범에서 이정선은 싱어송라이터로서 자신의 음악적 방향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총 12곡의 수록곡은 전반적으로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를 중심으로 했지만, 현악기와 관악기를 적절히 사용해 변화와 다양성을 추구했다. 3박자 왈츠풍의 곡 '고향이여 친구여'를 비롯해 '영원의 꽃', '구름, 들꽃, 돌, 연인', 그리고 전형적인 쓰리핑거 주법으로 연주한 '하늘에 떠가는 배' 등은 포크의 기본에 가깝다.
반면 소박한 어쿠스틱 기타와 현악 스트링의 조화로 토속적인 느낌을 낸 '꽃신 속의 바다', 현악 인트로로 시작하는 '내고향 언덕길'은 현악 편곡을, '시인의 여행'과 '비오는 날에'는 관악 편곡을 가미했다. 독특한 음향 효과를 삽입한 '사랑가'와 '내 마음 빛이 되어'는 리듬감 있는 포크 록 스타일이다. 극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전개의 곡 '섬소년'은 기타와 현악의 앙상블로 시작해 관악기까지 추가한 후반부의 퍼커션 연주로 압도적인 결말을 연출했다. 이 곡의 장르를 ‘프로그레시브 포크’로 명명한 이유를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이 앨범에서 이정선은 작사와 작곡은 물론 편곡과 연주, 녹음에 이르기까지 음반 제작 전 과정에 걸쳐 진정한 싱어송라이터의 앨범은 어떤 것인지 보여주었다. 세션맨의 도움을 받았지만, 작곡 단계에서도 악기 구성과 편곡을 염두에 두고 곡의 완성도를 높였다.
결과적으로 전작에서 드러났던 덜 정제된 듯한 느낌은 이 앨범에서 상당히 정리되었고 안정적으로 변화했다. 마이너스집에 수록한 '비오는 날에'의 원곡은 무거운 느낌의 블루스였지만, 이 음반에 수록한 버전은 담백한 포크 스타일로 힘을 뺐다. 반면 1집에 먼저 수록했던 <섬소년>은 악기의 구성과 이펙트까지 전작의 편곡을 그대로 살려 다시 실었다. 전작의 장점은 유지하되, 시행착오는 수정한 리메이크로 곡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정선의 통제력을 극대화한 앨범이지만, 1975년부터 이정선과 해바라기 활동을 함께 한 김영미와 한영애의 조력도 빼놓을 수 없다. '고향이여 친구여', '시인의 여행', '구름, 들꽃, 돌, 연인', '하늘에 떠가는 배' 등에서 코러스로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중 '구름, 들꽃, 돌, 연인'은 1977년 해바라기 1집에, '섬소년'과 '꽃신 속의 바다'는 1979년의 해바라기 2집에도 다시 실었으니 이 앨범은 해바라기 정규 앨범의 예고편 격인 셈이다. 이 앨범에는 이정선이 만들지 않은 곡이 2곡 있다. 김의철이 만든 '고향이여 친구여'과 '꽃파는 소녀'가 그것이다.
이정선 2집에는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꽃파는 소녀'를 수록한 버전과, 이 곡을 건전가요인 '새마을 노래'로 바꾼 버전이다. 재킷 뒷면 이미지가 다른 음반도 있는데, '새마을 노래'를 수록한 홍보용 비매품이 발견된 것을 보면 건전가요를 수록한 음반이 초반으로 추정된다.
이앨범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정선 스타일의 음악스타일이 확립된 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꽃신속의 바다’, ‘구름, 들꽃, 돌, 연인’은 동시대에 이정선이 몸담고 활동했던 중창팀 해바라기의 음반에도 이후 수록되었다. 코러스에 참여하고 있는 한영애와 김영미가 바로 해바라기의 여성 멤버들이었으며, 명동의 가톨릭 여학생회관에서 정기적으로 함께 활동했던 오세은의 곡도 수록되었다. 2집은 ‘건전가요’ 때문에 재킷이 바뀌는 수난을 겪었다. 수록곡에 ‘새마을 노래’가 포함된 버전과 ‘꽃파는 소녀’가 수록된 버전이 있으며, 뒷면의 재킷 사진도 다르다.
1975년에 이정선, 이주호, 한영애, 김영미의 4인조 포크 그룹 "해바라기"를 결성하여 활동을 시작하였고, 군입대로 빠진 이주호 대신에 이광조를 영입하여 1979년까지 활동하였다. 같은해 이광조, 엄인호와 함께 트리오 "풍선"을 결성하여 1년간 활동하였고, 1986년~1997년 엄인호와 함께 블루스 록 밴드 "신촌 블루스"를 결성, 활동을 하면서 한영애, 김현식, 김동환, 정서용, 정경화, 이은미, 강허달림 등의 멤버가 밴드의 싱어로 참여하였다.
0집에 해당하는 <이정선 노래모음 / 이리저리>에 수록되었던 ‘청개구리 마음’처럼 가사의 내용이나 곡의 흐름에 따라 템포와 편곡을 변화시키는 방법론은 ‘섬소년’이라는 명곡을 탄생시켰고, 세 번째 음반에서는 ‘곡마단의 하루’와 같이 재미있는 형태로 또 한번의 발전을 이뤘다. 자신이 발탁한 듀오 두송이에 의해 히트한 ‘세월이 가듯’은 보다 진중한 느낌으로 수록되었고, 전체적인 편곡에 있어서도 국악대에서 터득한 방법론이 완전히 ‘이정선식 가요’에 이식되어, 관악과 현악의 영민한 배치는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여타곡들과의 확실한 경계를 이룬다. ‘뭉개구름’은 해바라기에 의해, ‘나들이’는 이광조에 의해 재조명 받았다.
1979년 대한음반제작소에서 발매한 이정선의 공식 4집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루어진 이정선의 ‘사계’를 담고 있다. 이전에 보여준 스타일의 앞면 수록곡과,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인 뒷면 수록곡이 대조적인 느낌을 준다. 이정선 음악의 새로운 시작점으로 볼 수 있다.
초기 대표곡 중의 하나인 '봄'과 '산사람', 해변 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해 널리 알려졌던 '여름', 이후 한영애의 버전으로 많이 알려지게 되는 '건널 수 없는 강' 등 총 11곡을 수록했다.
음반 앞면 수록곡은 '봄', '여름', '가을', '겨울'과 브리지 부분의 '산사람'으로 이루어진 이정선식 ‘사계’라 할 수 있다. '산사람'으로 구현한 브리지 부분에서 <봄> 이후에는 '어려서도', '여름' 이후에는 '젊어서도', '가을' 이후에는 '늙어서도'로 가사를 바꿨는데, 음악에서도 이에 상응하는 변주가 치밀하게 이뤄진다.
LP 앞면 수록곡에서는 이전에 그가 추구했던 자연 친화적인 가사들과 해바라기풍의 코러스, 포크 지향적인 멜로디 라인이 두드러진다. 반면 뒷면 수록곡은 다소 무겁고 어두운 가사에 텐션 코드를 전면에 부각한 블루지한 곡 진행을 담아 대조적이다.
뒷면 수록곡에서는 예상치 못한 반음 진행, 블루스 스케일에 입각한 기타의 애드리브 라인이 나타난다. 이는 이전에 보기 힘들었던 또 다른 이정선 음악의 시발점이다. 혼성 코러스가 등장하지만 이전 해바라기 시절과는 다른 느낌이다. 이정선은 코러스로 가사를 전달하기보다는 멜로디와 곡의 흐름을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이후 발매한 이정선의 음반에서는 코러스 대신 증폭된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그 도구 역할을 대신했다.
이정선 4집은 스타일이 서로 다른 앞면과 뒷면 수록곡이 보여주듯, 이후 이정선의 음악적인 행보에 있어 갈림길이 된 음반이다.
초기 이정선의 대표 곡 중의 하나인 ‘봄’과 이미 해변 가요제에서 징검다리의 목소리를 통해 알려졌던 ‘여름’, 공연무대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산사람’, 이후 한영애의 버전으로 많이 알려지게 되는 ‘건널 수 없는 강’ 등 그의 대표적인 곡들이 수록된 음반이다. 특히 음반의 앞면 수록곡들이 사계절인 ‘봄’, ‘여름’, ‘가을’, ‘겨울’과 브리지 부분의 ‘산사람’으로 이루어진 ‘이정선식 사계’다. 또 ‘산사람’으로 이루어진 브리지 부분들은 ‘봄’ 이후에는 ‘어려서도’, ‘여름’ 이후에는 ‘젊어서도’, ‘가을’ 이후에는 ‘늙어서도’로 가사가 바뀌고, 이에 상응하는 변주로 이루어져 있는 치밀한 계산이 숨어있기도 하다.
1979년 지구레코드에서 발매한 이정선의 공식 5집 앨범이다. 이전에 활동했던 혼성 중창팀 해바라기의 음악과 이정선의 음악에 있어 확실한 경계가 되는 음반이다. 이 음반에는 처음으로 직접 연주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담았으며, 블루스 성향과 포크 스타일이 공존한다.
이정선의 공식 5집은 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한 시기에 발표했다. 이 앨범을 위해 이정선은 뮤직맨 일렉트릭 기타를 구입했고, 스스로 연주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이 음반에서 최초로 수록했다. 그는 “이 시기가 뿌리를 찾아가는 시기였다”고 말했다.
이정선이 이야기한 “뿌리”란 블루스를 말한다. 이정선은 “육군 군악대에서 1930~1940년대 스윙 음악을 많이 연주했고, 그 근간이 된 것이 블루스”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 음반에서는 전작에서 들을 수 있었던 그의 블루스 스타일이 좀 더 표면 위로 드러난다.
이 음반에는 포크 록 스타일, 실내악식 편곡, 그가 조금씩 관심을 보였던 국악의 멜로디, 아직은 희미하지만 일렉트릭 기타를 이용한 블루스 등이 혼재한다. 물론 평소 그의 음반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여러 경향은 산만하게 펼쳐지기보다는 깔끔하게 정돈된 음악으로 나타난다.
총 10곡(건전가요 제외)의 수록곡에는 간주에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담은 대표곡 '지붕위의 한낮'이 있는가 하면, 이전 스타일의 현악 편곡이 돋보이는 '목련'도 공존한다. 실내악풍으로 편곡한 '사랑의 약속'은 영화 <휘청거리는 오후> 삽입곡으로 여대생 듀엣 두송이의 1978년 음반에 먼저 수록했던 곡이다. '지붕위의 한낮'은 이후 이광조가 다시 불렀다.
1979년의 초반과 1980년 발매한 재반은 수록곡과 순서가 다르다. 상여가 나가듯 음습한 느낌의 '그렇게 살아가는데', 리코더 연주곡 '달빛아래 피는 꽃'과 '불새야 동산으로'가 재반에서는 빠지고, 대신 '슬픈 얼굴'과 '아가', '처음 만난 순간부터'를 수록했다.
전작까지는 솔로 가수로서의 이정선과 혼성 보컬 그룹 해바라기 사이의 음악적 경계가 모호했다. 그러나 이 음반부터 이정선 솔로 활동의 경계가 확실하게 구분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본작의 음악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1981년 발매된 이정선 6집은 7집 이전에 이정선 특유의 통기타 사운드에서 나아가 극적인 표현 강화를 위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본격적으로 시도한 앨범으로 '사랑의 흔적', '한밤중에'등이 사랑을 받았다.
1981년 대성음반에서 발매한 이정선의 <6 1/2>은 노래와 연주가 높은 수준으로 결합한 기타 연주의 최고봉을 보여주는 음반이다. 앨범 타이틀명인 <6 1/2>은 6집과 7집의 사이에 발표한 비정규 음반을 의미한다. 이 음반의 특징은 모든 수록곡을 이정선 스스로 작사, 작곡, 노래하고 편곡까지 도맡은 자주적인 앨범이라는 점에 있다.
아마도 이 앨범 발매 전에 이런 식으로 음반의 타이틀을 정식 표기한 대중가요 음반은 사례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음반은 서울 동부이촌동에 있는 서울스튜디오에서 레코딩과 믹싱을 진행했다. 이 음반의 특징은 모든 수록곡을 이정선 스스로 작사, 작곡, 노래하고 편곡까지 도맡은 자주적인 앨범이라는 점에 있다. 완전체 싱어송라이터 앨범이다. 당대의 인기 가수 이화가 코러스로 참여했다.
총 10곡을 수록한 이 앨범은 이전 음반에 수록했던 곡들을 다시 녹음한 리메이크 곡과 신곡을 절반씩 수록했다. 정규 5집 타이틀곡인 '슬픈 얼굴', '지붕위의 한낮', '해송' 등은 이정선의 숨은 걸작으로 꼽을 만한 수작이다.
멜로디가 가장 돋보이는 '해송'은 이 앨범에서 가장 긴 러닝타임을 선보였다. 6집에 먼저 수록한 '한밤중에', '사랑의 흔적'은 원작보다 더 빠르고 거칠게 기타를 연주해 다른 느낌을 전한다. 뒷면 첫 트랙인 신곡 '답답한 날에는 여행을'은 그때까지 이정선이 발표했던 노래 중에서 상당히 밝고 경쾌한 스피드가 느껴진다. 이정선은 가사에서 사회와 자신에 대한 발언을 삼갔는데, 이 곡의 가사는 이정선이 쓴 기존 가사의 어두운 느낌과 비교해 상당히 암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정선의 <6 1/2>집은 그가 생각하는 통기타 중심의 어쿠스틱 사운드를 지향한 앨범이다. 또한 이 음반에서 선보인 일렉트릭 기타 연주는 이후 그의 음악적 변화를 예고했다.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며 변화무쌍한 음악적 표현을 장인다운 솜씨로 다듬어낸 이정선의 어쿠스틱 사운드는, 이 앨범에서 특히 그의 기타 연주가 절정에 달한 순간을 보여준다. 이 앨범 이후 이정선은 성인 음악으로 전향해, 신촌블루스 활동을 중심으로 일렉트릭 블루스에 매진했다. 이 앨범은 리메이크하거나 CD로 재발매한 흔적을 찾기 힘든 희귀 음반으로 남았다.
1983년부터는 한영애, 이광조, 엄인호, 김현식등과 함께 ‘신촌 블루스’라는 정기적인 연주모임을 시작하고 1985년 7집 ‘30대’를 기점으로 완전히 블루스를 중심에 둔 일렉트릭 사운드로 전환했다.
1986년에 외국에서 잠시 귀국한 김영미를 포함해서 해바라기 멤버들은 <해바라기 3집>앨범을 발표하였다.
1985년 한국음반에서 발매한 이정선 7집 <30대>는 본격적인 창작 일렉트릭 블루스 록을 선보인 음반이다.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으로 선정된 이 앨범을 기점으로 일렉트릭 사운드로 전환한 그는 프로젝트 밴드 신촌블루스를 통해 블루스 천하를 일궈냈다.
이정선의 솔로 앨범 중에서는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앨범으로, 데뷔 이후 어쿠스틱 포크송 계열의 음악을 해오던 이정선은 이 앨범을 기점으로 일렉트릭 사운드와 블루스 쪽으로 음악적 방향을 틀게 되고, 한국 블루스의 개척자로 평가받게 된다. 명실상부 최정상의 기타리스트인 이정선의 기타 실력을 충분히 맛 볼 수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
30대는 누구나 사랑과 이별의 달고 쓴 경험을 한번쯤 경험했을 시기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이정선은 이 앨범을 통해 절정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 공력을 선보였으며, 송라이터로서도 한 단계 진보한 원숙미를 과시했다.
앨범 타이틀을 <30대>로 정한 이유에 대해 이정선은 한 인터뷰에서 “그때까지는 20대 노래밖에 없어서···”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타이틀곡 '우연히'를 비롯해 애절한 사랑의 감성을 담은 총 10곡(건전가요 제외)을 수록한 이 앨범은 이전의 이정선 음악과는 다른 음악적 전환점이었다.
즉 이 음반은 이전에 발표한 자연을 소재로 한 담백한 포크송과는 질감부터 다른 성인용 대중가요가 중심을 이룬다. 진득한 사랑의 정서를 표현한 것은 기본이고 창법도 애절해졌다. 하덕규의 곡 '외로운 밤에 노래를'를 뺀 9곡은 모두 이정선의 창작곡이다.
이정선의 7집은 기타를 치기 위해 노래를 만든 음반이다. 또한, 대중적 기호의 트렌트 음악을 의도적으로 외면했던 그가 처음으로 대중을 의식하고 타협한 음반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그 자신도 “필요 이상으로 오버해 노래를 불렀다”고 고백한 바 있다.
수록곡의 가사를 하나하나 읽다 보면 직접적인 사랑 표현이 많아 조금은 야한 느낌도 든다. 책 표지를 보면 책 내용을 대충 알 수 있듯, 앨범도 재킷만 보면 어떤 노래가 들어있는지 알 수 있다. 이정선의 어깨너머에 숨은 젊은 여성의 큰 눈망울이 인상적인 이 앨범의 재킷 사진도 에로틱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실제로 이정선은 “30대가 공감할 사랑의 열병을 표현한 노래의 콘셉트에 맞게 재킷도 최대한 야하게 찍었다”며 “그래서 지금은 솔직히 불편한 음반”이라고 고백했다.
이 음반의 히트곡 '우연히'는 이전의 이정선 음악에서는 찾기 힘든 진한 사랑의 표현이 넘쳐난다. 다양한 스타일의 기타 연주와 변칙적인 튜닝은 감상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외로운 밤에 노래는>은 이정선의 트레이드마크인 덤덤한 보컬과 다른 애절한 창법으로 불렀다.
'곁에 없어도'와 4집에서 이미 한국적 블루스의 서막을 알린 '건널 수 없는 강'은 당대 대중가요와 차별되는 이정선 기타 연주의 진수를 담아냈다. 훗날 고 김광석이 존경심을 표하며 리메이크한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의 오리지널 버전도 빼놓을 수 없는 트랙이다. 쓸쓸함의 극치를 달리는 '우울한 여인'과 깊은 감성의 블루스 향기를 뿜어내는 '바닷가에 선들'도 이 앨범의 향취를 높여주는 트랙이다.
이정선은 노래하는 것보다 기타 연주를 더 좋아한 뮤지션이다. 그는 포크, 블루스, 재즈, 심지어 트로트까지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곡을 아우른 ‘소리 여행자’였다. 대중성과 음악성을 겸비하고 장르를 넘나든 음악 행보는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마저 모호하게 했다.
이정선이 밝히길, 6집 활동 이후에 유럽 여행을 갔었는데,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그동안 듣고 해왔던 음악과는 낯설고 색다른 느낌의 음악을 들으면서 '우리가 너무 미국식으로 젖어있었다. 이 세상에 전혀 다른 음악들이 더 많이 있는데, 우리가 듣고 하는 음악은 미국만을 흉내 낸 것에 불과하다.'라고 깨달음을 언급했다.
이정선은 1970년대 팬들에겐 통기타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포크 가수로, 1980년대 팬들에게는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는 블루스 뮤지션으로 기억된다. 대중이 연령층에 따라 그를 각기 다른 장르의 가수로 기억하는 것은 그가 자유로운 음악 어법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그가 한국 대중음악사의 중요 뮤지션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확실한 방점을 찍게 해준 정규 7집 <30대>는, 주류의 인기 가수도 ‘명반’ 생산이 가능했던 198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빛나는 유산이다.
이 땅의 블루스 혹은 R&B 역사는 장구하다. 하지만 토종 창작 블루스 앨범이 탄생하기까지는 지난한 세월이 필요했다. 음악적 변신을 거듭해온 이정선은 그 돌파구를 마련했다. 이 앨범은 이정선을 한국 블루스 음악의 개척자로 평가받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1998년 시완레코드에서 이 앨범을 CD로 재발매했다.
1988년 이정선의 8집 <Ballads> 앨범을 발표했다. 이정선은 솔로 1집부터 6.5집에 걸쳐 한국적인 모던 포크를 국내에 정착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7집 에서 블루스를 시도하고, 곧이어 신촌블루스 1집으로 한국적인 블루스를 선보였던 이정선은 8집 <Ballads>에서 제목 그대로 발라드를 담아 발매했는데 1980년대 후반은 가요계에서 발라드가 대세를 이루던 때였다. 이정선은 한 인터뷰에서 “발라드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 앨범을 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정선은 이 앨범으로 이문세, 변진섭, 신승훈 같은 발라드 스타가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작품성으로만 본다면, 이 앨범에는 한국적인 발라드의 수준을 끌어올릴 만한 수작들이 담겨 있다. 또한 전형적인 발라드 외에도 다채로운 감성의 여러 곡이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수록곡은 하나같이 수려한 멜로디와 시적인 가사를 담았다. 이영훈의 발라드를 이문세가 불러서 크게 히트시켰듯, 이 앨범에 수록한 이정선의 곡을 발라드에 최적화된 인지도 있는 다른 가수가 불렀다면 크게 히트했을지도 모른다.
이 앨범에서는 편곡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같은 하늘 아래', '어느 날 아침(작별)', '당신은 당신은', '오늘 그대는(천사)' 등에서 이정선은 섬세한 코드 변경과 학구적인 스트링 편곡으로 세련된 발라드를 선보였다. <Ballads>는 기타 중심이었던 이정선 앨범의 기존 편성에 스트링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풍부한 사운드를 구현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이 기타연주로 참여한 '행복하여라'에서는 도시적인 어반풍 음악을 들려준다. 이 외에 '호기심', '밤이 오면', '안개에 젖은 새벽' 같은 연주곡에서 이정선의 깔끔하면서도 노련한 기타 연주를 들을 수 있다. 특히 '밤이 오면'은 해외 프로그레시브 포크 앨범에서나 들을 법한 영롱한 사운드를 선사한다.
한국적인 발라드의 진수를 제시하고자 했던 이앨범에서 '외로운 사람들', '같은 하늘 아래' 등의 곡들이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이 곡들은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도대중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이 앨범의 수록곡은 상당히 자주 리메이크되었다. 봄여름가을겨울은 '외로운 사람들'을, 조하문은 '같은 하늘 아래'를, 최백호는 '어느 날 아침'을 각각 리메이크했다. '외로운 사람들'은 최근 강허달림, 고색창연 등의 후배들이 리메이크했고, 김건모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앨범 발매 이후 이정선은 특정 장르에 치우치지 않고 어덜트 컨템퍼러리 성향의 팝 스타일을 추구했다.
1990년에 발표한 9집 앨범 <雨>는 전곡을 이정선이 직접 작사·작곡하였다. 보컬곡과 서정적인 연주곡이 조화를 이루는 앨범으로 4곡의 연주곡이 수록된 이 음반은 다양한 장르들을 입체적으로 구성했다. 전통적 소재를 현대적으로 표현하는 가운데 정점에 이른 이정선의 기타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음반이다.
이정선은 1975년 1집에서 기타 연주곡 '천사#1' 를, 6집(1981)에서는 연주곡 '빈방' 을 수록했다. 자신의 기타 사운드를 담고자 한 그의 열망은 이어져, 이 앨범에서도 4곡의 연주곡을 실었다.
내면의 가사 전달에 심혈을 기울인 이정선 9집은 1990년 동아기획에서 LP, 카세트테이프, CD로 동시 발매했다. 이정선의 얼굴 정면과 측면을 이어 붙인 표지 디자인은 입체파의 거장 피카소의 그림처럼 독특하다. 앨범에 사용한 악기는 어쿠스틱 기타, 베이스 기타, 드럼·퍼커션, 키보드 등으로, 구성은 단순하지만 악기를 다양하게 배치해 단조로움을 벗으려 했다.
수록곡은 보사노바풍의 '바람부는 날엔', 한국의 전통적 분위기인 '상사타령', 블루스풍의 '상처', 발라드풍의 '항구의 밤' 등으로 입체적인 구성을 보여준다. '항구의 밤'은 1992년 발표한 현이와덕이 유작 앨범 수록곡으로 2003년 발표한 이정선 11집에 재수록했다.
이정선은 마흔 살에 만든 이 앨범에서 최상의 기타 연주를 들려준다. 특히 4곡의 연주곡에는 기타에 대한 열정이 잘 드러난다. '며칠째 비는 내리고'의 연주곡은 A면에, 노래는 B면에 실었는데, 이는 보통 경음악을 뒤에 배치하는 경향과 대비된다.
이 곡은 베이스 기타와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이 독립적(대위적)으로 진행된다. 곡 중간에는 어쿠스틱 기타의 트레몰로 연주로 빗방울을 표현했다. 스페인 작곡가 타레가(F. Tarrega)도 알함브라 궁전의 분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묘사하기 위해 트레몰로 주법을 활용한 바 있다.
'춤추는 꼬마'는 키보드, 드럼, 전자 기타의 세 가지 악기가 고고 리듬을 기본으로 멜로디를 반복 확장하는 론도 형식이다. 곡 중간에 자유로운 전조를 하며 단순한 패턴에 변화를 줬다. '테마1'과 '테마2'는 신시사이저의 코드 반주에 기타의 2중주가 함께하는 이지 리스닝 풍의 서정적인 곡이다. 세련된 선율 진행과 자유로운 전조가 돋보인다. 이정선은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스위트 피플, 리차드 클레이더만 등 이지 리스닝 음악의 트렌드를 감지하고 이를 반영했다.
이정선은 1979년 트리오 풍선의 유일한 앨범에 '통영 개타령'을 수록하면서부터 전통적인 소재를 현대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러한 경향은 1980년 발표한 5집 수록곡 '타령#1', '해송', '목련꽃'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민요를 현대적으로 편곡한 '상사타령'은 기타의 스트로크 반주에 밴조풍의 소리를 삽입했다. ‘상사타령’이란 남녀 간의 사랑과 기쁨을 노래한 민요를 뜻한다. 타령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아리랑의 첫 소절을 가사만 바꿔 3번을 부르면서도 국악적 발성은 자제했다.
1990년 당시 전통적 소리를 추구했던 김수철이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서사적 표현에 몰두했다면, 이정선은 적은 수의 악기만을 사용해 서정성을 강조했다. 그는 전통적 소재를 표현하기 위해 악기 편성에 변화를 주기보다 편곡 자체에 집중했다.
이정선의 10집은 <Unplugged>라는 타이틀로 1994년 발매됐다. 타이틀 때문에 언뜻 전체가 어쿠스틱 악기로 꾸며진 음반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어쩌면 이정선 스스로가 일렉트릭 기타보다 의도적으로 어쿠스틱 기타를 음반에 주로 사용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을 듯하다. 그 배경에는 음반 발매 당시 불어 닥쳤던 ‘언플러그드 라이브’의 ‘유행’ 역시 간과할 수 없다. 1989년 음악 전문 케이블 방송인 MTV에서 시작해 정규 프로그램 편성, 음반 제작으로 이어진 언플러그드 라이브가 음악계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0집 음반은 지난 이정선의 음반들에 비해 확실히 차분하고 정적이다. 그의 기타 연주는 좀처럼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전체적인 조화에 치중한다. 오히려 보컬을 제외한다면 ‘너를 생각하며’는 피아노, ‘고향길’에서는 김정림이 연주한 해금이 주인공이다. 하모니카 연주곡 ‘기다림’ 역시 펑키한 퓨전 성향의 연주에 자신의 자리를 많이 내어준다.
‘기다림’에서 들을 수 있는 전통음악과 포크의 접목은 비슷한 시기 MBC TV의 퓨전 국악 프로그램 <샘이 깊은 물>에 편곡 및 연주자로 출연한 것과도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으며, 풍선 시절의 ‘통영 개타령’ 혹은 9집의 ‘상사타령’과 같이 계속되는 그의 관심을 짐작하게 만든다. ‘노랑나비’는 여러모로 1970년대 후반 해바라기의 음악을 연상시키지만 아쟁의 효과적인 활용으로 그 느낌은 확실하게 다르다. 그런가 하면 박선주가 작곡한 보사노바 넘버 ‘시간 속에서’, 가벼운 레게 느낌이 나는 ‘그대에게 가는 길’, 룸바 리듬의 ‘거울 속의 얼굴’ 등에서는 월드뮤직과 다리를 놓는 이정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정선의 음악 활동에 있어서 가장 활발하게 방송에 출연했던 이력은 KBS TV 드라마 <밤을 해주는 여자> 주제곡 ‘연민’과 EBS 라디오 <사랑의 한 가족>의 시그널 ‘설레임’이라는 흔적 역시 음반에 남겼다.
'고향길'에서 시골 풍경을 표현하기 위해 해금 연주를 전주·간주·후주에 삽입했다. 현대적으로 편곡한 이 앨범의 '상사타령'은 1999년 신세대 국악인 조주선이 전통 창법으로 불러 관심을 받았다
1994년에 빛과소금, 사람과 나무 등과 함께 어쿠스틱 사운드의 'Evergreen Band'를 결성하여 MBC-TV '음악이 있는 곳에'의 반주팀으로 활동하면서 공연활동도 하였고, MBC-TV의 퓨전국악 프로그램 <샘이 깊은 물>(1994-1996년)에 3년간 편곡 및 연주자로 참여하였다. 한편, 다양한 그룹활동을 하면서 솔로 가수 활동도 병행하여 온 이정선은 2003년부터는 '이정선밴드'와 함께 공연 위주의 활동을 하고 있다.
2003년 발매한 11집 <Hand Made>는 마지막 정규 앨범으로 전작이후 9년만에 발표된 음반이다.
< Hand Made>라는 앨범 타이틀처럼 어쿠스틱으로만 꾸려진 이번 음반은 굉장히 구닥다리로 여겨질 수도 있다. 9년만에 재개한 창작활동으로 인해 이정선이라는 이름 석자도 대중들에게 그리 익숙한 이름도 아니기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원숙미를 지닌 대중음악계의 흔치 않는 거장임에는 분명한 사실이고 우리는 그가 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줄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그가 일궈논 80년대의 기반이 없었던들 엄청나게 빠른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지금의 대중음악은 존재할수 없기 때문이다. 값비싼 양복의 소매에 븥어있는 '핸드메이드'라는 태그를 달고 다니듯, 이정선의 이번 음반의 타이틀 '핸드메이드'는 품격있는 음반이란 상징으로 되기에 절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관록의 기타맨답게 모든 기타 연주는 이정선이 도맡아서 했다. 어쿠스틱 기타의 스트록 중심으로 구현된 블루스 사운드는 이번 앨범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매력이다. 오버더빙을 통한 다양한 기타의 테크닉이 오가면서 부드러운 이정선 특유의 목소리에 담긴 멜로디 라인이 방해되지 않는 점 또한 이번 앨범의 큰 특징이다. 여기에 기타의 백그라운드를 받쳐주는 한충완과 김광민의 오르간(혹은 피아노) 소리도 이 앨범의 중요한 포인트 중하나이다. 이 경험많은 장인들의 연주는 절묘하게 어레인지되어 옛것에 대한 정겨움과 함께 블루스 특유의 감성을 느끼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첫곡 '살다보면 언젠가는'은 그 연륜과 편안함이 제대로 묻어나는 곡이다. 특히 어쿠스틱 기타 밑으로 깔리는 하몬드 오르간의 연주는 튀지 않으면서 풍성한 느낌이 일품이다. 그리고 여성 코러스가 잔잔하게 깔리는 '너의 이름'은 대중적으로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곡으로 보여진다. 재즈와 블루스의 감성이 골고루 배어있는 이 곡은 이정선식 발라드의 계보를 이을만한 훌륭한 멜로디라인이 매력적이다. '난 오늘'은 초기 포크의 경향이 두드러지며 '비속에 서있는 여자'와 '아픔'에서는 80년대 블루스 스타일이 진하게 배어져 있다.
특히 '빗속에 서있는 여자' 는 80년대 명혜원과 신촌블루스의 정서용이 불렀던 대표적인 여성 블루스 곡인데 이정선에 맞게 재편곡해서 불러도 그 느낌은 여전히 좋았다. 전반적으로 이 앨범을 장르적으로 구분한다면 블루스를 기초로한 발라드 정도로 범주화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장르적 구분이나 음악의 특징으로 이정선의 음악을 이야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음반에 담긴 모든 것은 이정선식 스타일이고 또 그만이 표현할 수 있는 편안함이기 때문이다.
김광민이 피아노로 옅은 재즈, 블루스 느낌을 반주하는 ‘상실’, 트로트 가수들이 부르는 듯한 블루스 ‘항구의 밤’은 이색적이다. 이정선이 천진하게 사랑에 빠졌다고 노래하는 ‘난 오늘’,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가 발랄한 ‘답답한 날에는 여행을’은 포크 록이다.
연주곡 ‘생각이 많아도 말을 못하고’에서는 이정선이 직접 하모니카를 불었다. 가야금 연주자 지애리의 ‘성금연류’ 가야금 산조에 이정선이 12줄 기타로 협연한 곡이 보너스로 들어 있다. 보가야금과 어쿠스틱 기타로 일궈낸 산조는 거의 처음 시도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이정선은 솔로 가수로도 활동했지만 작곡가로도 활발하게 작품을 만들었다. 자신이 직접 부른 노래 말고도 다른 가수가 불러 잘 알려진 수 많은 명곡들을 그가 만들었는데 대표적인 노래들로는 이광조의 '오늘 같은 밤', '나들이', 조하문의 '같은 하늘 아래' , 징검다리의 '여름' , 김광석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한영애의 '건널 수 없는 강' 등 이있다.
한편으로, 1975년 '영주와 은주' 앨범의 작, 편곡을 시작으로, 많은 가요 앨범에 기타연주자와 음악편곡자로 참여하며 어쿠스틱 기타의 느낌을 잘 표현하는 편곡자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1977년 MBC 대학가요제가 시작되면서 연이어 강변가요제, 해변가요제 등의 입상곡을 모은 앨범출반이 뒤따랐고 이후 10여년 동안 대부분의 앨범 녹음에 이정선은 편곡, 연주자로 참여하였다.
이정선은 솔로가수로 13장의 앨범을, 해바라기라는 중창팀으로 3장의 앨범을 발표했고 또 신촌블루스라는 밴드 활동을 하면서 2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평론가들이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중 이정선7집과 신촌블루스 1,2집 등 모두 3장이 이정선의 음악들로 만들어진 음반이니 아주 큰 성과를 이룬 대중 음악가이다.
1984년부터 세광 출판사에서 기타교본을 출판하면서 1990년에는 출판사를 설립해 연주악보를 50여권 출판하며 대중음악 발전에 일조했다. 1980년 동아일보 문화센터 강사로 시작하여, 서울예술전문대학 실용음악과에 출강(1989~2004) 하였고, 1998년부터 2016년까지 동덕여자대학교 실용음악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동 대학 공연예술대학 학장을 역임하였다.
0집 《이정선 노래모음 / 이리저리》(1973년)
1집 《이정선》(1976년)
2집 《이정선 제2집》(1976년)
3집 《이정선 3》(1977년)
4집 《이정선 4》(1979년)
5집 《이정선 5》(1979년)
6집 《이정선 제6집》(1981년)
6.5집 《이정선 6 1/2》(1981년)
7집 《30대》(1985년)
8집 《Ballads》(1988년)
9집 《雨》(1990년)
10집 《Unplugged》(1994년)
11집 《Handmade》(2003년)
1977년 해바라기 노래모음 제1집
1979년 해바라기 2집
1986년 해바라기 3집
1988년 신촌블루스 1집
1989년 신촌블루스 2집
1979년 이정선과 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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